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중환자의 생존율 예측: APACHE II vs 의사


전문가의 직관이 통계적 규칙에 못 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중환자 생존율 예측 시스템 APACHE II의 사례를 통해, 경험주의가 왜 전문가의 권위가 아닌 검증된 데이터를 요구하는지 분석합니다.

중환자의 생존율 예측: APACHE II vs 의사

중환자의 생존율 예측: APACHE II vs 의사

전문가의 주장이 언제나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그 근거가 객관적 데이터나 검증된 규칙이 아니라, 전문가 개인의 직관이라면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로빈 도스는 『카드로 만든 집』에서 이 문제를 아주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중환자실 환자의 생존율 예측을 소개합니다. 바로 "APACHE"라는 중환자 예후 예측 시스템입니다.

APACHE는 "Acute Physiology and Chronic Health Evaluation"의 약자로, 중환자의 생리 상태와 기존 건강 상태를 점수화하여 사망 위험을 예측하는 방법입니다. 중환자가 얼마나 생존할 가능성이 있는지 예측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치료 방향을 정하는 데도 필요하고, 중환자실의 치료 성과를 평가하는 데도 필요합니다. 또한 병원마다 받는 환자의 중증도가 다르기 때문에 병원 간 중환자실 성과를 비교하려면 환자의 위험도를 보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문제가 생깁니다. 이런 예측은 당연히 의사가 가장 잘할 것처럼 보입니다. 의사는 환자의 검사 결과를 보고, 환자의 상태를 직접 관찰하며, 질병의 진행 과정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단순한 통계표보다 의사의 판단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의사의 예측은 종종 매우 부정확했고, 때로는 간단한 통계적 규칙보다도 못했습니다.

이 사례에서 중요한 점은 의사가 무지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의사는 많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지식이 판단으로 바뀌는 과정입니다. 의사는 환자를 보면서 여러 정보를 종합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판단은 종종 머릿속에 쉽게 떠오르는 사례, 강한 인상을 남긴 경험, 예외적인 회복 사례나 갑작스러운 사망 사례에 영향을 받습니다. 다시 말해 전문가의 판단도 인간의 기억과 직관에 의존하며, 직관은 체계적이지 않습니다.

로빈 도스가 강조한 것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전문가의 직관은 전문가답게 보이지만, 그것이 객관적 규칙으로 검증되지 않았다면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의사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지만, 그 정보를 항상 올바른 비중으로 처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반면 통계적 규칙은 제한된 정보만 사용하더라도, 같은 기준을 일관되게 적용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단순한 공식이 복잡한 전문가 판단보다 더 정확해집니다.

APACHE의 발전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초기의 APACHE I은 중환자실 입원 초기의 생리 지표를 점수화하여 환자의 중증도를 평가하려 했습니다. 이후 1985년에 발표된 "APACHE II"는 더 단순하고 사용하기 쉬운 형태로 정리되었습니다. APACHE II는 체온, 혈압, 심박수, 호흡수, 산소화 상태, 혈액 pH, 전해질, 크레아티닌, 헤마토크릿, 백혈구 수, 의식 수준 같은 생리 지표에 나이와 만성 건강 상태를 더해 점수를 계산합니다. 점수가 높을수록 환자의 사망 위험이 높다고 판단합니다.

이후 APACHE III와 APACHE IV가 개발되면서 모델은 더 많은 환자 자료와 더 정교한 통계 방법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이 글에서 중요한 것은 APACHE의 세부 공식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의사의 직관을 그대로 믿는 대신, 실제 환자 자료를 바탕으로 만든 예측 규칙이 더 나은 판단을 제공했다는 사실입니다. APACHE의 역사는 “의사가 필요 없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의사의 판단이 객관적 자료와 결합될 때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APACHE 사례의 교훈은 분명합니다. 전문가의 말이라도 그 근거를 물어야 합니다. 그것이 반복적으로 검증된 자료에 근거한 것인지, 아니면 전문가의 경험에서 나온 인상인지 구분해야 합니다. 경험은 중요하지만, 경험에서 나온 직관은 자주 틀립니다. 특히 복잡한 문제일수록 인간은 자신이 어떤 정보를 얼마나 중요하게 평가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의학이 과학인 이유는 의사가 뛰어난 직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의학은 의사의 직관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것을 자료와 규칙으로 교정하려고 하기 때문에 과학입니다. APACHE는 바로 그 태도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전문가의 권위가 아니라, 검증된 예측 규칙이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고문헌

  1. Knaus, William A., Elizabeth A. Draper, Douglas P. Wagner, and Jack E. Zimmerman. “APACHE II: A severity of disease classification system.” Critical Care Medicine 13, no. 10 (1985): 818–829.

  2. Knaus, William A., Jack E. Zimmerman, Douglas P. Wagner, Elizabeth A. Draper, and David P. Lawrence. “APACHE—Acute Physiology and Chronic Health Evaluation: A physiologically based classification system.” Critical Care Medicine 9, no. 8 (1981): 591–597.

  3. Dawes, Robyn M. House of Cards: Psychology and Psychotherapy Built on Myth. New York: Free Press,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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