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김지하는 왜 보수주의자가 되었는가


1970년대 저항의 시인이었던 김지하가 1991년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는 비판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감정과 열정에 대한 의심을 통해 현실주의적 보수성에 도달한 사상적 여정을 분석합니다.

1970년대의 격렬한 저항에서 1991년 이성적 회의주의로 나아가는 김지하의 사상적 궤적
정치적 감정과 도덕적 열정에 대한 성찰을 통해 보수주의적 리얼리즘에 다가선 김지하

김지하는 왜 보수주의자가 되었는가

이성과 감정의 정치

김지하를 이해하려면 먼저 1970년의 김지하와 1991년의 김지하를 나란히 놓고 보는 것이 좋습니다.

1970년 김지하는 《사상계》에 담시 **「오적」**을 발표했습니다. 그가 ‘오적’이라고 부른 대상은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었습니다. 당시 권력층의 부패와 탐욕을 판소리의 리듬과 과장된 풍자로 공격한 작품입니다. 한국문학번역원 역시 「오적」을 권력자의 비리와 부패를 풍자한 김지하의 대표적인 담시로 설명합니다.

「오적」은 단순한 문학작품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신민당 기관지 《민주전선》이 이를 전재하면서 사건은 정치문제가 되었고, 박정희 정부는 김지하와 《사상계》 관계자 등을 반공법 위반으로 문제 삼았습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이를 별도의 **‘오적 필화사건’**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 「오적」과 필화사건 자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오적 필화사건

김지하는 이후에도 권위주의 체제에 맞서는 대표적인 저항시인이 되었습니다. 1975년 발표한 **「타는 목마름으로」**는 그런 김지하를 상징하는 작품입니다. 한국문학번역원은 이 시를 폭압적인 정치상황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표현한 작품으로 설명합니다.

▶ 「타는 목마름으로」 작품 정보와 해설 한국문학번역원 — 타는 목마름으로

1970년대의 김지하는 의심할 여지 없이 저항의 편에 서 있었습니다. 세상에는 억압하는 자와 억압받는 자가 있고, 권력자는 부패했으며 민중은 희생되고 있기에, 시인은 그 부조리를 폭로해야 한다는 것이 당시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김지하는 이 때문에 투옥되었고 사형선고까지 받았으며, 1970년대의 김지하는 한국에서 가장 상징적인 저항 지식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21년 뒤인 1991년, 같은 사람이 전혀 다른 글을 씁니다.


“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치워라”

1991년 5월 5일 《조선일보》에 김지하의 글이 실렸습니다. 정확한 제목은 **「젊은 벗들!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였고, 지면에는 큰 제목으로 **“죽음의 굿판 당장 걷어치워라”**가 붙었습니다. 당시 명지대생 강경대가 경찰의 폭행으로 사망한 뒤 이에 항의하는 분신이 잇따르고 있었습니다.

후기 생명사상과 현실주의를 피력했던 김지하 시인
격정의 분노를 거두고 생명과 이성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김지하

김지하는 글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지금 곧 죽음의 찬미를 중지하라.”

그리고 곧이어 정치적 목적보다 생명이 먼저라고 주장합니다. 실제 원문에는 **“그 어떤 경우에도 생명은 출발점이요 도착점”**이라는 표현도 등장합니다.

▶ 1991년 5월 5일 김지하의 글 원문 조선일보 아카이브 — 젊은 벗들!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이 글은 엄청난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민주화운동 진영에서는 자신들과 함께 싸웠던 김지하가 등을 돌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김지하에게는 오랫동안 **‘변절’**이라는 말이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나 「오적」과 이 글을 직접 나란히 읽어보면 문제는 조금 복잡해집니다. 김지하는 과연 민주주의를 버린 것일까요, 아니면 그의 판단 방식 자체가 달라진 것일까요. 저는 후자에 더 가깝다고 봅니다.


정의감은 판단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1970년대 김지하의 문학에는 강한 분노가 있습니다. 부패한 권력에 대한 분노이고 억압받는 사람에 대한 연민이며, 잘못된 사회를 바꾸어야 한다는 도덕적 열정입니다. 그 감정 자체는 잘못이 아닙니다.

문제는 감정이 판단을 대신하기 시작할 때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사람은 자신이 심하게 분노하고 있을수록 자신의 판단도 확실하다고 느끼기 쉽습니다. 불의를 보고 분노하면 불의를 만든 사람이 악하게 보이고, 악한 사람과 싸우는 자신은 선한 편이 됩니다. 그다음부터는 자신이 원하는 목표도 선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행동도 정당하다고 생각하기 쉬워집니다. 여기에 위험한 논리의 도약이 있습니다.

목적이 정의롭다면 그 목적을 위한 행동도 옳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좋은 목적이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역사에서는 그 반대의 사례를 끊임없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감정에서 멀어질수록 결과를 보기 시작합니다

정치적 감정이 판단을 강하게 지배할 때에는 "이것은 옳은가 그른가",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가",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와 같이 질문이 비교적 단순해집니다.

그러나 감정으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면 질문이 달라집니다. 이 정책을 실제로 시행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사람들은 우리가 예상한 대로 행동할 것인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문제를 만들지는 않는지, 혹은 현재의 제도를 없앴을 때 그것이 수행하던 기능까지 사라지지는 않는지 묻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틀렸다면 어떻게 되는가"라는 가장 어려운 질문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정치적 사고의 성격이 바뀝니다.


김지하에게 일어난 변화

김지하의 변화는 1991년에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한국문학번역원은 1980년대 중반 이후 김지하의 시 세계가 생명사상을 중심으로 크게 변화했다고 설명합니다. 이전의 저항시에서 보이던 격렬함 대신 절제와 관조가 나타나고, 동학과 여러 종교적·철학적 전통을 받아들이면서 생명과 관계를 중심에 놓기 시작했습니다. 그 자신도 감옥생활을 거치며 삶과 죽음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했다고 회고했습니다. 이후 1986년 《애린》 등을 기점으로 생명사상이 본격적으로 그의 문학과 사상에 등장했습니다.

2009년의 인터뷰도 흥미롭습니다. 그는 자신의 시를 소개하면서 **‘분노를 버린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동시에 자신의 후기 사상의 밑바탕에 생명사상과 후천개벽사상이 여전히 자리 잡고 있음을 설명했습니다.

▶ 후기 김지하 인터뷰 연합뉴스 — ‘못난 시’로 돌아온 김지하

김지하가 신비주의에서 벗어났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후기에는 율려, 개벽, 우주적 생명 같은 상당히 모호한 개념도 많아집니다. 그의 후기 사상 전체를 합리주의라고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정치적 판단에서는 중요한 변화가 하나 보입니다. 바로 이념보다 구체적인 인간의 생명을 앞세우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죽음의 굿판」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읽어야 합니다

1991년의 글을 민주화운동에 대한 배신이라고만 읽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습니다. 그의 문제는 민주주의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민주주의라는 대의를 위해 사람의 죽음까지 정치적으로 의미화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분신한 사람을 열사라고 부르고, 그의 죽음을 더 큰 투쟁을 위한 상징으로 만들고, 다시 그 죽음이 다른 사람의 행동을 자극하는 상황을 김지하는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당시 김지하의 표현은 지나치게 공격적이었고, 그가 민주화운동 전체를 부당하게 몰아붙였다고 비판할 여지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그의 논리만 떼어놓고 보면, 아무리 정의로운 목적이라도 사람의 생명보다 우선할 수 없다는 일관성이 있습니다. 이것이 후기 김지하의 생명사상이 정치에 적용된 결과였습니다.


여기서 보수주의가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왜 보수주의와 연결되는 것일까요. 보수주의를 단순히 전통을 좋아하거나 과거를 지키려는 사상으로 생각하면 연결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에드먼드 버크에서 시작되는 보수주의의 중요한 한 흐름은 다른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현대 보수주의의 시초로 불리는 에드먼드 버크
인간 이성의 한계와 사회적 경험의 축적을 신뢰한 에드먼드 버크

인간은 사회를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가.

버크는 인간이 몇 가지 추상적인 원리만으로 사회 전체를 다시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을 의심했습니다. 사회의 관습과 제도에는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된 경험이 들어 있기에, 우리는 그것이 왜 존재하는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자신의 이론만을 믿고 기존의 제도를 한꺼번에 제거하면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으므로, 정치에는 정의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신중함(prudence)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이후 보수주의의 중요한 전통이 됩니다.


보수주의는 변화에 반대하는 사상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흔한 오해가 생깁니다. 보수주의자는 현재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버크의 보수주의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잘못된 제도는 고칠 수 있으며, 오히려 필요할 때 개혁하지 않는 사회는 결국 더 큰 파괴를 맞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변화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입니다. 그렇기에 보수주의는 급격한 개조보다는 점진적인 개선을 선호하며, 하나의 원리로 사회 전체를 재설계하기보다는 실제 결과를 보면서 수정하고 확신보다는 불확실성을 고려합니다. 그 이유는 인간의 이성이 필요 없기 때문이 아니라 정반대로, 이성을 끝까지 사용하면 인간 이성의 한계까지 생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이성과 감정의 문제가 생깁니다

감정은 인간에게 필요합니다. 불의를 보고 분노하지 않는다면 사회는 변화하지 않을 것이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않는다면 도움을 줄 이유도 없습니다. 문제는 감정이 판단의 증거가 될 때입니다.

내가 강하게 분노한다고 해서 내 판단이 옳은 것은 아니며, 내가 피해자에게 깊이 공감한다고 해서 내가 제시한 해결책이 효과적인 것도 아닙니다. 평등이라는 가치가 좋다고 해서 모든 평등 정책이 좋은 결과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 자유라는 가치가 중요하다고 해서 모든 규제가 나쁜 것도 아닙니다. 이성적인 판단은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이렇게 느낀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느낀다는 사실과 실제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라는 과정을 거치며 양자를 구분하는 것입니다.


감정은 결론을 먼저 만들어냅니다

정치에서는 특히 그렇습니다. 사람은 어떤 사건을 보고 먼저 감정적으로 반응한 다음 자료를 찾곤 합니다. 하지만 자료를 통해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린 결론을 지지하는 자료를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강한 정치적 감정은 사고를 촉진하기보다 오히려 사고를 제한할 수 있습니다. 분노가 강하면 반대편의 논리를 검토하기 어려워지고, 혐오가 강하면 상대방의 동기를 가장 악한 방향으로 해석하게 되며, 도덕적 열광이 강하면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부작용을 무시하게 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정의감이 아니라 오히려 판단을 잠시 유보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경험이 지식인을 보수적으로 만드는 이유

사람이 나이가 들면 보수적으로 변한다는 이야기를 흔히 합니다. 보통은 재산이 생기고 기득권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며, 그런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식인에게는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오랫동안 사회와 역사를 관찰하다 보면 좋은 의도를 가진 정책이 실패하고, 전문가의 예측이 틀리며, 혁명가가 권력을 잡은 뒤 또 다른 권력자가 되는 동일한 경험을 반복해서 보게 됩니다. 억압을 없애기 위해 만든 제도가 새로운 억압을 만들기도 하고, 약자를 보호하려던 규칙이 오히려 약자의 기회를 줄일 수도 있습니다. 시장은 실패하지만 정부도 실패하며, 정부를 줄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만 시장 역시 스스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이처럼 경험이 쌓이면 세상을 하나의 원리로 설명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결국 확신이 줄어들게 됩니다.


확신이 줄어드는 것은 지식의 후퇴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일 수 있습니다. 잘 모를 때에는 빈곤이나 범죄, 전쟁, 불평등과 같은 복잡한 사회 문제를 단 하나의 단순한 요인으로 설명하기 쉽고, 해결책 또한 간단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조금 더 공부하면 원인이 늘어나고, 원인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보이며, 결국에는 자신이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진정한 지식은 때때로 확신을 증가시키기보다 감소시키며, 이 지점에서 경험주의와 보수주의가 만나게 됩니다.


그렇다고 보수주의가 항상 이성적인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보수주의자가 곧 이성적인 사람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보수정치 역시 민족주의나 과거에 대한 막연한 향수, 외부 집단에 대한 공포 같은 감정에 쉽게 지배됩니다.

전통을 지킨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제도도 고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면 그것 역시 이성적 보수주의가 아닙니다. 시장이라는 말을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거나, 국가라는 이유만으로 국가의 행동을 정당화한다면 그것 역시 이념적이고 감정적인 정치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이성적 보수주의가 가장 먼저 의심해야 하는 대상은 진보주의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확신입니다.


보수주의의 가장 중요한 질문

결국 보수주의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내가 틀렸다면 어떻게 되는가.

이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면 정치적 판단은 달라져서, 정책을 시행하기 전에 되돌릴 수 있는지를 생각하고,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고려하며, 효과가 없으면 수정할 수 있는 제도를 선호하고, 혁명보다 실험을 선호하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개별 인간을 희생시키는 것에 극도로 조심스러워집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경험주의적 보수주의입니다.


다시 김지하로 돌아가면

김지하의 일생은 이 문제를 매우 극단적으로 보여줍니다. 1970년의 김지하는 「오적」을, 1975년에는 「타는 목마름으로」를 썼고, 1991년에는 「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치워라」고 썼는데, 이 세 글은 서로 다른 사람이 쓴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보면 이는 하나의 긴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젊은 김지하는 부정의에 분노했고, 후기의 김지하는 그 분노가 만들어내는 정치적 행동까지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무엇을 위해 싸울 것인가가 중요했다면, 나중에는 그 싸움이 실제 인간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묻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변화 때문에 그는 한때 자신이 속했던 진영과 충돌했고 이를 변절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하면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됩니다.


김지하는 단순한 보수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후기 김지하를 버크와 같은 의미의 보수주의 사상가라고 부르기는 어려우며, 그에게는 동학, 불교, 생태주의, 개벽사상과 신비주의가 뒤섞여 있었습니다. 그는 자유시장 보수주의자도, 전형적인 반공 보수주의자도 아니었고, 실제로 2009년 인터뷰에서도 촛불집회 초기의 자발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따라서 그의 정치적 위치를 오늘날의 좌우 좌표에 단순하게 올려놓는 것은 별 의미가 없지만, 사고의 방향은 분명히 달라졌습니다. 이념보다는 생명을, 투쟁보다는 관계를, 혁명적 확신보다는 복잡성을, 추상적 대의보다는 실제 인간에게 나타나는 결과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부분은 고전적 보수주의와 상당히 가까워집니다.


이성이 강해지면 보수주의자가 되는가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매우 이성적인 진보주의자도 있을 수 있고, 강한 경험적 근거가 있다면 급격한 제도변화를 지지하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일 수도 있으므로 "이성적인 사람은 반드시 보수주의자가 된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일반화입니다.

그러나 방향성은 생각해볼 만합니다. 감정이 정치적 판단을 지배하는 정도가 줄어들면 의도보다는 결과를 보게 되고, 결과를 보면 부작용이 보이며, 부작용을 생각하면 인간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게 됩니다.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면 거대한 사회실험에 신중해지고, 그 지점에서 보수주의적 사고와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보수주의를 이렇게 정의해보고 싶습니다.

보수주의는 감정이 없는 사람의 사상이 아닙니다. 감정이 이성을 대신하는 것을 경계하는 태도입니다.

김지하는 평생 감정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고 오히려 누구보다 강렬한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분노와 도덕적 열정조차 의심해야 한다는 문제에 도달했습니다. 그의 답이 항상 옳았다고 할 필요는 없고 그의 후기 생명사상과 율려사상을 받아들일 필요도 없지만, 「오적」에서 「죽음의 굿판」까지의 20년을 따라가다 보면 한 지식인이 "정의롭다는 확신만으로 우리는 행동해도 되는가"라는 매우 중요한 질문과 씨름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보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 다음에는 "내가 옳다고 확신하고 있을 때조차, 나는 틀릴 수 있는가"라는 더 불편한 질문이 기다리고 있으며, 아마 보수주의는 바로 그 질문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직접 읽어볼 자료

김지하의 초기 저항시

김지하의 사상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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