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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는 정말 '의로운 진보'의 화신인가: 이미지 정치와 미국의 국익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을 '의로운 진보'의 대표 모델로 삼는 시각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오바마케어의 한계와 드론 공습, 동아시아 안보 재편 등 현실주의 정치인으로서의 오바마를 분석합니다.

오바마는 정말 '의로운 진보'의 화신인가: 이미지 정치와 미국의 국익

최강욱의 오바마 찬사는 오바마라는 인물을 “의로운 진보”의 아이콘으로 세우기 위해, 상징적 장면과 감동적 일화를 정책 평가보다 앞세운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오바마가 보여준 역사적 상징성, 탁월한 연설 능력, 탈권위적 태도, 그리고 가족적 품위는 충분히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격적 매력과 상징성이 곧 그가 이끈 정부 정책의 “의로움”을 직접 증명하지는 않습니다.

1. 인물 찬사가 정책 평가를 압도합니다

최강욱의 글은 오바마의 머리를 만지는 흑인 소년, 청소부와의 주먹 인사, 어메이징 그레이스 추모사, 가족과 저녁을 먹는 소박한 모습, 미셸 오바마의 품위 같은 장면들을 길게 제시합니다. 이런 장면들은 분명 감동적이며, 오바마가 미국 정치에서 탈권위적이고 품격 있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정치 지도자에 대한 평가는 감동적인 사진과 연설만으로 환원될 수 없습니다. 오바마가 좋은 사람이었는가와 오바마가 좋은 대통령이었는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더 나아가 오바마가 품격 있는 인물이었는가와 오바마가 “의로운 진보”였는가 역시 다른 층위의 문제입니다. 최강욱의 글은 이 세 가지 층위를 자주 섞어서 독자에게 전달합니다.

비평의 핵심은 단순합니다. 오바마의 상징성은 인정할 수 있지만, 상징은 통치의 구체적인 결과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정치인은 사진과 연설이 아니라, 그가 실행한 정책이 낳은 장기적 결과로 냉정하게 평가해야 합니다.

사실 좀 특이한 것은 진보주의자들은 이렇게 보이는 장면에 관심이 많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보수주의자들은 이런 장면보다는 실제로 그가 무엇을 했는가를 봅니다. 이 점은 보수와 진보의 큰 차이점이고,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에 지도자의 동상이 많은 것도 진보주의자들이 이렇게 감각에 의존하는 평가를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2. 오바마케어는 성과가 있지만, ‘의로운 진보’의 완성은 아닙니다

오바마케어(ACA)는 오바마 정부의 가장 중요한 국내 정책입니다. 기존 질환을 이유로 보험 가입을 거부하거나 과도한 보험료를 부과하던 보험사들의 관행을 제한했고, 저소득층과 중산층의 보험 접근성을 높인 것은 분명한 성과입니다. 미 카이저가족재단(KFF)에 따르면 ACA 시행 전 미국의 무보험률은 전체 인구 기준 약 14-16%였으며, 제도 시행 이후 무보험률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낮아졌습니다. 또한 ACA 제정 당시 비노년층의 약 19%(약 5천만 명)가 무보험 상태였다가 혜택을 받게 되었다는 분석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오바마케어는 미국 의료 시스템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한 제도는 아닙니다. 오바마케어는 약자를 위한 도덕적 혜택인 동시에, 건강한 이들과 고소득층에게 의무적으로 비용 부담을 나누게 하는 강제적 재분배 장치였습니다. 결국 강제성을 띤 재분배 장치였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의료비는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었고,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질 높은 서비스로도 충분히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를 공동체의 연대라는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지만, 반대로 개인의 선택권 침해와 과도한 비용 부담이라는 관점에서 비판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오바마케어는 일방적인 찬양의 대상이라기보다, 성과와 한계를 냉정하게 대조해 보아야 할 정책입니다.

3. “의로운 진보”라기엔 오바마의 외교·안보는 매우 현실주의적이었습니다

최강욱은 글 후반에서 오바마가 한국의 국익에는 이롭지 않았다고 솔직히 인정합니다. 위안부 합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일본 자위권 지지, 히로시마 방문, 사드(THAAD) 배치 등을 언급하며 오바마가 철저히 미국의 국익을 위해 움직였다고 설명합니다.

바로 이 지점이 중요합니다. 오바마가 미국의 국익을 위해 한국과 일본을 강력하게 조율했다면, 그는 도덕주의를 표방한 “의로운 진보”라기보다 자국의 국익을 극대화하려 한 지극히 현실주의적인 패권 지도자로 보아야 합니다. 미국 내에서는 인권과 평등, 평화의 언어를 사용했지만, 국제정치판에서는 미국의 글로벌 패권과 동맹 재편 전략을 최우선으로 두었습니다. 이는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당연한 선택일 수 있으나, 그렇다면 그를 범세계적인 “의로운 진보”의 아이콘으로 세워 칭송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오바마의 외교는 도덕적 이상주의의 수사(Rhetorical)와 현실주의적 무력 사용이 함께 존재했습니다. 그는 조지 W. 부시 시대의 대규모 지상전에 대한 피로감 속에서 집권했으나, 지상군 투입을 줄이는 대신 드론(무인기) 공습과 특수작전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리비아 개입, 시리아 내전 대응,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에서도 군사력을 사용했습니다. 오바마 행정부가 2016년 공개한 자체 평가에 따르면 2009년 1월부터 2015년 말까지 미국이 ‘적극적 적대행위 지역 밖’에서 수행한 대테러 공습으로 비전투원 64~116명이 사망했습니다. 이 수치는 독립 조사기관의 추정보다 낮다는 비판도 받았습니다. 오바마는 평화주의자라기보다 정밀타격과 특수작전이라는 방식을 선호한 대통령에 가까웠습니다.

4. 시리아와 리비아는 오바마 외교의 큰 약점입니다

특히 시리아와 리비아 문제는 오바마 외교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힙니다. 오바마는 시리아 아사드 정권의 화학무기 사용 가능성을 “레드라인”으로 설정하며 강하게 경고했으나, 실제 화학무기 참상이 벌어졌을 때 군사 개입을 주저하며 뒤로 물러섰습니다. 이 결정은 미국의 국제적 억지력 신뢰도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고, 러시아와 이란이 중동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리비아 개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토(NATO)와 함께 카다피 정권을 몰아내는 데는 성공했으나, 정권 퇴진 이후의 무정부 상태와 내전 혼란을 수습할 구체적인 계획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 리비아는 무법천지의 테러 온상으로 변질되었고, 오바마 본인도 언론 인터뷰에서 '리비아 개입 이후를 준비하지 못한 것'을 임기 중 가장 큰 실수 중 하나로 꼽았습니다. 최강욱의 글은 상황실에서 빈 라덴 사살 작전을 조용히 지켜보던 오바마의 겸손한 태도는 길게 부각하지만, 그가 중동에 남긴 파괴적인 외교적 진공 상태와 혼란은 외면합니다.

5. 오바마를 “탈권위”로 칭찬하면서, 권력 사용의 실제 문제는 약하게 봅니다

최강욱의 글에는 오바마가 꼬마 아이에게 머리를 내어주고, 청소부와 주먹 인사를 나누고, 작전 상황실에서 군 장성에게 상석을 양보한 일화들이 찬란하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권위주의는 단순히 태도나 매너의 문제가 아닙니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라는 거대한 국가 권력을 어떻게 사용했는가입니다. 오바마 임기 중에도 드론을 이용한 표적 살해의 법적 정당성, 국가안보국(NSA)의 대규모 감시 체제, 내부 고발자 기소, 이민자 강제 추방 등은 민주주의와 인권 침해 논란을 낳았습니다. 오바마는 매너는 겸손했지만 국가안보 권력의 사용에서는 강경한 선택을 반복했습니다.

6. 미국 내부의 분열도 오바마 시대에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최강욱은 오바마를 인종과 정파를 초월한 통합의 상징으로 묘사합니다. 오바마가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서 상징적인 이정표를 세운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의 재임 기간 미국 사회의 인종 갈등과 정치적 양극화는 해소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극단화되었습니다.

오바마 재임 후반기 미국은 러스트 벨트의 몰락, PC(도덕적 올바름) 주의에 대한 반발, 인종 갈등의 격화(Black Lives Matter 운동의 시발점) 등으로 몸살을 앓았습니다. 퓨리서치센터의 회고 분석에 따르면, 오바마 임기 동안 당파 간 격차와 사회적 균열은 역대 최악 수준으로 벌어졌습니다. 오바마의 당선은 갈등의 종식이 아니라, 미국 사회 기저에 흐르던 거대한 균열이 트럼프 현상이라는 폭발적인 형태로 분출되는 뇌관 역할을 했습니다.

7. 한국 관련 서술은 상당히 감정적이고 음모론적으로 흐릅니다

최강욱은 오바마의 동아시아 안보 정책이 한국에 불리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 원인을 일본의 집요한 로비와 국무부 내 친일 관료 라인의 조종 탓으로 돌립니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와 한일 지소미아(GSOMIA)가 미국의 동아시아 동맹 구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는 점은 정설입니다. 실제로 한겨레 영문판 등 국내외 외교 분석 매체들도 미국이 한미일 안보 협력의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해 한일 관계 개선을 강하게 압박했음을 보도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두고 “일본의 조종을 받는 미국 국무부”라는 프레임으로 설명하는 것은 국가 간 역학 관계를 왜곡하는 음모론적 음해에 가깝습니다.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은 일본의 로비에 휘둘려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전략과 동맹 관리 메커니즘에 따라 움직입니다. 미국이 중국을 억제하기 위해 핵심 거점인 일본의 역할을 강화하고 한국을 그 하부 구조에 편입시키려 한 전략적 판단이지, 일본이 미국을 뒤에서 조종한 결과가 아닙니다. 이 같은 서술은 미국의 글로벌 패권 전략을 과소평가하고, 외교를 감정적인 로비 경쟁 수준으로 단순화하는 결함이 있습니다.

8. 트럼프를 “한국에 상대적으로 이로운 대통령”으로 보는 것도 단순합니다

최강욱은 도널드 트럼프가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위원장과 직접 만나고 일본을 압박했기 때문에 한국에 상대적으로 이로운 대통령이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 역시 단편적인 시각입니다. 트럼프가 탑다운 방식으로 남북·북미 정상회담을 주도하며 한반도 긴장을 일시적으로 완화한 공로는 인정해야 하지만, 동시에 주한미군 철수를 카드로 방위비 분담금의 터무니없는 인상을 압박하고 동맹 관계를 단순 거래 관계로 격하시킨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트럼프가 일본을 무역이나 안보 면에서 압박했다고 해서 그것이 한국의 반사이익이나 전략적 승리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미국이 동맹의 가치를 거래로만 환산하기 시작하면 한국 또한 언제든 버려지거나 압박을 받을 수 있는 취약한 안보 환경에 노출됩니다. 오바마가 미국의 정교한 시스템 기반 패권 전략을 대변했다면, 트럼프는 예측 불가능한 거래적 패권을 대변했습니다. 어느 쪽이 한국에 절대적으로 유리했는지는 단순히 “일본을 때렸는가”라는 정서적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는 고차 방정식입니다.

9. 결론: 인격적 품격과 정책적 정당성의 혼동

최강욱의 오바마론은 메르켈론과 완벽하게 데칼코마니를 이룹니다. 메르켈의 검소함과 포용력을 근거로 "이로운 보수"를 만들어냈듯이, 오바마의 탈권위와 연설 매너, 가족적 헌신을 연결하여 "의로운 진보"를 조립해 냅니다.

그러나 이는 냉정한 정치 평론이 아닌, 인격과 감상에 기댄 영웅 서사에 불과합니다. 오바마가 좋은 남편이자 따뜻한 아버지였다는 사실이 그의 중동 개입 정책의 정의로움을 입증하지 않으며, 청소부와 주먹 인사를 나눈 행동이 드론 공습으로 인한 민간인 사망이라는 도덕적 얼룩을 지워주지 않습니다.

오바마는 역사적으로 대단히 매력적이고 상징성이 풍부한 지도자였지만, 그 상징성이 그의 모든 통치 결과를 의롭게 세탁해 주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는 미국 내부의 인종적·정치적 분열을 해소하지 못했고, 대외적으로는 철저히 미국의 국익과 패권 유지를 위해 무력과 동맹 조정을 감행한 현실주의자였습니다. 오바마의 연설이 지닌 도덕적 빛남과 그가 남긴 현실의 그늘을 명확히 구분해 볼 때, 비로소 상징의 장막 뒤에 숨겨진 진짜 미국의 정치를 올바르게 독해할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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