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신념은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다


신념이란 주관적인 확신에 찬 기억의 한 종류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뇌과학과 경험주의의 관점에서 본 신념의 본질과 독단주의의 위험성.

지워지지 않는 기억과 신념을 형상화한 일러스트
우리의 뇌리에 강하게 낙인찍힌 신념은 지워지지 않는 정서적 기억의 다른 이름일 수 있습니다.

신념은 생각의 결과인가

사람들은 흔히 신념을 '생각의 결과'라고 믿습니다. 충분한 정보를 수집하고, 논리적으로 판단하며, 여러 가능성을 비교한 뒤 도달하는 이성적인 결론이 곧 신념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니엘 쉑터의 《뇌와 기억, 그리고 신념의 형성》에는 신념에 대한 아래와 같은 명문장이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신념”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그것이 의미하는 관점에서 본다면 과거에 대한 의사신념은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즉 웹스터 사전에서는 ‘신념’을 ‘즉각적으로 확실한 증거 없이도 어떤 것의 존재나 진실에 대해 확신을 가지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신념이 증명할 수 없는 주장의 진실에 관한 주관적인 확신이라고 정의된다면 기억은 신념의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 다니엘 쉑터

실제 인간의 행동을 관찰해 보면 신념은 생각보다 훨씬 원초적이고 감정적인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한 번 싫어하게 되면 그 감정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특정 음식에 강한 혐오를 느끼면 수십 년이 지나도 입에 대지 못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정치적 신념 역시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새로운 증거가 제시되고 명백한 사실이 눈앞에 확인되더라도, 사람들은 생각보다 쉽게 자신의 입장을 바꾸지 않습니다. 과연 왜 그런 것일까요?

한 번의 경험이 평생의 경계를 만든다

우리는 인간을 이성적인 존재로 규정하고 싶어 하지만, 진화는 인간을 철학자로 만들기 위해 설계하지 않았습니다. 진화의 제1 관심사는 진실이 아니라 오직 생존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혐오'라는 감정을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상한 음식을 먹고 심각한 식중독을 겪은 사람은 이후 그 음식의 냄새만 맡아도 즉각적인 불쾌감을 느낍니다. 심지어 지금은 안전하게 조리된 음식일지라도 몸이 먼저 거부 반응을 일으킵니다.

겉보기에는 비합리적인 과잉 반응처럼 보이지만, 진화의 관점에서는 대단히 효율적인 선택입니다. 만약 뇌가 독이 든 음식을 쉽게 잊어버린다면 생존할 확률은 급격히 낮아질 것입니다. 반면, 안전한 음식을 오인하여 피하는 것은 약간의 손해일 뿐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즉, 진화는 '잘못된 경계'보다 '놓쳐버린 경계'를 훨씬 더 치명적인 위협으로 평가한 것입니다.

실제로 심리학자 존 가르시아(John Garcia)는 쥐 실험을 통해 이러한 현상, 즉 '가르시아 효과'를 증명했습니다. 쥐는 특정한 맛을 본 후 구토를 유발하는 자극을 받으면, 단 한 번의 경험만으로도 그 맛을 완강하게 회피했습니다. 일반적인 학습이 수많은 반복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과 달리, 생존에 직결된 기억은 단 한 번의 강력한 각인으로 완성됩니다. 최근 진화심리학이 혐오를 행동면역계(Behavioral Immune System)의 일부로 설명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실제 생물학적 면역계가 몸속에 침투한 병원체를 제거한다면, 행동면역계는 병을 일으킬 만한 대상 근처에 가지도 않도록 막아서는 심리적 방어벽입니다. 결국 혐오는 단순한 기분의 문제가 아니라, 미래의 위험 행동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뇌에 깊이 아로새겨진 기억인 셈입니다.

두려움이라는 감정 역시 동일한 메커니즘으로 작동합니다. 어린 시절 개에게 물렸던 경험은 성인이 되어서도 개를 피하게 만들고, 높은 곳에서 추락할 뻔했던 찰나의 공포는 평생의 고소공포증으로 남습니다. 우리의 뇌는 위험에 노출되었던 경험을 결코 가볍게 잊지 않습니다.

감정은 어떻게 신념으로 굳어지는가

그렇다면 추상적인 '신념'의 영역은 어떨까요? 인간은 물리적인 위협이나 상한 음식뿐만 아니라, 타인의 배신, 사회적 모욕, 혹은 집단으로부터의 배제 같은 고도의 사회적 위험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이러한 정서적 상처 역시 매우 강렬한 감정과 함께 뇌리에 깊숙이 각인되며,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하나의 굳건한 신념으로 고착됩니다.

"사람은 믿을 수 없다", "세상은 본래 불공정하다", 혹은 "특정 세력은 위험하다"와 같은 믿음들은 고도로 기획된 논리적 추론의 산물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과거에 겪었던 뼈아픈 경험과 그 순간 느꼈던 감정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정서적 기억에 가깝습니다. 도덕심리학자 조나단 하이트(Jonathan Haidt)가 지적했듯, 인간은 먼저 직관적으로 감정의 결론을 내린 뒤, 이성을 동원해 그 결론을 사후적으로 정당화할 뿐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신념의 본질은 축적된 '지식'이라기보다는 지워지지 않는 '기억'에 가깝습니다. 감정과 결합하여 쉽게 수정되지 않고, 인간의 미래 행동을 강력하게 지배한다는 점에서 혐오나 두려움의 작동 방식과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혐오가 "저것을 먹지 마"라고 속삭이고, 두려움이 "저곳에 가지 마"라고 경고한다면, 신념은 "이것을 믿고 저것을 경계하라"고 명령합니다. 이 세 가지는 모두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미래의 위험을 피하고자 설계된 진화적 생존 장치이기에 결코 쉽게 지워지지 않는 낙인이 됩니다.

신념이 독단으로 변하는 순간

그러나 바로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신념은 시련 속에서도 인간을 흔들리지 않게 지탱해주지만, 동시에 시야를 좁은 감옥에 가두어버립니다. 신념이 강해질수록 우리는 스스로를 검증하려 하지 않고, 정서적 기억과 결합한 신념은 자신과 배치되는 명백한 증거들조차 밀어내게 만듭니다. 결국 자신의 믿음을 의심하는 내면의 능력은 퇴화하고, 반대편의 신념을 공격하는 외적인 투쟁력만 비대해집니다. 이 지점에 도달하면 신념은 삶을 인도하는 지혜가 아니라, 타인을 옥죄는 독단(Dogmatism)으로 전락합니다.

경험주의는 신념을 잠정적인 것으로 만든다

그렇기에 보수주의와 궤를 같이하는 경험주의(Empiricism)적 태도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경험주의는 우리에게 신념을 갖지 말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가진 모든 신념은 언제나 '잠정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즉, 현재로서는 가장 합리적인 설명일지라도, 새로운 경험과 증거가 나타난다면 기꺼이 수정될 수 있는 유연함을 남겨두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자신이 틀릴 가능성을 제도적으로 승인하는 과학적 태도가 위대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독단주의는 자신의 주관적인 정서적 기억을 객관적인 진실로 착각하는 오만함에서 출발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목숨처럼 굳게 믿고 있는 신념들은 치열한 사색의 결과물이 아니라, 살아가며 가장 깊이 상처받고 느꼈던 경험의 흔적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참된 경험주의란, 내가 믿는 것조차 한낱 지워지지 않는 기억에 불과할 수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하는 겸손한 태도일 것입니다.

참고 자료

대니얼 L. 샥터·일레인 스캐리(편), 《뇌와 기억, 그리고 신념의 형성》, 한국신경인지기능연구회 옮김, 시그마프레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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