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지 W. 부시는 정말 ‘멍청한 대통령’이었을까?
2001년, 조지 W. 부시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 인터넷에는 이상한 보고서 하나가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Lovenstein Institute’라는 기관이 미국 대통령들의 IQ를 분석했다고 합니다. 결과는 매우 자극적이었습니다. 빌 클린턴의 IQ는 182, 존 F. 케네디는 174, 지미 카터는 175로 제시된 반면, 조지 W. 부시의 IQ는 고작 91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IQ 91은 지적 장애 수준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IQ 평균은 100이고 표준편차는 15이므로, 91은 평균보다 약간 낮을 뿐 정상 범주에 속합니다. 하지만 일국의 대통령 IQ가 91이라는 수치는 세간의 조롱거리로 소비되기에 충분했습니다.
문제는 이 보고서가 완전히 날조된 가짜였다는 점입니다. ‘Lovenstein Institute’라는 기관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으며, 보고서에 등장한 연구진과 측정 방법론도 모두 허구였습니다. 조지 W. 부시의 IQ가 91이라는 수치 역시 그 어떤 실제 검사나 공인된 자료에 기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질문이 제기됩니다. 왜 이토록 엉성한 가짜 보고서가 그토록 널리 퍼지고, 또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사실로 믿었던 것일까요?
가짜였지만, 그럴듯해 보였다
이 보고서는 단순한 유머나 농담 수준을 넘어 상당히 광범위하게 유통되었습니다. 이메일과 인터넷 게시판을 타고 급속도로 확산되었고, 심지어 일부 해외 언론사들마저 인용 보도할 정도였습니다. 나중에 팩트체크 전문 매체들이 이를 명백한 허위 정보로 규명하고 나서야 소동은 잦아들었습니다.
사실 조금만 차분히 뜯어보면 의심스러운 구석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역대 대통령들의 IQ를 누가, 어떤 경로로 측정했는지 불분명했고, 구체적인 측정 방식에 대한 설명도 전무했습니다. 게다가 생소한 기관 이름은 물론이고, 실제로 존재하는 기관인지 여부조차 확인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 보고서를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신뢰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 황당한 수치가 자신들이 이미 마음속으로 믿고 있었던 고정관념과 완벽하게 부합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많은 리버럴 성향의 유권자들은 조지 W. 부시를 지적으로 매우 미흡한 대통령으로 여겼습니다. 부시는 유독 잦은 말실수로 빈축을 샀으며, 특유의 텍사스 사투리와 정제되지 않은 투박한 어휘는 언론과 대중의 단골 조롱거리였습니다. 그의 엉뚱한 말실수들을 엮어 ‘부시즘(Bushism)’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나고 정치 풍자의 단골 소재로 쓰일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지적·문화적 분위기 속에서 “부시의 IQ가 91에 불과하다”는 가짜 뉴스는 새로운 팩트라기보다는, 자신들이 가진 편견과 인식을 입증해 주는 아주 그럴듯한 확증의 근거로 손쉽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사람은 사실보다 그럴듯한 이야기를 더 쉽게 믿는다
인간은 자신이 믿고 싶어 하는 정보에는 한없이 관대한 필터를 적용합니다. 특히 자신이 적대시하거나 반대하는 정치적 진영에 불리한 정보라면, 출처와 근거가 불확실하더라도 별다른 검증 없이 쉽게 신뢰하고 전파하곤 합니다. 반대로 자신이 지지하는 진영에 불리한 소식을 접했을 때는 현미경을 들이대듯 훨씬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려 듭니다.
이러한 확증편향은 특정 정당이나 특정 진영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보수주의자든 진보주의자든 관계없이, 인간은 누구나 본인의 기존 세계관과 결이 맞는 서사를 훨씬 쉽게 받아들이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부시의 가짜 IQ 보고서 소동은 바로 이 보편적인 확증편향의 작동 방식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사람들은 그 보고서가 객관적 사실이어서 믿은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는 너무나 사실처럼 느껴지는 개연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믿었던 것입니다.
왜 지능은 정치적 무기가 되는가
이 사건에서 우리가 깊이 주목해야 할 지점은 하필 ‘IQ’라는 지능의 형식이 정치적 무기로 소환되었다는 점입니다.
정치 논쟁에서 상대방이 내놓은 정책이나 공약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이라크 전쟁이 외교안보적으로 왜 오판이었는지, 대규모 감세 정책이 재정적자와 소득 분배에 구체적으로 어떤 부작용을 낳았는지 논리적으로 증명하려면 방대한 지식과 체계적인 논증이 필요합니다.
반면, 상대방을 향해 “그저 머리가 나쁘고 멍청해서 그렇다”고 치부해 버리는 일은 너무나 쉽고 직관적입니다. 만약 상대 정치 지도자가 본래 지능이 떨어지는 인물이라고 규정해 버리면, 그가 추진하는 모든 정책과 의사결정을 진지하게 분석하고 논박할 필요성 자체가 사라집니다. 구구절절 반대 논거를 댈 필요 없이 “그가 멍청해서 내린 잘못된 결정”이라고 일축하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정치적 조롱과 지적 우월감이 지닌 가장 강력하고도 위험한 유혹입니다. 상대를 골치 아프게 이해하거나 토론할 필요 없이, 지적인 조롱 하나로 상대의 존재 가치를 무력화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실제 역사는 그렇게 단순한 구도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조지 W. 부시는 예일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했고, 이후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마쳤습니다. 그는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MBA 학위를 가진 최초의 인물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것만으로 부시가 탁월한 지성인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의 예일대 성적은 뛰어난 편이 아니었습니다. 흔히 알려진 것처럼 그는 ‘C학점 대통령’이라는 조롱을 받았고, 실제 대학 성적도 우수생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은 부시가 특별히 예외적으로 형편없는 학생이었느냐는 것입니다. 2004년 대선에서 부시와 경쟁했던 존 케리 역시 예일대학교 출신이었지만, 공개된 보도에 따르면 케리의 예일대 성적도 부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케리의 평균은 약 76점, 부시는 약 77점으로 보도되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학업 성적으로만 보면 엘리트 이미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습니다.
앨 고어의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그는 하버드대학교 출신이고 SAT 점수도 부시보다 높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고어 역시 대학 시절 모든 과목에서 탁월한 성적을 받은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하버드 재학 중 일부 과목에서 C와 D 학점을 받았고, 특히 자연과학 과목에서 부진한 성적을 기록한 적도 있었습니다.
언론에서의 모습
많은 사람들이 부시가 예일대학에 들어간 것에 대해서 아버지가 예일대 출신이고 할아버지는 코네티컷 상원의원이었기 때문에 예일대에 들어갔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사실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앨 고어는 아버지가 유명한 상원의원이었기 때문에 하버드에 들어갈 수 있었다는 것은 말하지 않습니다. 고등학교 성적을 본다면 앨 고어는 고등학교에서 주로 B와 C를 받았고 유일한 A는 미술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버드에서의 성적도 좋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위 20%의 성적을 받았으며, 신학대학원에서 실패하고 밴더빌트 대학교 법학대학을 중퇴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앨 고어가 대통령이 되기에는 너무 똑똑한가라는 질문을 진지하게 던졌습니다.
실제 성적에는 관심 없다.
이 사실들은 부시가 고어나 케리보다 더 똑똑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핵심은 정반대입니다. 실제 학업 기록을 보면, 부시와 그가 맞붙었던 민주당 후보들 사이의 차이는 대중이 상상하는 것만큼 극단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부시는 ‘멍청한 대통령’의 상징처럼 소비되었고, 고어와 케리는 상대적으로 지적인 엘리트 이미지로 기억되었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성적표보다 말투를 기억했습니다. 실제 학업 기록보다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을 기억했습니다. 부시의 텍사스 억양, 투박한 어휘, 말실수는 그의 지적 이미지를 강하게 규정했습니다. 반면 고어나 케리는 보다 학구적이고 세련된 말투를 사용했기 때문에, 실제 성적과 별개로 더 지적인 인상을 남겼습니다.
물론 높은 학력이 부시의 모든 정책적 실패를 면책해 주거나 그의 정책이 옳았음을 보증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가 주도한 이라크 전쟁은 여전히 혹독한 비판을 면하기 어려우며, 그의 경제 정책 역시 분배와 재정 측면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의 재임기 동안 단행된 굵직한 결단들이 결과적으로 뼈아픈 오판과 실패로 귀결되었다는 평가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러나 정책의 오판과 지능의 부족은 엄연히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아무리 지능이 높고 똑똑한 엘리트 집단이라도 확증편향이나 집단사고에 빠져 얼마든지 비합리적이고 파멸적인 오판을 내릴 수 있습니다. 반대로 어조가 세련되지 못하고 표현이 투박하다고 해서 그것이 지적 역량의 부족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정치는 단순한 인지 능력 테스트나 IQ 시험장 수준에 머무르지 않는 복잡계이기 때문입니다.
부시 IQ 보고서가 보여준 진짜 문제
결국 ‘Lovenstein Institute’의 가짜 보고서 사건은 부시라는 인물의 실제 지능을 보여주는 해프닝이 아니라, 반대 진영인 리버럴 유권자들이 그를 어떤 필터로 바라보고 싶어 했는지를 폭로한 거울에 가깝습니다.
사람들은 부시의 결정이 어떤 논리적 과정에서 틀렸는지를 따지기보다, 그가 애초에 이성적으로 생각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믿어 버리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야만 이해하기 힘든 상대의 성공을 손쉽게 평가절하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대한 인식의 차이입니다. 상대방이 나와 다른 판단을 내렸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상대의 무지나 지능 미달 때문은 아닙니다. 같은 데이터를 공유하면서도 그들이 처한 경험과 가치관에 따라 더 심각하게 인지하는 위험 요인이 다르고, 최우선으로 보호해야 할 핵심 가치가 다를 뿐입니다.
하지만 정치적 적대감이 극에 달하면, 우리는 이 복잡하고 피로한 설명을 회피하려 듭니다. 대신 가장 단순하고 즉각적인 낙인을 선택하게 됩니다.
“저들은 그저 멍청하다.”
이 낙인은 명쾌한 인과관계의 설명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상대방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대화를 포기하겠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습니다.
결론
조지 W. 부시의 IQ가 91이라는 가짜 뉴스는 웃어넘길 만한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그 속에 내재된 심리학적 기제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이 가짜 보고서가 그토록 널리 소비되고 쉽게 확산되었다는 사실은 대중이 정치적 정보를 판단할 때 사실 여부보다 자신의 기존 신념과 편견에 더 의존한다는 씁쓸한 진실을 대변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본질은 부시의 실제 지능 수치 그 자체가 아닙니다. 많은 유권자들이 정치적 적대 세력을 나와 다른 생각과 가치를 지닌 독립적 주체로 인정하기보다, 그저 무지하고 미개한 집단으로 치부해 버리려는 지적 오만에 빠지기 쉽다는 점입니다. 그래야 상대가 가진 세계관의 합리성을 깊이 검토해야 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란 결코 단편적인 지능의 잣대로 재단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상대가 틀렸을 수는 있으나, 그가 틀렸다는 사실이 곧 그가 멍청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진정한 정치적 사유와 상호 이해의 출발점은 바로 이 얇지만 단단한 차이를 명확히 인지하고 구분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참고문헌
- History News Network. “Text of the So-Called Lovenstein Institute News Release ‘Intelligence Study.’” 존재하지 않는 기관과 조작된 대통령 IQ 수치를 사용한 2001년 인터넷 문건 원문 및 편집자 주.
- Simonton, D. K. (2006). “Presidential IQ, Openness, Intellectual Brilliance, and Leadership.” Political Psychology, 27(4), 511–526. 실제 검사를 가장한 Lovenstein 수치와 별개로 대통령 지적 특성을 역사자료에서 추정한 연구.
- George W. Bush Presidential Library. “George W. Bush.” 예일대 학사와 1975년 Harvard MBA 경력에 관한 공식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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