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자크 루소와 리버럴의 자기기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 불러본 동요 가운데 “주먹 쥐고 손을 펴서”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이 곡의 선율이 장 자크 루소의 오페라 《마을의 점쟁이》와 연결된다는 이야기는 흥미롭습니다. 루소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글만 쓴 철학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음악을 만들었고, 오페라를 썼으며, 문학과 정치철학과 교육론을 넘나든 다재다능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루소는 근대적 리버럴 감수성의 원형으로 읽을 수 있는 인물입니다. 그는 인간의 자유와 자연성을 강조했고, 기존 사회 제도의 위선과 억압을 비판했습니다. 그는 문명화된 사회가 인간을 타락시킨다고 보았고, 인간 안의 자연스러운 감정과 선함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대표작 《에밀》은 오늘날까지도 교육철학의 고전으로 평가됩니다. “아이를 자연에 따라 기르라”는 그의 주장은 이후 교육사에 깊은 영향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바로 여기서 불편한 질문이 생깁니다.
그는 과연 자신이 말한 대로 살았습니까?
대답은 매우 곤란합니다. 루소는 테레즈 르바쇠르와의 사이에서 다섯 명의 아이를 낳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아이들을 직접 기르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태어난 뒤 파리의 고아원으로 보내졌습니다. 루소는 훗날 자신의 자서전 《고백록》에서 이 사실을 언급합니다. 그는 자신에게 아이를 키울 능력이 없었고, 오히려 공공기관이 아이들에게 더 나은 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식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이 설명은 교육철학자로서의 루소에게 매우 치명적인 문제를 남깁니다. 《에밀》에서 그는 아이의 성장, 자연스러운 교육, 부모와 양육의 중요성을 말했습니다. 아이를 하나의 인격으로 존중해야 한다고 했고, 사회의 인위적 타락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의 아이들에게는 그 원칙을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이를 교육의 대상으로 사유했지만, 자신의 삶에서는 아이를 책임의 대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루소가 살던 18세기 프랑스의 현실을 오늘날의 기준으로만 재단할 수는 없습니다. 당시에는 혼외자, 빈곤, 사회적 체면, 양육 능력의 문제가 지금과 전혀 달랐습니다. 고아원에 아이를 맡기는 일도 오늘날보다 훨씬 흔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루소의 선택은 더 복잡하게 보아야 합니다. 문제는 그가 단지 가난했거나 무책임했다는 데만 있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가 아이와 교육에 대해 누구보다 고결한 언어를 만들었으면서도, 자기 삶에서는 그 언어가 요구하는 가장 기본적인 책임을 감당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루소의 이 장면은 단순한 개인적 일탈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상을 말하는 인간이 실제 삶의 책임 앞에서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는 자유, 자연, 순수성, 교육, 인간성이라는 아름다운 말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말이 자신의 아이들 앞에서는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철학은 보편적 인간을 위한 언어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자기 삶의 모순을 덮기 위한 감성적 방어막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 점에서 루소는 현대 리버럴의 자기기만을 생각하게 하는 인물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리버럴의 자기기만이란, 자유와 인간성, 해방과 존엄을 말하면서도 실제 책임의 영역에서는 그 이상을 실천하지 못하는 태도입니다. 말은 고결하지만, 삶은 그 말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타인의 고통과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비판하지만, 자기 삶에서 발생하는 책임은 더 큰 이상이나 더 섬세한 감정의 언어로 회피합니다.
루소는 아이를 버린 뒤에도 교육을 말했습니다. 부모의 책임을 다하지 않은 채, 이상적인 아이의 교육을 설계했습니다. 이 모순은 너무 큽니다. 《에밀》의 문장들은 여전히 빛나지만, 그 문장들 뒤에는 이름도 기록되지 못한 아이들의 그림자가 있습니다. 루소가 말한 자연스러운 교육은 아름답지만, 그의 아이들은 그 교육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습니다.
물론 이것이 루소의 사상을 모두 폐기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상가의 삶이 완벽하지 않다고 해서 그의 모든 통찰이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루소는 분명 인간의 자유, 불평등, 교육, 시민사회에 대해 중요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의 사상은 여전히 훌륭한 성찰을 제공하며, 현대 리버럴 담론의 핵심 언어를 형성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우리에게 사상을 읽을 때 반드시 물어야 할 질문을 남깁니다.
그 사상은 현실의 책임을 감당하는가?
이 질문을 피하면, 사상은 쉽게 자기기만이 됩니다. 특히 리버럴한 언어는 자신을 선하고 섬세하고 인간적인 사람으로 느끼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자유를 말하고, 억압을 비판하고, 인간의 순수성을 찬양하는 말은 언제나 매력적입니다. 그러나 그 말이 가족, 자녀, 공동체, 생계, 양육, 책임의 현실을 통과하지 못하면, 그것은 삶을 바꾸는 철학이 아니라 자신을 정당화하는 장식이 됩니다.
루소의 경우가 바로 그렇습니다. 그는 사회의 위선을 비판했지만, 자기 삶의 위선에는 충분히 엄격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아이의 자연스러운 성장을 말했지만, 자기 아이들의 성장에는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문명의 타락을 비판했지만, 자기 선택의 결과를 공공기관과 사회에 떠넘겼습니다.
이 점에서 루소는 리버럴의 이상을 대표하는 인물이면서 동시에 그 허점을 드러내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는 자유와 자연성과 인간의 존엄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자신의 삶에서 가장 가까운 타자, 곧 자기 자녀들에게까지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루소의 문제는 사상이 없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너무 많은 사상을 가졌습니다. 문제는 그 사상이 책임과 결합하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이상은 높았지만, 책임은 낮았습니다. 감정은 섬세했지만, 의무는 약했습니다. 인간을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자기 아이들을 품지는 못했습니다.
이런 모순은 루소 개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리버럴이 좋은 사상을 말할 때, 그 사상을 실제 삶에서 완전히 지키지 못하는 일이 자주 벌어집니다. (이처럼 세상을 아름답게 설계하려 하면서도 실제 책임과 질서를 우회하는 경향은 평화를 노래하면서 사적 소유와 기득권을 누린 존 레논의 〈Imagine〉이나, 선량한 교육 개혁을 말하면서도 상속세 및 기부금 세무 규제를 피하려 LLC를 설립한 로렌 파월 잡스의 행보에서도 그대로 반복됩니다.) 사상은 지향해야 할 좌표를 제공하지만, 리버럴은 때로 그 좌표를 자기 행동으로 옮기지 못합니다. 이 글이 말하는 것은 루소의 사상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이 우리에게 '사상을 지키지 않는 리버럴의 자기기만'을 경고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루소는 여전히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는 우리가 배워야 할 사상가이면서, 동시에 경계해야 할 인간형입니다. 그는 자유와 자연의 철학자였지만, 자기 삶에서는 책임의 철학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에밀》은 교육철학의 고전으로 남아 있지만, 루소가 고아원으로 보낸 아이들의 이야기는 그 고전 위에 남은 지워지지 않는 그림자입니다.
리버럴의 언어가 가장 위험해지는 순간은 바로 이때입니다. 아름다운 이상이 현실의 책임을 대신할 때, 자유의 언어는 자기기만이 됩니다. 루소는 그 자기기만의 가장 오래되고도 선명한 사례입니다.
참고문헌
- Rousseau, Jean-Jacques. Émile, or On Education. Translated by Allan Bloom. New York: Basic Books, 1979.
- Rousseau, Jean-Jacques. Confessions. Translated by Angela Scholar.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0.
- Johnson, Paul. Intellectuals. New York: Harper Perennial, 1990.
- Damrosch, Leo. Jean-Jacques Rousseau: Restless Genius. Boston: Houghton Mifflin, 2005.
- Cranston, Maurice. Jean-Jacques: The Early Life and Work of Jean-Jacques Rousseau, 1712–1754.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