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경험주의는 생각보다 어렵다


증거를 믿는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 포퍼와 쿤의 논쟁, 과학적 회의주의의 위험성, 그리고 현실을 모델보다 우선하는 태도의 어려움.

경험주의는 생각보다 어렵다

사람들은 흔히 경험주의를 매우 단순한 태도로 생각합니다. 현실을 보고 판단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증거를 보고 결론을 내리면 되고, 사실이 바뀌면 생각도 바꾸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언뜻 보면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주의자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경험주의는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태도입니다. 왜냐하면 경험주의는 단순히 증거를 존중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굳게 믿고 있는 모델마저 의심하고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증거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믿는 이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열심히 찾습니다. 문제는 증거가 자신의 기대와 충돌할 때 발생합니다. 그때 우리는 현실을 수정해야 할까요, 아니면 자신이 가진 모델을 수정해야 할까요? 이 질문은 생각보다 오래된 문제입니다. 20세기 과학철학에서 가장 유명한 논쟁 가운데 하나였던 칼 포퍼(Karl Popper)와 토마스 쿤(Thomas Kuhn)의 논쟁 역시 결국 이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포퍼는 과학자가 자신의 이론을 끊임없이 시험하고 반증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오늘날에도 매우 설득력 있게 들리는 주장입니다. 실제로 처음 포퍼를 읽으면 많은 사람들이 그가 훨씬 합리적이라고 느낍니다.

반면 토마스 쿤은 전혀 다른 질문을 던졌습니다. 과연 실제 과학자들이 그렇게 행동하느냐는 것입니다. 쿤이 과학사를 연구하면서 내린 결론은 의외였습니다. 실제 과학자들은 매일 자신의 이론을 부정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대부분은 기존 이론을 전제로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뉴턴 역학을 믿는 물리학자는 뉴턴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뉴턴 역학을 이용해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려고 연구했습니다. 쿤은 이러한 과정을 '정상과학'이라고 불렀습니다. 훗날 배리 반즈(Barry Barnes)는 이 논쟁을 흥미롭게 해석했습니다. 그의 관점에서 포퍼는 과학이 어떠해야 하는지 '규범'을 설명하고 있었고, 쿤은 과학자들이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는지 '현실'을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포퍼의 이야기가 훨씬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배리 반즈의 해석을 따라가다 보면 논쟁의 성격 자체가 달라집니다. 그것은 더 이상 좋은 과학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현실을 볼 것인가 아니면 이상을 볼 것인가의 문제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비슷한 문제가 과학적 회의주의 운동에서도 나타났다는 점입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과학적 회의주의 운동은 미신과 초자연주의에 맞서 과학적 사고를 확산시키려 했습니다. 그 중심에는 폴 커츠(Paul Kurtz)가 있었습니다. 그는 과학과 합리성을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그 공로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선한 목적이 항상 경험주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순간부터 회의주의 역시 하나의 정체성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과학 편이다", "우리는 합리성을 대표한다", "우리는 비과학과 싸운다"와 같은 신념은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만, 동시에 위험도 가지고 있습니다.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 모델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모델을 지키기 위해 현실을 해석하기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셸 고클랭(Michel Gauquelin)의 화성효과 논쟁은 이러한 문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고클랭은 특정 운동선수 집단의 출생 자료를 분석한 결과 화성의 위치가 통계적으로 예상보다 자주 나타난다는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중요한 점은 그가 전통적 점성술 전체를 옹호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는 단지 설명하기 어려운 통계적 패턴이 존재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다면 경험주의적 태도는 무엇일까요? 통계가 틀렸을 수도 있고, 자료에 편향이 있을 수도 있으며, 혹은 아직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경우든 결론은 하나, "아직 모른다"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이 결론을 매우 불편하게 생각합니다. 설명이 없는 혼란스러운 상태를 견디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설명되지 않는 현상을 어떻게든 아는 틀에 억지로 집어넣으려고 합니다. 종교도 그렇게 하고, 이데올로기도 그렇게 하고, 때로는 과학도 그렇게 합니다. 회의주의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점성술은 틀렸다. 그러므로 이런 결과는 나올 수 없다"라고 말한다면, 그는 점성술을 합리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존 모델을 필사적으로 방어하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점에서 마르첼로 투르지(Marcello Truzzi)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그는 점성술을 옹호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단지 설명되지 않는 것을 설명되지 않는 상태로 남겨둘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경험주의가 요구하는 가장 어려운 덕목일지 모릅니다. 뉴턴은 중력이 왜 작동하는지 본질은 모른다고 말했고, 흄은 인과관계의 실체를 완벽히 알 수는 없다고 인정했으며, 쿤은 과학자들이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있는 그대로 관찰했습니다. 그리고 투르지는 설명되지 않는 데이터를 억지로 이론에 맞춰 왜곡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현실을 모델보다 우선했다는 것입니다.

경험주의는 단순히 증거를 중시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의 이론과 신념, 심지어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모델까지도 현실 앞에서 언제든 수정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겸손한 태도입니다. 그래서 경험주의는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현실을 믿는 것은 쉽지만, 그 현실이 자신이 평생 믿어온 신념과 충돌할 때도 여전히 현실을 믿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경험주의가 요구하는 진짜 훈련이자 용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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