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4년 리영희는 첫 저서 《전환시대의 논리》를 출간했습니다.
이 책은 이후 한국 대학가와 지식인 사회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 가운데 하나로 기억됐습니다. 베트남전쟁과 중국, 일본과 미국을 다룬 리영희의 글은 당시 정부와 언론이 제공하던 국제정세의 설명과 전혀 다른 세계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사상의 은사’라고 불렸고, 그의 저작은 한국 민주화운동과 진보적 지식인 형성에 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그 영향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영향력과 정확성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이제는 조금 다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1970년대는 정말 리영희가 말한 ‘전환시대’였습니까. 기존의 반공질서와 자본주의 세계가 쇠퇴하고, 중국혁명과 베트남의 민족해방운동, 제3세계 사회주의가 새로운 역사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습니까. 아니면 서로 다른 국제정치의 변화를 하나의 방향으로 배열해 만든 서사였습니까.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그 시대가 리영희가 그린 모습대로 존재하지 않았다면, 왜 그렇게 많은 한국의 대학생과 지식인이 그 이야기에 매료되었습니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한 지식인의 공과를 평가하는 데서 멈춰서는 안 됩니다. 리영희를 가능하게 했고, 그의 언어를 오랫동안 되풀이한 한국 지식인 사회의 사고방식까지 살펴봐야 합니다.
‘전환시대’는 관찰된 사실이 아니라 해석된 방향이었다
1970년대 국제질서에는 실제로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미국은 베트남전쟁에서 철수하고 있었고, 중국은 국제사회에 다시 등장했습니다. 미국과 중국은 관계 개선에 나섰고, 식민지에서 독립한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은 민족해방과 자주를 강조했습니다. 리영희가 변화를 포착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할 이유는 없습니다.
문제는 그 변화들이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고 해석했다는 데 있습니다.
미국의 베트남전쟁 실패는 미국의 특정한 외교·군사 정책이 실패했다는 뜻이었습니다. 그것이 곧 자유민주주의나 시장경제의 역사적 쇠퇴를 입증하지는 않았습니다.
중국의 국제사회 복귀 역시 거대한 국가를 계속 외교적으로 배제할 수 없다는 현실의 반영이었습니다. 그것이 문화대혁명이나 마오주의가 인간 사회의 미래임을 보여주는 증거는 아니었습니다.
식민지 독립운동의 정당성도 독립 이후 세워진 사회주의 체제가 반드시 자유롭고 번영하는 사회가 되리라는 결론을 보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전환시대의 논리》는 서로 다른 이 사건들에 하나의 역사철학적 방향을 부여했습니다.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는 낡은 세계가 되고, 중국과 베트남, 제3세계의 혁명운동은 새 시대를 여는 힘이 되었습니다.
책의 제목은 이미 결론을 품고 있었습니다. 현재는 낡은 시대에서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는 전환기이며, 지식인의 임무는 그 방향을 먼저 알아보는 것이라는 선언이었습니다.
이때 국제정세는 더 이상 여러 가능성이 경쟁하는 열린 현실이 아닙니다. 이미 목적지가 정해진 역사의 행렬이 됩니다. 개별 사건은 그 목적지를 입증하는 증거로 배치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관찰은 서사로 바뀝니다.
권위주의의 거짓을 폭로했다고 모든 반대편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리영희가 활동하던 시대의 한국 정부는 정보를 통제했습니다. 반공을 명분으로 반대자를 억압했고, 언론 보도를 제한했으며, 미국과 한국 정부에 불리한 사실을 감추거나 축소했습니다. 리영희가 해외 자료를 소개하고 베트남전쟁의 이면과 미국 외교의 위선을 비판한 것은 실제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해직과 투옥, 수감과 복직을 거듭했습니다. 권력의 공식 설명을 의심하도록 만든 그의 역할도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권력의 거짓을 발견하는 것과 반대편의 설명이 진실임을 증명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한국 정부가 중국을 악마화했다고 해서 중국 공산당의 자기 설명이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 정부가 베트남전쟁의 정보를 왜곡했다고 해서 북베트남과 베트콩의 선전이 객관적 진실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권위주의 정부가 반공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고 해서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현실적 공포와 역사적 경험까지 모두 조작되는 것은 아닙니다.
권력에 저항하는 지식인에게도 같은 검증 기준이 필요합니다.
한국 정부가 선전했는가.
미국 정부가 중요한 사실을 감추었는가.
중국 공산당과 혁명운동도 자신에게 유리한 사실만 보여주지 않았는가.
어느 진영의 자료든 그 생산자와 목적, 누락된 정보와 반증 가능성을 함께 살펴보았는가.
리영희의 가장 중요한 한계는 회의주의가 일관되게 적용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자료에는 권력과 이해관계가 작용한다고 보면서, 중국혁명과 민족해방운동을 설명할 때는 같은 정도의 의심을 끝까지 밀고 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회의주의자가 아니라 선택적으로 회의적인 지식인에 가까웠습니다.
이후의 역사는 어디로 전환되었는가
역사적 주장은 시간이 지나면 결과로 검증됩니다. ‘전환시대’라는 해석 역시 예외일 수 없습니다.
중국은 문화대혁명의 길을 계속 걷지 않았습니다. 마오쩌둥 사후 중국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을 통해 시장, 사유재산, 외국 자본과 국제무역을 대폭 받아들였습니다. 중국의 성장을 가능하게 한 것은 문화대혁명의 확대가 아니라 그 파괴에서 멀어지는 과정이었습니다.
베트남도 통일 뒤 중앙계획경제의 한계를 겪었고, 결국 도이머이를 통해 시장 원리를 도입했습니다.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권은 붕괴했고, 제3세계의 여러 사회주의 실험도 권위주의, 빈곤, 부패와 장기 침체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반면 한국은 공산혁명이나 제3세계 사회주의를 통해 성장하지 않았습니다. 산업화와 시장경제, 교육의 확대, 자유민주주의 제도의 점진적 정착을 통해 발전했습니다. 한국의 민주화는 중요했지만, 민주화의 완성은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었습니다. 권위주의적 자본주의를 자유민주적 시장경제로 바꾸는 과정에 더 가까웠습니다.
물론 이것이 미국은 언제나 옳았고 중국은 모든 점에서 틀렸다는 뜻은 아닙니다. 미국은 베트남전쟁에서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고,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리영희가 중국과 일본의 부상, 미국 패권의 한계에 주목한 것 자체도 의미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건을 하나의 진영 서사로 환원해서는 안 됩니다.
미국의 실패는 미국 체제 전체의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중국의 부상은 마오주의의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민족해방의 정당성은 사회주의 독재의 정당성이 아니었습니다.
권력의 성장은 그 체제의 도덕성과 정확성을 증명하지 않습니다.
리영희가 하나의 방향으로 묶었던 사건들은 결국 서로 다른 길로 흩어졌습니다. 실제로 일어난 전환은 그의 서사와 반대되는 요소를 많이 포함했습니다.
반공주의는 단순한 환상이 아니었다
리영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서술에서는 흔히 그가 한국 사회의 맹목적인 반공주의를 깨뜨렸다고 말합니다. 이 평가는 절반은 옳습니다. 한국의 반공주의에는 국가권력이 정치적 반대자를 억압하기 위해 이용하고 과장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절반도 보아야 합니다.
한국인은 공산주의를 책으로만 배운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북한의 남침으로 전쟁을 겪었고, 국토가 점령되었으며, 수많은 군인과 민간인이 죽었습니다. 점령지에서는 숙청과 처형이 벌어졌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북한의 무력 도발과 침투는 계속됐습니다. 이 경험 속에서 형성된 반공주의를 모두 국가 선전이나 비합리적 공포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반공주의는 권력에 의해 악용되었지만, 공산주의에 대한 한국인의 공포에는 실제 경험과 근거가 있었습니다. 두 명제는 동시에 참일 수 있습니다.
반공주의의 정치적 악용만을 강조하면서 한국전쟁과 북한 체제의 실제 경험을 주변으로 밀어내면, 한국인의 공포와 판단은 국가가 주입한 허위의식으로 축소됩니다. 반대로 북한의 위협만을 강조하면서 권위주의 정부의 탄압을 부정하면, 반공은 모든 권력 남용을 정당화하는 면허가 됩니다.
리영희는 국가가 반공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는 날카롭게 보았습니다. 그러나 반공이 왜 그토록 강한 사회적 설득력을 얻었는지, 그 안에 어떤 실제 경험이 들어 있었는지는 충분히 공정하게 다루지 않았습니다.
인간보다 역사의 방향을 먼저 보았다
이 문제는 단순한 국제정치 분석의 오류보다 깊습니다. 무엇을 사실로 중요하게 보는가 하는 인간관의 문제입니다.
문화대혁명을 평가할 때 먼저 보아야 할 것은 그 사건이 ‘낡은 사회를 바꾸려 한 혁명’이었다는 선언이 아닙니다. 실제 인간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입니다.
교사와 지식인이 공개적으로 모욕당했습니다. 가족과 동료가 서로를 고발했습니다. 종교와 전통문화가 파괴되었고, 수많은 사람이 폭행과 추방, 감금과 죽음을 겪었습니다.
베트남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미국의 제국주의나 베트남 민족해방이라는 하나의 문장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남과 북의 권력, 전쟁에 동원된 군인, 공산주의 세력 아래에서 탄압받은 사람, 미군의 공격으로 죽은 민간인, 통일 뒤 국외로 탈출한 보트피플의 경험을 모두 보아야 합니다.
한국전쟁에서 죽은 민간인, 문화대혁명에서 박해받은 지식인과 노동자, 베트남에서 공산주의 세력에게 숙청당한 사람과 미군의 폭격으로 죽은 사람에게는 같은 기준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역사철학은 이들을 민중과 반동, 혁명세력과 제국주의자, 진보적 인간과 낡은 인간으로 쉽게 분류합니다.
사람보다 범주가 먼저 존재하면, 어떤 죽음은 범죄가 되고 어떤 죽음은 역사의 비용이 됩니다. 어떤 억압은 체제의 본질이 되고, 어떤 억압은 과도기의 오류로 축소됩니다.
여기서 인본주의와 사회공학의 차이가 드러납니다. 인본주의자는 이념을 인간에게 일어난 결과로 평가하지만, 사회공학자는 인간을 이념의 목적에 따라 배치합니다.
리영희의 문제는 진보적 이념을 가졌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역사적 진보라는 방향이 구체적인 인간의 고통보다 앞섰다는 데 있습니다.
사실이 규범을 바꾸지 못하는 사고
토머스 쿤이 말한 패러다임처럼 국제정치를 읽는 지식인도 특정한 틀 안에서 사실을 봅니다. ‘제국주의 대 민족해방’이라는 구도를 먼저 받아들이면 미국의 실패는 체제의 본질이 되지만, 혁명세력의 실패와 폭력은 지도자의 오류나 과도기의 혼란으로 설명됩니다.
이런 해석은 반증되기 어렵습니다. 사회주의 국가가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면 현실에 적응한 것이고, 부패하면 진정한 사회주의가 아니었던 것이 됩니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역사의 방향은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실이 규범을 수정하지 못하고 규범이 사실의 의미를 미리 정한다면, 그것은 국제정치 분석보다 신념 체계에 가깝습니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매료되었는가
《전환시대의 논리》의 성공을 정부의 정보 통제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검열은 왜 이 책이 새롭게 느껴졌는지는 설명하지만, 독자가 그 역사적 방향까지 받아들인 이유는 설명하지 못합니다. 리영희 이전의 한국 지식인 사회에도 세상을 도덕적 대립으로 정리하고 지식인에게 역사의 방향을 제시하는 임무를 부여하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 뿌리 가운데 하나는 식민지 시기 사회주의 지식인 운동이었습니다. 카프는 일제의 탄압 속에서 해산했지만, 민족주의와 반제국주의, 자본과 착취, 진보와 반동이라는 언어는 해방 이후에도 남았습니다. 지식은 사회를 관찰하는 작업을 넘어 사회를 변화시키는 도구로 이해됐습니다.
권위주의 시대의 보수는 독재와 기득권을 옹호하는 언어로 들리기 쉬웠습니다. 반면 사회주의와 제3세계 혁명은 저항, 해방, 민중과 자주를 약속했습니다. 젊은 지식인은 자신을 낡은 세계의 관리자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의 설계자로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리영희는 이 오래된 지적 문법에 새로운 국제정치의 사례를 넣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의 제국주의와 민족해방이라는 구도는 미국과 베트남의 관계로 옮겨졌습니다. 지배계급과 민중의 대립은 한국 권위주의 정부와 민주화 세력의 대립으로 이어졌습니다. 낡은 질서에서 새로운 질서로 나아간다는 역사관은 중국혁명과 제3세계 사회주의에서 다시 힘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전환시대의 논리》는 낯설면서도 익숙했습니다.
독자는 새로운 국제정보를 얻는 동시에 자신이 이미 품고 있던 도덕 감정과 역사철학이 옳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책은 독자에게 자신을 억압에 맞서는 지식인, 역사의 방향을 먼저 알아본 사람으로 느끼게 했습니다.
이 역할은 매력적이지만 위험합니다. 지식인이 사실을 확인하는 사람을 넘어 새로운 시대의 설계자와 역사의 심판자를 자처하면, 예측이 빗나가도 역사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혁명의 폭력은 전환기의 비용이 되고, 구체적인 인간의 고통은 거대한 방향 아래에서 예외로 처리됩니다.
리영희의 공로와 오류를 동시에 보는 법
리영희를 다시 읽는 목적은 그를 보수와 진보 가운데 어느 편에 세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는 권위주의 정부의 정보 독점에 맞섰고, 공식 설명을 의심하며 외부 자료를 찾아 읽는 태도를 확산시켰습니다. 그 공로는 인정해야 합니다.
동시에 중국혁명과 제3세계 사회주의에 부여한 역사적 방향, 문화대혁명의 참상을 다룬 방식, 미국과 공산권에 서로 다르게 적용한 회의주의는 결과로 검증해야 합니다. 민주화에 기여한 지식인도 국제정치를 잘못 읽을 수 있습니다. 도덕적 용기는 분석의 정확성을 자동으로 보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필요한 것은 찬양이나 매장이 아니라 검증입니다.
우리가 잘못 읽은 것은 책만이 아니었다
우리는 《전환시대의 논리》를 억압된 진실을 깨운 책으로 읽었습니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옳았습니다. 이 책은 정부가 제공한 세계를 의심하게 했지만, 억압된 이야기라고 해서 언제나 더 정확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기존 권위를 무너뜨리는 것과 자신이 선호하는 혁명 권위까지 의심하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미국 중심의 서사를 해체한 뒤 중국혁명과 제3세계 사회주의를 역사의 주인공으로 세운다면, 방향만 바뀌었을 뿐 사고의 구조는 그대로입니다.
우리는 리영희의 용기를 분석의 정확성으로 받아들였고, ‘전환’이라는 말을 개별 사건을 검증하라는 요청이 아니라 역사의 방향을 이미 알아냈다는 선언으로 읽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스스로 방향을 말하지 않으며, 지식인은 자신이 원하는 질서에 맞춰 사건을 배열할 수 있습니다.
좋은 지식인은 국가가 준 세계를 의심합니다. 더 좋은 지식인은 자신이 만든 세계도 의심합니다.
권력의 거짓을 발견한 뒤 반대편의 신화로 달려가지 않습니다. 자신이 지지하는 체제에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고, 인간의 고통을 어느 진영의 언어로도 할인하지 않습니다. 예상과 결과가 다르면 자신의 설명을 고칩니다.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가 오늘 우리에게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도 여기에 있습니다. 지식인의 용기는 권력에 맞서는 데서 시작하지만, 지식인의 정확성은 자신이 사랑하는 이념까지 의심할 때 비로소 시작됩니다.
참고문헌
리영희, 《전환시대의 논리》, 창작과비평사, 1974.
리영희, 《우상과 이성》, 한길사, 1977.
리영희, 《대화: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한길사, 2005.
Frank Dikötter, The Cultural Revolution: A People’s History, 1962–1976.
Jung Chang and Jon Halliday, Mao: The Unknown Story.
Leszek Kołakowski, Main Currents of Marxism.
Karl Popper, The Poverty of Historicism.
Karl Popper, 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
Thomas S. Kuhn,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