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적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람들은 종종 상대 진영을 실제보다 훨씬 더 극단적인 집단으로 오인하곤 합니다. 보수주의자는 진보주의자를 전통과 질서를 맹목적으로 거부하는 파괴자로 규정하기 쉽고, 진보주의자는 보수주의자를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정함이 결여된 냉혈한으로 바라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호 인식이 실제 현실의 데이터와 얼마나 일치하는지는 엄밀하게 규명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제시 그레이엄(Jesse Graham), 브라이언 노섹(Brian Nosek), 조너선 하이트(Jonathan Haidt)는 2012년 발표한 논문 「The Moral Stereotypes of Liberals and Conservatives」에서 이 질문을 실험적으로 조사했습니다. 연구의 목적은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가 자기 진영과 상대 진영의 도덕적 감수성을 얼마나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지 검증하는 것이었습니다.
도덕기반이론의 다섯 가지 기준
이 연구는 인간의 도덕적 판단이 진화적으로 형성된 몇 가지 직관적 감수성 위에서 작동한다고 보는 도덕기반이론(Moral Foundations Theory)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이 논문에서 핵심 척도로 사용된 다섯 가지 도덕기반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타인의 고통과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위해/배려' 감수성입니다.
둘째는 부당한 대우, 차별, 권리 침해와 기만에 분노하고 호혜성을 요구하는 '공정/상호성' 감수성입니다.
셋째는 가족, 소속 집단, 나아가 국가에 대한 헌신과 동료애를 도덕의 중요한 축으로 삼는 '내집단/충성' 감수성입니다.
넷째는 위계 질서, 정당한 권위, 역사적 제도를 존중하고 따르려는 '권위/존중' 감수성입니다.
다섯째는 신체와 성의 통제, 오염 및 혐오에 대한 방어, 정신적 숭고함을 지키려는 '순수/신성' 감수성입니다.
이 중 '위해/배려'와 '공정/상호성'은 개인의 권리와 안녕에 초점을 맞추므로 '개인화 도덕기반(Individualizing Foundations)'이라 칭하며, 나머지 세 도덕기반은 개인을 공동체와 질서 속에 결속시키는 역할을 하기에 '결속 도덕기반(Binding Foundations)'이라 부릅니다. 결속 도덕기반은 독립된 별개의 도덕이 아니라 후자의 세 감수성을 통칭하는 개념입니다.
실험 방법
해당 연구는 미국의 암묵적 연상 테스트 웹사이트(ProjectImplicit.org) 방문자 중 2,212명을 대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참가자들은 모두 미국 거주자 또는 시민권자였으며, 이들의 정치적 성향은 7점 척도를 기준으로 측정되어 진보 성향 1,174명, 중도 538명, 보수 성향 500명으로 각각 분류되었습니다.
참가자들은 도덕기반 질문지(MFQ)에 응답했습니다. 이 설문은 각 도덕 가치가 본인의 판단 과정에서 얼마나 중요하게 작용하는지 묻는 항목들과, 구체적인 도덕적 진술들에 대한 동의 여부를 묻는 항목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이 실험의 핵심 설계는 참가자들이 단순히 자신의 주관적 신념에만 답하는 데 그치지 않고, 타인의 입장을 이입하여 예측하도록 한 점입니다. 일부 참가자들은 본인의 도덕 판단에 답했고, 다른 참가자들은 '전형적인 진보주의자' 혹은 '전형적인 보수주의자'의 입장에서 그들이 어떻게 답할 것인가를 상상하여 응답했습니다. 연구진은 이렇게 도출된 각 집단의 예측값과 실제 진보/보수 응답자들의 실측 데이터를 대조하여 분석했습니다.
실제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의 차이
실제 수집된 응답 데이터에서 진보주의자들은 '위해/배려'와 '공정/상호성'을 보수주의자보다 유의미하게 더 강력하게 중시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반면 보수주의자들은 '내집단/충성', '권위/존중', '순수/신성'의 가치에 대해 진보주의자보다 훨씬 높은 중요도를 부여했습니다. 이는 도덕기반이론의 기존 학술 연구들과 일맥상통하는 결과였습니다.
이로써 진보와 보수 세력 간에 도덕적으로 지향하는 가치 지평에 실질적인 차이가 존재함은 명확해졌습니다. 그러나 연구진이 마주한 본질적인 발견은 이 객관적 격차가 대중이 상상하는 것만큼 극단적이지는 않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실제 차이를 과장했습니다
참가자들은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의 성향 차이가 어느 방향으로 갈라지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짚어냈습니다. 전형적 진보주의자는 개인화 도덕기반을, 전형적 보수주의자는 결속 도덕기반을 더 중시할 것이라고 예측한 것입니다.
그러나 두 집단의 격차 크기에 대해서는 실제보다 과도하게 과장하여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논문의 실측 데이터에 따르면, 실제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의 평균 절대 격차는 0.57이었고, 양극단의 신념을 지닌 이들 간의 실제 격차도 0.98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참가자들이 상상 속에서 그려낸 전형적 진보와 보수의 격차는 무려 1.41에 달했습니다.
즉, 사람들은 현실 세계에 실존하는 평범한 진보·보수 시민들보다 머릿속으로 훨씬 더 이념적으로 적대적이고 타협 불가능한 극단주의자들을 상상하며 정치를 바라보고 있었던 셈입니다.
자기 진영도 과장했습니다
이 연구의 또 다른 흥미로운 발견은 사람들이 상대 진영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진영마저도 과장하여 인식했다는 점입니다. 진보 성향 응답자들은 전형적인 진보주의자가 실제 진보 시민들 평균보다 위해와 공정의 가치를 한층 더 극한으로 중시할 것이라 상상했고, 보수 성향 응답자들 역시 전형적 보수주의자는 실제 보수 시민들 평균보다 충성, 권위, 신성의 가치를 훨씬 더 원칙적으로 준수할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일상의 평범하고 유연한 정치적 이웃들의 모습을 떠올리기보다, 미디어나 교조적 이념 서사 속에서 만들어진 선명한 이념형(Ideal Type)을 가상의 준거집단으로 상상하고 있음을 방증합니다.
진보주의자가 가장 부정확했습니다
정밀 분석 결과는 단순히 양 진영이 동등한 크기로 상대를 오해하고 있다는 기계적 중립을 거부했습니다. 집단 중 상대방의 도덕 체계를 예측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오차를 보인 집단은 다름 아닌 진보주의자들이었습니다.
특히 위해/배려와 공정/상호성이라는 개인화 도덕기반에서 격차가 크게 벌어졌습니다. 진보주의자들은 보수주의자들이 약자에 대한 배려심이나 공정함을 바라는 도덕심을 실제 지닌 수준보다 훨씬 더 멸실한 수준으로 낮게 예측했습니다. 연구진은 실험에서 도출된 가장 현저한 오류가 '진보주의자가 보수주의자의 위해(Harm) 및 공정(Fairness)에 대한 도덕적 관심도를 과소평가한 현상'이었다고 논문에서 직접 기술했습니다.
반면 보수주의자들은 진보주의자들이 위해와 공정을 깊이 중시한다는 사실을 비교적 정확하게 짚어냈습니다. 개인주의적 가치를 예측하는 데 있어서는 오히려 보수주의자들의 판단이 가장 정확했습니다.
결속 도덕기반에서도 차이를 과장했습니다
내집단, 권위, 순수로 구성되는 결속 도덕기반에서도 집단 간의 상상적 격차는 현실의 실측치보다 부풀려졌습니다. 실제로 보수주의자들이 결속 도덕을 훨씬 더 중요하게 대하긴 했지만, 대중의 상상은 그 거리를 크게 벌려 놓았습니다.
논문의 Table 3 연구 표본 실측치를 바탕으로 내집단, 권위, 순수의 '관련성(relevance)'과 '판단(judgment)' 차이 값을 평균해 비교하면 다음과 같은 지표로 나타납니다.
| 비교 대상 집단 | 평균 차이 (보수 예측값 - 진보 예측값) |
|---|---|
| 실제 격차 (실측치) | 0.72 |
| 진보주의자의 예측 격차 | 1.56 |
| 중도층의 예측 격차 | 1.05 |
| 보수주의자의 예측 격차 | 1.28 |
이 수치는 전형적인 보수주의자의 응답에서 전형적인 진보주의자의 응답을 뺀 격차를 뜻하므로, 수치가 클수록 집단 간 격차가 클 것이라 상상했음을 의미합니다. 실제 격차는 0.72 수준에 불과했지만, 진보주의자들은 그 차이를 1.56으로 가정하며 두 진영이 완전히 다른 도덕적 외계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았습니다. 중도층은 1.05, 보수주의자는 1.28로 각각 예측하여 오차를 보였습니다.
결과적으로 공동체적 결속 도덕 영역에서도 모든 집단이 정치적 간극을 과장했으며, 그 중에서도 진보주의자들의 왜곡과 오해가 가장 거대했습니다.
Figure 2를 읽을 때 주의할 점
논문에 실린 Figure 2는 이러한 오차의 형상을 선그래프로 시각화하여 제시합니다. 왼편의 전형적 진보주의자 예측 지점과 오른편의 전형적 보수주의자 예측 지점이 직선으로 연결된 형태인데, 자칫 오독하기 쉬운 구조입니다.
이 그래프는 시계열 변화나 연속적인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두 정치 집단이라는 개별 범주를 비교한 것입니다. 연결 선의 기울기는 어떠한 추세의 변화가 아니라 두 대상의 '격차의 크기'를 의미합니다. 검은 실선은 실제 진보와 보수 사이의 온건한 격차를 지시하는 반면, 화려한 색상들의 예측선들은 각 응답 집단들이 머릿속으로 상상해 낸 가파른 격차를 뜻합니다. 즉, 예측선의 경사도가 실제 격차선보다 훨씬 더 가파르다는 사실 자체가 대중이 품은 인지적 왜곡과 이념적 적대감의 크기를 기하학적으로 증명합니다.
또한 Figure 2의 상단 그래프와 하단 그래프는 비교를 위한 기준 집단 자체가 다릅니다. 상단 그래프는 본 연구에 참여한 자체 표본의 진보·보수 평균치를 격차의 기저로 삼았으며, 하단 그래프는 별도로 추출한 미국 전국 대표 표본(National Representative Sample)과의 격차를 비교한 결과입니다. 하단의 전국 대표 표본 비교의 경우, 두 설문 간의 완벽한 척도 통일을 위해 질문 항목들 중 정확히 공통된 문항만을 선별하여 정교하게 분석을 수행했습니다.
두 분석에 쓰인 데이터의 특성 탓에 기준선(검은 실선)의 위치는 상이하게 렌더링되지만, 지시하는 결론은 동일합니다. 사람들은 진보와 보수가 지닌 도덕의 깊이를 현실보다 훨씬 더 기괴하고 극단적으로 예측하고 있었습니다.
보수주의자가 진보주의자를 더 잘 이해했다는 의미
이 연구가 보수주의자는 이성적이고 진보주의자는 늘 편협하다고 규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공동체적 결속 도덕의 일부 척도에서는 오히려 정당 외곽에 서 있는 중도층이 양 진영의 간극을 가장 객관적으로 간파해 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개인의 권리와 구제에 관한 핵심 도덕 차원에서는 보수주의자의 판단이 가장 정확했으며, 전방위적으로 진보주의자들은 상대의 도덕성을 가장 모질게 왜곡하여 인지했습니다.
이러한 인지적 불균형의 비대칭성은 각 정치 성향이 수용하는 도덕적 가치의 지평의 범위 차이로 명쾌하게 설명됩니다. 진보주의자들은 주로 위해/배려와 공정/상호성이라는 개인주의적 가치를 기준으로 삼아 도덕의 정합성을 한정하여 판단합니다. 반면 보수주의자들은 이 두 가지 개인화 도덕기반을 상당 부분 품으면서도, 내집단/충성, 권위/존중, 순수/신성이라는 사회 결속적 도덕기반까지 아울러 다차원적인 저울로 현실을 평가합니다.
이로 인해 보수주의자들은 진보주의자들의 도덕적 언어를 해독하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합니다. 진보 진영이 소리 높여 외치는 약자 구휼, 차별 해소, 인권 선언 같은 주장은 보수주의자들의 넓은 도덕적 스펙트럼 내에서도 충분히 납득 가능하고 내재화되어 있는 익숙한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도덕의 한계를 위해와 공정이라는 프레임으로 좁게 설정하는 진보주의자들은 보수주의자들의 의도를 해석하는 데 곤란을 겪습니다. 진보주의자들의 필터로 여과된 보수주의자들의 '내집단 충성'은 그저 '집단 이기주의와 타자 차별'로 전락하고, '전통과 권위 존중'은 '눈먼 복종과 억압'으로 해석되며, '신성과 절제'는 '낡은 도그마와 부자연스러운 규제'로 오독됩니다. 즉, 보수주의자의 정치적 외침을 '다른 결의 도덕적 직관에서 발원한 판단'으로 직시하지 못하고, 위해와 공정함이 결여된 '비도덕적이고 사악한 판단'의 결과물로 치부해 버리는 것입니다.
논문 역시 이 점을 정확히 꼬집습니다. 진보주의자가 결속 도덕을 도덕적 감수성으로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인지적 맹목을 겪을 때, 상대방인 보수주의자는 배려와 공정의 개념조차 모르는 무도한 집단이라는 왜곡된 오해에 귀착하게 된다는 설명입니다.
결론
하이트 연구팀의 이 실험적 연구가 남긴 교훈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 진보와 보수 시민들은 실제로 서로 차별화된 도덕적 가치 기반 위에서 사고하고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둘째, 그러나 사람들은 이 실제적 차이를 과도하게 부풀려 머릿속에 '이념적 괴물'을 만들어내며 정치적 적대감을 자가 증폭시켰습니다.
셋째, 그리고 이러한 상호 인지적 과장과 상대에 대한 도덕성 과소평가는 보수 진영보다 진보 진영에서 훨씬 더 깊고 부정확하게 나타났습니다.
이 결과는 보수주의자들이 진보주의자들을 지적으로 더 투명하고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음을 지시합니다. 보수주의자들은 진보주의자들이 지닌 도덕의 핵심을 현실의 데이터에 가깝게 예측할 수 있었지만, 진보주의자들은 보수주의자들이 지닌 공동체적 도덕기반을 읽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보수주의자들의 위해/배려나 공정심마저 실제 지닌 가치의 절반 이하로 폄훼하여 인지했습니다.
정치적 불화와 갈등은 단순히 상이한 정책적 견해 차이에서만 비롯되지 않습니다. 진짜 위기는 상대방이 어떠한 도덕적 기둥 위에서 판단을 내리고 행동하는지 그 직관의 기저를 전혀 들여다보지 못하는 인지적 맹목에서 시작됩니다. 이 논문은 집단 간의 오해가 상호 간에 존재하더라도, 결코 대칭적인 형태나 같은 크기로 발생하지는 않는다는 지엄한 현실의 사실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참고문헌
- Graham, J., Nosek, B. A., & Haidt, J. (2012). “The Moral Stereotypes of Liberals and Conservatives: Exaggeration of Differences across the Political Spectrum.” PLOS ONE, 7(12), e50092.
- Graham, J., Haidt, J., & Nosek, B. A. (2009). “Liberals and Conservatives Rely on Different Sets of Moral Foundation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96(5), 1029–1046.
- Project Implicit. 연구 논문 원문 PDF. 표본 구성, Moral Foundations Questionnaire, Table 3과 Figure 2의 분석 절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