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사르트르는 왜 진화론 이후의 철학자가 되지 못했는가


장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가 가진 한계를 다윈의 진화론적 인간관으로 분석하며, 인간은 무에서 스스로를 창조하는 자유의식이 아니라 진화된 본성 속에서 자신을 조금씩 수정하는 존재임을 고찰합니다.

자유로운 의식의 거울과 진화적 인체·신경망의 상징을 관조하는 철학적 일러스트

장폴 사르트르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입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그의 문장은 철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인간에게 미리 정해진 목적이나 운명은 없으며, 인간은 자신의 선택을 통해 스스로를 만들어간다는 주장입니다.

처음 들으면 강렬합니다. 신이 인간을 특정한 목적으로 창조했다는 전통적 인간관을 부정하고, 인간의 자유와 책임을 전면에 내세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화론을 알고 난 뒤 사르트르를 읽으면 이상한 느낌이 듭니다. 인간에게 신이 부여한 본질이 없다는 데에는 동의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채 선택만으로 자신을 만드는 존재라는 결론으로 넘어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사르트르는 신이 없는 세계는 이해했지만, 그 세계에서 인간이 어떤 동물인지는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본질이 없다는 것과 본성이 없다는 것은 다릅니다

사르트르 철학의 핵심은 인간에게 고정된 본질이 없다는 주장입니다.

여기서 본질은 인간이 반드시 따라야 할 초월적 목적을 뜻합니다. 신이 인간을 어떤 목적에 맞추어 창조했거나, 인간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특정한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는 관념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간에게 본질이 없다는 주장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인간은 태어나기 전에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한다거나, 특정한 도덕적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고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본질이 없다고 해서 본성까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빈 종이처럼 태어나지 않습니다. 인간에게는 애착, 공포, 질투, 성욕, 지위 경쟁, 집단 소속 욕구, 가족에 대한 애정,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 같은 공통된 성향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정도와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이러한 성향은 단순히 사회가 가르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마음도 자연선택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진화론 이후의 인간관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초월적으로 정해진 목적은 없지만, 진화를 통해 형성된 본성은 존재합니다.

사르트르는 첫 번째 명제는 받아들였지만 두 번째 명제를 충분히 다루지 못했습니다.

인간은 선택하기 전에 이미 많은 것을 부여받습니다

사르트르의 인간은 선택을 통해 자신을 만들어가는 존재입니다. 물론 사르트르도 인간이 특정한 시대, 사회, 계급, 신체적 조건 속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그는 이를 인간이 처한 ‘상황’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의 철학에서 마지막 결정권은 대체로 의식의 자유에 돌아갑니다.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의미를 부여할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실제 인간이 그렇게 자유롭지도, 그렇게 자기 자신을 잘 이해하지도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기질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부모와 성장 환경, 신체 조건, 지능, 질병, 기억, 욕망도 대부분 선택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좋아하고 두려워하는지조차 의식적으로 결정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인간은 선택하기 전에 이미 수많은 조건을 부여받습니다.

더구나 사람은 자신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감정과 습관에 따라 행동한 뒤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자신의 과거를 현재의 관점에 맞추어 다시 기억하기도 합니다. 자신은 자유롭게 결정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집단 압력, 지위 욕구, 두려움과 자기합리화에 지배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인간을 순수한 선택의 주체로 설명하는 것은 지나치게 관념적입니다.

사르트르는 영혼을 버리고 자유의식을 세웠습니다

전통적인 종교적 인간관에서는 인간을 동물과 구별하는 특별한 요소로 영혼을 제시했습니다. 인간은 육체적 존재이면서도 자연법칙을 넘어서는 영혼을 지녔다는 것입니다.

사르트르는 이러한 종교적 설명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특별함 자체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영혼이 차지하던 자리에 자유로운 의식을 놓았습니다.

인간은 사물처럼 고정된 존재가 아니며, 자신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넘어서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사르트르가 말한 ‘대자존재’는 자신을 의식하고 부정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선택하는 존재입니다.

문제는 이 자유로운 의식이 자연 속에서 어떻게 생겨났고, 신체와 본능, 감정과 무의식에 의해 어떻게 제한되는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결국 사르트르는 영혼을 부정했지만, 영혼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거의 절대적인 자유의식을 다시 세웠습니다.

인간을 자연 속의 동물로 완전히 내려놓지 못한 것입니다.

자유는 제약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사르트르의 자유를 비판한다고 해서 인간에게 자유가 전혀 없다고 주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문제는 자유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입니다.

사르트르식 자유는 인간이 자신의 상황에 의미를 부여하고 스스로를 선택하는 근본적인 능력에 가깝습니다. 이에 비해 진화론적 인간관에서 자유는 훨씬 제한적이고 구체적인 능력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충동을 억제할 수 있습니다. 장래의 결과를 예상하고 현재의 행동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습관을 바꾸고, 규칙을 만들며, 타인의 관점에서 자신의 행동을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능력 역시 진화와 발달, 학습을 통해 형성된 것입니다.

따라서 자유는 자연에서 벗어나는 초월적 능력이 아니라, 자연선택으로 발달한 자기조절 능력이라고 보는 편이 타당합니다.

인간의 자유는 제약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제약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그 안에서 행동을 수정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자유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정도의 문제입니다.

충동을 조절하는 능력, 정보를 이해하는 능력, 선택 가능한 대안의 수, 사회적·경제적 조건에 따라 사람의 자유는 달라집니다. 이러한 설명이 실제 인간의 삶에도 더 잘 맞습니다.

사르트르가 포착한 진실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사르트르의 철학 전체가 무가치한 것은 아닙니다.

그가 말한 자기기만은 여전히 중요한 통찰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선택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직업, 신분, 명령, 관습 뒤에 숨습니다. 자신은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면서 책임을 회피합니다.

사르트르의 자기기만(Bad Faith)에 대한 경고는 루소의 자기기만이나 경험주의적 삶의 태도에서 다룬 논의처럼 여전히 날카로운 통찰을 줍니다. 사람은 자신의 선택과 책임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직업, 신분, 명령, 관습 뒤에 숨기 때문입니다.

사르트르는 인간이 사회적 역할과 완전히 동일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점원은 단지 점원이 아니고, 군인은 단지 명령을 수행하는 기계가 아니며, 누구도 자신의 직함과 환경만으로 모든 행동을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지적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다만 그것은 인간 전체를 설명하는 과학적 이론이라기보다, 인간이 책임을 회피하는 방식을 예리하게 묘사한 도덕적·문학적 통찰에 가깝습니다.

사르트르가 인간의 특정한 모습을 잘 묘사했다는 것과 그의 인간관 전체가 정확하다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사르트르는 진화론 이전과 이후 사이에 있었습니다

사르트르는 다윈 이후에 살았던 철학자입니다. 그러나 시대적으로 다윈 이후에 살았다는 사실과 진화론의 함의를 철학적으로 충분히 받아들였다는 것은 다릅니다.

진화론은 단지 인간의 몸이 다른 동물과 공통 조상에서 유래했다는 이론이 아닙니다. 인간의 감정과 인지, 도덕성과 사회성 역시 생존과 번식의 역사 속에서 형성되었다는 뜻입니다.

이 점을 받아들이면 인간은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채 세상에 던져진 순수한 자유의식일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 초월적 목적은 없지만 진화적 역사는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본성을 선택하지 않았지만, 그 본성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조절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완전히 결정된 존재도 아니고,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도 아닙니다.

사르트르는 인간에게 신이 부여한 본질을 해체하는 데에는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그 빈자리를 진화론적 인간 본성으로 채우지는 못했습니다.

그 결과 그의 철학은 진화론 이후의 철학이라기보다, 종교적 인간관과 진화론적 인간관 사이에 놓인 과도기적 철학으로 보입니다.

인간은 자신을 창조하는 존재가 아니라 수정하는 존재입니다

사르트르는 인간이 자신의 선택을 통해 스스로를 만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인간은 자신을 처음부터 창조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이미 만들어진 몸과 뇌, 기질과 욕망, 가족과 문화 속에서 출발합니다. 그중 일부를 이해하고, 일부를 억제하며, 일부를 훈련을 통해 변화시킬 뿐입니다.

따라서 인간을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을 무에서 창조하는 존재가 아니라, 주어진 자신을 조금씩 수정하는 존재입니다.

이 관점에서도 책임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책임의 범위를 더 현실적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실제로 무엇을 선택할 수 있었는지, 어떤 능력과 정보가 있었는지, 어떤 충동과 압력 속에 있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르트르는 자유와 책임을 강조했지만, 자유를 너무 크게 만들면서 오히려 실제 인간을 놓쳤습니다.

그는 신이 없는 세계를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그 세계에서 인간이 자연선택을 통해 만들어진 동물이라는 사실까지 철학적으로 밀고 나가지는 못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사르트르의 철학이 거창한 언어에 비해 다소 허술하게 보이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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