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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암 촘스키: 펜타곤을 비판한 교수는 왜 펜타곤 자금의 대학에 있었나


펜타곤과 군산복합체를 강력히 비판했으나, 본인의 학문적 성공은 펜타곤 연구비 기반의 MIT에서 거둔 촘스키의 이중 기준과 지식인의 책임에 대한 비평.

펜타곤을 비판한 교수는 왜 펜타곤 자금의 대학에 있었나

노암 촘스키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굉장히 특이합니다. 1편에서 말했듯이, 그는 미국의 자유와 대학 제도, 출판 시장, 표현의 자유 위에서 세계적인 반체제 지식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비판한 대상 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것은 미국의 군사력, 특히 펜타곤이었습니다.

촘스키에게 펜타곤은 단순한 국방 조직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미국 제국주의의 핵심 기관이었고, 세계 곳곳의 폭력과 억압을 만들어내는 중심 장치였습니다. 그는 군산복합체와 대학의 결합을 비판했고, 대학이 군사 연구비를 받는 구조를 미국 사회의 군사화로 보았습니다. ROTC가 대학 캠퍼스에 있는 것에도 반대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장면이 나옵니다.

촘스키 자신의 학문적 경력은 바로 그 펜타곤 자금이 깊게 들어간 MIT 연구 환경 위에서 성장했습니다.

이것은 촘스키 비판에서 매우 중요한 대목입니다. 촘스키가 단순히 미국 외교정책을 비판했다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지식인은 국가를 비판할 수 있습니다. 군사주의를 비판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군사 연구비와 대학의 관계를 도덕적 문제로 제기하면서, 자신의 경우에는 그것을 단순한 제도적 배경이나 관료적 급여 문제로 처리했다는 점입니다.

즉 문제는 펜타곤 자금 그 자체가 아닙니다. 문제는 기준의 비대칭입니다.

MIT라는 안전한 성채

촘스키는 MIT에서 명성을 얻었습니다. MIT는 현대 과학기술 연구의 중심지였고, 냉전기 미국의 군사·기술 연구와도 깊게 연결된 대학이었습니다. 특히 전자공학, 컴퓨터, 통신, 인공지능, 언어처리 같은 분야는 냉전기 군사 연구와 분리하기 어려웠습니다.

피터 슈와이처의 비판서 《Do as I Say (Not as I Do)》는 촘스키가 MIT 언어학과가 아니라 MIT 전자연구소에서 일했고, 이 연구소가 펜타곤과 다국적 기업의 자금으로 운영되었다고 지적합니다. 또한 그곳의 연구자들이 비교적 가벼운 강의 부담, 넓은 연구 지원, 높은 급여를 누렸다고 비판합니다. 이는 촘스키를 위선의 사례로 다루는 논쟁적인 책의 해석이므로, 아래에서는 군 지원 여부처럼 원문으로 확인되는 사실과 슈와이처의 평가를 구분해서 봐야 합니다.

물론 이것만으로 촘스키를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냉전기 미국의 주요 연구대학에서 국방 관련 자금이 들어가지 않은 분야를 찾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인터넷, 컴퓨터, 통신, 항공우주, 전자공학, 인공지능 연구는 모두 군사적 필요와 민간 연구가 뒤섞여 발전했습니다.

따라서 “촘스키가 군 관련 자금이 있는 대학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진짜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는 그 구조를 알고 있었는가. 그 구조를 남에게 비판할 때와 자신에게 적용할 때 같은 기준을 사용했는가. 대학과 펜타곤의 결합을 도덕적으로 문제 삼았다면, 자신이 그 결합 위에서 얻은 혜택은 어떻게 설명했는가.

이 질문을 피할 수 없습니다.

『통사구조』와 군 연구비

촘스키의 초기 대표작인 『통사구조』는 현대 언어학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됩니다. 생성문법의 출발점으로 알려진 이 책은 언어학의 역사를 바꾸었다고 할 만큼 큰 영향력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슈와이처의 글은 이 책이 미 육군 신호군단, 미 공군 과학연구청 및 공군 연구개발사령부, 해군연구청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다고 지적합니다. 또한 다음 저작인 『통사 이론의 측면』도 미 육군·해군·공군이 참여한 공동 전자 프로그램 및 공군 전자 시스템 부서의 지원과 연결되어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이 대목은 중요합니다. 촘스키의 언어학 연구가 군사 무기 개발 그 자체였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의 학문적 기반이 냉전기 미국의 군사 연구 생태계와 무관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촘스키의 언어학은 순수한 학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냉전기 미국에서 순수학문과 군사 연구의 경계는 지금보다 훨씬 흐렸습니다. 특히 언어, 명령 체계, 컴퓨터, 번역, 정보처리, 통신은 모두 군사적 관심과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슈와이처는 공군이 컴퓨터가 영어를 이해하고 명령을 처리하는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고 설명하면서, 촘스키식 언어 연구가 군사적 지휘통제 시스템과 연결될 수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이 주장을 어디까지 받아들일지는 별도 검토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최소한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촘스키의 학문적 성공은 그가 악으로 묘사한 미국 군사·기술 연구 체계와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펜타곤을 비판하는 자유

여기서 다시 한국인의 시각이 중요해집니다. 한국인은 군사력을 순수한 악으로만 보기 어렵습니다. 한국전쟁과 분단을 경험한 사회에서 군사력은 억압의 도구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생존의 장치이기도 했습니다.

군대는 위험합니다. 군사주의는 자유를 억압할 수 있습니다. 국가 안보는 권력자가 국민을 통제하는 명분으로 악용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군사력 자체가 악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군사력이 없으면 자유도 지켜지지 않습니다. 한반도에서 그것은 관념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입니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는 군사적 억제력 위에서 유지되었습니다. 휴전선은 말로 지켜진 것이 아닙니다. 서울의 자유는 도덕적 구호만으로 유지된 것이 아닙니다. 북한군과 중공군의 남하가 있었고, 그것을 막아낸 군사적 힘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한국인의 눈에는 촘스키식 펜타곤 비판이 지나치게 단순해 보입니다. 미국 군사력이 늘 옳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베트남전, 이라크전, 중남미 개입 등 미국의 군사정책에는 비판받을 지점 많습니다. 그러나 미국 군사력을 단지 제국주의적 폭력으로만 설명하면, 그 군사력이 실제로 방어한 자유의 공간은 보이지 않게 됩니다.

촘스키는 바로 그 자유의 공간 안에서 펜타곤을 비판했습니다.

“누가 급여를 찍었는가”라는 답변

슈와이처의 글에 따르면, 그가 촘스키에게 펜타곤 자금 문제를 묻자 촘스키는 대략 이런 취지로 답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하는 일에 책임을 져야지, 누가 급여를 찍는가 같은 관료적 문제에 책임질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또 인터넷과 컴퓨터의 기원을 생각하면,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모두 펜타곤과 연결되어 있지 않느냐는 식의 반문도 했다고 합니다.

이 답변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완전히 순수한 돈은 거의 없습니다. 대학 연구비, 정부 보조금, 기업 자금, 군사 기술, 민간 기술은 서로 얽혀 있습니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이 모두 펜타곤을 위해 일하는 것은 아닙니다. 컴퓨터를 쓴다고 해서 군산복합체의 공범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명백한 범주 오류가 있습니다. 일반 대중이 사회의 기본 인프라로 자리 잡은 범용 기술(인터넷)을 일상 속에서 소비하는 것과, 지식인 개인이 펜타곤의 군사 자금이 직접 유입되어 만들어진 배타적 연구 환경 안에서 강의 경감이나 높은 연봉이라는 사유적 특권을 취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이것은 시스템의 일반적인 사용이 아니라, 자신이 도덕적 악으로 규탄한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구조적 연루"의 문제입니다. 촘스키는 이 명확한 두 차이를 교묘하게 버무려 자신의 도덕적 책임을 면피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촘스키의 문제는 여기서 다시 기준의 문제로 돌아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구조적 책임을 물었습니다. 기업에 투자한 사람, 국가 정책에 협력한 지식인, 언론에 참여한 전문가, 군사 연구비를 받은 대학을 향해서는 매우 넓은 도덕적 책임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경우에는 책임의 범위를 “내가 직접 한 일”로 좁혔습니다.

이것은 매우 흥미로운 논리입니다. 남에게는 구조적 책임을 묻고, 자신에게는 직접 책임만 묻습니다.

이 기준은 공정하지 않습니다.

ROTC와 연구비의 차이

촘스키는 대학 캠퍼스의 ROTC에 비판적이었습니다. 그는 대학이 군사 조직과 결합되어서는 안 된다고 보았고, 군대가 대학 캠퍼스에 들어오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베트남전과 걸프전 시기에도 이런 태도는 일관되게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학생이 ROTC 장학금을 받는 것은 도덕적 타협이고, 교수가 펜타곤 자금이 들어간 연구 환경에서 일하는 것은 단순한 관료적 문제입니까? 젊은 학생이 군 장학금으로 학비를 해결하는 것은 문제이고, 지식인이 군 관련 자금이 들어간 연구소에서 급여와 연구 지원을 받는 것은 괜찮습니까? 대학의 군사화는 학생에게 적용될 때는 위험하고, 교수의 연구 환경에 적용될 때는 복잡한 제도 문제입니까?

이 질문은 촘스키 개인에게 불편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권력과 제도와 자금의 연결을 누구보다 집요하게 비판해온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이 자신의 학문적 기반에 들어온 자금의 성격에 대해서는 비교적 느슨한 기준을 적용한다면, 독자는 당연히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식인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촘스키는 1967년 「지식인의 책임」에서 지식인은 진실을 말하고 거짓을 폭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글은 그를 미국 반전 지식인의 상징으로 만든 중요한 글입니다.

그렇다면 지식인의 책임은 어디까지입니까?

국가가 거짓말을 할 때 비판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언론이 권력의 메시지를 반복할 때 지적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지식인이 정부 정책을 합리화할 때 비판받아야 합니다. 촘스키는 바로 그런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준은 촘스키 자신에게도 적용되어야 합니다.

자신이 몸담은 대학의 연구비 구조는 검토 대상이 아닌가. 자신의 연구가 어떤 제도적 조건 위에서 가능했는지는 따질 필요가 없는가. 자신이 비판한 펜타곤이 제공한 연구 환경의 혜택은 도덕적 평가에서 제외되는가.

촘스키가 다른 지식인에게 요구한 것은 단순히 “나는 직접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다”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더 넓은 구조적 책임을 요구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자신에게도 그 넓은 기준을 적용했어야 합니다.

순수한 지식인의 신화

촘스키는 종종 체제 밖의 순수한 비판자처럼 소비되었습니다. 그러나 실제 촘스키는 미국 대학 체제 한복판에 있었습니다. 그것도 냉전기 군사·기술 연구와 깊게 얽힌 MIT라는 기관 안에 있었습니다.

이 사실이 촘스키의 언어학적 업적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의 학문적 성취는 별도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군 관련 자금이 있었다고 해서 그의 연구가 자동으로 군사 연구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순수한 반체제 지식인”이라는 이미지는 흔들립니다.

촘스키는 체제 밖에서 외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체제 안에서, 체제의 자금과 대학 제도와 연구 인프라 속에서 성장한 지식인이었습니다. 그는 미국 자유 체제가 허용한 반미 지식인이었고, 미국 군사·기술 연구 생태계의 혜택을 받은 반군사주의자였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인신공격이 아닙니다. 현대 지식인의 조건에 대한 질문입니다. 지식인은 자신이 비판하는 체제와 완전히 분리되어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최소한 그 복잡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촘스키의 문제는 복잡한 체제 안에 있었다는 점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 체제를 너무 단순한 악으로 묘사했다는 점입니다.

한국인의 경험에서 본 군사력

한국인은 군사력의 위험을 압니다. 군사정권을 겪었고, 반공이 권력 유지의 명분으로 쓰인 역사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군사력과 안보 논리가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는 촘스키식 경고를 완전히 무시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인은 동시에 군사력의 필요도 압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은 실제로 남침했습니다. 중공군은 실제로 압록강을 넘어왔습니다. 수많은 병사와 민간인이 죽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실제로 사라질 뻔했습니다.

이런 역사를 가진 사회에서 펜타곤과 미국 군사력을 단지 악의 기관으로만 묘사하는 것은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합니다. 그 힘은 베트남에서 파괴적이었을 수 있지만, 한반도에서는 대한민국의 생존과 연결되었습니다. 그 힘은 때로 오만했고, 때로 폭력적이었지만, 동시에 공산주의 전체주의의 확장을 막은 억제력이기도 했습니다.

촘스키는 이 양면성을 충분히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군사력의 위험은 크게 보았지만, 군사력이 막아낸 폭력은 작게 보았습니다. 그는 미국의 폭력은 집요하게 추적했지만, 미국이 억제한 폭력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습니다.

한국인의 눈에는 바로 이 점이 보입니다.

문제는 펜타곤이 아니라 이중 기준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글의 결론은 “촘스키가 펜타곤 자금과 연결되었으니 위선자다”라는 단순한 말이 아닙니다. 그렇게 쓰면 글이 약해집니다.

더 정확한 결론은 이것입니다.

촘스키는 펜타곤과 대학의 결합을 비판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비판을 하려면 자신이 그 결합의 혜택을 받은 사실도 정직하게 다루어야 했습니다. 다른 지식인에게 구조적 책임을 묻는다면, 자신에게도 구조적 책임을 물어야 했습니다. 군사 연구비를 도덕적 문제로 본다면, 자신의 학문적 성장 환경에 들어온 군사 연구비도 같은 기준으로 설명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지식인의 책임입니다.

촘스키가 특별히 나쁜 사람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인간적으로 매우 일반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유리한 구조는 복잡하게 설명하고, 타인에게 불리한 구조는 도덕적으로 단순화합니다. 자신이 받는 돈은 제도적 배경이고, 남이 받는 돈은 권력과의 타협이 됩니다.

바로 이 일반적 인간성이 촘스키에게서도 보인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문제는 그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지식인의 도덕적 책임을 가장 강하게 말한 인물이었다는 점입니다.

자유의 하드웨어를 악으로만 볼 수 있는가

촘스키의 펜타곤 비판은 미국 좌파 지식사회에서 강력한 도덕적 언어였습니다. 그러나 한국인의 경험에서 보면, 펜타곤은 단순한 악의 상징이 아닙니다. 그것은 때로 제국의 도구였지만, 때로 자유의 하드웨어이기도 했습니다.

자유는 말로만 지켜지지 않습니다. 민주주의는 선언만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국가는 생존해야 자유를 논할 수 있습니다. 동맹과 억제력이 무너지면, 인권과 표현의 자유도 함께 무너질 수 있습니다.

촘스키는 자유를 말했지만, 자유를 지탱하는 하드웨어를 너무 쉽게 악으로 돌렸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하드웨어가 만든 연구 환경 안에서 그는 세계적인 지식인이 되었습니다. 즉 그가 누린 MIT 전자연구소의 풍요로운 환경이야말로, 그가 평생 비난해 마지않았던 안보와 군사력이라는 "자유의 하드웨어"가 제공한 가장 대표적인 문명적 혜택 중 하나였던 셈입니다.

이것이 촘스키의 두 번째 역설입니다.

그는 펜타곤을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학문적 성공은 펜타곤 자금이 스며든 냉전기 미국 대학 체제와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군사력을 악으로 묘사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누린 자유는 군사적 억제력과 국가 생존의 조건 위에서 가능했습니다. 그는 지식인의 책임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적용한 책임의 범위는 남에게 요구한 것보다 훨씬 좁아 보였습니다.

촘스키를 읽을 때, 이 질문을 피할 수 없습니다.

지식인은 자신이 비판하는 체제의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혜택을 누리면서 그 체제를 절대악으로 묘사해도 되는가. 남에게는 구조적 책임을 묻고, 자신에게는 직접 책임만 묻는 것이 공정한가. 자유의 하드웨어를 악으로만 규정하면서, 그 하드웨어가 지켜준 자유를 누리는 것은 정직한가.

노암 촘스키는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한국인의 눈에 더욱 특이하게 보입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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