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개리슨 케일러의 미국 보수에 대한 인식


개리슨 케일러의 에세이를 통해 리버럴이 보수주의자를 바라보는 ‘도덕적 비난의 렌즈’를 분석하고, 두 진영이 상대를 바라보는 인지 구조와 그 이면의 한계를 고찰합니다.

한 리버럴이 바라보는 보수주의자: 개리슨 케일러의 『Homegrown Democrat』를 통해 본 미국 리버럴의 보수 인식

개리슨 케일러의 『Homegrown Democrat』를 통해 본 미국 리버럴의 보수 인식

개리슨 케일러(Garrison Keillor)는 미국의 작가이자 라디오 진행자입니다. 그는 공영 라디오 프로그램 《프레리 홈 컴패니언》(A Prairie Home Companion)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특히 가상의 미네소타 소도시 “레이크 워비곤”(Lake Wobegon)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들은 미국 중서부의 생활감각과 유머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런 그가 2004년에 쓴 정치 에세이가 『Homegrown Democrat』입니다. 제목을 그대로 옮기면 “토박이 민주당원” 정도가 됩니다. 이 책은 정치학 논문이 아닙니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한 미국 리버럴이, 자기 삶의 경험과 도덕감각을 바탕으로 쓴 정치적 고백에 가깝습니다.

케일러는 자신이 리버럴인 이유를 복잡한 이념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는 리버럴리즘을 친절의 정치라고 말합니다.

“I am a liberal and liberalism is the politics of kindness.” “나는 리버럴이며, 리버럴리즘은 친절의 정치이다.”

이 문장은 케일러의 정치관을 거의 압축합니다. 그에게 민주당적 감각은 친절, 예의, 관용, 약자 보호, 공공성의 감각입니다. 그는 민주당의 가치가 “courtesy and kindness”, 즉 예의와 친절에 뿌리를 둔다고 말합니다.

“The values of Democrats are rooted in courtesy and kindness.” “민주당의 가치는 예의와 친절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은 동시에 매우 공격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리버럴리즘이 친절의 정치라면, 그 반대편에 있는 공화당과 보수주의는 자연스럽게 불친절의 정치가 되기 때문입니다.

케일러는 공화당을 단순히 다른 정책을 가진 정당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는 공화당을 고통받는 사람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정치로 묘사합니다.

그가 말하는 민주당의 기초는 단순합니다. 사람이 도랑에 쓰러져 죽어가고 있다면,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This is Democratic bedrock: we don’t let people lie in the ditch and drive past and pretend not to see them dying.” “이것이 민주당의 기반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도랑에 누워 있는데 차를 몰고 지나가며 그들이 죽어가는 것을 못 본 척하지 않는다.”

이 문장에서 케일러가 말하는 민주당은 복지국가의 정당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감당할 수 없는 불행을 만날 수 있습니다. 병든 아이가 태어날 수도 있고, 가족이 무너질 수도 있고, 가난과 학대와 질병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공동체는 그 사람을 혼자 버려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그는 공화당의 감세론자들을 매우 거칠게 비난합니다.

“To the hard-ass redneck Republican tax cutter of the suburbs, human misery is all a fiction, something out of novels, stories of matchstick people.” “교외의 냉혹한 촌뜨기 공화당 감세론자에게 인간의 고통은 모두 허구이다. 소설 속 이야기, 성냥개비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이 표현은 매우 노골적입니다. 케일러의 눈에 공화당 감세론자는 세금에는 예민하지만, 세금으로 유지되는 사회적 보호망이 무너지면 누가 고통받는지에는 무관심한 사람입니다.

그는 복지 예산 삭감의 결과를 학대받는 아이들의 사례로 설명합니다. 사회복지 예산을 줄이면, 학대 가정에서 아이들을 분리할 돈이 부족해집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다시 위험한 친척에게 보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세론자는 그 고통과 자기 정치 사이의 관계를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케일러는 그런 태도를 이렇게 부릅니다.

“This is the screw-you philosophy that festers under cover of modern Republicanism.” “이것이 현대 공화주의의 외피 아래 곪아 있는 ‘너나 당해라’ 철학이다.”

여기서 케일러의 비판은 단순히 “공화당은 부자 편이다”가 아닙니다. 그의 비판은 더 도덕적입니다. 공화당은 타인의 고통을 자기 삶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가족이 아니고, 자기 아이가 아니고, 자기 동네 일이 아니면 그것을 그냥 지나친다는 것입니다.

문화 문제에 대한 비판도 비슷합니다. 케일러는 공화당이 굶주림과 노숙에는 둔감하면서, 동성애 문제에는 지나치게 예민하다고 조롱합니다.

“Hunger and homelessness don’t get their attention but the sight of two women kissing gets Republicans all buzzed, what a porch light does for moths.” “굶주림과 노숙은 그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지만, 두 여성이 키스하는 장면은 공화당원들을 흥분시킨다. 현관등이 나방을 끌어들이는 것처럼 말이다.”

이 문장은 리버럴이 보수주의자를 어떻게 보는지 잘 보여줍니다. 리버럴의 눈에 보수주의자는 실제 인간의 고통보다 성적 규범의 위반에 더 민감한 사람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굶는 문제보다, 두 여성이 키스하는 장면에 더 흥분하는 사람입니다.

동성애 문제에 대해서도 그는 보수주의를 잔인함의 한 형태로 봅니다.

“We have the same aversion to homophobes: it’s simply another form of cruelty.” “우리는 동성애 혐오자들에게도 같은 혐오감을 느낀다. 그것은 단지 또 다른 형태의 잔인함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동성애 혐오는 전통의 수호가 아닙니다. 그것은 약자를 괴롭히는 잔인함입니다. 여기서도 케일러는 보수주의를 독립된 도덕철학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는 보수주의를 친절의 결핍, 관용의 결핍, 공감의 결핍으로 봅니다.

케일러는 공화당의 자수성가 담론도 비판합니다. 그는 공화당 교외 지역을 보며, 그곳 사람들이 뉴딜, 페어딜, 위대한 사회 정책의 혜택을 받고 중산층으로 올라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마치 아무 도움 없이 자기 힘만으로 성공한 것처럼 행동한다고 비판합니다.

“They enabled people of modest means to get a leg up in the world and eventually become right-wing reactionaries and pretend that they sprang fully formed from their own ambitions with no help from anybody.” “그 정책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세상에서 발판을 얻도록 도왔고, 그들은 결국 우익 반동주의자가 되어 아무 도움도 받지 않고 자기 야망만으로 완성된 존재처럼 행세하게 되었다.”

이것은 위선에 대한 비판입니다. 보수주의자는 자신이 받은 도움은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이 도움을 받는 것은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케일러는 이어서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이 받았던 것을 거부한다고 말합니다.

“And vote to deny to others what they themselves were freely given.” “그리고 자신들이 거저 받았던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는 거부하는 데 투표한다.”

이 문장은 한국 사회에도 익숙하게 들립니다. 과거의 성장, 교육, 산업화, 공공투자, 국가 지원의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 나중에는 “나는 내 힘으로 컸다”고 말하는 장면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습니다. 자신은 제도의 도움을 받았지만, 다음 세대나 약자에게 돌아갈 도움은 “퍼주기”라고 부르는 장면도 비슷합니다.

물론 케일러의 시선이 공정한 보수주의 해석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는 보수주의를 버크적 전통, 질서, 책임, 국가권력에 대한 경계, 재정 지속가능성 같은 관점에서 깊이 다루지 않습니다.

그는 보수주의를 한 리버럴의 도덕감각으로 바라봅니다. 그 도덕감각의 중심에는 친절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눈에 보수주의자는 현실주의자가 아니라 불친절한 사람입니다. 책임을 말하지만 약자에게 냉정한 사람입니다. 가족을 말하지만 남의 가족의 고통에는 무심한 사람입니다. 종교를 말하지만 이웃 사랑은 실천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입니다. 케일러는 보수주의의 본질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리버럴이 보수주의자를 어떻게 상상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리버럴은 자신을 친절하고 예민하며 타인의 고통에 반응하는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반대로 보수주의자는 자기 이익을 지키고, 세금을 아끼고, 약자의 고통을 외면하고, 성적 소수자에게만 분노하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한국 정치에서도 이 구조는 반복됩니다. 진보는 자신을 약자, 인권, 평등, 연대의 언어로 설명합니다. 보수는 종종 기득권, 냉정함, 성장주의, 권위주의, 반공주의의 이미지로 묶입니다. 미국 리버럴이 공화당을 바라보는 감정 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위험도 있습니다. 상대의 정책을 비판하는 것을 넘어, 상대를 도덕적으로 결함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리기 쉽기 때문입니다. 보수주의자는 스스로를 냉정한 사람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이 위험하고, 제도는 쉽게 망가지며, 선의만으로 정책을 만들면 부작용이 생긴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복지를 반대하는 것이 언제나 고통에 대한 무관심은 아닙니다. 때로는 재정의 지속가능성, 책임의 약화, 국가 의존성 확대를 우려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가족과 전통을 강조하는 것도 단순한 혐오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안에는 질서와 공동체 규범에 대한 불안이 섞여 있습니다.

그럼에도 케일러의 글은 중요합니다. 그것은 보수주의자가 리버럴의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를 매우 선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한 리버럴이 바라보는 보수주의자는 단순히 다른 정책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친절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고통받는 사람을 보고도 지나치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받은 도움은 잊고, 남이 받을 도움은 막는 사람입니다.

이 시선이 옳은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정치적 갈등을 이해하려면, 이런 시선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많은 논쟁은 정책의 차이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어떤 종류의 인간으로 보는가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편견과 고정관념에 대해 보수 진영이 느끼는 부당함과 구체적인 반론은 보수주의자는 정말 냉혈한인가? 포스트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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