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엄격한 아버지: 레이코프는 보수주의를 이해했는가


조지 레이코프의 '엄격한 아버지' 모델이 지닌 편향성과 한계를 분석합니다. 보수주의적 가치를 심리학적 언어로 환원해 버린 인지언어학적 프레임의 문제점과 에드먼드 버크 등의 철학 전통을 짚어봅니다.

엄격한 아버지: 레이코프는 보수주의를 이해했는가

조지 레이코프의 《Moral Politics》는 보수주의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으로 자주 추천됩니다. 실제로 그는 많은 진보주의 학자들과 달리 보수주의자를 무지하거나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그는 보수주의자 역시 정상적인 사람들이며 단지 다른 도덕 세계관을 가지고 있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상당히 공정한 접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묘한 위화감이 생깁니다. 그는 보수주의를 설명하고 있지만, 정말 보수주의를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요?

대칭을 가장한 편향된 프레임

레이코프의 가장 유명한 주장은 보수주의는 "엄격한 아버지(Strict Father)" 모델에서 나오고 진보주의는 "자애로운 부모(Nurturant Parent)" 모델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보수주의자는 규율과 책임, 권위와 처벌을 중시하는 도덕관을 가지고 있으며, 진보주의자는 공감과 배려, 돌봄과 양육을 중시하는 도덕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 들으면 상당히 설득력 있게 들립니다. 실제로 미국 정치에서도 그런 모습들이 관찰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상한 점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과연 이 두 표현은 같은 무게를 가지고 있을까요?

공감과 배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단어입니다. 반면 권위와 처벌은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누군가 진보주의를 "감상적인 어머니"라는 표현으로 설명했다면 진보주의자들은 그것이 객관적인 분석이 아니라 편향된 프레이밍이라고 비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엄격한 아버지"는 왜 중립적인 설명처럼 받아들여질까요? 문제는 단순히 단어 하나가 아닙니다. 레이코프의 설명 전체에는 진보주의는 따뜻하고 보수주의는 차갑다는 정서적 방향성이 이미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객관적인 분석가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독자가 받는 인상은 결코 대칭적이지 않습니다. 좀 더 심각하게 말한다면 보수주의자는 가정교육이 잘못된 사람이라는 매우 모욕적인 말을 한 것입니다. 이런 정도의 글을 우리나라 진보층 인사들이 종종 말한다는 것도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아이히만의 자상함이 던지는 외통수

가족이라는 사적 영역의 모델을 국가라는 공적 영역에 그대로 투영하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레이코프의 이분법을 무너뜨리는 극단적인 사례가 있습니다. 바로 예루살렘의 재판대에 선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입니다.

한나 아렌트가 지적했듯, 아이히만은 가정 내부에서는 자식들에게 더없이 자상하고 다정하며 헌신적인 아버지였습니다. 레이코프의 전제대로라면 사적 영역에서 '자애로운 부모(Nurturant Parent)' 모델을 가진 사람은 진보적 도덕관의 소유자여야 합니다. 이 지점에서 레이코프의 프레임은 지독한 외통수 딜레마에 빠집니다.

만약 아이히만의 자상함을 인정한다면, 진보진영과 레이코프는 자신들이 도덕적 우월감으로 전유했던 "**자상한 부모 모델을 가진 이들 역시 공적 영역에서 역사상 가장 잔인한 국가적 폭력의 부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반대로 아이히만을 나치/권위주의로 묶으려 한다면, "**가정에서 자상하고 다정한 아버지 역시 얼마든지 보수주의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므로 "엄격한 아버지 = 보수"라는 레이코프의 프레임 자체가 스스로 무너집니다.

결국 사적 영역의 '자상함'이 공적 영역의 도덕성과 일직선으로 투영되지 않는다는 이 사실은, 레이코프가 만든 프레임이 얼마나 위선적이고 허술한 잣대인지를 여실히 증명합니다.

권위주의적 성격론의 오래된 유산

사실 이런 설명 방식은 레이코프가 처음 만든 것이 아닙니다. 조나단 하이트는 한 글에서 미국 심리학자들이 이념의 기원을 연구해 온 역사를 다소 냉소적으로 요약하면서, “히틀러가 독일 최고의 심리학자들을 우리에게 보내준 이후” 심리학자들은 엄격한 양육과 개인적 불안정성이 사람들을 자유주의, 다양성, 진보에 반대하게 만든다고 오래전부터 보고해 왔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독일 최고의 심리학자들은 특정한 한 사람이라기보다, 나치즘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독일·오스트리아계 유대인 심리학자와 사회이론가들을 가리킵니다. 대표적으로 에리히 프롬, 쿠르트 레빈, 엘제 프렌켈브룬스비크, 그리고 《권위주의적 성격》의 공동 저자인 테오도어 아도르노 등이 이 흐름에 속합니다.

이 전통의 핵심은 보수주의를 하나의 독립된 철학으로 보기보다, 권위주의적 성격, 엄격한 양육, 불안, 경직성, 편견의 심리적 산물로 설명하려는 데 있었습니다. 물론 이 연구들은 파시즘과 반유대주의라는 역사적 재난을 이해하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그 설명틀이 미국의 보수주의를 해석하는 도구로 옮겨오면서 심각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보수주의자는 인간 이성의 한계를 인식하고 제도와 관습의 취약성을 중시하는 사람이라기보다, 엄격한 가정교육과 내면의 불안 때문에 권위에 기대는 사람처럼 묘사되기 시작했습니다. 레이코프의 ‘엄격한 아버지’ 모델은 바로 이 오래된 권위주의적 성격론을 인지언어학의 가족 은유로 바꾸어 표현한 것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그의 주장은 전혀 새로운 설명이라기보다, 독일·오스트리아계 망명 지식인들이 만든 반파시즘 심리학의 후속 변형처럼 보입니다.

조나단 하이트는 《바른 마음》에서 이 전통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압축합니다.

이들에 의하면 보수주의자들이 보수적이 되는 까닭은, 어린 시절 지나치게 엄격한 부모 밑에서 자랐거나, 변화, 새로움, 복잡함을 심하게 두려워하거나, 존재 불안으로 인해 흑백논리의 단순한 세계관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이 설명들에는 한 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즉 보수주의를 멀리할 수단으로 심리학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른 마음》, 302쪽)

보수주의는 권위가 아니라 이성의 한계다

더 중요한 문제는 보수주의자들이 원래 자기 자신을 그렇게 이해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에드먼드 버크를 읽어보면 그는 권위나 처벌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가 끊임없이 이야기한 것은 "**인간 이성의 한계**"였습니다.

그는 프랑스 혁명을 비판했지만, 왕을 숭배해서도 질서를 사랑해서도 아니었습니다. 사회는 인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수백 년 동안 형성된 제도와 관습을 한 세대의 이성으로 다시 설계할 수 있다는 믿음이야말로 위험하다고 보았습니다. 버크가 두려워한 것은 무질서가 아니라 인간의 오만이었습니다.

오크숏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고, 하이에크도 인간이 사회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는 환상을 비판했습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권위가 아니라 겸손이었고, 복종이 아니라 한계의 인식이었으며, 규율이 아니라 복잡성에 대한 존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레이코프는 이러한 철학적 전통을 심리학적 언어로 번역해 버립니다. 인간 이성의 한계에 대한 성찰은 "엄격한 아버지"가 되고, 역사적 경험에 대한 존중은 권위 존중이 되며, 사회공학에 대한 회의는 처벌 중심의 도덕관으로 바뀝니다. 이것이야말로 많은 보수주의자들이 느끼는 불만의 핵심입니다. 자신의 철학이 설명된 것이 아니라 심리학으로 환원되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하나의 사상 전통이 어느 순간 가족 모델의 산물처럼 설명되고, 인식론적 문제는 성격적 특성으로 번역됩니다.

진보주의적 언어로 재단된 공공선

실제로 레이코프의 다른 발언을 보면 이러한 경향은 더욱 분명해집니다. 워싱턴 포스트에 실린 한 칼럼에서 레이코프는 왜 대학에 진보주의자가 많은가라는 질문에 대해 진보주의자들은 공공선(public good)과 사회정의(social justice)를 위해 일하는 것을 믿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Unlike conservatives, they believe in working for the public good and social justice." (워싱턴 포스트 기고문 중)

얼핏 들으면 별 문제가 없는 말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상합니다. 그 말은 결국 진보주의자는 공공선을 위해 일하고 보수주의자는 그렇지 않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레이코프는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장의 구조는 그런 함의를 피하기 어렵습니다.

만약 어떤 보수주의 교수가 "기업가 가운데 보수주의자가 많은 이유는 보수주의자들이 책임감과 생산적 노동의 가치를 믿기 때문"이라고 말했다면 어떤 반응이 나왔을까요? 아마도 많은 진보주의자들은 즉시 반발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말은 진보주의자는 책임감이 부족하다는 의미로 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레이코프의 발언은 상대적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집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공공선과 사회정의라는 개념 자체가 이미 진보주의적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진보주의적 가치 체계를 보편적 기준으로 놓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보수주의자는 처음부터 공공선을 그렇게 정의하지 않습니다. 기업을 만들고,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사회를 유지하고, 공동체를 지탱하는 제도를 보존하는 것 역시 공공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공선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공공선을 이해하는 방식이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레이코프는 이 차이를 서로 다른 세계관의 차이로 설명하기보다, 한쪽의 정의를 기준으로 삼고 다른 쪽을 해석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보수주의의 통찰을 보지 못하는 한계

바로 이 지점에서 레이코프의 한계가 드러납니다. 그는 보수주의를 연구했습니다. 보수주의를 분석했습니다. 보수주의가 왜 존재하는지 설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의 한 번도 보수주의가 무엇을 올바르게 보고 있는지를 묻지 않았습니다. 왜 책임이라는 가치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가, 왜 전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가, 왜 공동체와 의무라는 개념이 인류 역사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가, 왜 버크와 하이에크가 여전히 읽히는가와 같은 질문은 그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그의 관심은 보수주의자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큽니다. 어떤 사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 사상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상이 무엇을 보았는지 이해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레이코프는 후자보다 전자에 훨씬 더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보수주의를 이해하려고 노력한 진보주의자였지만, 끝내 보수주의를 하나의 독립적인 철학적 전통으로 바라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보수주의를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보수주의가 가진 통찰을 진지하게 탐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 때문에 그의 책은 보수주의를 이해하려는 시도로서는 흥미롭지만, 보수주의를 정말 이해한 책이라고 부르기에는 여전히 부족해 보입니다.

참고문헌

Jonathan Haidt, “What Makes People Vote Republican?”, Edge, August 9, 2008. 하이트가 보수주의를 권위주의적 성격론으로 설명해 온 기존 심리학 전통을 비판적으로 요약한 글입니다. 본문에서 인용한 “히틀러가 독일 최고의 심리학자들을 우리에게 보내준 이후”라는 표현도 이 글에 나옵니다. https://www.edge.org/conversation/jonathan_haidt-what-makes-people-vote-republican

George Lakoff, Moral Politics: How Liberals and Conservatives Think,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6; 2nd ed., 2002. 레이코프가 보수주의를 “엄격한 아버지” 모델로, 진보주의를 “자애로운 부모” 모델로 설명한 핵심 저작입니다.

Theodor W. Adorno, Else Frenkel-Brunswik, Daniel J. Levinson, and R. Nevitt Sanford, The Authoritarian Personality, Harper & Brothers, 1950. 나치즘, 반유대주의, 편견, 권위주의적 성격을 심리학적으로 설명하려 한 대표적 연구입니다. 보수주의를 엄격한 양육, 권위 복종, 경직성, 편견과 연결하는 이후 정치심리학 전통의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Erich Fromm, Escape from Freedom, Farrar & Rinehart, 1941. 자유가 개인에게 불안과 고립을 가져올 때 사람들이 권위주의로 도피할 수 있다는 주장을 전개한 책입니다. 프롬은 나치즘의 심리적 매력을 설명하면서 자유, 불안, 권위 복종의 문제를 분석했습니다.

Kurt Lewin, Ronald Lippitt, and Ralph K. White, “Patterns of Aggressive Behavior in Experimentally Created ‘Social Climates’,” Journal of Social Psychology, 10(2), 1939, pp. 271–299. 권위주의적·민주적·방임적 리더십 환경이 집단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적으로 다룬 고전 연구입니다. 독일계 유대인 망명 심리학자 쿠르트 레빈의 집단역학 연구를 보여주는 대표 논문입니다.

Jonathan Haidt, The Righteous Mind: Why Good People Are Divided by Politics and Religion, Pantheon Books, 2012. 하이트가 이후 보수주의를 단순한 권위주의나 불안의 산물로 보지 않고, 충성, 권위, 신성까지 포함하는 더 넓은 도덕심리학의 틀에서 설명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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