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정치 언어에서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습니다. 같은 경제 현상이라도 보수 정권 아래에서 일어나면 “탐욕”으로 불리고, 민주당 정권 아래에서 일어나면 “혁신”이나 “성장”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로널드 레이건의 1980년대와 빌 클린턴의 1990년대입니다.
레이건 시대의 미국 경제는 활발히 성장했습니다. 감세, 규제완화, 시장친화 정책, 기업가 정신이 강조되었고, 주식시장도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는 곧 “탐욕의 시대”라는 이름으로 기억되었습니다. 월스트리트, 기업 인수합병, 부자 감세, 트리클다운 경제학은 보수주의적 이기심의 상징처럼 다루어졌습니다.
NBC의 케이티 쿠릭은 레이건 시대를 돌아보며 “탐욕과 물질주의가 규범이었던 시대”라고 말했습니다. 이 표현은 당시 언론과 문화계가 레이건 시대를 바라보던 전형적인 방식이었습니다. 레이건의 경제성장은 단순한 성장으로 기억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부자들의 시대, 월스트리트의 시대, 탐욕의 시대라는 도덕적 언어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 뒤 클린턴 행정부 아래에서 훨씬 더 강렬한 자산시장 호황이 나타났습니다. 인터넷 기업들이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주식시장은 급등했으며, IPO 열풍이 불었습니다. 하루아침에 백만장자가 된 사람들이 등장했고, 실리콘밸리의 창업자들은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처럼 다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를 두고 언론은 “민주당이 탐욕의 시대를 열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클린턴 시대의 주식시장 호황은 탐욕이 아니라 “신경제”로 불렸습니다. 닷컴 버블은 부의 과잉이라기보다 혁신의 열기로 설명되었습니다. 레이건 시대의 부자는 탐욕의 상징이 되었지만, 클린턴 시대의 부자는 미래를 여는 창업가로 묘사되었습니다.
이 차이는 단순한 표현의 차이가 아닙니다. 정치적 도덕 판단의 차이입니다.
같은 부의 팽창, 다른 이름
1980년대의 월스트리트는 탐욕의 상징이었습니다. 영화 《월스트리트》의 고든 게코가 말한 “Greed is good”은 레이건 시대를 조롱하는 문화적 상징처럼 사용되었습니다. 부, 경쟁, 금융, 감세, 시장은 보수주의의 냉혹함을 보여주는 증거로 소비되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의 나스닥, 벤처캐피털, 스톡옵션, 닷컴 백만장자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루어졌습니다. 그들은 탐욕스러운 자본가라기보다 새로운 경제의 개척자였습니다. 같은 주식시장 호황도 하나는 탐욕의 시대가 되고, 다른 하나는 혁신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로버트 새뮤얼슨은 워싱턴포스트 칼럼에서 이 점을 날카롭게 지적했습니다. 그는 1990년대가 왜 “탐욕의 10년”으로 불리지 않는지 물었습니다. 실제로 1990년대의 주식시장 팽창과 개인 부의 증가는 1980년대보다 훨씬 컸습니다. 그런데도 도덕적 비난은 주로 레이건의 1980년대에 집중되었습니다.
이것은 언론이 경제 현상을 해석할 때 단순히 숫자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현상이 어떤 정치적 진영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함께 본다는 뜻입니다.
- 보수주의자가 감세를 말하면 탐욕입니다.
- 민주당 대통령이 자본시장 호황을 누리면 성장입니다.
- 보수주의자가 시장을 말하면 냉혹함입니다.
- 진보 정치인이 시장 성과를 이용하면 현실주의입니다.
“자비로운 보수주의”는 왜 조롱받았나
비슷한 사례가 “자비로운 보수주의”라는 표현입니다.
조지 W. 부시는 자신을 “compassionate conservative”, 즉 자비로운 보수주의자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는 보수주의가 개인 책임, 시장, 가족, 종교 공동체를 강조하면서도 약자를 외면하지 않는다는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언론의 반응은 냉소적이었습니다. ABC의 찰리 깁슨은 “자비로운 보수주의”라는 표현을 사실상 모순어법처럼 취급했습니다. 자비와 보수주의는 함께 놓일 수 없는 단어라는 식이었습니다.
이 반응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이미 하나의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보수주의는 원래 자비롭지 않다는 전제입니다. 보수주의자는 경쟁을 좋아하고, 가난한 사람에게 냉담하며, 부자 편을 들고, 약자에게 무관심하다는 이미지가 먼저 놓여 있습니다. 그러니 “자비로운 보수주의”라는 말은 설명을 요구합니다.
반대로 “자비로운 진보주의”라는 표현은 거의 설명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진보주의는 이미 compassion, 즉 연민과 자비를 독점한 것으로 전제되기 때문입니다. 진보주의자가 복지를 말하면 인간적 관심입니다. 보수주의자가 복지개혁을 말하면 냉혹함입니다.
이것이 정치 언어의 비대칭입니다.
레이건의 복지 비판과 클린턴의 복지개혁
복지정책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레이건이 복지제도의 남용을 비판했을 때, 그것은 가난한 사람을 공격하는 냉혹한 보수주의로 해석되었습니다. 특히 “welfare queen”이라는 표현은 레이건식 복지 비판의 상징처럼 굳어졌습니다. 이 표현은 이후 인종적 코드, 빈곤층 혐오, 약자 공격의 사례로 자주 인용되었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 클린턴은 “우리가 알고 있는 복지를 끝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1996년 복지개혁법에 서명했습니다. 이 법은 기존의 복지제도를 크게 바꾸었고, 근로요건과 시간제한을 도입했습니다. 단순한 복지 확대가 아니라 복지 의존을 줄이고 노동 참여를 요구하는 개혁이었습니다.
정책의 방향만 놓고 보면, 이것은 레이건이 말했던 문제의식과 아주 멀지 않았습니다. 복지제도가 사람들을 장기 의존 상태에 묶어둘 수 있다는 문제의식, 복지와 노동을 연결해야 한다는 생각, 정부 지원에는 책임이 따라야 한다는 논리였습니다.
하지만 클린턴의 복지개혁은 레이건식 냉혹함으로만 기억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민주당의 중도화, 책임 있는 개혁, 현실주의로 설명되었습니다. 같은 복지 축소와 근로요건 강화도 보수주의자가 말하면 약자 공격이 되고, 민주당 대통령이 실행하면 중도개혁이 되었습니다.
금융 규제완화도 마찬가지였다
금융 규제완화도 비슷합니다.
보수주의자가 금융 규제완화를 말하면 그것은 월스트리트 탐욕, 시장만능주의, 부자 편들기로 해석됩니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규제완화 자체가 금융자본의 탐욕을 풀어준 원인처럼 설명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클린턴 행정부도 중요한 금융 규제완화를 추진했습니다. 1999년 클린턴은 Gramm–Leach–Bliley Act에 서명했습니다. 이 법은 대공황 이후 유지되던 상업은행, 투자은행, 보험업의 장벽을 크게 허물었습니다. 당시 공식 언어는 “금융서비스 산업의 현대화”였습니다. 낡은 규제를 없애고, 경쟁을 촉진하고, 소비자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준다는 설명이 붙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보수주의자가 말하면 탐욕의 규제완화입니다. 클린턴이 말하면 현대화입니다. 보수주의자가 추진하면 월스트리트 편들기입니다. 민주당 행정부가 추진하면 혁신과 경쟁입니다.
정책 내용보다 그것을 둘러싼 정치적 서사가 더 강하게 작동한 것입니다.
자본이득세 인하도 다르게 불렸다
1997년 클린턴은 공화당 의회와 함께 세제개편을 통과시켰습니다. 그 안에는 자본이득세율을 낮추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자본이득세 인하는 일반적으로 투자자와 자산가에게 유리한 정책으로 여겨집니다.
보수 대통령이 이런 정책을 추진하면 “부자 감세”라는 말이 따라붙습니다. 레이건의 감세는 부자를 위한 감세, 트리클다운, 탐욕의 경제학으로 비판받았습니다.
그러나 클린턴 시기의 자본이득세 인하는 훨씬 부드러운 언어 속에 들어갔습니다. 균형예산, 중산층 감세, 투자 활성화, 경제성장의 일부로 설명되었습니다. 물론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레이건 감세에 붙었던 것과 같은 강도의 도덕적 낙인은 상대적으로 약했습니다.
같은 감세도 한쪽은 탐욕이고, 다른 한쪽은 경제정책입니다.
문제는 정책이 아니라 도덕적 명명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레이건의 정책이 옳았는지, 클린턴의 정책이 옳았는지를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핵심은 정치적 언어가 어떻게 다르게 작동하는가입니다.
미국 언론과 지식인 문화에서는 시장, 경쟁, 감세, 부의 축적, 복지개혁 같은 주제가 보수주의와 결합될 때 쉽게 도덕적 비난의 언어로 바뀝니다. 탐욕, 냉혹함, 이기심, 약자에 대한 무관심이라는 단어가 붙습니다.
반면 같은 방향의 정책이나 같은 경제 현상이 민주당 정권 아래에서 나타날 때는 다른 언어가 사용됩니다. 혁신, 현대화, 책임성, 중도개혁, 신경제, 현실주의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 레이건의 1980년대는 탐욕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 클린턴의 1990년대는 신경제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 레이건의 복지 비판은 냉혹함이 되었습니다.
- 클린턴의 복지개혁은 책임 있는 중도개혁이 되었습니다.
- 보수주의자의 시장주의는 탐욕이 되었습니다.
- 민주당 행정부의 금융 규제완화는 현대화가 되었습니다.
이 차이는 우연이 아닙니다. 그것은 정치적 선입견이 언어 속에서 작동한 결과입니다.
결론
정치에서 가장 강력한 힘은 때로 정책 자체가 아니라, 그 정책에 붙는 이름입니다.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같은 정책도 전혀 다른 도덕적 의미를 갖습니다.
- 보수주의자가 부를 말하면 탐욕이 됩니다.
- 진보 정치인이 부를 누리면 성장의 성과가 됩니다.
- 보수주의자가 복지개혁을 말하면 냉혹함이 됩니다.
- 민주당 대통령이 복지개혁에 서명하면 책임 있는 개혁이 됩니다.
- 보수주의자가 시장을 말하면 약육강식이 됩니다.
- 진보 정치인이 시장의 성과를 이용하면 실용주의가 됩니다.
이런 언어의 비대칭을 보지 못하면, 우리는 정책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붙여진 도덕적 이름을 따라가게 됩니다. 레이건의 1980년대와 클린턴의 1990년대는 그 차이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같은 부의 팽창도 하나는 탐욕의 시대가 되고, 다른 하나는 신경제의 시대가 됩니다.
정치적 편향은 때로 노골적인 주장보다 단어 선택 속에 더 깊이 숨어 있습니다.
참고문헌
- Robert J. Samuelson, Decade of Greed II, The Washington Post, 1999년 7월 14일.
- Bureau of Economic Analysis, NIPA Tables, 미국 실질 GDP와 국민계정 장기 통계.
- Federal Reserve Bank of St. Louis, NASDAQ Composite, FRED.
- Bill Clinton, Remarks on Signing the Personal Responsibility and Work Opportunity Reconciliation Act of 1996, The American Presidency Project, 1996년 8월 22일.
- U.S. Congress, Personal Responsibility and Work Opportunity Reconciliation Act of 1996, P.L. 104-193.
- U.S. Congress, Gramm-Leach-Bliley Act, P.L. 106-102, 1999.
- U.S. Congress, Taxpayer Relief Act of 1997, P.L. 105-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