철학

포스트모더니즘은 왜 사람들을 더 관용적으로 만들지 못했을까


객관성을 의심하고 다양한 관점을 존중하려 했던 포스트모더니즘이 왜 현실 정치에서는 관용보다 진영 갈등과 불신을 키웠는지 살펴봅니다.

하나의 현실을 서로 다른 색의 틀로 바라보는 두 사람

포스트모더니즘의 출발점에는 꽤 매력적인 생각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 가운데 상당수는 시대와 사회, 권력관계의 영향을 받습니다. 같은 사건도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할 수 있고, 힘 있는 집단의 생각이 객관적 진실처럼 받아들여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자신의 생각만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별문제가 없습니다. 오히려 이런 태도는 사람을 겸손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문제는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과 ‘모든 것은 결국 관점의 차이다’라는 생각이 전혀 다르다는 데 있습니다. 사람마다 관점은 다를 수 있지만 모든 주장이 같은 가치를 갖는 것은 아닙니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주장과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주장은 관찰과 측정을 통해 현실에 더 잘 맞는 쪽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경험주의의 중요한 장점입니다.

사람은 존중하되, 주장은 검증할 수 있습니다.

푸코나 데리다 같은 사상가들이 사실 확인은 필요 없다고 주장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객관적이라고 불리는 지식과 제도조차 역사와 권력관계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문제는 이 비판이 대중문화와 정치에 흡수되는 과정에서 생겼습니다. ‘객관성도 완전하지 않다’는 말이 ‘그러므로 객관적 사실을 따지는 일은 별 의미가 없다’는 말로 변하기 쉬웠던 것입니다.

틀린 것이 아니라 입장이 다른 것이 됩니다

상대방에게 “당신이 알고 있는 사실이 틀렸습니다”라고 말하면 자료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통계를 확인하고, 기록을 살피고, 실험을 할 수도 있습니다. 상대방이 틀렸다는 사실이 밝혀질 수도 있고 내가 틀렸다는 사실이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논쟁을 끝낼 방법은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관점과 담론의 문제로 돌리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내가 자료를 제시하면 상대방은 그 자료가 특정한 사회구조에서 만들어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경험을 제시하면 나 역시 그것은 당신의 사회적 위치에서 나온 경험일 뿐이라고 답할 수 있습니다.

이런 논쟁의 결정적인 문제는 반증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다시 관점과 권력의 문제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과 부딪혀 틀렸다는 판정을 받을 가능성을 피하는 주장은 정교해 보일 수 있지만, 우리가 함께 확인할 수 있는 세계를 조금씩 없앱니다.

관용은 상호적일 때 미덕입니다

어떤 제품 성분의 표시 함량이 80~125%까지 허용된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범위는 생산 오차나 유통 중 손실을 감안하기 위한 것입니다. 정상적인 제조업자라면 시간이 지나 함량이 떨어질 가능성까지 고려해 처음에는 100%보다 조금 더 넣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함량을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고 규정만 어기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제조업자에게는 80%에 최대한 가깝게 만드는 편이 이익입니다. 불가피한 오차를 보호하려고 만든 허용 범위가, 누군가에게는 최대한 이용할 수 있는 여유가 됩니다.

관용도 비슷합니다. 내가 틀릴 수 있으니 상대방을 존중하자는 태도는 서로 같은 규칙을 지킬 때 좋은 원칙입니다. 그러나 한쪽만 자신의 확신을 계속 낮추고 다른 쪽은 그 관용을 전술로 이용한다면 미덕은 약점으로 바뀝니다.

사울 알린스키는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에서 상대방이 스스로 정한 규칙을 끝까지 따르도록 압박하라는 취지의 전술을 제시했습니다. 이것을 좌파만의 전술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어느 진영이든 상대방은 관용과 절차, 공정성에 묶어두면서 자신은 같은 기준을 따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관용은 모든 주장을 참이라고 인정하는 태도가 아니라, 같은 검증 규칙 아래 상대방이 말할 기회를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거짓말보다 의혹이 퍼뜨리기 쉽습니다

언론이 거짓말을 직접 만들어 보도하면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제기한 의혹을 ‘이런 주장이 나왔다’며 보도하는 일은 조금 다릅니다. 나중에 거짓으로 밝혀져도 당시에는 알 수 없었고 주장을 전달했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처음의 자극적인 보도는 크게 퍼지지만 며칠 뒤의 정정은 거의 읽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실을 충분히 확인하는 사람보다 의혹을 먼저 퍼뜨리는 사람이 유리해집니다. 여기에 더 강력한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상대 진영에서 나온 가장 황당한 이야기를 부각한 뒤, 그것으로 상대방 전체를 희화화하는 것입니다.

트럼프를 둘러싼 카터 페이지 FISA 문제와 피자게이트는 이 차이를 보여줍니다.

FBI는 2016년 트럼프 캠프 외교정책 고문이었던 카터 페이지를 감시하기 위해 FISA 법원에 영장을 신청했습니다. 미국 법무부 감찰관은 이후 네 차례의 신청서에서 17건의 중대한 오류와 누락을 확인했습니다. 그렇다고 러시아 수사 전체가 조작이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감청영장 신청 과정에 실제로 검토할 만한 문제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피자게이트는 전혀 달랐습니다. 민주당 인사들이 워싱턴의 피자가게를 중심으로 아동 성착취 조직을 운영한다는 근거 없는 인터넷 음모론이었습니다. 2016년 12월에는 이 이야기를 믿은 남성이 총기를 들고 코멧 핑퐁에 들어가 발포하는 사건까지 벌어졌습니다.

FISA 문제를 설명하려면 카터 페이지와 비밀 법원, 영장 신청 과정과 감찰 결과를 차례로 이야기해야 합니다. 반면 피자게이트는 ‘피자가게의 비밀 조직을 믿고 총을 든 사람’이라는 한 문장으로 기억됩니다. 둘을 하나의 음모론 이미지로 묶으면 FISA 절차의 문제를 제기한 사람까지 황당한 이야기를 믿는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것이 희화화의 힘입니다. 상대방의 주장을 반박하지 않아도 상대방을 우스운 사람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주장이 아니라 정체성을 재판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 때문에 정치적 갈등이 생겼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정치적 갈등은 훨씬 오래전부터 존재했고, 오늘날의 양극화에는 소셜미디어와 광고시장, 정당정치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제가 중요하게 보는 것은 갈등의 강도보다 성격의 변화입니다.

“당신이 알고 있는 사실이 틀렸습니다”라는 말과 “당신은 원래 그런 것을 믿는 사람입니다”라는 말은 다릅니다. 첫 번째에는 논쟁의 끝이 있습니다. 자료를 확인하고 틀린 쪽이 생각을 고치면 됩니다. 두 번째는 주장 대신 정체성을 공격합니다.

보수주의자이기 때문에, 리버럴이기 때문에, 남자이기 때문에, 여자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다고 설명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의 말을 자세히 들을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면 주장까지 이미 안다고 믿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사실을 보고 진영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진영을 먼저 선택하고 그 진영에 맞는 사실을 고릅니다. 자신의 편에 유리한 의혹은 검증되지 않았어도 중요하고, 불리한 사실은 상대편의 프레임이나 서사가 됩니다. 반대편도 똑같이 행동하면 서로 다른 해석이 아니라 서로 다른 현실이 만들어집니다.

관용을 지키려면 공동의 현실이 필요합니다

사실은 하나일 수 있지만 해석은 여러 개일 수 있다는 말과, 사실 자체가 진영마다 다를 수 있다는 말은 전혀 다릅니다. 전자를 인정하면 토론할 수 있습니다. 후자를 인정하면 토론할 이유가 사라집니다.

경험주의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경험주의는 내가 편견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선언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틀릴 수 있기 때문에, 나와 상대방의 주장을 같은 현실 앞에 세우자는 태도입니다.

내가 트럼프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는 그다음 문제입니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은 하나입니다.

그 이야기가 사실인가.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이 질문 하나도 공유할 수 없다면 관용은 오래 유지될 수 없습니다. 관용은 진실을 포기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진실을 독점할 수 없으므로 함께 확인하는 절차를 지킬 때 생기기 때문입니다.

참고문헌

  • 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 《포스트모던의 조건》
  • 사울 D. 알린스키,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
  • U.S. Department of Justice, Office of the Inspector General, Review of Four FISA Applications and Other Aspects of the FBI’s Crossfire Hurricane Investigation (2019)
  • U.S. Department of Justice, North Carolina Man Pleads Guilty to Charges in Armed Assault at Northwest Washington Pizza Restaurant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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