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ruce Fleming의 《Why Liberals and Conservatives Clash》와 하버드 장기 연구가 보여주는 차이
보수와 진보는 왜 늘 충돌할까. 흔히 이 문제는 정책 차이로 설명됩니다. 세금, 복지, 낙태, 동성결혼, 종교, 군대, 환경 같은 이슈에서 양쪽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싸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Bruce Fleming의 《Why Liberals and Conservatives Clash》는 조금 다른 설명을 제시합니다. 그는 보수와 진보의 차이를 단순한 정책 차이가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기본 구조의 차이로 봅니다. 보수와 진보는 같은 문제를 두고 다른 답을 내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무엇을 문제로 볼 것인가부터 다릅니다.
이 책은 2006년 Routledge에서 출간되었습니다. Fleming은 미국 해군사관학교에서 가르친 영어학 교수입니다. 이 배경이 중요합니다. 그는 자신을 자유주의자라고 보지만, 동시에 매우 보수적인 제도인 해군사관학교 안에서 오랫동안 생활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보수주의자의 자기 설명은 아니지만, 보수적 세계를 가까이에서 관찰한 자유주의자의 해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보수주의는 말보다 행동에 가깝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문장은 이것입니다.
보수주의는 말해지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행해지는 것의 문제입니다. 반대로 자유주의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 입장을 표현하는 일, 곧 말의 문제입니다.
이 구분은 매우 중요합니다. Fleming에 따르면 보수주의자는 자신이 하는 일을 굳이 길게 정당화하려 하지 않습니다. 가족을 책임지고, 규칙을 지키고, 공동체를 유지하고, 전통을 따르는 것은 설명 이전에 이미 해야 할 일입니다. 보수주의자는 먼저 말하지 않습니다. 먼저 행동합니다.
보수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나는 어떤 입장인가”가 아닙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입니다. 그래서 보수주의자는 사회를 추상적 토론의 장으로 보기보다, 이미 주어진 역할과 책임이 작동하는 공동체로 봅니다.
보수주의의 핵심은 ‘융합’이다
Fleming은 보수주의의 출발점을 “분리”가 아니라 “융합”으로 봅니다.
자유주의는 개인과 사회 사이의 거리를 먼저 의식합니다. 개인은 사회 안에서 자기 위치를 설명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조정하고, 차별과 억압을 말로 드러내야 합니다. 여기서는 개인과 사회가 어느 정도 분리되어 있습니다.
반면 보수주의자는 개인과 공동체를 따로 떼어놓고 보지 않습니다. 사람은 이미 가족, 지역, 국가, 종교, 직업, 전통 안에 놓여 있습니다. 개인은 먼저 독립된 주체로 서서 사회를 평가하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어떤 질서 속에 속해 있고 그 안에서 행동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보수주의자는 자신이 왜 공동체를 지켜야 하는지, 왜 전통을 존중해야 하는지, 왜 규칙을 따라야 하는지 매번 설명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말 이전의 감각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자유주의는 말과 관계의 세계관이다
반대로 자유주의는 말의 세계관입니다. 자유주의자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위치에 있는가”, “나는 누구와 어떤 관계에 있는가”, “나는 억압받고 있는가”, “나는 누구의 편에 서 있는가”를 말로 설명하려 합니다.
자유주의자는 기존 질서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그 질서가 누구에게 불리한지 묻습니다. 그래서 차별, 억압, 권리, 인정, 정체성, 선택 같은 단어가 중요해집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문제를 말해야 하고, 억압을 드러내야 하며, 관계를 새로 정의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것이 자유주의의 힘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약점이기도 합니다. 말이 많아질수록 행동은 뒤로 밀릴 수 있습니다. 입장을 표현하는 일이 실제 책임을 지는 일보다 앞설 수 있습니다. 자신이 어느 편에 서 있는지를 밝히는 일이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를 대신할 수도 있습니다.
하버드 장기 연구도 비슷한 차이를 보여준다
흥미롭게도 하버드 매거진에 소개된 하버드 성인발달연구, 즉 Grant Study도 비슷한 방향의 관찰을 보여줍니다.
이 연구는 1940년에서 1942년 사이 하버드 2학년이었던 남성 268명을 장기간 추적한 연구입니다. 원래 목적은 무엇이 정신적·신체적으로 건강한 삶을 만드는가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연구는 정치 성향과 성격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자료를 남겼습니다.
연구 대상자 중 상당수는 확고한 진보 또는 확고한 보수로 분류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정치 성향은 매우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젊을 때 공화당원이었던 사람은 노년에도 공화당원인 경우가 많았고, 민주당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성격적 차이도 있었습니다. 공화당 성향의 사람들은 더 실용적이고, 조직적이며, 현실적인 성향을 보였습니다. “말하지 말고 보여달라”는 유형에 가까웠습니다. 반면 민주당 성향의 사람들은 더 문화적이고, 언어적이며, 정서적으로 민감한 경향을 보였습니다.
이 대목은 Fleming의 설명과 잘 맞습니다. Fleming은 보수주의를 행동의 세계관으로 보았습니다. Grant Study에서 공화당 성향자도 실용적이고 조직적이며 행동 지향적인 사람들로 묘사되었습니다. 반대로 Fleming은 자유주의를 말과 관계의 세계관으로 보았습니다. Grant Study에서 민주당 성향자도 언어적이고 문화적이며 민감한 사람들로 묘사되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완전히 같은 연구가 아닙니다. Fleming의 책은 문화비평적 해석이고, Grant Study는 장기 추적 연구입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자료가 비슷한 인상을 줍니다. 보수와 진보의 차이는 선악의 차이가 아니라, 행동과 언어, 실용성과 민감성, 역할 수행과 자기 표현의 차이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진보가 더 착하다는 증거는 없었다
Grant Study에서 더 중요한 점은 이타성입니다. 연구자 George Vaillant는 평생 민주당 지지자였고, 자신도 원래 민주당원이 공화당원보다 더 친절하고 이타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연구 결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공화당 성향자와 민주당 성향자는 행복한 어린 시절, 정신질환, 알코올중독, 이혼, 이타성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두 집단은 서로 다른 기질을 보였을 뿐, 어느 한쪽이 더 건강하거나 더 성숙하거나 더 이타적이라는 결과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 점은 중요합니다. 정치적 언어에서는 진보가 더 따뜻하고, 보수가 더 차갑다는 이미지가 자주 반복됩니다. 그러나 장기 연구의 자료는 그런 도덕적 우월성을 확인해 주지 않았습니다. 진보주의자는 더 언어적이고 민감할 수 있지만, 그것이 곧 더 이타적이라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왜 양쪽은 서로를 오해하는가
보수주의자는 자유주의자를 보면 말만 많다고 느낍니다. 늘 문제를 제기하고, 기존 질서를 의심하고, 자기 입장을 설명하고, 타인의 위치를 분석합니다. 보수주의자에게 이것은 현실에서 벗어난 말의 과잉처럼 보입니다.
반대로 자유주의자는 보수주의자를 보면 무감각하다고 느낍니다. 왜 기존 질서가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는지 보지 못하는가. 왜 차별과 억압을 말하지 않는가. 왜 자기 입장을 설명하지 않는가. 자유주의자에게 보수주의자는 말해야 할 것을 말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Fleming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단순한 선악의 차이가 아닙니다. 한쪽은 행동과 규칙을 중심으로 세계를 보고, 다른 한쪽은 말과 관계를 중심으로 세계를 봅니다. 그래서 같은 사건을 보아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반응합니다.
보수와 진보의 특징
Fleming과 Grant Study를 함께 놓고 보면 보수주의자의 특징은 비교적 분명합니다.
보수주의자는 행동을 중시합니다. 말보다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를 봅니다. 공동체와 개인을 분리하지 않고, 이미 주어진 질서 안에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가족, 전통, 규칙, 책임, 조직, 목표 달성 같은 가치가 강합니다. 그래서 보수주의자는 흔히 실용적이고, 집중력이 있고, 목표 지향적이며, 개인을 넘어선 더 큰 질서를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진보주의자는 말을 중시합니다. 여기서 말은 단순한 수다가 아니라, 자기 입장을 표현하고 사회적 관계를 새로 정의하는 언어입니다. 진보주의자는 차이, 억압, 권리, 정체성, 구조적 문제에 민감합니다. 개인이 어떤 조건 속에 놓여 있는지를 묻고, 기존 질서가 만들어낸 불평등을 드러내려 합니다. 그래서 장기적 결과, 구조적 문제, 개인차와 상황의 다양성에 더 민감할 수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보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묻고, 진보는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를 묻습니다. 보수는 역할과 책임을 먼저 보고, 진보는 위치와 관계를 먼저 봅니다. 보수는 행위의 언어에 가깝고, 진보는 해석의 언어에 가깝습니다.
결론: 보수와 진보는 다른 언어를 쓴다
《Why Liberals and Conservatives Clash》의 핵심은 보수와 진보가 단순히 다른 의견을 가진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계관의 구조를 가진다는 데 있습니다.
보수주의는 행동의 세계관입니다. 자유주의는 말의 세계관입니다. 보수주의는 개인과 공동체의 융합에서 출발합니다. 자유주의는 개인과 사회의 분리에서 출발합니다.
하버드 Grant Study는 이 구분을 성격적 차원에서 보강해 줍니다. 공화당 성향자는 실용적이고 조직적이며 행동 지향적인 경향을 보였고, 민주당 성향자는 문화적이고 언어적이며 정서적으로 민감한 경향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쪽이 더 이타적이거나 더 건강하다는 결과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결론입니다. 보수주의는 성격장애가 아닙니다. 진보주의는 도덕적 우월성의 증거가 아닙니다. 보수와 진보의 차이는 선악의 차이가 아니라, 행동과 말, 융합과 분리, 책임 수행과 입장 표현의 차이에 가깝습니다.
보수주의자는 말보다 행동을 믿습니다. 진보주의자는 행동 이전에 말과 관계의 재정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보수주의자는 진보주의자를 말만 많은 사람으로 보고, 진보주의자는 보수주의자를 무감각한 사람으로 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둘 다 사회에 필요한 기능을 합니다. 문제는 한쪽이 다른 쪽을 이해하지 못할 때 생깁니다. 보수는 말의 힘을 과소평가하고, 진보는 행동의 무게를 과소평가합니다.
Fleming의 책과 하버드 장기 연구를 함께 읽으면, 보수와 진보의 충돌은 정책의 충돌이기 전에 세계관의 충돌이라는 점이 분명해집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말의 세계와 행동의 세계가 충돌하는 것입니다.
참고문헌
Bruce Fleming, Why Liberals and Conservatives Clash: A View from Annapolis, Routledge, 2006.
Erin O’Donnell, “Twigs Bent Left or Right,” Harvard Magazine, January-February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