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선 보수주의자들도 리버럴을 아주 안 좋게 묘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나단 하이트는 그의 논문중 하나에서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전국 민주당은 철저히 부도덕하다.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하는 미국인은 누구든 최악의 타락을 조장하는 죄를 짓는 것이다. 이 당의 지도자들은 미국의 주류적이고 전통적인 가치와 심각하게 동떨어져 있다. 그들은 도착, 방종, 허무주의, 그리고 그보다 더 나쁜 것들을 위한 십자군이다.” — 조지프 파라, 월드넷데일리
“공화당원들은 상상력을 믿지 않는다. 부분적으로는 그들 중 상상력을 가진 사람이 너무 적기 때문이고, 더 큰 이유는 상상력이 그들이 선택한 일, 곧 인류와 지구를 파괴하는 일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상상력을 가진 인간이라면 재앙이 만들어지고 있는 과정을 알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인생의 목표가 재앙으로부터 이익을 얻는 것이며 인간에 대해서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공화당원들은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거나, 알아보려 하지 않는다.” — 마이클 파인골드, 빌리지 보이스
하지만 사실 현실적으로는 진보라는 이름보다 보수주의자라는 단어부터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에서 보수주의자들에 대한 평가가 인터넷에는 훨씬 흔할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실제로 그 말대로 믿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인식을 잘 드러내는 명언을 찾아봤습니다.
“보수는 돈을 사랑한다”는 오래된 프레임
"리버럴"은 자신들을 관대하고 따뜻한 사람들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보수주의자"는 탐욕스럽고, 인색하고, 사람보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이런 이미지는 단순한 인터넷 농담이 아닙니다. 미국의 지식인, 칼럼니스트, 정치인, 방송인, 대중문화 속에서 반복되어 온 오래된 프레임입니다.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하버드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보수주의를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The modern conservative is engaged in one of man’s oldest exercises in moral philosophy; that is, the search for a superior moral justification for selfishness.”
현대 보수주의자는 이기심에 더 고상한 도덕적 정당화를 부여하려 한다는 뜻입니다.
이 문장은 보수주의를 “이기심의 철학적 포장”으로 보는 대표적인 표현입니다.
앤서니 루이스
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앤서니 루이스도 보수주의자와 자본가를 비판하면서, 그들이 돈을 모든 가치의 척도로 삼는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인용됩니다.
“Money is the measure of all things.”
"보수주의자"는 인간보다 돈을 앞세운다는 이미지입니다.
이 인용은 정확한 원문 확인이 더 필요합니다. 그러나 "리버럴"이 "보수주의자"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보여주는 사례로는 의미가 있습니다.
조지 소로스
"조지 소로스"는 부유층 감세나 상속세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탐욕의 언어로 비판해 왔습니다.
그는 자신을 열린 사회를 위한 기부자로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금융시장에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억만장자였습니다.
이 점에서 "소로스"는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그는 다른 부자들의 돈은 탐욕으로 비판하면서, 자신의 돈은 세계를 바꾸는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짐 위버
전 오리건 민주당 하원의원 짐 위버는 "보수주의자"들이 다른 사람의 곤경에 대한 인식이 낮고, "리버럴"은 더 큰 공감 능력을 가진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인용됩니다.
그는 "보수주의자"의 탐욕이 유전적 구성의 일부라는 식으로도 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 인용도 원문 확인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보수주의자"를 단순한 정책적 반대자가 아니라,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묘사하는 사례입니다.
“리버럴은 사람을 사랑하고, 보수는 돈을 사랑한다”
이 프레임은 대중문화에도 나타납니다.
인터넷에서는 다음 문구가 들어간 티셔츠가 팔립니다.
“Liberals love people. Conservatives love money.”
"리버럴"은 사람을 사랑하고, "보수주의자"는 돈을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이 문구는 조잡하지만 매우 분명합니다. "리버럴"은 자신을 사람의 편에 놓고, "보수주의자"를 돈의 편에 놓습니다.
앨런 콤스
방송인 앨런 콤스는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Jesus was a liberal.”
예수는 리버럴이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예수의 자비와 가난한 사람에 대한 관심을 현대 리버럴 정치와 연결합니다. 동시에 "보수주의자"를 예수의 자비에서 멀리 떨어진 집단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벤 와튼버그
벤 와튼버그는 미국 정치문화 속 이미지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The word ‘conservative’ conjures up images of the miserly Ebenezer Scrooge, while ‘liberal’ brings to mind kindly Santa Claus.”
“보수”라는 단어는 인색한 에베네저 스크루지를 떠올리게 하고, “리버럴”이라는 단어는 친절한 산타클로스를 떠올리게 한다는 뜻입니다.
이 표현은 당시 미국 사회에 퍼져 있던 이미지를 잘 보여줍니다. "보수"는 인색한 사람, "리버럴"은 베푸는 사람으로 그려졌습니다.
개리슨 케일러
작가이자 방송인인 개리슨 케일러도 공화당원과 "보수주의자"를 인간의 고통에 둔감한 사람들처럼 묘사했습니다.
그는 "보수주의자"를 다른 정책관을 가진 시민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고통받는 사람을 보고도 지나치는 사람처럼 그렸습니다.
이 역시 같은 프레임입니다. "리버럴"은 공감하는 사람이고, "보수주의자"는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입니다.
정리
이 사례들은 하나의 공통된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 "리버럴"은 사람을 사랑합니다.
- "보수주의자"는 돈을 사랑합니다.
- "리버럴"은 관대합니다.
- "보수주의자"는 인색합니다.
- "리버럴"은 예수와 산타클로스에 가깝습니다.
- "보수주의자"는 스크루지에 가깝습니다.
- "리버럴"은 약자의 편입니다.
- "보수주의자"는 부자의 편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정책 비판이 아닙니다. "보수주의자"를 도덕적으로 낮게 그리는 방식입니다. "보수주의자"는 다른 경제관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탐욕스럽고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이런 인식은 이후 보수와 진보의 자선, 기부, 봉사 문제를 살펴볼 때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