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뉴턴에서 흄으로: 경험주의와 회의주의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케플러의 관측에서 뉴턴의 중력 이론, 흄의 회의주의까지. 이론을 현실보다 앞세우지 않는 경험주의적 태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살펴봅니다.

뉴턴과 흄의 경험주의를 형상화한 일러스트
인간 이성의 완전성에 의문을 품고, 현실에 대한 관찰과 검증, 그리고 끊임없는 성찰을 중시했던 경험주의적 태도는 현대 과학철학의 주춧돌이 되었습니다.

17세기 과학혁명은 이성과 경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자연을 수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이성과, 그 설명을 관찰된 현실에 맞추려는 태도가 결합한 사건이었습니다. 그 결합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사람이 아이작 뉴턴입니다.

케플러가 발견하고도 설명하지 못한 것

갈릴레오와 케플러는 자연이 수학적 질서를 가진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 질서를 발견하는 과정은 관찰과 측정에 기반했습니다. 특히 케플러는 티코 브라헤가 남긴 방대한 관측 자료를 분석해 행성의 궤도가 원이 아니라 타원이라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케플러의 법칙은 행성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정확히 기술했습니다. 하지만 왜 그런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지까지 설명하지는 못했습니다. 관찰을 통해 규칙은 발견했지만, 그 규칙을 하나로 묶어주는 원리는 아직 없었습니다.

뉴턴은 관측과 수학을 하나로 묶었습니다

뉴턴은 운동법칙과 만유인력 법칙을 이용해 케플러의 법칙이 역제곱으로 작용하는 중력에서 도출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관측된 행성의 운동을 수학적 이론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뉴턴이 모든 것을 설명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중력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수학적으로 제시했지만, 중력이라는 힘의 궁극적 원인이 무엇인지는 밝히지 못했습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유명한 말이 나옵니다.

나는 중력의 이러한 성질에 대한 원인을 현상으로부터 아직 끌어내지 못했으며, 가설을 꾸며내지 않는다.

“나는 가설을 꾸며내지 않는다(Hypotheses non fingo)”는 모든 가설을 거부한다는 선언이 아닙니다. 관찰된 현상에서 이끌어낼 수 없는 중력의 원인을 형이상학적 이야기로 채우지 않겠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뉴턴은 자신이 설명한 것과 아직 설명하지 못한 것 사이에 선을 그었습니다.

이것이 뉴턴의 중요한 태도였습니다. 그는 수학을 신뢰했지만 수학만으로 자연을 만들어내지는 않았습니다. 이론은 관측된 현상을 설명해야 했고, 이론이 말할 수 없는 곳에서는 모른다고 남겨두었습니다.

뉴턴은 경험주의 철학자였을까

뉴턴을 로크·버클리·흄과 같은 의미의 영국 경험주의 철학자로 분류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는 실험과 관찰뿐 아니라 고도로 추상적인 수학적 추론을 함께 사용한 자연철학자였습니다.

다만 뉴턴의 성공은 이후 영국 경험주의가 성장할 수 있는 강력한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세계에 대한 거대한 설명을 먼저 세우는 대신, 관찰할 수 있는 현상에서 출발해 일반 법칙을 찾는 방법이 실제로 얼마나 멀리 나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뉴턴과 경험주의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그에게 어떤 철학적 명찰을 붙이느냐가 아닙니다. 이론은 필요하지만 현실보다 앞설 수 없다는 방법론적 태도입니다.

흄은 뉴턴의 방법을 인간의 지식에 적용했습니다

데이비드 흄은 영국 경험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였습니다. 그는 자연을 연구하듯 인간의 인식도 경험에서 출발해 살펴보려 했습니다. 우리가 인과관계를 믿고 미래에도 자연법칙이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유는 순수한 논리만으로 증명되기 때문이 아니라, 반복된 경험이 그런 기대와 습관을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

『인간 이해에 관한 탐구』의 「기적에 관하여」는 이런 태도를 잘 보여줍니다. 누군가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고 증언한다면, 우리는 적어도 두 가능성을 비교해야 합니다.

  1. 지금까지 반복해서 확인된 자연의 규칙에 예외가 생겼을 가능성
  2. 증언자가 거짓말했거나 잘못 보았을 가능성

흄의 요지는 기적이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기적을 뒷받침하는 증언은 그 증언이 거짓일 가능성보다 더 강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원칙적으로는 증언이 거짓이라는 사실이 기적보다도 더 믿기 어려운 경우를 인정한 셈입니다.

그러나 흄은 실제 역사상의 기적 증언 가운데 이 기준을 충족한 사례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원칙상의 가능성은 남겨두었지만, 역사적 증언을 통해 기적을 합리적으로 믿을 수 있는 문은 사실상 닫은 것입니다. 이 때문에 일부 비판자들은 자연법칙의 확실성을 근거로 기적을 배제하면서 그 자연법칙은 기적에 의해 반증될 수 없다고 전제하는 순환논리의 위험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따라서 이례적인 주장일수록 그것을 받아들이기 위한 증거도 강해야 한다는 말은 흄 논증의 출발점이지 전부는 아닙니다.

회의주의는 새로운 주장을 무조건 거부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주장에 걸맞은 증거를 요구하고, 자신이 가진 확신의 정도를 증거의 강도에 맞추는 태도입니다.

합리주의와 경험주의는 성격의 차이가 아닙니다

합리주의자와 경험주의자를 확신이 빠른 사람과 느린 사람, 논리적인 사람과 직관적인 사람으로 나누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합니다.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도 자연과학을 중시했고, 뉴턴 역시 강력한 수학적 추론 없이는 자신의 이론을 세울 수 없었습니다.

두 전통의 차이는 주로 지식의 확실한 근거를 어디에서 찾느냐에 있습니다. 합리주의는 이성이 경험을 넘어 확실한 원리에 도달할 가능성을 더 높이 평가했습니다. 경험주의는 세계에 관한 지식이 감각과 경험의 제약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더 강조했습니다.

그러므로 경험주의는 이성을 거부하지 않습니다. 이성이 현실을 대신할 수 없다고 말할 뿐입니다. 논리적 일관성과 현실에 관한 지식의 차이는 「논리와 형이상학의 한계」에서 따로 다루었습니다.

경험주의는 모르는 곳에서 멈추는 태도입니다

뉴턴은 행성의 운동을 설명했지만 중력의 궁극적 원인까지 안다고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흄은 인간이 자연법칙을 신뢰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도 그 믿음이 논리적으로 완전한 확실성에 도달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에게서 이어지는 경험주의의 핵심은 소극적인 의심이 아닙니다. 관찰한 것과 해석한 것을 구분하고, 증거가 허용하는 범위까지만 말하며, 새로운 증거가 나타나면 설명을 수정하는 적극적인 자기통제입니다.

이런 태도가 과학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포퍼와 쿤: 현실과 모델의 충돌」에서 살펴보았습니다. 반대로 신념이 현실의 교정을 거부할 때 어떻게 독단으로 굳어지는지는 「독단주의와 신념」「독단주의의 기원」에서 이어집니다.

무엇을 믿느냐만큼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어떤 증거가 나타나면 나는 이 생각을 수정할 수 있는가?

경험주의는 모든 것을 의심하라는 철학이 아닙니다. 인간의 이론은 강력할 수 있지만 언제나 현실보다 작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태도입니다. 뉴턴에서 흄으로 이어진 회의주의는 바로 그 지적 겸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참고문헌

  1. 아이작 뉴턴, 박병철 옮김, 『프린키피아』, 휴머니스트, 2023.
  2. Hume, David. An Enquir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Edited by Peter Millican.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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