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리버럴은 왜 상대적 진리를 선호하는가: 앨런 블룸의 진리 상대주의 비판


앨런 블룸의 '미국 정신의 종말'을 통해 리버럴 지식인과 대학 사회가 왜 절대적 도덕 진리보다 상황과 맥락에 따른 상대주의적 진리를 선호하는지, 그리고 그 비대칭적 도덕 기준이 갖는 한계를 철학적으로 분석합니다.

리버럴은 왜 상대적 진리를 선호하는가

리버럴은 왜 상대적 진리를 선호하는가

앨런 블룸의 진리 상대주의 비판

앨런 블룸은 《The Closing of the American Mind》(미국 정신의 종말)에서 현대 대학문화의 가장 큰 문제로 상대주의를 지적했습니다. 그가 보기에 많은 학생들은 더 이상 진리를 탐구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진리란 사람마다 다르고, 문화마다 다르며, 시대마다 달라지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블룸은 이것을 열린 마음이 아니라 닫힌 마음이라고 보았습니다. 진리가 상대적이라고 믿는 순간, 사람은 더 이상 자기 생각을 검토할 필요도, 더 나은 판단을 찾을 필요도 느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단순한 철학 논쟁이 아닙니다. 오늘날 리버럴의 사고방식에서도 비슷한 경향을 볼 수 있습니다. 리버럴은 보수주의자보다 절대적 진리, 특히 절대적 도덕 진리에 대해 회의적인 경향이 강합니다. 도덕은 시대와 사회를 넘어서는 보편 원칙이라기보다, 개인의 경험, 문화적 배경, 사회적 맥락, 권력관계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도덕적 토대 차이

최근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에 실린 연구는 이 차이를 직접적으로 보여줍니다. 연구자들은 여러 연구를 통해 보수주의자는 도덕 절대주의를 더 지지하고, 리버럴은 도덕 상대주의를 더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보수주의자는 “도덕적인 것과 비도덕적인 것은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는 식의 문장에 더 가까웠고, 리버럴은 “무엇이 도덕적인지는 문화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문장에 더 가까웠습니다.

이 차이는 매우 중요합니다. 보수와 진보의 차이는 단순히 어떤 정책을 지지하느냐의 차이가 아닙니다. 더 깊은 곳에는 진리와 도덕을 바라보는 방식의 차이가 있습니다. 보수주의자는 옳고 그름의 기준이 비교적 안정되어 있다고 봅니다. 인간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시대와 개인을 넘어서는 규범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리버럴은 기존의 규범이 특정 집단의 권력, 전통, 종교, 문화적 편견을 반영한다고 의심합니다. 그래서 리버럴은 전통적 도덕을 쉽게 상대화합니다.

American Worldview Inventory 2020 조사도 비슷한 흐름을 보여줍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절대적 도덕 진리를 거부하는 비율은 정치적 리버럴에게서 높게 나타났습니다. 정치적 리버럴의 67%, 민주당 지지자의 63%가 절대적 도덕 진리를 거부하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반대로 절대적 도덕 진리를 받아들이는 경향은 정치적 보수주의자와 공화당원에게서 상대적으로 높았습니다.

Pew Research Center의 조사도 미국 사회 전체가 상황윤리 쪽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미국 성인의 55%는 옳고 그름이 명확하고 절대적인 기준에 의해 정해진다기보다,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고 답했습니다. 절대적 기준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44%였습니다. 이것은 블룸이 말한 상대주의가 더 이상 대학 강의실 안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사회 전체의 문화적 분위기가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리버럴 상대주의의 비대칭성

물론 리버럴이 도덕을 전혀 믿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리버럴은 어떤 문제에서는 매우 강한 도덕적 확신을 보입니다. 인종차별, 성차별, 소수자 차별, 혐오 표현, 불평등, 억압의 문제에서는 매우 절대적인 언어를 사용합니다. 그래서 리버럴은 모든 도덕을 상대화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리버럴은 전통적 도덕을 상대화하고, 피해와 억압의 문제를 새로운 절대 기준으로 세우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점에서 리버럴의 상대주의는 비대칭적입니다. 가족, 성, 종교, 권위, 국가, 전통, 신성의 문제에서는 “그것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다르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차별, 평등, 억압, 소수자 권리의 문제에서는 “이것은 절대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전통적 도덕은 상대화하지만, 해방과 평등의 도덕은 절대화하는 것입니다.

보수주의자가 리버럴의 도덕 언어를 위선적으로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리버럴은 절대적 진리를 부정하는 것처럼 말하면서도,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에 대해서는 매우 절대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전통적 규범은 사회적 구성물이라고 말하지만, 평등과 차별의 문제에서는 타협할 수 없는 진리처럼 말합니다.

진리 탐구 자체를 약화시키는 상대주의

앨런 블룸이 우려한 것도 바로 이 지점입니다. 상대주의는 처음에는 관용의 언어로 등장합니다. “너의 진리도 있고, 나의 진리도 있다”는 말은 겸손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치게 확장되면 진리 탐구 자체를 약화시킵니다. 사람은 더 이상 무엇이 참인지 묻지 않고, 누가 말했는지, 어떤 집단의 관점인지, 어떤 권력관계 속에서 나온 말인지만 묻게 됩니다.

시드니 훅의 말로 알려진 문장은 이 문제를 잘 보여줍니다. “진실을 찾기를 거부하는 가장 쉬운 합리화는 진실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진실이 없다고 말하는 순간, 사람은 진실 앞에서 자신을 바꿀 필요가 없어집니다. 모든 것은 관점이 되고, 모든 판단은 맥락이 되며, 모든 불편한 사실은 해석의 문제가 됩니다.

리버럴의 상대주의는 현대 사회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관용이나 다양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진리, 도덕, 책임, 정직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진실이 상대적이라면 정직도 상대적이 됩니다. 도덕이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면 책임도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결국 상대주의는 사람을 자유롭게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진리 앞에서 책임지는 태도를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절대적 기준과 의심의 균형

보수주의가 절대적 기준을 중시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은 자기합리화에 능한 존재입니다. 기준이 없으면 사람은 언제나 자신에게 유리한 해석을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도덕과 진리는 단순한 취향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개인의 감정과 집단의 유행을 넘어서는 기준이 필요합니다.

리버럴은 전통적 진리를 의심합니다. 그 의심은 때로 필요합니다. 낡은 관습과 부당한 차별을 비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진리를 권력의 산물로 보고, 모든 도덕을 맥락의 문제로 돌리는 순간, 진리 탐구는 사라지고 정치적 해석만 남게 됩니다. 블룸이 말한 미국 정신의 폐쇄는 바로 여기서 시작됩니다. 열린 마음이라는 이름으로 진리를 포기할 때, 인간의 정신은 오히려 닫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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