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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는 정말 스크루지인가: 자기보고식 도덕성 조사의 함정


《이로운 보수 의로운 진보》에 인용된 67개국 도덕성 연구의 실체를 분석하며, 자기보고식 도덕성 조사가 안고 있는 한계와 리버럴의 도덕 우화가 지닌 맹점을 성찰합니다.

부자는 정말 스크루지인가: 자기보고식 도덕성 조사의 함정

진보주의자들이 보수주의자를 비판할 때 자주 사용하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보수주의자는 부자의 편이고, 부자는 스크루지처럼 인색하며, 가난한 사람은 더 따뜻하고 자애롭다는 이미지입니다. 이 구도는 오래된 도덕극에 가깝습니다. 부자는 혼자 힘으로 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타인에게 무관심하고, 가난한 사람은 서로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더 협력적이고 인간적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아서 브룩스가 밝힌 기부와 자선의 실상

그런데 이 이미지는 이미 경험적으로 도전받은 적이 있습니다. 아서 브룩스는 《Who Really Cares》에서 보수주의자들이 흔히 상상되는 스크루지 같은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을 자료로 제시했습니다. 그의 핵심 주장은 단순합니다. 정부를 통한 재분배에 반대한다고 해서 개인적 자선이나 기부에 인색한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실제로 브룩스는 "보수주의자"와 종교적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 개인적 기부와 자원봉사에서 더 적극적인 경향을 보인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작은 정부"를 선호하는 사람과 “남을 돕지 않는 사람”은 같은 범주가 아닙니다. 하버드비즈니스스쿨의 브룩스 소개도 《Who Really Cares》를 미국인의 자선과 기부를 다룬 책으로 설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강욱·최강혁의 《이로운 보수 의로운 진보》에 등장하는 다음 대목은 더 흥미롭습니다. 최강욱은 현실의 부자들이 스크루지처럼 인색한지, 아니면 사회적 지위에 맞게 더 도덕적인지를 묻습니다. 그리고 2010년 노르웨이의 아그데르대학과 덴마크 오르후스대학 공동 연구팀이 전 세계 67개국 4만 6000명을 대상으로 ‘부와 도덕성’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고 소개합니다. 연구팀은 배려심, 공정성, 관대함, 정직함 등의 자질을 1부터 10까지의 척도로 매겨 응답자들에게 질문하는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현실의 부자들은 스크루지 캐릭터와 유사할 확률이 높다. 부자가 더 인색하고 가난한 사람이 더 자애롭다. 가난한 사람이 선행을 베풀면 가난한 상대방은 그 선행에 보답하려 애쓰지만, 부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굳이 신경 쓰지 않는다. 혼자 힘으로도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회경제적지위가 낮은 사람이 행동과 태도에서 더 도덕적이다. 가난한 이들이 자선단체에 기부할 가능성이 더 높고, 다른 이들과 협력하는 것을 부자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불평등이 심한 나라의 국민일수록, 불평등이 심하지 않은 나라의 국민들보다 도덕성이 강하다.”

2010년 연구의 실체와 팩트체크

이 대목은 진보주의자의 도덕적 상상력에 매우 잘 맞습니다. 부자는 스크루지이고, 가난한 사람은 선한 이웃입니다. 보수주의자는 부자의 냉정한 세계관을 옹호하는 사람처럼 보이고, 진보주의자는 가난한 사람의 인간성과 협력성을 알아보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논문 자체를 확인해야 합니다. 책의 설명처럼 “2010년 논문”이라고 보기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 설명과 가장 잘 맞는 논문은 2023년 《Nature Communications》에 실린 Christian T. Elbæk, Panagiotis Mitkidis, Lene Aarøe, Tobias Otterbring의 논문입니다. 제목은 “Subjective socioeconomic status and income inequality are associated with self-reported morality across 67 countries”입니다. 제목부터 이미 핵심이 드러납니다. 이 논문은 “부와 도덕성”을 직접 측정한 연구라기보다, “주관적 사회경제적 지위와 소득불평등이 자기보고식 도덕성과 관련되어 있다”는 연구입니다. 논문은 67개국 자료를 사용했고, 정식 논문에서는 50,396명의 표본을 분석했다고 밝힙니다.

따라서 최강욱의 설명에는 적어도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 첫째, 연도와 표본 설명이 정확하지 않습니다. 이 연구는 2010년 논문이 아니라 2023년에 정식 게재된 논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 둘째, 더 중요한 문제는 연구의 성격입니다. 이 논문은 실제 도덕성을 직접 측정한 것이 아니라 자기보고식 도덕성을 측정했습니다. 논문 제목의 self-reported morality라는 표현을 생략하면, 연구의 의미가 크게 달라집니다.

자기보고식 도덕성(Self-Reported Morality)의 맹점

논문이 사용한 지표도 이 점을 보여줍니다. 연구는 낮은 주관적 사회경제적 지위가 moral identity, morality-as-cooperation, moral circle, prosocial intentions와 관련된다고 분석했습니다. 다시 말해 자신을 도덕적인 사람으로 보는 정체성, 협력 중심의 도덕관, 도덕적 배려의 범위, 친사회적 의향 같은 지표를 본 것입니다. 이것은 실제 범죄, 사기, 착취, 가족 책임, 약속 이행, 법 준수, 장기적 신뢰 같은 행동 전체를 측정한 연구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어떤 도덕 언어에 익숙하며, 친사회적 행동을 할 의향이 있다고 보고하는지를 분석한 연구입니다.

이 차이는 결정적입니다. 아서 브룩스가 주목한 것은 실제 기부와 자선 행동입니다. 반면 Elbæk 등의 논문이 다룬 것은 "자기보고식 도덕성"입니다. 이 둘은 같은 질문이 아닙니다. 누가 실제로 돈과 시간을 내는가와, 누가 자신을 더 배려심 있고 협력적인 사람으로 보고하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자신을 선하다고 말하는 사람과 실제로 선하게 행동하는 사람은 다를 수 있습니다.

"자기보고식 도덕성"은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을 배려심 있고 공정하고 관대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실제로 더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이 자신을 부족하고 죄 많은 사람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실제로 더 악한 사람인 것도 아닙니다.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가장 자주 죄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신부와 수도자들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가장 비도덕적인 사람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도덕적 기준이 높기 때문에 자신을 더 엄격하게 평가하는 것입니다.

'나는 선량하다'는 신념이 주는 면죄부

반대로 “나는 선하다”는 자기 인식은 때로 자기 성찰이 아니라 자기 정당화일 수 있습니다. 자신을 선량하고 공정하고 배려심 있는 사람으로 강하게 인식하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다른 사람을 도덕적으로 낮게 평가하는 독단주의적 성향을 가질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사회경제적 박탈감은 연대와 협력을 만들 수도 있지만, 동시에 상대적 분노와 원한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분노가 “나는 약자이므로 선하다”, “나는 피해자이므로 정의롭다”는 언어로 포장되면, 그것은 도덕성이 아니라 자기 면죄부가 됩니다.

또 하나 중요한 문제는 도덕성을 무엇으로 정의했느냐입니다. 이 논문은 협력, 배려, 관대함, 친사회적 의향을 중심으로 도덕성을 측정합니다. 이런 기준은 리버럴한 도덕 언어와 잘 맞습니다. 리버럴한 세계관에서는 상호의존, 협력, 공감, 평등성이 "도덕성"의 중심에 놓입니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낮은 사회경제적 지위의 사람들이 더 도덕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덕성"에는 책임, 절제, 약속 이행, 가족 부양, 법 준수, 신용, 장기적 기여도 포함됩니다. 이런 항목까지 포함하면 부와 도덕성의 관계는 훨씬 복잡해집니다.

두 진영이 마주한 각각의 도덕적 위험

부자가 반드시 도덕적인 것은 아닙니다. 부는 사람을 오만하게 만들 수 있고, 타인의 고통에 둔감하게 만들 수 있으며, 자신의 성공을 전부 자기 능력의 결과로 착각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난하다고 해서 반드시 더 도덕적인 것도 아닙니다. 가난은 사람을 협력적으로 만들 수도 있지만, 동시에 방어적이고 배타적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부와 가난은 각각 다른 도덕적 위험을 가집니다.

이 점에서 최강욱의 인용은 과학적 연구를 소개하는 형식을 취하지만, 실제로는 오래된 진보주의적 도덕 우화를 반복하는 효과를 냅니다. 부자는 스크루지이고, 가난한 사람은 선한 이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논문 자체는 그렇게 강한 결론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논문은 “부자의 악함”을 입증한 것이 아니라, “낮은 주관적 사회경제적 지위와 자기보고식 도덕성 사이의 관련성”을 보여준 연구입니다. 이 차이를 지우면 연구는 과학이 아니라 정치적 도덕극이 됩니다.

오히려 이 논문이 흥미로운 이유는 브룩스 이후에도 여전히 스크루지 서사가 반복된다는 점입니다. 보수주의자들이 실제 기부와 자선에서 결코 인색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연구가 이미 제기되었는데도, 또 다른 연구는 자기보고식 도덕성을 근거로 가난한 사람이 더 도덕적이라는 이미지를 되살립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바뀌어야 합니다. “부자가 더 나쁜가”가 아니라 “왜 리버럴한 연구와 해석은 부자를 계속 스크루지로 보고 싶어 하는가”입니다.

결국 핵심은 이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착하다고 말하는 사람과 실제로 착한 사람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선하다”는 믿음은 때로 가장 위험한 독단주의의 시작이 되기도 합니다. 도덕성은 자기보고가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무엇을 말했는가보다 무엇을 했는가가 중요합니다.

참고문헌

  1. Elbæk, Christian T., Panagiotis Mitkidis, Lene Aarøe, and Tobias Otterbring. “Subjective socioeconomic status and income inequality are associated with self-reported morality across 67 countries.” Nature Communications, 2023.

  2. Brooks, Arthur C. Who Really Cares: The Surprising Truth About Compassionate Conservatism. New York: Basic Books, 2006.

  3. Harvard Business School. “Arthur C. Br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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