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가난한 사람은 왜 보수정당에 투표하는가: 계급 배반 프레임의 한계


"왜 가난한 사람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라는 프레임의 협소함을 지적하고, 저소득층이 보수정당을 선택하는 합리적인 이유와 가치를 분석합니다.

가난한 사람은 왜 보수정당에 투표하는가: 계급 배반 프레임의 한계

가난한 사람이 보수정당에 투표하는 현상은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왔습니다. 특히 진보적 지식인들은 이 문제를 매우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그들의 눈에는 보수정당이 대체로 시장, 기업, 감세, 규제 완화, 작은 정부를 강조하는 정당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진보정당은 복지, 재분배, 노동권, 사회적 약자 보호를 강조합니다. 그렇다면 가난한 사람은 당연히 진보정당을 지지해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진보정당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저소득층 가운데서도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다만 미국의 장기 자료에서는 개인 소득이 높을수록 공화당에 투표할 가능성이 커지고, 저소득 유권자는 평균적으로 민주당에 더 기울었던 시기가 길었습니다. 이 글이 설명하려는 것은 저소득층 전체가 보수적이라는 주장이 아니라, 소득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보수 투표가 왜 생기는가입니다.

이때 자주 나오는 질문이 있습니다.

“왜 가난한 사람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사람은 소득만으로 투표하지 않는다

이 질문은 얼핏 날카로워 보이지만, 사실 그 안에는 이미 강한 전제가 들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의 이익은 당연히 진보정당과 일치하고, 보수정당은 부자의 이익을 대변하며, 가난한 사람이 보수정당에 투표하는 것은 자기 이익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라는 전제입니다. 즉 이 질문은 가난한 사람을 하나의 독립적인 정치적 판단 주체로 보기보다, 진보정당을 찍어야 정상인데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바라봅니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좁은 시각입니다. 사람은 소득만으로 투표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경제적 존재이지만, 경제적 존재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자신이 속한 지역, 세대, 가족, 직업, 종교, 국가관, 안보관, 도덕관, 삶의 경험을 함께 가지고 투표합니다. 가난한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난한 사람도 복지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도 질서, 자유, 안정, 품위, 자립, 책임, 공동체, 국가의 방향을 함께 봅니다.

진보적 관점에서는 복지 확대가 저소득층에게 당연히 이익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당사자는 그렇게 느끼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떤 자영업자는 소득이 낮아도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 규제가 자신의 생존을 위협한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어떤 노동자는 복지 확대보다 기업이 살아남아 일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떤 노년층은 현금 지원보다 안보와 질서를 더 중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청년은 국가의 지원보다 규제 완화와 기회의 확대를 더 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선택을 두고 “부자를 위해 투표한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합니다. 그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경제 질서, 국가 안정, 지역 이익, 직업 현실, 삶의 방식에 따라 투표하는 것입니다. 진보 지식인의 눈에는 그것이 계급 배반처럼 보일 수 있지만, 당사자에게는 충분히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습니다.

'부자'는 적대와 착취의 대상인가

더구나 “부자”라는 말 자체도 조심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진보적 담론에서 부자는 종종 사회적 자원을 독점하고 약자를 착취하는 집단처럼 그려집니다. 그러나 현실의 부자는 하나의 동질적 집단이 아닙니다. 대기업 오너, 전문직, 중소기업 경영자, 자영업으로 자산을 만든 사람, 부동산을 보유한 은퇴자, 고소득 직장인, 위험을 감수하고 사업을 키운 창업자는 모두 다릅니다. 이들을 하나의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운 계급으로 묶어버리면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시장경제에서 부자는 단순히 누군가의 몫을 빼앗은 사람이 아닙니다. 물론 부의 축적 과정에는 특혜, 불공정, 세습, 지대 추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문제는 당연히 비판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부를 착취의 결과로 보는 것은 잘못입니다. 많은 부자는 기업을 만들고, 고용을 만들고, 세금을 내고, 위험을 부담한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평생 근면하게 일하고 절약해서 자산을 쌓았고, 어떤 사람은 남들이 감수하지 않는 실패의 위험을 떠안고 사업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가난한 사람이 부자에게 적대감을 가져야 한다는 전제도 당연하지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 중에는 부자를 미워하기보다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들은 부의 축적을 불의로만 보지 않고, 노력과 능력, 운과 기회의 결과로 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부자를 끌어내리는 정치보다 자신도 올라갈 수 있는 사회를 더 선호합니다. 이런 사람에게 진보정당의 부자 비판은 정의로운 언어가 아니라 질투와 원한의 언어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불평등을 방치하자는 뜻은 아닙니다. 불공정한 부의 세습, 부패한 권력과 자본의 결탁, 독점적 지대 추구, 기회의 봉쇄는 분명히 비판해야 합니다. 그러나 불평등을 비판하는 것과 부자를 하나의 적대적 계급으로 보는 것은 다릅니다. 전자는 제도 개선의 문제이지만, 후자는 도덕적 낙인의 문제입니다. 가난한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부자에 대한 적대적 감정을 공유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도덕적 계몽의 언어와 보수적 자립의 가치

오히려 많은 저소득층은 진보정당의 언어에서 자신에 대한 존중을 느끼지 못합니다. 진보정당은 약자를 위한다고 말하지만, 그 말투가 때로는 가르치려 드는 태도로 들릴 수 있습니다. “당신은 구조적으로 착취당하고 있다”, “당신은 계급의식을 가져야 한다”, “당신은 복지를 지지해야 한다”는 말은 지적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당사자에게는 자신의 삶을 함부로 해석하는 말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사람은 가난해도 자존심이 있습니다.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도움받는 존재로만 규정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복지가 필요할 수는 있지만, 복지 수혜자로만 불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약자라는 말을 싫어합니다. 그는 가난하지만 스스로 일하고 있고, 가족을 책임지고 있으며, 자기 삶을 버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진보정당이 그를 계속 보호받아야 할 약자로만 부른다면, 그는 오히려 그 언어에 반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보수주의의 언어는 다른 매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보수주의는 자립, 책임, 근면, 가족, 질서, 공동체, 국가, 품위 같은 가치를 말합니다. 물론 현실의 보수정당이 언제나 이런 가치를 품위 있게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한국 보수정당은 보수주의의 긍정적 언어를 충분히 발전시키지 못했고, 안보와 반공, 정권 심판에 지나치게 의존해온 면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적 가치는 많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여전히 강한 호소력을 가집니다.

가난한 사람에게도 자립은 중요한 가치입니다. 책임도 중요합니다. 가족을 지키는 것도 중요합니다. 법과 질서도 중요합니다. 공동체의 안정도 중요합니다. 국가가 너무 많은 것을 약속하며 개인의 삶에 개입하는 것보다, 각자가 자기 삶을 꾸려갈 수 있도록 기본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보수정당은 부자의 정당이 아니라, 자신이 믿는 삶의 질서를 더 잘 대변하는 정당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좋은 의도의 정책과 현장 삶의 경험

진보정당의 정책이 실제로 저소득층에게 항상 이익이 되는지도 따져봐야 합니다. 최저임금을 올리는 정책은 임금을 받는 사람에게는 좋을 수 있지만, 영세 자영업자나 소규모 사업장에는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강한 노동 규제는 안정된 대기업 노동자에게는 유리할 수 있지만, 노동시장 바깥에 있는 사람에게는 진입 장벽이 될 수 있습니다. 부동산 규제는 투기를 막는다는 명분을 가질 수 있지만, 실제로는 공급을 줄이고 가격을 올려 무주택자에게 불리하게 작동할 수도 있습니다. 에너지 정책, 환경 규제, 세금 정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의도를 가진 정책이 항상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은 이런 것을 자신의 생활 속에서 느낍니다. 그는 통계표를 보지 않아도 장사가 안 되는 것을 압니다.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을 압니다. 주변 가게가 문을 닫는 것을 봅니다. 기업이 어려워지면 하청업체와 일용직부터 어려워진다는 것도 압니다. 그래서 그는 복지 확대보다 경제가 돌아가는 것을 더 중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반드시 잘못된 판단은 아닙니다. 오히려 생활 현장에서 나온 경험적 판단일 수 있습니다.

진보적 지식인은 이런 판단을 종종 “속았다”고 해석합니다. 보수정당이 문화적 가치나 안보 이슈로 가난한 사람을 끌어들인 뒤, 실제로는 부자에게 유리한 경제정책을 편다고 보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측면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정치세력은 누구나 자신에게 유리한 의제를 강조하고, 불리한 의제는 감춥니다. 보수정당도 문화, 안보, 자유, 질서의 언어를 이용해 경제적 이해관계를 포장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비판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설명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가난한 사람이 보수정당에 투표하는 것을 전부 조작과 선동의 결과로 보면, 그들의 판단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셈이 됩니다. 그것은 가난한 사람을 위하는 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난한 사람을 정치적으로 미성숙한 존재로 취급하는 태도입니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사람, 자기 이익을 계산하지 못하는 사람, 문화적 감정에 속아 넘어간 사람으로 보는 것입니다.

정말로 가난한 사람을 존중한다면, 그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더 진지하게 들어야 합니다. 그들이 왜 진보정당의 복지 언어를 불신하는지, 왜 보수정당의 질서와 시장 언어를 더 현실적이라고 느끼는지, 왜 부자 비판보다 경제 성장과 일자리 유지를 더 중요하게 보는지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대답을 단순히 무지나 분노나 세뇌로 환원하지 않아야 합니다.

단일 집단이 아닌 저소득층의 복합적 이해관계

정치적 선택은 언제나 다층적입니다. 어떤 사람은 경제적으로는 진보정책의 수혜자일 수 있지만, 문화적으로는 보수적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소득은 낮지만 자산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현재는 가난하지만 미래의 상승 가능성을 믿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복지 수혜보다 세금 부담과 규제를 더 크게 느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국가가 무엇을 해주는가보다 국가가 무엇을 하지 않는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세대, 지역, 안보, 부동산, 자영업 구조, 교육 경쟁, 가족 부양 부담이 모두 정치 선택에 영향을 미칩니다. 단순히 소득만으로 정치 성향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저소득층이라고 해도 도시 빈곤층, 농촌 고령층, 영세 자영업자, 비정규직 노동자, 은퇴자, 청년 구직자, 소규모 사업자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집니다. 이들을 모두 “가난한 사람”으로 묶고, 당연히 진보정당을 찍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입니다.

결론: 질문을 바꾸어야 현실이 보인다

따라서 질문을 바꾸어야 합니다. “왜 가난한 사람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라고 묻는 대신,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왜 어떤 저소득층은 진보정당이 말하는 경제적 보호보다 보수정당이 말하는 질서, 자유, 안보, 시장 안정, 자립의 가치를 더 현실적인 이익으로 받아들이는가.

이 질문은 가난한 사람을 무지한 사람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들을 하나의 정치적 판단 주체로 인정합니다. 그들이 경제적 이익만이 아니라 삶 전체의 질서를 보고 투표한다는 점을 받아들입니다. 또한 진보정당이 정말 저소득층의 삶을 개선했는지, 보수정당이 정말 부자만을 위한 정당인지도 함께 검토하게 만듭니다.

결국 가난한 사람이 보수정당에 투표하는 것은 반드시 모순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이익에 반하는 투표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이익은 단순히 더 많은 현금 지원이나 복지 혜택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안정된 일자리, 경제활동의 자유, 가족의 유지, 지역 공동체의 신뢰, 국가 안보, 법과 질서,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도 이익입니다. 진보정당이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리 약자를 위한다고 말해도 그 약자에게 선택받기 어렵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누군가의 계몽 대상이 아닙니다. 그들도 자기 삶의 경험을 가지고 판단합니다. 때로 그 판단이 틀릴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부자도, 지식인도, 정치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요한 것은 가난한 사람의 선택을 자기 이익을 모르는 어리석은 선택으로 단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이 왜 그렇게 판단하는지 이해하려는 태도에서 더 나은 정치 분석이 시작됩니다.

가난한 사람이 보수정당에 투표하는 이유는 그들이 부자를 위해 살기 때문이 아닙니다. 많은 경우 그들은 자신이 믿는 삶의 질서와 현실적 생존 조건을 위해 투표합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한, “왜 가난한 사람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라는 질문은 답을 찾기 어렵습니다. 애초에 질문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참고문헌

  • Thomas Frank, What's the Matter with Kansas? How Conservatives Won the Heart of America, Metropolitan Books, 2004.
  • Andrew Gelman et al., Rich State, Poor State, Red State, Blue State: What's the Matter with Connecticut?, Quarterly Journal of Political Science, 2, 2007.
  • Andrew Gelman, Red State, Blue State, Rich State, Poor State: Why Americans Vote the Way They Do,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8.
  • Larry M. Bartels, Unequal Democracy: The Political Economy of the New Gilded Age,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8.
  • Christopher H. Achen and Larry M. Bartels, Democracy for Realists: Why Elections Do Not Produce Responsive Government,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6.
  • Angus Campbell et al., The American Voter,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60. 정당일체감과 투표행동이 단기적 경제 이해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고전적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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