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지 오웰은 왜 사회주의를 포기하지 않았는가
조지 오웰은 흔히 전체주의를 비판한 반공 작가로 기억됩니다. 《동물농장》과 《1984》가 소련식 공산주의와 전체주의의 작동 방식을 날카롭게 묘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부 보수주의자는 오웰을 사회주의의 실패를 증명한 작가처럼 인용합니다.
그러나 오웰은 자신이 무엇을 위해 글을 썼는지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그는 「나는 왜 쓰는가」에서 1936년 이후의 진지한 저술은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자신이 이해한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기 위해 쓰였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거부한 것은 사회주의라는 이름 자체가 아니라, 그 이름을 독점한 일당독재와 관료적 집산주의였습니다.
그렇다고 오웰의 사회주의를 무조건 고결한 이상으로만 평가할 수도 없습니다. 그는 집산주의가 권력을 집중시킬 위험을 알고 있었고 나름의 정치 프로그램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광범위한 경제적 집산화와 개인의 정치적 자유가 어떻게 안정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제도적 해답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오웰의 한계는 집산주의의 위험을 보지 못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 위험을 보면서도 민주적 사회주의가 그것을 어떻게 제어할 수 있는지 끝까지 설명하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그의 사회주의는 이론보다 인간에서 출발했습니다
오웰을 사회주의자로 만든 것은 마르크스주의의 역사법칙보다 계급사회에 대한 도덕적 분노였습니다. 그는 출신 계급에 따라 인간의 존엄과 기회가 결정되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서는 탄광 노동자의 위험한 작업과 빈곤한 주거환경을 기록했습니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에서는 접시닦이 노동자와 부랑인의 삶을 직접 체험하고 묘사했습니다. 그가 본 것은 추상적인 프롤레타리아가 아니라 굶주림과 모욕을 겪는 구체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오웰에게 사회주의는 생산수단 소유에 관한 경제학적 정의만이 아니었습니다. 계급적 굴종을 줄이고 평범한 사람이 품위 있게 살 수 있어야 한다는 도덕적 요청이었습니다. 현실의 사회주의 국가가 그 요청을 배반했다고 해서 자본주의의 빈곤과 불평등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이 구분은 오웰이 사회주의를 포기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비판의 출발점도 됩니다. 도덕적 목표가 정당하다고 해서 그 목표를 실현한다는 제도까지 자동으로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스페인에서 그는 평등과 거짓을 함께 보았습니다
오웰이 사회주의의 가능성을 가장 강렬하게 체험한 곳은 스페인 내전 초기의 카탈루냐였습니다. 그가 바르셀로나에 도착했을 때 많은 건물과 상점에는 노동자 집산화 표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경칭과 팁이 사라졌고, 민병대에서는 장교와 사병이 같은 보수를 받고 비슷한 옷과 음식을 나누었습니다. 오웰은 이 평등의 분위기를 지켜 싸울 가치가 있는 상태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처음에는 겉모습을 실제보다 순진하게 믿었다고도 기록했습니다. 숨어 있던 부유층이 있었고, 집산화의 표지가 경제 운영의 지속가능성을 증명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민병대의 평등 역시 전쟁과 혁명이라는 예외적 상황 속에서 형성된 것이었습니다. 카탈루냐의 경험은 안정된 사회주의 경제의 실증적 성공이라기보다, 계급적 굴종이 약해진 공동체가 인간의 태도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보여준 짧은 체험에 가까웠습니다.
오웰이 스페인에서 얻은 더 지속적인 교훈은 진영보다 사실을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소련의 영향을 받던 공산당 계열이 다른 좌파 세력을 탄압하고, POUM을 파시스트의 협력자로 몰아가는 선전을 목격했습니다. 반파시즘의 대의를 위해 불편한 사실을 숨겨야 한다는 요구를 거부하고 이를 《카탈로니아 찬가》에 남겼습니다.
전체주의는 사실을 말할 능력부터 파괴합니다
《동물농장》에서 혁명의 지도자들은 과거의 지배자와 닮아가며 언어와 기억을 고쳐 씁니다. 《1984》의 당은 행동뿐 아니라 기억과 언어, 현실 판단 자체를 지배하려 합니다. 윈스턴에게 요구되는 것은 겉으로 하는 복종이 아니라 명백한 거짓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정신적 굴복입니다.
오웰에게 전체주의의 완성은 육체를 억압하는 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자기 눈으로 본 사실을 믿지 못하게 만드는 데 있었습니다. 자유는 추상적인 권리 이전에 분명한 사실을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는 조건이었습니다.
그가 「정치와 영어」에서 정치적 완곡어법을 비판한 이유도 같습니다. 무방비 상태의 마을을 폭격하는 행위는 ‘평정’으로, 농민을 삶의 터전에서 내쫓는 행위는 ‘인구 이동’이나 ‘국경선 정정’으로 포장됩니다. 이런 언어는 폭력을 직접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행위자와 희생자를 문장에서 지워버립니다.
오웰은 명료한 문장을 단순한 문체상의 미덕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지지하고 있는지 시민이 정확히 알게 하는 정치적·도덕적 조건으로 보았습니다. 이 지점에서 그는 자신이 속한 진영에 불리한 사실까지 기록한 뛰어난 경험적 관찰자였습니다.
그는 집산주의의 위험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오웰이 사회주의의 구조적 위험 앞에서 생각을 멈추었다고 말하면 그의 실제 글을 놓치게 됩니다. 그는 1944년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을 논평하면서 집산주의는 본질적으로 민주적이지 않으며, 폭압적인 소수에게 과거보다 훨씬 강한 권력을 줄 수 있다는 하이에크의 경고에 상당한 진실이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제임스 번햄에 대한 재고」에서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어느 쪽도 아닌 새로운 지배체제가 등장할 가능성을 검토했습니다. 생산수단이 사적 자본가에게서 국가로 넘어가더라도 노동자가 권력을 얻는다는 보장은 없으며, 당 관료와 관리자들이 새로운 지배층이 될 수 있다는 문제를 알고 있었습니다. 《1984》는 바로 그 통찰을 문학적으로 밀어붙인 작품입니다.
따라서 소련을 단순히 스탈린 개인이 일으킨 우연한 탈선으로만 보았다는 평가는 부정확합니다. 오웰은 소유의 국유화만으로 사회주의가 완성되지 않으며, 정치권력을 통제하지 못한 집산화가 새로운 계급지배를 만들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하이에크의 결론을 전부 받아들이지는 않았습니다. 자유방임적 자본주의 역시 독점과 실업, 불안을 낳으며 사람들이 국가 통제를 선택하도록 몰아간다고 판단했습니다. 오웰에게 선택지는 순수한 시장과 전체주의적 계획 사이의 양자택일이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경제적 평등을 추구하면서 권력이 독점되지 않는 사회주의를 만들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구체적인 프로그램은 있었지만 제도적 해답은 부족했습니다
오웰은 사회주의를 막연한 도덕 감정으로만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자와 유니콘》에서 토지·광산·철도·은행·주요 산업의 국유화, 소득 격차 제한, 교육 개혁, 인도의 자치 확대 등을 포함한 6개 항목의 정치 프로그램을 제시했습니다. 「유럽 통합을 향하여」에서는 자유와 평등을 지키는 민주적 사회주의 유럽의 연합을 구상했습니다.
그러므로 오웰에게 구체적인 제도 구상이 전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더 적절한 비판은 그 프로그램이 권력 집중의 위험에 비해 충분히 정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주요 산업을 국가가 소유할 때 정부와 기업의 권한을 어떻게 분리할 것인지, 독립 언론과 야당이 경제적 보복 없이 활동하도록 무엇으로 보장할 것인지, 중앙의 계획자가 알 수 없는 수많은 가격과 수요 정보를 어떤 방식으로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답은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노동자의 자주관리, 지방분권, 경쟁적 시장, 사법부의 독립을 어떤 비율로 결합할지도 체계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는 오웰이 경제학자나 제도 설계자가 아니라 정치적 작가였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집산주의의 위험을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대규모 국유화를 제안했다면, 두 요소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는 그의 사회주의가 풀어야 할 핵심 과제였습니다.
버크의 보수주의가 던지는 질문도 이 지점에서 유효합니다. 선한 목적만으로 제도의 결과를 보장할 수 없다면, 급진적 개혁은 오랜 경험과 점진적 검증을 통과해야 하지 않는가. 오웰은 이 경고를 무지해서 거부한 것이 아닙니다. 자본주의의 실제 고통 역시 기다림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에 더 큰 변화를 요구했습니다. 두 사람의 차이는 경험과 도덕 중 하나만을 선택한 데 있지 않고, 변화하지 않을 때의 위험과 급격히 변화할 때의 위험 가운데 어디에 더 큰 무게를 두었는가에 있었습니다.
애틀리 정부는 결론이 아니라 미완의 시험이었습니다
오웰은 1945년 집권한 클레멘트 애틀리의 노동당 정부도 지켜보았습니다. 애틀리 정부는 석탄과 철도, 영란은행 등을 국유화하고 국민보건서비스를 출범시켰습니다. 그러나 시장과 사유재산을 폐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 소련식 중앙계획과 다른 혼합경제였으며, 민주적 선거와 의회제도 안에서 사회주의적 정책을 시험한 사례였습니다.
이를 사회주의의 성공이나 실패 가운데 하나로 간단히 분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사회주의를 전면적 계획경제로 정의하면 애틀리 정부는 사회주의가 아닙니다. 반대로 민주적 절차 안에서 공공소유와 복지를 확대하는 것까지 포함하면 오웰이 기대한 방향의 일부를 구현한 사례입니다. 어떤 정의를 택하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집니다.
오웰은 1950년에 사망했습니다. 전후 혼합경제가 성장과 복지, 재정 부담과 산업 비효율 사이에서 어떤 장기적 결과를 낳는지 충분히 볼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그의 생애에 성공한 사회주의가 없었다고 단정하기보다, 그가 옹호한 민주적 사회주의의 장기적 시험이 끝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그의 삶과 판단에도 모순은 있었습니다
오웰을 도덕적 결점이 없는 성인으로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젊은 시절 그는 버마에서 영국 식민경찰로 근무했습니다. 이후 제국주의를 비판했지만, 그 비판은 자신이 식민 권력의 일부였다는 경험에서 나왔습니다. 「코끼리를 쏘다」에서 그는 원주민 앞에서 약해 보이지 않으려고 불필요한 폭력을 행사한 관리의 비겁함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노동계급을 옹호하면서도 그들의 냄새와 생활방식에 대한 중산층의 혐오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도 스스로 드러냈습니다. 이 고백은 편견을 없애주지 않지만, 자신의 불편한 내면을 관찰의 대상에 포함했다는 점에서는 오웰다운 정직함을 보여줍니다.
말년의 IRD 명단은 더 직접적인 논란입니다. 오웰은 친소련 성향이 있다고 판단한 작가와 언론인의 이름을 외무부 산하 정보조사국에서 일하던 실리아 커완에게 전달했습니다. 이 명단은 체포나 기소를 요청한 사법적 고발장이 아니라, 반공 선전물의 필자로 부적합하다고 본 사람들의 목록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를 곧바로 일반적인 취업 블랙리스트나 사상 탄압 명단과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윤리적 문제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표현의 자유를 옹호한 작가가 비밀리에 운영된 국가 선전조직에 인물 평가를 제공했고, 그 기록에는 근거가 빈약한 정치적 판단과 개인적 편견도 섞여 있었습니다. 이것은 오웰을 전체주의의 공범으로 만들지는 않지만, 그 역시 냉전의 진영 논리와 개인적 편견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보수와 진보 모두 오웰을 절반만 읽습니다
일부 보수주의자는 《동물농장》과 《1984》를 모든 평등주의적 개혁에 반대하는 증거로 사용합니다. 그러나 오웰이 직접 겨냥한 것은 약자를 돕는 공동체적 연대가 아니라, 해방의 언어를 독점하고 사실과 자유를 파괴한 전체주의 권력이었습니다. 그는 자본주의의 빈곤과 제국주의도 일관되게 비판했습니다.
반대로 일부 좌파가 그의 스탈린주의 비판을 냉전적 변절로 축소하는 것도 왜곡입니다. 오웰은 사회주의를 증오해서 소련을 비판한 것이 아닙니다. 사회주의가 인간의 해방을 뜻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 이름으로 행해진 억압과 거짓을 더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오웰의 자기 정의만으로 그의 민주적 사회주의가 제도적으로 타당했다고 결론 내릴 수도 없습니다. 오웰은 집산주의가 새로운 지배계급과 폭정을 낳을 수 있음을 정확히 알았습니다. 하지만 광범위한 국유화가 그러한 권력 집중을 피하면서 작동할 조건은 충분히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사실을 보는 데 뛰어난 경험적 관찰자였고, 인간의 평등과 존엄을 포기하지 않은 규범적 사회주의자였습니다. 두 성격은 단순한 위선으로 충돌한 것이 아니라 그의 사상 안에서 끝내 해결되지 않은 긴장을 이루었습니다.
어떤 사상도 인간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웰이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은 특정 경제체제의 완성된 설계도가 아닙니다. 어떤 이념도 눈앞의 인간보다 중요할 수 없으며, 체제를 지키기 위해 사실을 조작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입니다.
평등을 위해 자유를 없애서는 안 됩니다. 자유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빈곤과 계급적 굴종을 자연스러운 질서처럼 방치해서도 안 됩니다. 국가의 계획이든 시장의 자율성이든, 그것이 구체적인 인간에게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 끊임없이 검증해야 합니다.
오웰은 집산주의의 위험을 몰랐기 때문에 사회주의자로 남은 것이 아닙니다. 그 위험을 알면서도 자본주의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었고, 자유와 평등을 함께 지키는 사회주의가 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그의 한계는 그 믿음이 거짓이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 믿음을 지속가능한 제도로 바꾸는 방법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오웰을 온전히 읽는다는 것은 그를 반공의 영웅이나 사회주의의 성인으로 독점하지 않는 일입니다. 그가 자기 진영에 던졌던 차가운 질문을 그의 제도 구상에도 적용하면서, 사실과 인간의 존엄을 함께 지키려 했던 태도를 계승하는 일입니다.
참고문헌
조지 오웰의 저술
- 조지 오웰, 《카탈로니아 찬가》, 1938.
- 조지 오웰, 《사자와 유니콘: 사회주의와 영국인의 특성》, 1941.
- 조지 오웰, 「F. A.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 서평」, 《옵서버》, 1944년 4월 9일.
-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1946.
- 조지 오웰, 「제임스 번햄에 대한 재고」, 1946.
- 조지 오웰, 「정치와 영어」, 1946.
- 조지 오웰, 「유럽 통합을 향하여」, 《파르티잔 리뷰》, 1947.
- 조지 오웰, 《동물농장》, 도정일 옮김, 민음사, 1998.
- 조지 오웰, 《1984》, 박경서 옮김, 열린책들, 2009.
- 조지 오웰,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이한중 옮김, 실천문학사, 2010.
- 조지 오웰,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이한중 옮김, 삼천리, 2009.
연구와 기록
- 에드먼드 버크,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 이태숙 옮김, 한길사, 2008.
- 버나드 크릭, 《조지 오웰: 한 지성의 초상》, 이한중 옮김, 실천문학사, 2012.
- 티머시 가튼 애시, 「오웰의 명단」, 《뉴욕 리뷰 오브 북스》, 2003.
- 영국 국립문서보관소, 「영국 선전 기록 연구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