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암 촘스키"는 20세기 지성사에서 매우 특이한 위치에 있는 인물입니다. 그는 한편으로는 현대 언어학의 방향을 바꾼 학자로 평가받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 제국주의와 서구 권력을 비판한 정치적 지식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촘스키라는 이름에는 늘 과도한 권위가 따라붙습니다. 그의 정치적 발언은 언어학자의 권위와 결합되고, 그의 언어학적 업적은 정치적 신념과 뒤섞여 평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촘스키를 제대로 보려면 두 가지를 동시에 해야 합니다. 하나는 그의 언어학적 업적을 과소평가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 업적을 불멸의 진리처럼 신화화하지 않는 것입니다.
촘스키는 분명 중요한 학자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모든 것을 처음 발견한 천재였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이미 무너지고 있던 행동주의의 약점을 언어학의 중심 무대에서 가장 강하게 선언한 사람이었습니다.
먼저 촘스키가 이룬 것
촘스키의 업적을 이해하려면, 그가 단순히 하나의 문법 이론을 제안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는 언어학의 중심 질문을 바꾸었습니다. 언어학이 개별 언어의 자료를 모으고 분류하는 학문에 머물러 있을 때, 촘스키는 인간이 어떻게 한정된 경험만으로 무한히 많은 문장을 만들고 이해할 수 있는가를 물었습니다.
1957년 『Syntactic Structures』로 대표되는 그의 "생성문법"은 언어를 외운 표현의 목록이 아니라, 새로운 문장을 산출하는 규칙 체계로 보았습니다. 이것은 언어학을 단순한 기술학에서 인간 정신의 구조를 탐구하는 이론적 학문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이후 변형문법, 심층구조와 표층구조, 언어능력과 언어수행의 구분, 보편문법 논의는 모두 이 전환 위에서 나왔습니다.
특히 촘스키는 언어 습득을 행동주의적 모방과 강화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아이는 들은 문장을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제한된 입력 속에서도 문법 규칙을 추론하고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문장을 만들어냅니다. 이 문제 제기는 언어학을 심리학, 철학, 인지과학의 중심 문제와 연결시켰습니다. 그래서 촘스키 이후의 언어학은 더 이상 소리와 문장의 분류만 다루는 학문일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인간 정신이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는가를 묻는 학문이 되었습니다.
이 점에서 촘스키는 영국 경험론보다 대륙의 합리주의 전통에 가까웠습니다. 고전적 경험주의, 특히 로크의 경험론은 인간 정신을 태어날 때 비어 있는 "백지"에 비유했고, 지식의 내용은 감각 경험과 반성에서 온다고 보았습니다. 반대로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같은 합리주의자들은 인간에게 경험 이전에 세계를 이해하고 조직하는 선천적 능력, 성향, 원리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촘스키가 스스로 "Cartesian linguistics"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는 언어를 경험의 축적이라기보다, 인간 정신 안에 이미 마련된 형식적 능력이 경험을 통해 펼쳐지는 현상으로 이해했습니다.
물론 오늘날의 경험주의자들이 모두 인간을 완전한 백지로 본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현대 인지과학과 발달심리학은 인간에게 주의, 기억, 패턴 학습, 사회적 추론, 생물학적 제약 같은 선천적 조건이 있다는 점을 대체로 인정합니다. 다만 경험주의적 접근은 그 선천성을 완성된 문법 원리로 보지 않고, 환경 입력을 처리하고 일반화하는 학습 능력으로 설명하려 합니다. 따라서 촘스키와 현대 경험주의의 차이는 "본성이 있느냐 없느냐"라기보다, 그 본성이 언어 전용의 추상 문법 구조인가, 아니면 더 일반적인 인지 능력과 발달 경로인가에 가깝습니다.
행동주의가 강했던 시대
촘스키가 등장한 20세기 중반 미국 심리학에서는 "행동주의"의 영향이 매우 컸습니다. 행동주의는 인간과 동물의 행동을 주로 자극, 반응, 강화, 처벌의 체계로 설명하려 했습니다. 관찰 가능한 행동만을 과학의 대상으로 삼으려 했고, 마음속 구조나 선천적 성향, 본능 같은 개념은 비과학적이거나 검증하기 어려운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언어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설명되었습니다. 아이는 주변 사람의 말을 듣고, 모방하고, 보상받으며 언어를 익힌다고 보는 식이었습니다. 언어는 특별한 정신 능력이라기보다, 복잡한 습관 형성의 결과처럼 취급되었습니다.
촘스키는 바로 여기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인간은 단순히 들은 말을 반복하는 존재가 아니라,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문장도 만들고 이해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아이는 제한된 입력만으로도 매우 빠르게 문법 체계를 습득합니다. 촘스키는 이것을 단순한 모방과 강화로 설명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이 점에서 촘스키의 문제 제기는 강력했습니다. 인간은 빈 종이가 아니며, 언어 발달에는 "선천적 준비성"이 있다는 주장은 행동주의가 무시한 중요한 사실을 다시 끌어낸 것이었습니다.
행동주의는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촘스키가 행동주의의 문제를 처음 발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행동주의는 이미 동물행동학과 실제 동물훈련 현장에서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로렌츠의 각인 연구는 생물이 아무렇게나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었습니다. 새끼 거위는 태어난 직후 일정한 민감기에 처음 접한 움직이는 대상을 어미처럼 따릅니다. 이것은 유전자가 어미의 구체적 모습을 저장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유전자는 특정 시기의 특정 자극을 받아들여 사회적 대상을 고정하는 발달 규칙을 만든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통찰입니다. 유전자는 모든 지식을 직접 저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환경의 특정 정보를 받아들여 필요한 능력을 형성하도록 발달 과정을 설계합니다. 본능은 학습의 반대말이 아닙니다. 본능은 학습이 일어나는 방향을 정해주는 생물학적 틀입니다.
브릴랜드 부부의 라쿤 연구도 행동주의의 한계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라쿤은 동전을 저금통에 넣도록 훈련받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동전을 넣지 않고 양손으로 비비고 씻는 듯한 행동을 보였습니다. 보상은 여전히 주어졌지만, 행동은 훈련된 과제보다 라쿤의 종 특유 먹이 처리 행동 쪽으로 흘러갔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instinctive drift"(본능 표류)입니다. 촘스키의 변형문법은 1957년에 등장했지만, 행동주의의 한계는 이미 1940~50년대 동물훈련 현장에서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브릴랜드 부부의 라쿤 사례는 1961년에 논문으로 발표되었기 때문에 학문적 발표 순서로는 촘스키보다 늦지만, 실제 관찰과 경험의 축적은 촘스키 이전부터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이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동물은 보상과 처벌만으로 마음대로 설계되는 기계가 아닙니다. 각 종은 자기 종의 행동 틀을 가지고 있고, 학습은 그 틀 안에서 일어납니다. 조건형성은 강력하지만, 본능보다 강하지는 않습니다.
행동주의의 한계는 언어학 논쟁에서만 드러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동물훈련의 역사에서도 비슷한 전환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오즈의 마법사』의 토토는 지시된 행동을 정확히 수행하는 개처럼 보이는 반면, 래시는 장면을 이해하고 의미를 전달하는 개처럼 보입니다. 실제로는 둘 다 정교한 훈련의 결과였겠지만, 이 차이는 생물이 보상과 처벌만으로 무한히 재설계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직관적으로 보여줍니다. 실제 학습은 종 특유의 성향, 주의 방식, 기대, 관계 속에서 일어납니다. 행동주의적 통제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영역이 언어학 밖에서도 이미 드러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촘스키가 행동주의의 한계를 처음 발견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행동주의는 이미 동물행동학, 각인 연구, 동물훈련의 실제 현장에서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촘스키의 역할은 그 균열을 인간 언어라는 상징적인 영역에서 강하게 선언한 데 있었습니다.
그 공로의 정확한 위치
그렇다고 해서 촘스키의 업적이 작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의 공로를 어디에 놓을 것인가입니다.
촘스키는 행동주의의 한계를 처음 본 사람이 아니라, 그 한계를 인간 언어의 문제로 가장 강하게 번역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동물행동학과 발달 연구에서 이미 드러나던 생물학적 제약과 선천적 준비성의 문제를 언어학의 중심으로 가져왔습니다. 언어는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마음의 구조와 관련된 능력이라는 주장을 학문적 논쟁의 한복판에 세운 것입니다.
따라서 촘스키의 위대함은 모든 답을 맞혔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는 질문의 지위를 바꾸었습니다. 아이가 어떻게 제한된 입력만으로 문법을 습득하는가, 인간은 어떻게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문장을 이해하는가, 언어 능력은 단순한 습관인가 아니면 마음속의 생성 체계인가. 이런 질문들은 촘스키 이후 언어학과 인지과학이 피해 갈 수 없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 점에서 촘스키는 현대 언어학과 인지과학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다만 그의 공로는 행동주의를 혼자 무너뜨린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여러 영역에서 무너지고 있던 행동주의의 약점을 인간 언어라는 결정적 사례로 압축해 보여준 데 있습니다.
문제는 선천성이 아니라 형식주의였다
그러나 촘스키의 한계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행동주의가 인간의 선천성을 과소평가했다는 점은 정확히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대안으로 생물학적 발달 과정 자체를 충분히 탐구하기보다, 지나치게 추상적인 문법 체계를 세웠습니다.
언어 발달을 각인 현상과 비교하면 이 점이 더 분명해집니다. 유전자는 어미의 얼굴을 저장하지 않습니다. 유전자는 일정한 시기에 특정 자극을 받아 사회적 대상을 고정하도록 발달 경로를 만듭니다. 마찬가지로 인간 유전자는 한국어, 영어, 중국어의 문법을 저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인간의 뇌가 일정한 시기에 소리, 의미, 상호작용, 반복 패턴을 받아들여 언어 체계로 조직하도록 만드는 발달 경로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인간에게 언어 습득의 선천적 준비성이 있다는 주장은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러운 추론입니다. 문제는 그 선천성이 반드시 촘스키식 "보편문법"이어야 하느냐입니다.
인간의 뇌가 언어를 배울 준비성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주장과, 인간의 뇌 안에 추상적 문법 원리가 선천적으로 들어 있다는 주장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전자는 생물학적으로 매우 그럴듯합니다. 후자는 훨씬 더 강하고 논쟁적인 주장입니다.
촘스키의 문제는 선천성을 말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 선천성을 현실의 발달 과정, 사회적 상호작용, 문화적 입력, 종 특유의 인지 능력으로 충분히 풀어내지 않고, 형식적 문법 체계로 추상화했다는 데 있습니다.
촘스키의 벽
촘스키의 언어학은 강력했지만, 동시에 자기만의 벽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행동주의의 빈곤함을 비판했지만, 생물학적 현실주의로 곧장 가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보편문법이라는 추상적 구조를 세웠습니다.
그 결과 촘스키 언어학은 세계 언어의 다양성, 언어 습득의 사회성, 실제 사용의 중요성, 문화적 차이, 발달 과정의 구체성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아이들은 머릿속 문법 장치를 혼자 펼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와의 상호작용, 공동주의, 반복, 의미 추론, 사용 빈도, 사회적 맥락 속에서 언어를 배웁니다.
물론 이것이 선천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선천성은 필요합니다. 다만 그 선천성은 완성된 문법의 형태라기보다, 언어를 발달시킬 수 있는 생물학적 능력과 경로에 가깝다고 보는 편이 더 현실적입니다.
촘스키는 행동주의의 오류를 잘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 단계에서 인간을 발달하는 생물학적 존재로 보기보다, 보편적 문법 구조를 가진 합리적 정신으로 보려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론은 한 시대를 흔들 만큼 강력했지만, 동시에 자신이 만든 추상적 문법의 벽 안에 갇히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정치적 촘스키와 언어학적 촘스키
흥미로운 것은 이런 경향이 그의 정치적 태도와도 어느 정도 닮아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언어학 이론이 그의 정치적 입장을 낳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두 영역 모두에서 촘스키가 보여준 지적 습관은 비슷합니다. 그는 현실의 복잡한 조건을 오래 따라가기보다, 그 현실 위에 작동하는 보편적 구조와 규범을 먼저 찾으려 했습니다.
촘스키는 권력을 비판하는 지식인으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글쓰기 역시 현실의 복잡한 역사와 구체적 조건보다, 보편적 규범과 도덕적 판단을 먼저 세우는 경향이 강합니다. (이는 지식인이 현실의 구체성을 이론적 모델에 맞추려 하는 전형적인 양태로, 앞서 다룬 포퍼와 쿤: 현실과 모델의 충돌 에세이에서 짚어낸 지적 패러다임의 충돌 문제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언어학에서도 그는 인간 언어의 구체적 발달 과정보다 보편적 문법 구조를 먼저 세웠습니다. 정치에서도 그는 국제정치의 복잡한 현실보다 제국주의와 반권력이라는 규범적 틀을 강하게 적용했습니다. 둘 다 같은 원인에서 나온 필연적 결과라기보다, 그의 지적 성향이 서로 다른 분야에서 반복된 모습에 가깝습니다.
촘스키는 현실을 매우 날카롭게 비판했지만, 현실주의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경험적 세계의 복잡성을 끝까지 따라가기보다, 그 위에 보편적 구조를 세우려는 "합리주의자"에 가까웠습니다. 이것이 그의 힘이었고 동시에 한계였습니다.
촘스키는 절반만 맞았다
노암 촘스키의 언어학적 업적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는 언어학의 질문을 바꾸었고, 인간 언어 능력을 행동주의 학습론에서 끌어내어 마음과 인지의 문제로 만들었습니다. 인간이 빈 종이가 아니라는 점, 언어 발달에 선천적 준비성이 있다는 점을 강하게 주장한 것은 중요한 공로입니다.
그러나 그 업적을 불멸의 진리처럼 평가할 필요는 없습니다. 촘스키가 선천성을 발견한 것은 아닙니다. 이미 동물행동학과 발달 연구는 본능, 민감기, 종 특유의 행동, 생물학적 제약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촘스키는 그 시대적 전환을 언어학 안으로 가져온 사람입니다.
그래서 촘스키 이후의 대안은 단순히 선천성을 부정하는 방향으로만 가지 않았습니다. 사용기반 언어학, 인지언어학, 구성문법은 인간에게 학습 능력과 인지적 제약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언어를 머릿속 보편문법의 전개라기보다 실제 사용, 빈도, 의미 추론, 사회적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되는 체계로 보려 합니다. 이 관점에서 인간은 백지도 아니지만, 완성된 문법 장치를 품고 태어나는 존재도 아닙니다.
- 그의 위대함은 언어학의 질문을 바꾼 데 있습니다.
- 그의 한계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지나치게 추상적 문법 체계로 밀고 간 데 있습니다.
결국 촘스키는 틀린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완전히 옳은 사람도 아닙니다. 그는 행동주의가 틀렸다는 것을 정확히 보았습니다. 하지만 인간 언어의 선천성을 생물학적 발달 과정으로 충분히 이해하기보다, 보편문법이라는 형식적 구조로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촘스키는 불멸의 언어학자라기보다, 20세기 중반 행동주의의 한계를 가장 강력하게 드러낸 전환기의 학자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합니다. 그는 시대를 앞서간 사람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시대가 이미 가고 있던 방향을 가장 추상적이고 권위 있는 언어로 정리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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