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마을에 한 농부가 살았습니다. 그 농부의 집 근처에는 여우 한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여우가 몰래 농부의 집에 들어와 닭을 한 마리 물어갔습니다.
농부는 화가 났지만 처음에는 참았습니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저러랴 싶었습니다. 그런데 여우는 다시 찾아왔습니다. 이번에는 오리를 한 마리 물어갔습니다. 농부는 이번에도 참았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여우가 또 나타났습니다. 이번에도 닭을 물어갔습니다. 결국 농부는 덫을 놓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여우를 잡았습니다.
여기까지는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농부는 피해자였습니다. 여우는 농부의 닭과 오리를 물어갔습니다. 농부가 여우를 잡으려 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농부는 여우를 잡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죽이는 것으로도 분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우의 꼬리에 짚을 묶고 불을 붙였습니다. 여우가 고통스러워하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며 농부는 통쾌함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여우가 뛰어간 곳은 농부의 밀밭이었습니다. 농부가 1년 내내 땀 흘려 가꾼 밭이었습니다. 여우에게 붙인 불은 결국 여우만 태우지 않았습니다. 농부 자신의 밀밭을 태웠습니다.
왜 농부는 자기 밭을 태우게 되었을까
이 우화에서 이상한 점은 여우가 벌을 받았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여우는 잘못했습니다. 닭을 물어갔고, 오리를 물어갔고, 다시 닭을 물어갔습니다. 농부가 화를 낸 것은 당연했습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것입니다. 왜 농부는 피해자였는데도 결국 자기 밭을 잃게 되었을까요.
농부가 여우를 벌했기 때문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여우를 막는 것은 필요했습니다. 만약 농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여우는 계속 닭과 오리를 물어갔을 것입니다. 피해를 막기 위한 조치는 필요했습니다.
문제는 농부가 여우를 벌한 데 있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그 벌이 여우의 죄보다 커졌다는 데 있었습니다. 여우의 죄는 닭과 오리를 물어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농부는 여우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그 고통을 보며 자신의 분노를 풀려고 했습니다.
그 순간 벌은 정의가 아니라 분풀이가 되었습니다.
벌이 죄보다 커지는 순간
사람은 피해를 입으면 분노합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자기 닭과 오리를 잃은 농부가 화를 내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합니다. 문제는 분노 자체가 아닙니다.
문제는 분노의 크기에 따라 벌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분노의 크기에 맞춰 벌을 정의할 때 발생합니다.
농부가 여우를 잡은 것은 자연스러운 조치였습니다. 여우는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농부는 여우를 여우의 죄만큼만 벌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농부는 자신의 분노만큼 벌하려 했습니다.
그 순간부터 상황은 농부의 통제를 벗어났습니다. 그는 여우를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자기 분노를 통제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꼬리에 불이 붙은 여우는 농부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뛰지 않습니다. 불은 목적지를 가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불은 밀밭으로 들어갔습니다.
죄보다 큰 벌은 새로운 죄의 시작입니다
이솝 우화의 여우는 잘못했습니다. 농부가 여우를 잡은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농부는 여우의 죄만큼 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분노만큼 벌하려 했습니다.
그 결과 농부는 여우를 완전히 통제하지도 못했고, 자기 밭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여우의 죄는 농부에게 손해를 입혔지만, 농부의 과잉응징은 농부 자신의 밀밭을 태웠습니다.
이 우화가 오래 살아남은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죄보다 큰 벌을 정의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죄보다 큰 벌은 정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새로운 죄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그 불은 언젠가 자기 밭으로 돌아옵니다.
너무 가혹한 법은 정의가 아니라 공포가 됩니다
이 문제는 우화 속 농부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법의 역사에서도 같은 문제가 반복되었습니다.
고대 아테네의 드라콘 법은 과잉처벌의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언급됩니다. 드라콘은 기원전 7세기 아테네의 법률가로 알려져 있고, 그의 법은 매우 가혹한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여러 전승에서 드라콘 법은 작은 범죄에도 사형을 부과할 정도로 엄격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영어의 “draconian”이라는 말은 지나치게 가혹한 법이나 조치를 뜻하는 표현으로 쓰입니다.
드라콘 법이 오래 기억된 이유는 단순합니다. 법이 너무 약하면 질서가 무너집니다. 그러나 법이 너무 강해도 정의가 무너지며, 법을 강하게 만들려다가 오히려 법의 권위를 잠식하게 됩니다. 죄보다 큰 벌은 사람들에게 법의 권위를 느끼게 하기보다 법의 공포를 느끼게 합니다.
농부가 여우를 잡는 것은 질서를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여우의 꼬리에 불을 붙이는 것은 질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공포였고, 고통이었고, 분풀이였습니다. 법도 마찬가지입니다. 범죄를 막겠다는 명분이 있다고 해서 벌이 무한히 커져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Bloody Code가 보여준 과잉처벌의 역설
18세기 영국의 이른바 Bloody Code도 같은 문제를 보여줍니다. 당시 영국에서는 사형에 처할 수 있는 범죄가 크게 늘어났습니다. 특히 재산범죄까지 사형으로 다스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영국 국립정의박물관은 이 시기 사형에 처할 수 있는 범죄가 200개 이상으로 확대되었고, 그중 상당수가 오늘날 보기에는 놀랄 만큼 사소한 범죄였다고 설명합니다.
처벌을 세게 만들면 법이 강해질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반대의 문제가 생깁니다. 형벌이 지나치게 가혹하면 사람들은 그 법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을 망설입니다. 배심원은 유죄 판단을 피하려 하고, 판사는 관용을 찾으려 하며, 사회는 법을 신뢰하기보다 법의 잔혹성을 먼저 보게 됩니다.
이것이 과잉처벌의 역설입니다. 법을 강하게 만들려고 벌을 키웠는데, 벌이 너무 커져서 오히려 법의 권위가 약해집니다. 사람들이 범죄자를 두둔해서가 아닙니다. 벌이 죄의 무게를 넘어선다고 느끼기 때문에 법의 집행을 꺼리게 되는 것입니다.
농부의 불도 그랬습니다. 여우를 벌하려고 붙인 불이 여우만 태우지 않고 밀밭까지 태웠습니다. 법도 죄보다 큰 벌을 만들면 범죄자만 겨냥하지 않습니다. 법의 신뢰, 공동체의 양심, 제도의 정당성까지 태울 수 있습니다.
사회적 처벌도 비례해야 합니다
이 이야기는 형법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는 법정 밖에서도 처벌이 일어납니다. 누군가 잘못을 하면 사람들은 그 잘못을 비판합니다. 그것은 필요합니다. 잘못을 밝히고 책임을 묻는 일은 공동체가 질서를 유지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사회적 책임도 비례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한 말이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전 생애를 부정하거나, 가족과 직장까지 공격하거나, 회복의 가능성 자체를 없애려 한다면 그것은 정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여우 꼬리에 불을 붙이는 일입니다.
처음에는 통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불이 어디로 번질지는 아무도 통제하지 못합니다. 한 사람을 벌하려던 불이 표현의 자유를 태우고, 토론의 문화를 태우고, 결국 사회 전체의 신뢰를 태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비례성은 단순한 법률 원칙이 아닙니다. 그것은 문명사회의 감정 조절 장치입니다. 우리는 죄를 미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보다 큰 벌을 정의라고 부르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농부처럼 자기 밭을 태우고 있을지 모릅니다.
보스턴 학살 재판이 보여준 다른 길
반대로 좋은 사례도 있습니다. 1770년 보스턴 학살 재판에서 존 애덤스가 보여준 태도입니다.
보스턴 학살은 1770년 3월 5일, 보스턴에서 영국군이 군중에게 발포해 식민지 주민 5명이 사망한 사건입니다. 당시 보스턴의 여론은 격앙되어 있었습니다. 식민지 주민들에게 영국군은 단순한 군인이 아니라 억압의 상징처럼 보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군 병사들을 변호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매우 불리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훗날 미국 대통령이 되는 존 애덤스는 영국군 병사들의 변호를 맡았습니다.
이 사례가 중요한 이유는 애덤스가 영국군 편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는 독립파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분노한 여론이 원하는 만큼 처벌하는 것이 정의라고 보지 않았습니다. 각 병사가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 군중의 위협이 있었는지, 발포가 살인이었는지, 정당방위였는지, 또는 과실치사였는지를 따져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결과적으로 프레스턴 대위와 다수의 병사는 무죄가 되었고, 두 명의 병사는 살인(murder)이 아닌 감경된 책임의 살해죄(manslaughter)로 유죄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피해가 없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이 죽었으니 피해는 명백했습니다. 그러나 피해가 크다고 해서 현장에 있던 모든 병사를 똑같이 살인자로 만들 수는 없었습니다.
벌의 크기를 죄가 아닌 분노에 맞추기 시작하면, 그것은 결국 법의 권위를 약화시키는 길이 됩니다.
정치적 처벌도 비례성을 잃을 수 있습니다
이 문제는 법정 안에서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정치권에서도 반복됩니다. 탄핵은 헌법이 마련한 책임 추궁 절차이지만, 대통령을 직위에서 제거하고 이후의 공직 진출까지 제한할 수 있는 가장 강한 정치적 수단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두 질문을 함께 받아야 합니다. 대통령이 잘못을 했는가, 그리고 그 잘못에 그 수단이 비례하는가입니다.
트럼프의 두 번째 탄핵은 이 긴장을 드러낸 사례입니다. 2021년 1월 6일 의사당 사태 뒤 하원은 임기 종료를 일주일 앞둔 그를 탄핵소추했습니다. 이를 헌정 질서와 평화로운 권력 이양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책임 추궁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반대로 이미 퇴임이 임박한 대상에게 최고 수위의 정치적 절차를 계속하는 것이, 향후 출마 자격까지 제한하려는 응징으로 비칠 수 있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의 잘못을 부정하거나 특정 탄핵의 정당성을 단정하는 일이 아닙니다. 여우가 잘못했는가와 여우의 꼬리에 불을 붙여도 되는가는 다른 문제입니다. 정치에서도 상대의 잘못이 실제로 있을 때일수록 벌의 크기를 따져야 합니다. 책임 추궁이 상대를 제도권 밖으로 완전히 몰아내려는 응징으로 바뀌면, 그 불은 결국 정치 전체의 밀밭으로 번질 수 있습니다.
법은 피해자의 분노를 외면해서도, 그대로 따라가서도 안 됩니다
법은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해서도 안 되지만, 가해자에게 실제 죄보다 더 큰 벌을 주어서도 안 됩니다. 피해가 있다는 사실과 과잉처벌이 정당하다는 주장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정치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상대의 잘못이 실제로 있을 때입니다. 잘못이 전혀 없다면 공격은 쉽게 부당해 보입니다. 그러나 상대가 실제로 잘못했을 때, 사람들은 벌의 크기를 따지지 않게 됩니다. “잘못했으니 당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때 비례성의 원칙이 필요합니다. 죄가 있다고 해서 어떤 벌이든 정당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정치적 처벌도 죄의 크기를 넘어서는 순간, 정의가 아니라 정파적 복수가 됩니다.
참고문헌
- EBSCO Research Starters, "Draco’s Code."
- Peter King, "Rethinking the Bloody Code in Eighteenth-Century Britain," Past & Present, 2015.
- National Justice Museum, "The 'Bloody Code'?"
- National Park Service, "Boston Massacre Trial."
- Dan Abrams and David Fisher, "John Adams Defended Enemy Soldiers in Court. 250 Years After the Boston Massacre, Here’s How That Case Is Still Shaping Legal History," TIME, 2020.
- U.S. Congress, constitutional summary on Donald Trump’s second impeachment,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