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조는 어떤 사람일까.
《삼국지연의》에서 조조는 권모술수와 냉혹함을 상징합니다. 필요하면 사람을 죽이고 경쟁자를 제거하며, 황제를 정치적 도구로 이용한 간웅입니다. 그래서 조조를 설명할 때에는 흔히 그가 선한 사람이었는지 악한 사람이었는지부터 묻습니다.
조조가 잔혹한 행동을 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서주 침공 과정의 학살은 그를 유능한 정치가라고만 평가할 수 없게 합니다. 여백사 일가를 죽였다는 이야기도 기록마다 차이가 있지만, 조조의 냉혹한 이미지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그의 생애를 길게 보면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전쟁에서는 과감하고 잔혹했던 사람이 나라를 운영할 때에는 의외로 차분하고 현실적입니다. 식량이 부족하면 식량부터 마련하고, 인재가 부족하면 출신과 평판보다 능력을 보며, 기존 제도에 쓸모가 남아 있으면 없애지 않고 이용했습니다.
사람에게 지나친 도덕성을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미 존재하는 인간의 욕망과 능력을 인정한 뒤, 그들을 이용해 작동하는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전쟁에서는 과감했지만 통치에서는 놀랄 만큼 현실적이었습니다.
이것이 조조를 흥미롭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선과 악의 바깥에 있는 현실
《데미안》의 어린 싱클레어는 세계를 둘로 나눕니다. 부모의 집에는 질서와 예절, 신앙과 도덕이 있고, 그 바깥에는 술과 성욕, 싸움과 범죄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바깥이 악의 세계처럼 보이지만 성장하면서 그것 역시 인간이 살아가는 현실임을 알게 됩니다.
후한 말의 중국도 그런 세계였습니다. 중앙정부의 통제력은 무너졌고 황건적의 난과 동탁의 집권 이후 각지의 군벌이 병력을 모았습니다. 한 세력이 영토와 식량을 얻으면 다른 세력은 그것을 잃었습니다. 경쟁을 악이라고 부른다고 경쟁이 사라지는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이런 세계에서 선악의 구분만으로 조조를 보면 중요한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가 살았던 세계 자체가 생존경쟁의 세계였고, 조조는 그 현실을 누구보다 빨리 이해했습니다.
전쟁이 아니라 국가를 지속한 사람
난세에는 군대가 필요하고 군대에는 식량이 필요합니다. 식량을 생산하려면 농민과 토지가 있어야 하며, 그것을 보호하려면 다시 군대와 행정조직이 필요합니다. 조조의 가장 큰 능력은 이 순환을 실제로 만든 데 있습니다.
군대가 없으면 농토를 지킬 수 없고, 농토가 없으면 군대를 먹일 수 없습니다. 병력이 강해도 행정이 무너지면 점령한 지역을 오래 유지할 수 없습니다. 이 문제는 용맹이나 명분만으로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는 생산과 군사, 행정을 하나의 체계로 묶어야 했습니다.
조조는 전쟁을 잘한 장수를 넘어 전쟁을 계속할 수 있는 국가를 만들었습니다.
싸움을 잘하는 장수는 많았습니다. 그러나 병력을 유지하고 식량을 공급하며 인재를 배치하고, 점령한 지역을 행정적으로 관리하면서 세력을 확대하는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약탈자는 오늘 무엇을 빼앗을지만 생각하지만 통치자는 내년에도 세금을 걷고 군대를 먹일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조조는 후자였습니다.
감정과 판단을 분리했다
조조를 감정적인 폭군으로만 상상하기 쉽지만, 그의 정치적 판단에는 감정을 억제하는 모습도 나타납니다. 전쟁에서 패했다고 언제나 복수전에 들어간 것도 아니고, 과거의 적이라도 능력이 필요하면 받아들였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장수입니다. 장수의 공격으로 조조의 장남 조앙과 조카 조안민, 아끼던 장수 전위가 죽었습니다. 개인적인 원한만 생각하면 용서하기 어려운 상대였습니다. 그러나 장수가 훗날 항복하자 조조는 그를 받아들였습니다.
조조에게 감정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아들의 죽음과 지금 장수를 받아들이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을 분리할 수 있었습니다. 감정이 존재해도 그것을 정치적 이해보다 항상 위에 놓지는 않았습니다.
사람을 고치기보다 사용했다
조조의 인재 등용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말이 ‘유재시거’입니다. 재능이 있다면 등용한다는 뜻입니다. 실제 인사에서는 가문과 관계도 중요했지만, 조조가 반복해서 제시한 방향은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람만 찾다가 필요한 인재를 놓치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욕심이 많아도 행정을 잘할 수 있고, 성격이 거칠어도 전쟁을 잘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 잘못이 있어도 지금 필요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조조는 인간을 개조한 뒤 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존재하는 인간을 가지고 국가를 운영하려 했습니다.
여기에는 보수주의적인 인간관이 있습니다. 인간이 교육이나 이념을 통해 갑자기 다른 존재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정치가 해야 할 일은 새로운 인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욕심 많고 불완전한 인간들을 데리고도 사회가 돌아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태도는 인간의 결함을 칭찬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결함이 사라지기를 기다린 뒤에야 정치를 시작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조조는 인간이 더 선해질 가능성보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인간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에 먼저 관심을 가졌습니다.
도덕을 요구하는 대신 구조를 만들었다
조조의 현실주의는 둔전에서 잘 드러납니다. 전쟁으로 농토가 황폐해지고 유민이 늘어나면 군대는 민간의 식량을 빼앗습니다. 농민은 다시 도망가고 생산은 더 줄어듭니다.
병사들에게 식량을 빼앗지 말라고 명령하는 것은 옳지만, 배고픈 군대에 도덕을 요구하는 것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조조는 농업 생산과 군량 확보를 연결하는 둔전을 확대했습니다. 식량 부족을 병사의 도덕성보다 생산구조의 문제로 본 것입니다.
헌제를 대하는 태도도 비슷했습니다. 후한의 실질 권력은 무너졌지만 황제라는 제도에는 정통성이 남아 있었습니다. 조조는 황제를 없애고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는 대신, 헌제를 자기 근거지로 맞아들여 기존 질서에 남은 기능을 이용했습니다.
조조는 무너진 체제의 부품을 주워 다시 작동하는 체계를 만든 사람에 가까웠습니다. 완벽하지 않다는 이유로 모두 부수지 않았고, 아직 쓸 수 있는 것은 사용하면서 필요한 제도를 덧붙였습니다.
조조는 공자가 아니다
이 점에서 조조는 유교적 규범주의와 구별됩니다. 유교적 정치관에서는 군주가 군주답고 신하가 신하다운 것이 중요합니다. 예와 명분을 바로잡으면 정치질서도 안정될 수 있다고 봅니다.
조조도 명분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명분만으로 국가가 움직인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명분 뒤에는 군량이 있어야 했고, 군량 뒤에는 농토가 있어야 했으며, 농토 뒤에는 그것을 지킬 군대가 있어야 했습니다. 황제를 받드는 일도 중요했지만 황제를 지킬 군사력이 없다면 그 명분은 오래 작동할 수 없었습니다.
조조의 시선은 늘 한 단계 아래를 향했습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말하는가보다 실제로 무엇이 움직이는지를 보았습니다. 그는 규범을 부정한 사람이 아니라 규범도 현실의 기반 위에서만 작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한 사람이었습니다.
현실주의는 잔혹함의 면죄부가 아니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조조의 잔혹함을 정당화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설명과 정당화는 다릅니다. 서주에서 벌어진 살육은 분명히 비판할 수 있고, 난세였다는 사실이 모든 폭력을 용서해주지도 않습니다.
조조는 선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악이라는 한 단어로 충분히 설명되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는 생존경쟁에서 이기는 데 그치지 않고, 경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생산과 행정, 인재 등용을 통해 다시 질서를 만들었습니다.
《삼국지연의》는 유비를 인덕과 명분으로, 조조를 능력과 권력으로 대비합니다. 하지만 유비와 손권도 영토를 차지하고 군대를 운영하며 경쟁세력을 제거했습니다. 역사에서 더 중요한 질문은 누가 선하고 악한가만이 아니라 누가 어떤 조직을 만들고, 사람과 자원을 어떻게 운영했는가입니다.
이 질문으로 보면 조조의 가장 큰 능력은 명분으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현실을 운영하는 능력이었습니다.
사마의와는 다른 현실주의자
조조와 사마의는 모두 감정을 통제하고 현실을 보았지만 행동 방식은 달랐습니다. 사마의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숨기고 기다리면서 상대가 먼저 소모되기를 바랐습니다.
조조는 훨씬 적극적이었습니다. 필요하면 먼저 전쟁을 시작하고, 제도를 만들고, 인재를 끌어들이며 새로운 거점을 만들었습니다. 조조의 보수주의를 변화에 대한 저항이라고 보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그는 많은 것을 바꿨지만 현실에 없는 인간을 가정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경쟁하고, 군인은 먹어야 하며, 관료에게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백성은 안정되어야 세금을 낼 수 있고, 황제에게 실권이 없어도 사람들은 정통성을 의식합니다. 조조는 이런 제약을 인정한 상태에서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사마의의 현실주의가 축적과 생존이었다면, 조조의 현실주의는 행동과 운영에 가까웠습니다.
사마의는 위험할 때 자신을 감췄고 시간이 상황을 바꾸기를 기다렸습니다. 조조는 상황이 바뀌기를 기다리기보다 자신이 움직여 상황을 바꾸려 했습니다. 사마의가 현실의 압력을 견디는 사람이었다면, 조조는 현실의 제약을 재료로 삼아 새로운 질서를 조립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선과 악을 넘어 현실을 본 사람
조조에게는 폭력과 의심, 강한 권력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경쟁과 권력욕을 악이라고 부른다고 정치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입니다.
《데미안》의 싱클레어가 성장하면서 발견한 것도 비슷합니다. 어두운 세계를 악이라고 부르는 것만으로는 그 세계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안에는 인간의 욕망과 경쟁, 생존과 죽음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성장한다는 것은 그 어둠을 숭배하는 일이 아니라, 그것이 현실의 일부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다루는 법을 배우는 일입니다.
조조는 인간의 도덕에 현실을 맞추기보다 인간이 실제로 어떤 존재인지 관찰한 뒤, 그 인간들을 이용해 국가가 작동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기존 질서가 완벽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모두 부수고 새로운 세계를 설계하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쓸 수 있는 것은 쓰고, 고쳐야 할 것은 고치며, 필요한 것은 새로 만들었습니다.
조조는 경쟁을 없애려 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경쟁에서 이겼고, 그 뒤에는 생산과 행정과 제도를 세웠습니다. 이 점에서 그는 오늘 무엇을 빼앗을지만 생각하는 약탈자와 달랐습니다. 그가 원한 것은 한 번의 승리가 아니라 내년에도 움직이는 국가였습니다.
그에게서 보이는 보수주의적 특징은 전통을 무조건 지킨 데 있지 않습니다.
인간이 갑자기 다른 존재가 될 것이라고 믿지 않고, 실제 존재하는 인간을 가지고 작동하는 질서를 만들려고 했다는 데 있습니다.
사마의가 시간을 자기편으로 만든 사람이라면 조조는 현실을 자기편으로 만든 사람에 가까웠습니다. 그는 도덕적으로 아름다운 인물은 아니었지만, 세상이 아름답지 않다는 이유로 세상을 외면하지도 않았습니다.
선과 악을 넘어, 조조는 먼저 현실을 보았습니다.
참고문헌
- 진수 지음, 배송지 주, 《삼국지》 〈위서·무제기〉·〈장수전〉·〈임준전〉.
- 사마광, 《자치통감》.
- 장쭤야오 지음, 남종진 옮김, 《조조 평전》, 민음사, 2010.
- 가와카츠 요시오 지음, 임대희 옮김, 《중국의 역사: 위진남북조》, 혜안,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