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우화 - 허스키가 많은 나라와 리트리버가 많은 나라: 견종 성향과 정치 제도의 적응적 균형


허스키와 리트리버라는 대조적인 두 견종의 행동양식 비유를 통해, 국가의 정치 제도(왕정, 대통령제, 내각제)가 어떻게 구성원의 심리적 성향 및 자원 배분 구조와 적응하며 작동하는지 성찰하는 정치철학적 사고실험입니다.

우화 - 허스키가 많은 나라와 리트리버가 많은 나라

허스키와 리트리버의 나라를 상상해 봅니다

정치제도의 작동 원리를 친근하면서도 깊이 있게 규명하기 위해, 다양한 견종들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개들의 가상 국가를 머릿속에 그려보겠습니다. 이 나라에는 뛰어난 독립성을 자랑하는 허스키도 살고, 친화적인 리트리버도 살며, 영리한 보더 콜리 같은 여러 견종이 뒤섞여 공동체를 유지합니다. 어떤 국가는 영토 내에 "허스키"의 비율이 이례적으로 높은 반면, 어떤 국가는 사회 전반에 "리트리버"의 비율이 지배적이며, 대다수의 문명국가들은 대략 이 두 극단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하여 저마다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단, 이 이야기는 특정 견종이 다른 견종보다 본질적으로 도덕적이거나 지능 면에서 우수하다는 것을 가리키는 편협한 우화가 아닙니다. 허스키에게는 자유를 향한 개척가적 용기와 주체적 생존력이라는 훌륭한 장점이 있고, 리트리버에게는 평화를 사랑하는 배려심과 장기적인 협력 시스템을 지탱하는 사회적 헌신이라는 독자적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정치철학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핵심 화두는, 한 사회에 주로 거주하는 구성원들의 평균적인 심리적·행동 성향에 따라 그들이 직면한 정치제도가 어떤 방식으로 맞물리며 적응해야 안정적인 통치가 가능해지는가입니다.

허스키는 길들여졌지만 야생성을 많이 간직한 개입니다

허스키는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과 동고동락하며 길들여진 역사적 견종이지만, 그렇다고 리트리버처럼 인간이 내리는 자잘한 지시나 명령에 매 순간 순종적으로 반응하도록 인위적으로 개량된 개는 아닙니다. 본질적으로 "허스키"는 대단히 독립적이어서 주인이 이름을 부른다고 해서 만사를 제쳐두고 맹목적으로 달려오지 않으며, 아주 미세한 틈새만 보이면 울타리 밖의 낯설고 넓은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려 드는 강인한 탐색 성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들은 밤이 오면 자신만의 발걸음으로 배회하는 자율성을 즐기고 매사에 스스로 상황을 직관적으로 판단하며, 새로운 환경에 맞닥뜨렸을 때 두려움을 느끼기보다 오히려 본능적인 호기심으로 가득 차 무작정 뛰어드는 도약의 성향을 나타냅니다.

하지만 이토록 독립적인 성향이 강하다고 해서 허스키의 무리 지향적 사회성이나 결속력이 약하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허스키는 야생 늑대처럼 철저하게 서열과 무리를 이루어 생활하는 개이기에, 낯선 집단에 속하게 되면 주변 개들의 완력과 성향을 극도로 빠르고 예리하게 파악하여 현재 무리 내에서 진짜 권력을 쥐고 있는 실세가 누구인지를 민감하게 감지해 냅니다. 즉, 헌법에 기록된 공식적인 법률적 명령에는 코방귀를 끼며 불복종하면서도, 물밑에서 요동치는 비공식적인 서열 구조와 힘의 관계망에는 그 누구보다도 빠르고 민첩하게 반응하는 모순적인 특징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독립성과 서열 지향성은 모순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거대 주체에게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거친 무리 경쟁 속에서 스스로 살아남으려면 자신의 직관적 판단과 주변 역학 관계에 대한 높은 감수성이 동시에 필요했던 진화의 산물인 셈입니다. 결국 허스키는 완벽히 고립된 단독자가 아니라, 자유롭게 숲을 누비면서도 자기가 소속된 무리의 권력 이동 흐름을 끊임없이 살피고 적응해 가는 본능을 가진 존재입니다.

리트리버는 인간과 협력하도록 깊이 길들여진 개입니다

반면 "리트리버"는 진화와 개량의 역사 속에서 완전히 다른 궤적을 밟아 발달해 온 견종입니다. 리트리버는 파트너인 인간의 미세한 눈빛 변화와 손가락 지시 방향을 극도로 민감하게 포착하며, 공동체로부터 부여받은 자신만의 역할과 과업을 성실하게 완수하고 인간과 팀을 이루어 유기적으로 일하는 노동의 과정 자체에서 삶의 가장 깊은 희열과 충만함을 느낍니다. 이들은 사사로운 개인적 충동이나 자율적인 탐색 욕구를 억제하고 공동체의 규칙이나 합의된 시스템을 우선시하도록 수많은 세대 동안 엄격하게 선택되고 길들여진 대표적인 협력형 동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리트리버의 지적 능력이 낮다거나 자아의 깊이가 얕아 맹목적으로 지시에만 순응하는 수동적인 존재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리트리버 역시 충분히 독자적이고 훌륭한 상황 판단을 내릴 수 있으나, 단지 자신이 내린 판단이 공동체의 법적 테두리와 구성원들의 자발적 합의를 해치지 않도록 조율하고 억누르는 사회적 자기통제력이 매우 높게 설계되어 있을 뿐입니다. 허스키가 어떤 통제를 맞닥뜨렸을 때 본능적으로 "내가 왜 이 규칙에 굴복해야 하지?"라고 의심 섞인 저항을 먼저 품는다면, 리트리버는 본능적으로 "이 공동 작업 속에서 내가 온전히 수행해야 할 공적 역할은 무엇인가"를 먼저 고민합니다. 그들은 제도적인 질서와 직무를 의심 없이 수용하며, 매일 눈앞의 완력 관계를 일일이 대조하고 확인하지 않아도 이미 약속된 절차와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는 신뢰 속에서 평화롭게 연대합니다.

어느 나라에나 허스키와 리트리버가 함께 삽니다

현실의 복잡한 정치 지형 속에는 어느 한 종류의 행동 성향을 가진 국민들만 균일하게 거주하는 순수한 사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허스키 성향이 다수를 차지하는 나라 안에도 묵묵히 시스템을 신뢰하고 봉사하는 리트리버 성향의 시민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규칙 준수를 중시하는 리트리버가 많은 선진국 안에도 끊임없이 제도를 의심하고 틈새를 찾아 도약하려는 허스키 성향의 개척가들이 활약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동일한 시민이라 할지라도 외부의 급박한 조건과 위기 상황에 따라 드러나는 본능적 성향은 역동적으로 변형됩니다. 극심한 기근이나 침략 같은 거대한 안보 위기가 닥쳐 생존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되면, 온순하고 협력적이던 개들도 무리를 지어 배타적인 벽을 쌓고 자신을 보호해 줄 강력한 지배자를 자발적으로 추대하려 듭니다. 반면 자원이 풍요롭게 넘쳐나고 치안이 완벽히 안정되면, 극도로 독립적인 개들조차 굳이 무리의 강압적인 서열 규범에 의존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각자의 자유로운 삶의 경로를 찾아 평화롭게 분산됩니다.

따라서 정밀한 정치 분석을 위해서는 구성원들을 고정된 성격 유형의 이분법으로 섣불리 단정 짓는 것이 아니라, 한 사회의 문화적·제도적 생태계 내에서 어떤 유형의 행동양식이 평균적이고 지배적으로 자주 발현되는가를 면밀히 들여다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예컨대 "허스키 성향"이 강하게 발현되는 사회에서는 사적 독립성, 계층 이동의 역동성, 집단 간의 합종연횡과 비공식적인 실세 파악 능력이 발달하게 됩니다. 반면 "리트리버 성향"이 보편화된 사회에서는 공적 책임의 수용, 법 제도의 높은 신뢰성, 오랜 시간을 소요하는 신뢰 기반의 장기적 협업 체계가 매우 안정적으로 유지되며, 한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구체적인 정치제도의 생존과 진화는 바로 이러한 사회적 성격(Social Character)이라는 토대 위에서만 제대로 굴러가게 됩니다.

허스키가 많은 나라에는 강한 왕이 필요했습니다

인류 최초의 정치 구조가 수립되던 시기에는 독립성과 완력 경쟁이 난무하는 허스키 같은 구성원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개들은 가문의 우두머리나 씨족의 강자를 절대적으로 추종하였으며, 그 지도자가 노쇠하거나 완력을 잃은 징후가 보이면 지체 없이 새로운 젊은 강자가 권위에 직접 도전하여 무리를 전복시키는 하극상이 흔하게 발생했습니다. 어제의 끈끈했던 동맹 관계가 내일의 철천지원수로 돌변하는 배신이 일상화되어 있었고, 문서에 기록된 종이 규칙보다는 눈앞에 존재하는 물리적 무력의 균형이 모든 생존을 보장하는 비공식적 야생이 지배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러한 극단적 상태의 사회에서는 권력과 통제 수단을 여러 군소 세력에게 골고루 분산시켜 조화롭게 공존하게 만든다는 현대적인 분권 사상은 꿈꿀 수조차 없었습니다. 만약 복수의 권력 중심이 동시에 정당성을 주장하고 나서면 무리 간의 끔찍하고 무제한적인 유혈 참극과 살육전이 전 국토를 지옥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초기 문명의 정치제도가 한 명의 군주에게 모든 주권을 집중시키는 절대적인 전제 왕정으로 수렴했던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당시의 왕은 결코 개인의 권력욕에만 미친 사악한 지배자가 아니라, 통제 불가능한 여러 폭력 무리들을 무력으로 압도하여 끝없는 보복의 유혈 사슬을 끊어내고 사회 전체에 생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평화를 이식해 주는 필수불가결한 질서 조정자였습니다. 구성원들 스스로가 상대방을 제거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경쟁을 제어할 만한 수준의 규칙 준수와 내적 자기 통제력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차라리 한 명의 절대 권력자에게 무력을 몰아주고 그를 통한 사법적 독점을 완성하는 것이 사회 전체의 무분별한 학살과 폭력을 현저히 감소시키는 최선의 대안이었습니다. 즉 절대적 왕정이라는 제도는 독립성과 경쟁심이 넘쳐나던 허스키들의 나라를 야생적 파멸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인류가 역사적으로 채택했던 가장 강력하고 적응적인 정치 통제 장치였습니다.

폭력이 줄어들자 권력을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문명이 성숙하고 법의 엄정함이 서서히 정착되면서 개들이 상대를 대하는 물리적 행동양식에도 커다란 진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선거에서 패배한 무리의 정치인을 모조리 교수대에 매달아 처형하지 않아도 법적 지위와 재산을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게 되었고, 정권에서 밀려난 야당의 우두머리 또한 생명의 위협 없이 다음 선거를 조용히 도모하며 존엄하게 생존할 수 있는 제도의 안전성이 확립되었습니다. 이처럼 정치적인 패배가 곧바로 물리적 죽음이나 신체적 절멸을 의미하지 않게 되는 고도의 치안과 질서가 확보된 시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국가 권력의 알맹이를 나누고 분산시킬 수 있는 이성적 공간이 탄생했습니다.

이 무렵에 비로소 여러 정당이 연합하여 내각을 이끄는 "의원내각제"와 같은 세련된 분권적 협력 제도가 정당성을 얻고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었습니다. 의원내각제 체제 속에서는 단 한 마리의 독점적인 왕이 영토와 사법권을 영구적으로 사유화하여 지배하지 않으며, 성향이 다른 다양한 정당들이 의회 안에서 끊임없이 연대하고 협상하여 합리적인 다수파 연합 정부를 출범시킵니다. 만약 국정 운영에 실패해 민심과 의회의 지지를 잃게 되면 총리는 평화롭게 사임하고 다른 정당 연합에게 부드럽게 정권을 이양해 줍니다. 이러한 고도의 평화적 연립 제도가 삐걱거리지 않고 유지되려면 구성원들이 상대를 완전히 형제처럼 사랑하고 신뢰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최소한 저들이 정권을 잡았다고 해서 나와 내 무리를 헌법 밖으로 몰아내 살육하거나 굶겨 죽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고도의 사회적 상호 신뢰와 게임의 규칙 준수가 뼈대에 굳건히 박혀 있어야만 합니다. 왕을 몰아낸 혁명의 승리보다 훨씬 중요했던 문명적 전환은, 패배자도 살아남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신뢰 시스템이 안착했다는 사실입니다.

대통령제는 왕권보다 더 어려운 제도일 수 있습니다

대통령제는 겉으로 드러나는 외형적 권력 구도로만 본다면 절대왕정의 옛 군주와 대단히 흡사한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임기 동안 국가 원수이자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수사기관에 대한 지휘·인사권, 국가 예산 분배권, 수만 명에 달하는 고위 공무원 인사권을 단 한 사람의 어깨 위에 집중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습되는 군주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대통령은 오직 주권자인 국민의 투표를 통해서만 일시적인 권한을 위임받는 계약직 임시 관리인이라는 점이며 정해진 임기를 마치면 반드시 자연인으로 복귀해야 하고 내가 지지하지 않는 반대 정당에게도 아무 저항 없이 권력을 곱게 넘겨주어야만 합니다. 이처럼 한 마리의 강자에게 왕에 필적하는 엄청난 통치 권한을 모아주면서도 정작 그가 왕이 되어 폭정을 휘두르지 않고 스스로 통치권의 경계를 지키며 조용히 내려갈 것이라고 믿는 대통령제야말로, 역사상 인류가 고안해 낸 모든 제도 중 가장 강력한 자기 통제와 민주적 규범을 요구하는 고난도의 정치 제도입니다.

따라서 대통령제가 파국을 맞이하지 않고 굴러가려면 구성원 모두에게 대단히 높은 수준의 자제력과 도덕적 의무감이 내면화되어 있어야 합니다. 최고 권력의 자리에 오른 대통령은 비록 격렬한 선거 경쟁을 치르고 집권했더라도 국정과 공직 자원을 오로지 자신의 사적 무리에게만 전리품처럼 나누어 주는 매관매직을 단호히 억제해야 하고, 국가의 중립적 관료 체계는 대통령 개인의 충성스러운 사병이 아니라 오직 객관적인 법률과 직무 원칙에 의거하여 중립적으로 봉사해야 합니다.

선거에서 아깝게 패배한 야당과 유권자들 역시 국가의 합법적 통치 권력을 부정하며 폭력적인 전복을 꾀해서는 안 되며, 다음 주기의 선거일이 돌아올 때까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성실하게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만약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이러한 극단적인 자기 제어 윤리와 정당한 공적 직무관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라면, 아무리 미국 헌법의 그럴듯한 제도를 그대로 복사해 오더라도 그 사회의 대통령제는 단지 5년짜리 임기를 지닌 임시 합법적 왕정, 즉 선출된 독재(Elected Dictatorship)로 신속히 타락해 버리고 말 것입니다.

허스키가 많은 나라에서 대통령은 다시 우두머리가 됩니다

만약 독립적인 서열 경쟁 본능이 지배적이고 공적 시스템에 대한 내적 신뢰가 희박한 사회에 대통령제라는 서구식 제도의 껍데기만 급진적으로 이식하면 심각한 시스템 오작동이 발생하게 됩니다. 권력의 정상에 등극한 대통령은 스스로를 헌법을 수호하며 국민에게 잠시 봉사하는 임시 관리인으로 인지하는 대신, 치열한 완력 전쟁에서 마침내 정적들을 물어뜯고 승리하여 영토의 패권을 차지한 무리의 위대한 우두머리로 간주합니다. 그와 동시에 권력을 위임받은 승리자 세력은 행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사기관의 인사권, 공기업 임명권, 인허가 규제권과 막대한 예산 집행력을 총동원하여, 자신들의 권력을 영구히 보존하고 정적들의 숨통을 끊어놓기 위한 거대한 세력 확장에 혈안이 됩니다.

자신들의 정치적 무리에 충성하고 사냥에 기여한 심복들에게는 공기업 사장이나 규제 기관장 같은 노른자위 자리가 전리품으로 분배되고, 선거에서 자신을 지지해 준 특정 지역과 이익 집단에는 국가 예산과 특혜성 인허가가 무분별하게 배분됩니다. 나아가 권력에 우호적인 언론이나 시민 조직은 정부 보조금의 두터운 쉴드 아래 철저히 보호받는 반면, 정권의 실정에 의심을 품거나 쓴소리를 뱉어내는 반대 정파에게는 전격적인 세무 조사와 수사, 규제의 칼날이 들이닥칩니다. 이것이 바로 인류 정치사에서 고질적으로 관찰되는 기기정치(Machine Politics)와 엽관제라는 패거리 정치의 민낯입니다.

기기정치는 단순히 몇몇 타락한 정치인들이 국고를 개인 주머니에 훔쳐 넣는 좀도둑 행위를 넘어섭니다. 그것은 합법적인 국가 공권력과 공공 재원을 활용하여 조직적으로 정치적 충성 관계를 매수하고, 그렇게 구축된 사적 패거리를 다시 선거 표밭으로 동원하여 영구히 정권을 재창출하는 고도의 기득권 구조입니다. 과거의 왕들이 토지와 영주 자리를 나누어주며 기사들의 충성을 샀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현대의 미성숙한 대통령들은 공공기관 낙하산 자리와 예산, 인허가를 나누어주며 권력을 유지합니다. 선거 자체는 일견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를 거치는 것처럼 요란하게 포장되지만, 실제 권력이 배분되고 사용되는 생태학적 메커니즘은 중세 야생의 서열 구조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치하게 됩니다.

리트리버가 많은 나라에서는 대통령도 임시 관리인이 됩니다

반면 합의된 규칙의 권위를 존중하고 공동체적 직무 수행을 체질화한 협력 지향적 구성원들이 주류를 형성하는 나라에서는 동일한 대통령제도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선진적 문명으로 작동하게 됩니다. 그 사회의 유권자들과 관료들은 대통령을 향해 절대적인 숭배나 맹목적인 복종을 바치지 않으며, 대통령 역시 헌법이라는 거대한 공적 시스템 속에서 정해진 범위 내의 인사권과 행정 업무만을 수행해야 하는 하나의 일시적이고 직무적인 포지션으로 명확히 규정합니다. 가령 대통령이 사적인 패거리의 이익을 위해 법률의 테두리를 조금이라도 넘어서는 초법적인 권력을 휘두르려 하면, 심지어 대통령과 같은 당에 속한 동료 구성원이나 지지자들조차 이를 공동체의 규칙을 어긴 심각한 위법 행위로 인식하여 즉각적인 시정을 요구하고 나섭니다.

이곳에서는 선거에서 쓰라린 패배를 겪은 정당이라 할지라도 나라를 통째로 정적에게 강탈당했다거나 자신들의 생존이 절멸할 것이라는 공포에 휩싸이지 않으며, 단지 이번 주기의 행정부 관리 권한을 평화롭게 양보하고 다음 선거에서 대중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 합법적인 정책 경쟁에 매진합니다. 정치적 실패가 곧바로 무리 전체의 굶주림이나 생존 보복으로 직결되지 않으므로, 사정기관이나 검찰 같은 국가의 칼날을 정권의 방패로 사유화하려는 본능적 충동 자체가 크게 제어됩니다. 굳이 헌법과 민주적 제도를 훼손하면서까지 억지로 정권을 연장하려 들 이유가 없는데, 정직하게 규칙을 지켜 다음 선거를 치르면 얼마든지 평화적으로 집권할 수 있는 제도적 투명성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대통령제가 왕정의 타락으로 변하지 않고 평화로운 자치 제도로 굴러가는 이유는, 대통령의 개인적 품성이 특별히 예수처럼 고결해서가 아니라 권력을 쥐는 대통령과 이를 지켜보는 관료, 정당, 유권자 모두가 공적 권한의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고 승복하는 무형의 법치 문화를 오랫동안 길러내어 뼈속 깊이 내면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제도도 개들의 성향에 따라 다르게 작동합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훌륭하고 세련된 헌법 조문을 그대로 번역하여 자국의 법전에 이식한다고 해서, 그 나라의 정치 시스템이 서구 선진국과 똑같이 작동하리라는 기대는 정치학적으로 대단히 어리석은 망상입니다. 평화적 협력 규범의 역사 속에서 진화한 고도로 분화된 견제와 균형 시스템을 비공식적인 완력 경쟁에 익숙한 사회에 성급하게 이식해 놓으면, 법전 속의 숭고한 문구들은 허울 좋은 데코레이션으로 전락하고 물밑에서는 처절한 야생의 생존 무리 정치가 펼쳐지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불일치 속에서 독립적이어야 할 사법 기관이나 수사 부서는 특정 패거리의 정적 제거 도구로 전락하고, 공적 재원으로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할 공기업 임원 자리는 정권 창출에 기여한 충견들의 밥그릇 챙겨주기용 낙하산으로 낭비되며, 건강한 여론을 형성해야 할 시민단체나 노조, 언론 협회들은 특정 정당의 표밭을 일구고 충성을 공급하는 전위 부대로 전락하게 됩니다. 겉으로는 현대적인 법치 국가와 삼권분립의 미사여구를 완벽히 구현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 그 내부를 열어보면 단지 정권을 둘러싼 야생 무리들의 끝없는 약탈과 힘의 이동만이 반복되는 중세적 부족 국가의 실태가 지속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완력 경쟁이 난무하는 위험한 사회를 물리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구축해 놓은 강력하고 엄격한 공권력과 감시 시스템을 이미 자발적으로 법을 잘 지키는 협력 지향적 사회에 오래 유지하게 되면, 이는 오히려 시민들의 자율적 창의성을 말살하고 불필요한 감시 비용과 경직성만을 초래하는 비효율적인 억압 기구로 전락하게 됩니다. 굳이 목줄을 채우고 몽둥이를 들지 않아도 공동체의 규칙을 성실히 이행하는 구성원들에게 하루 종일 가혹한 통제를 가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세상에 모든 환경과 구성원을 관통하는 절대적인 정답으로서의 단일한 정치제도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으며, 제도의 최적성은 언제나 그 사회 구성원들의 지배적인 사회적 성격과 물적 조건에 결합하여 상대적으로 결정됩니다.

늦게 나타난 제도가 더 우수한 것은 아닙니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절대 왕정의 시대가 저물고 의원내각제가 도입되었으며, 그 뒤를 이어 현대적인 임기제 대통령제가 발달했다고 해서 대통령제라는 최신 제도가 왕정이나 내각제보다 인류사적으로 본질적으로 진보했거나 우월한 최선의 대안이라고 믿는 것은 역사적 착각입니다. 생물의 진화사 속에서 가장 늦은 시기에 출현한 현생 인류나 특정 포유류의 형질이, 수억 년 전부터 바다를 지배해 온 상어나 곤충의 생물학적 생존 구조보다 무조건 우월하다고 단정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진화적 관점에서 늦게 나타난 모든 새로운 형질들은 더 우월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단지 변화한 특정 생태계 환경에 더 적합하게 적응하여 살아남은 적응의 결과물일 뿐입니다.

허스키가 가진 거친 야생성, 주체적 탐색력, 그리고 타인의 지시에 쉽게 굴복하지 않는 강인한 독립성은 척박하고 드넓으며 급격한 기후 변화가 몰아치는 미개의 툰드라 환경에서 생존을 보장하는 최고의 무기입니다. 반면 리트리버가 지닌 평화적인 순응력과 고도의 감정적 교류력은 인간과 결합하여 복잡하고 정밀한 현대의 사회적 협동 과업을 수행해 나갈 때 강력한 경쟁력을 발휘합니다. 정치제도 또한 이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세련되고 진보한 헌법 조문을 가져다 쓰는 것이 국가의 위대함을 보장하지 않으며, 중요한 것은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역사 속에서 도달한 내적 행동 규범과 물질적 자원의 수준이 그 제도를 온전히 감당하고 운영해 낼 수 있는가"에 있습니다. 동시에 사회의 평균적인 행동양식과 물질적 생태가 한 단계 진보하면, 그에 발맞추어 정치제도 또한 새로운 균형을 향해 자발적으로 변모해 나가는 상호 작용을 겪게 됩니다.

위기가 닥치면 리트리버도 다시 무리를 이룹니다

사회 구성원들이 보여주는 심리적 행동 성향은 유전자에 영원히 박제되어 절대로 변하지 않는 철창 속의 고정관념이 아닙니다. 주변의 자원이 극도로 풍요롭고 법의 집행이 공정하며 개개인의 신체적 생존 안전이 명확히 확보되는 황금기에는, 개들은 굳이 피곤하게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강자에게 굴종하지 않고 각자의 개성과 독립적인 자유를 마음껏 뽐내며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습니다. 내가 정치 경쟁에서 참패하여 권력을 잃더라도 굶어 죽지 않고 신체적 위협을 당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굳건하다면, 사람들은 언제나 관용의 태도로 상대 정파와 타협하며 분권적인 제도를 옹호합니다.

그러나 경제가 파탄 나고 먹고살 자원이 부족해지며 외부로부터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거대한 적이 국경을 침범하는 위기 국면에 돌입하면 상황은 전격적으로 반전됩니다. 생존의 한계에 부딪힌 개들은 각자의 평화로운 흩어짐을 포기하고 다시 피아식별의 배타적 무리를 조직하여 뭉치기 시작하며, 복잡한 의회 토론과 분권의 절차를 비효율이라 비난하며 일사불란한 결정과 강력한 통제를 가차 없이 휘두를 수 있는 강인한 카리스마의 우두머리에게 주권을 아낌없이 양도하려 듭니다.

평화로운 호황기에 삼권분립과 협치를 소리 높여 예찬하던 지성적인 리트리버들조차 위기가 장기화되면 본능적으로 목줄을 자청하고 울부짖는 야생의 허스키로 돌변하여 강한 왕의 채찍을 구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유롭고 성숙하며 신사적인 분권 정치는 개들의 타고난 고결한 성품이나 도덕적 우월성의 덕택으로 영구히 보존되는 유토피아가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구성원들의 물질적 생계 자원의 풍요로움, 강력한 물리적 치안의 보호막, 정치적 패배자조차 따뜻하게 품어주는 자비로운 연대 시스템,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졌더라도 나를 멸망시키지는 않을 것"이라는 상호 간의 사회적 안전 신뢰라는 기저 조건들이 튼튼하게 작동할 때만 유지되는 지극히 연약하고 불안정한 유리 온실 같은 성취입니다.

정치제도는 개들이 실제로 행동하는 방식에 맞아야 합니다

이 우화가 지향하는 진정한 철학적 본질은 허스키의 거친 독립성을 전근대적 미성숙으로 비난하거나 리트리버의 평화적 협력 본능을 절대적인 진보의 표상으로 맹목적으로 찬양하는 얄팍한 도덕주의에 있지 않습니다. 허스키는 척박한 무중력 상태 속에서도 스스로 생존을 개척하는 위대한 독립심과 모험심을 지니고 있으며, 사회 전반에 거대한 침체와 관료적 비효율의 먼지가 쌓여 개혁의 격변이 휘몰아쳐야 하는 혁신의 국면에서는 허스키들이 뿜어내는 통제되지 않는 돌파력이야말로 문명을 구원하는 결정적 동력이 됩니다. 반면 리트리버의 높은 규칙 준수 의식과 상호 양보 본능은 문명이 쟁취한 안정적이고 정교한 제도를 세대를 넘어 보존하고 상호 신뢰의 고부가가치 복지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지탱하는 최고의 인프라가 되어 줍니다.

따라서 위대하고 지속가능한 국가 문명이란 아마도 이 두 가지 성향의 인본주의적 가치를 유기적으로 엮어 조화롭게 수용한 생태계일 것입니다. 독립 지향적 구성원의 모험심이 미지의 신대륙을 발견하고 새로운 개척의 길을 먼저 뚫어내면, 협력 지향적 구성원의 헌신이 그 거친 거점 위에 도로를 닦고 병원을 지어 장기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품격 있는 사회를 안착시킵니다. 독립성과 서열 경쟁만 지배하는 나라는 무리 간의 가혹한 약탈전에 찢겨 문명이 파탄 나기 쉽습니다. 반대로 협력과 순응만 경직되게 작동하는 나라는 규칙 준수 자체를 공동체의 목적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다수의 합의가 소수의 이견을 비협조로 낙인찍고, 관료 조직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절차를 늘리며, 규제 기관은 실패 가능성을 없앤다는 명분으로 새로운 시도까지 차단합니다. 그 결과 누구도 규칙을 어기지 않았는데도 사회 전체가 혁신 능력을 잃고 서서히 고사할 수 있습니다.

결국 정치가 던져야 할 질문은 어느 견종이 더 우월하고 진보했는가가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 사회에 어떤 성향의 구성원이 얼마나 모여 살고 있는지, 그들을 둘러싼 물질적 생존 환경은 얼마나 가혹한지, 이들의 야생성을 제어하고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어떤 결이 맞는 제도를 안착시킬 것인가가 되어야 합니다. 정치 제도를 구상할 때는 교과서에 쓰인 이상적이고 완벽한 가상의 개를 상상하여 설계해서는 안 되며, 오늘날 이 땅 위에서 흙을 묻히고 짖어대며 실제로 밥을 먹고 투쟁하는 생물학적 개들의 본성을 있는 그대로 겸손하게 직시하며 모색해야 합니다.

정치는 이론가들의 숭고한 헌법 조문으로 영글지 않으며, 패배의 상처를 공동체가 보듬는 사회적 비용 분담 구조와, 법의 테두리 밖에서도 개인이 굶어 죽지 않고 자립할 수 있는 물질적 풍요의 조건 속에서만 천천히 숨 쉬며 진화해 나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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