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드 레프트는 왜 뉴 레프트의 상대주의를 공격했는가
1996년 미국의 수리물리학자 앨런 소칼은 문화연구 학술지 《Social Text》에 〈경계를 넘어서: 양자중력의 변혁적 해석학을 향하여〉라는 가짜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논문에는 양자중력과 비선형과학, 그리고 데리다, 라캉, 사회구성주의의 언어가 섞여 있었으며, 자연과학 역시 객관적 실재를 구하는 활동이 아닌 사회적 담론이므로 진보적 정치운동과 결합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었습니다.
《Social Text》가 이 게재 논문을 출판하자 소칼은 곧바로 논문의 과학적 주장이 터무니없는 거짓이며 학술지가 논리와 사실 대신 자신들의 정치적 취향에 맞는 글이라는 이유만으로 받아들이는지 시험했다고 밝혔습니다. 소칼 사건은 흔히 과학자가 포스트모더니즘을 조롱한 사건으로 알려져 있지만, 소칼 자신은 평등과 사회정의를 지지하는 올드 레프트였습니다.
그가 문제 삼은 것은 객관적 사실과 과학적 이성을 의심하기 시작한 좌파의 상대주의적 흐름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칼 사건은 우파와 좌파의 충돌이라기보다, "올드 레프트가 뉴 레프트에 던진 내부 비판"으로 읽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현실을 바꾸려면 현실을 알아야 한다
올드 레프트의 전통적인 관심은 임금, 노동시간, 생산수단 소유, 부의 분배 등 노동과 경제의 객관적 현실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마르크스주의도 스스로를 과학적 사회분석이라 주장하며 표면 아래 감추어진 계급구조와 착취를 증명하려 했습니다. 자본주의의 착취는 노동자의 주관적 불쾌감이 아닌 실제 임금과 소유관계라는 객관적 사실에 근거했습니다.
정치적 목표가 아무리 정의로워도 현실 판단이 틀리면 정책은 실패합니다. 소칼은 과학 연구 과정에 사회적 편견이나 정치 권력이 개입할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연구기관이 남성 중심적이라고 해서 전자의 전하량이 남성 권력의 산물이 될 수는 없다고 경계를 그었습니다. 자연현상 자체를 사회적 합의나 담론으로 치부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계급에서 문화로
1960년대 이후 뉴 레프트는 인종차별, 여성의 지위, 식민주의, 성적 소수자 등 기존 계급론이 다루지 못한 권력관계를 분석하기 위해 학교, 정신의학, 가족, 언어, 대중문화 등의 영역으로 관심사를 넓혔습니다. 푸코, 데리다 등 프랑스 포스트구조주의가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러한 문제 제기 자체에는 가치가 있었으나, 일부 이론가들이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사실’이라 부르는 것 자체가 권력과 언어의 산물이라는 상대주의적 결론으로 이동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무엇이 사실인가보다 누가 그것을 사실이라고 말할 권력을 가졌는가가 중요해졌고, 객관성을 주장하는 사람은 자신의 특권을 감추려는 의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소칼이 공격한 지점이 바로 여기였습니다.
사실이 없다면 불의도 증명할 수 없다
소칼의 비판은 단순히 포스트모던 글쓰기의 난해함을 조롱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실이 관점과 권력에 의해 구성된 것이라는 상대주의가 좌파정치의 근거 자체를 해체한다고 보았습니다.
정부의 민간인 학살, 기업의 노동자 위험 은폐, 인종차별, 기후변화의 피해를 비판하려면 객관적 데이터와 엄밀한 사실이 필수적입니다. 공통의 사실을 해체하는 상대주의 무기는 약자뿐 아니라 권력자도 그대로 사용하여 학살이나 빈곤 통계를 단순한 ‘좌파의 담론’으로 치부하는 데 악용할 수 있습니다. 현실이 존재해야 억압도 존재하며,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야 거짓말도 폭로할 수 있는 것입니다.
편집자가 좋아할 만한 논문
소칼은 《Social Text》 편집진이 선호할 정치적 결론—양자중력마저 사회적 구성물이며 과학적 객관성을 비판해야 한다는 결론—을 의도적으로 준비했습니다.
그가 던진 질문은 단순했습니다. 주장이 과학적으로 터무니없더라도 정치적으로 올바른 방향이면 출판되는가? 대답은 그렇다였습니다. 편집자들은 물리학 전문가의 검토 없이 유명 물리학자가 자신들의 포스트모던 언어를 채택했다는 정치적 정당성만 보고 논문을 채택했던 것입니다.
올바른 결론은 검증을 대신할 수 있는가
소칼 사건은 올바른 정치적 결론이 논증과 사실의 빈틈을 가려버리는 위험을 드러냈습니다. 억압받는 사람을 옹호한다는 명분만으로 도덕적 정당성을 획득하고, 반대로 객관성이나 보편성을 요구하면 기득권 옹호로 몰아세우는 경향입니다.
그러나 선의가 크다고 오류의 피해가 줄어들지는 않으며, 약자를 위한다는 정책이 실제로는 약자를 해칠 수도 있습니다. 진보적 목적일수록 더 엄격한 경험적 검증을 거쳐야 합니다.
과학의 오용과 과학의 부정
우생학, 강제불임, 동성애의 질병 분류, 식민지배 등 과거 과학이 권력과 결합해 악용된 역사 때문에 뉴 레프트가 과학의 중립성을 의심한 것은 자연스러운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의 오용과 과학적 사실 자체는 구분해야 합니다. 원자폭탄을 만들었다 해서 핵분열이 허구가 되는 것은 아니며, 동성애 분류의 오류는 통계와 자료를 통해 스스로 교정할 수 있음을 증명합니다. 과학의 오용을 비판하려면 더 정교한 증거가 필요함에도, 증거 자체를 권력의 담론으로 부정하는 순간 비판은 경험주의를 떠나 해석의 정치로 전락합니다.
올드 레프트와 뉴 레프트의 차이
올드 레프트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객관적 현실과 과학적 도구를 존중했고, 생산량과 임금을 측정했습니다. 반면 뉴 레프트 일부는 현실이라는 개념 자체를 권력의 산물로 의심하고 누구의 목소리가 지식으로 인정받는지를 물었습니다.
지식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질문도 가치가 있지만, 객관적 현실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포스트모던 상대주의는 다른 문제입니다. 소칼은 올드 레프트로서 그 경계를 지키려 했습니다.
과거의 좌파가 현실과 만났을 때
과거의 올드 레프트 공산주의자들은 소련을 이상향으로 생각했으나, 스탈린의 숙청과 강제노동수용소, 검열과 기근이라는 엄연한 현실을 목도한 뒤 자신의 신념을 수정하거나 지지를 철회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이론은 현실과 결박되어 있었기에 현실의 실패가 이론의 직접적 반증이 될 수 있었습니다.
반증을 피해 이동하는 이론
반면 뉴 레프트 이론은 현실의 반증을 피해 끊임없이 이동합니다. 계급 분석이 실패하면 인종이나 젠더로, 경제 구조가 안 맞으면 문화와 언어, 미세한 표정이나 무의식적 편견 분석으로 옮겨갑니다.
마르크스에서 푸코로, 계급에서 정체성으로 언어를 바꾸며 살아남습니다. 하나가 반박되어도 전체 세계관은 수정되지 않고 새로운 대상을 찾아 이동하므로, 현실이 이론을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론이 새로운 현실을 선택하게 됩니다.
소칼이 겨냥한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소칼은 평등이라는 좌파의 목적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 그 정치적 목적이 논증과 사실의 검증을 건너뛰려는 태도를 공격했습니다. 뉴 레프트의 틀에서는 주장의 타당성보다 발언자의 정체성(백인, 남성, 보수주의자 여부 등)을 먼저 심판하는 일이 흔히 일어납니다. 소칼은 좌파의 언어를 똑같이 모방함으로써 정치적 정체성이 논리적 오류를 가릴 수 없음을 명확히 증명했습니다.
보수주의자는 왜 논쟁 상대가 되지 못하는가
정치이론이 사회를 억압자와 피억압자로 단칼에 가르면, 보수주의자는 설득해야 할 시민이 아니라 기존 억압 체제를 유지하는 가해자로 규정됩니다. 그의 주장이 사실 관계에서 맞는지 틀린 지를 논하기 전에 도덕적으로 나쁜 위치에 서 있다고 단죄됩니다. 상대방의 정책 결과를 검토하는 대신 상대의 인격과 자격을 심판하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사실을 해체한 뒤 남는 것
객관적 사실의 기준을 해체하면 권력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올바른 해석인지를 정하는 새로운 문화적·지적 권력이 등장합니다. 객관성의 권위를 공격한 자리에 도덕적 독단주의가 들어서며, 정체성에 관한 특정한 해석만이 의심할 수 없는 진실로 우뚝 서게 됩니다.
소칼 사건은 우파의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소칼 사건은 우파가 좌파를 조롱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소칼은 좌파가 현실을 비판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인 ‘객관적 현실과 사실’을 포기하지 않도록 경고했던 것입니다. 노동조건 조사, 전쟁범죄 고발, 정부 거짓말 폭로 모두 참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는 현실이 존재해야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소칼 사건이 증명하지 못한 것
가짜 논문 한 편으로 문화연구나 뉴 레프트 전체가 무가치하다고 볼 수는 없으며 엄밀한 젠더·사회학 연구도 존재합니다. 소칼 사건이 증명한 한계는 명확합니다. 정치적으로 아무리 유혹적인 결론이라도 과학적 증거와 논증을 대신할 수 없으며, 진보적 목적도 사실 검증의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이론은 살아남고 대화는 패배합니다
현실에 의해 수정되지 않는 포스트모던 뉴 레프트 이론은 관심 대상과 언어를 바꾸며 살아남지만, 상대의 정체성과 도덕성을 먼저 심판하는 정치가 팽배해지면서 건강한 공론장의 대화는 패배하게 됩니다.
소칼 사건은 현실을 바꾸려면 먼저 현실을 존중해야 한다고 믿었던 올드 레프트가, 진실을 정치적 위치와 철학적 취향의 문제로 바꾸기 시작한 뉴 레프트에 던진 엄중한 경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