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강욱은 그의 책 "이로운 보수 의로운 진보"에서 앙겔라 메르켈을 “이로운 보수”의 모범으로 제시합니다. 그의 주장은 대체로 이렇습니다. 메르켈은 독일 기독민주당 소속의 중도우파 정치인으로서 16년 동안 독일을 안정적으로 이끌었고, 글로벌 금융위기, 유로존 위기, 난민 사태, 코로나 위기 같은 거대한 위기 속에서도 침착하고 합리적인 리더십을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메르켈이 권위적이거나 선동적인 정치인이 아니라, 듣고 토론하고 설득하고 타협하는 정치인이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합니다. 최강욱에게 메르켈은 보수정치도 품격 있고, 포용적이며, 합리적일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입니다.
그가 메르켈에게서 특히 강조하는 것은 포용과 안정입니다. 메르켈은 독일 국민에게 “무티”, 즉 엄마 같은 존재로 불렸고, 위기 속에서도 국민을 안심시키는 정치인이었습니다. 난민 사태 때는 유럽 국가들이 문을 닫는 상황에서도 독일이 난민을 받아들이도록 했고, 동성혼 문제에서는 개인적으로 반대하면서도 민주적 절차와 사회적 결정을 존중했습니다. 탈원전, 최저임금, 사회적 시장경제, 다자주의 외교도 메르켈의 유연성과 합리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제시됩니다. 최강욱은 이런 메르켈을 한국 보수가 배워야 할 정치인의 모델로 삼습니다.
그의 결론은 결국 한국 보수 비판입니다. 한국 보수는 안보와 반공, 빨갱이 타령에만 머물러 있고, 보수주의가 원래 가질 수 있는 긍정적 가치, 즉 가족, 질서, 법, 역사, 전통, 책임, 품격, 애국심, 공동체의 윤리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반면 메르켈은 독일을 존경받는 나라로 만들었고, 극단을 배제하고, 합리적 타협과 포용의 정치로 국민의 신뢰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최강욱은 메르켈을 보며 “한국 보수도 이런 품격 있는 보수를 배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여러 점에서 비판이 필요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메르켈을 보수주의의 모범으로 부르는 것이 과연 정확한가 하는 점입니다. 메르켈은 독일 기독민주당 소속이었고, 유럽 정치 지형 안에서는 중도우파 정치인으로 분류됩니다. 그러나 정당 좌표상 우파라는 사실과 철학적 의미의 보수주의자는 같은 말이 아닙니다. 유럽은 이미 진보주의자들이 거의 장악한 상태이고 그런 상황에서 우파로 보이는 것은 맞지만, 그 우파가 영국이나 미국의 보수주의자들과는 전혀 다른 진보들 중에서 비교적 우파로 보이는 사람이라는 의미일 뿐입니다.
그리고 우파는 정치적 위치를 가리키는 말이고, 보수주의는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와 우선순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파 정치인이라고 해서 모두 보수주의자는 아닙니다. 시장 자유주의자도 우파일 수 있고, 국가주의자도 우파일 수 있으며, 유럽식 중도 리버럴도 우파일 수 있습니다.
최강욱의 주장은 허수아비 논증에 가깝다
최강욱 글의 가장 큰 문제는 비교 방식입니다. 그는 메르켈을 “이로운 보수”의 모범으로 제시한 뒤, 한국 보수의 낡고 조악한 모습과 대비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공정한 비교가 아닙니다. 독일 중도우파의 가장 세련된 인물을 가져와 한국 보수의 가장 낡은 언어와 비교하면, 결론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습니다. 상대방의 가장 약한 모습을 세워놓고, 그 자리에 자신이 좋아하는 우파를 대입한 것에 가깝습니다.
반공, 빨갱이, 적대, 불통, 권위주의만을 한국 보수의 대표 이미지로 세운 뒤 그것을 비판하는 것은 보수주의 전체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 허수아비 논증에 가깝습니다. 정말로 보수주의를 비판하려면 보수주의의 가장 강한 논리와 맞서야 합니다. 공동체의 지속성, 국방과 안보, 법치, 가족, 책임, 전통, 역사적 경험, 급격한 변화의 부작용에 대한 신중함 같은 보수주의의 핵심 가치와 논쟁해야 합니다.
한국 보수에 대한 비판은 필요합니다. 한국 보수가 오랫동안 반공, 안보, 진영 논리, 정권 비판에 지나치게 의존해온 것은 사실입니다. 보수주의가 가질 수 있는 품격, 책임, 절제, 법치, 공동체 윤리, 역사적 신중함을 충분히 발전시키지 못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국 보수를 비판하기 위해 메르켈을 이상화하고, 한국 보수의 가장 약한 형태만을 대표로 세우는 것은 공정하지 않습니다.
메르켈은 보수주의자라기보다 중도우파 리버럴에 가깝다
보수주의를 공동체의 지속성, 역사적 정체성, 국경, 안보, 국방, 에너지 자립, 전통 제도, 급격한 변화에 대한 신중함으로 본다면, 메르켈은 전형적인 보수주의자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는 안정적 관리자였고, 신중한 정치인이었으며, 품격 있는 지도자였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보수주의자의 핵심 본능을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국방과 에너지 안보에서 그의 정치적 유산은 매우 취약합니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라면 국가의 군사적 억지력과 전략적 자립을 그렇게 오랫동안 방치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메르켈 시대 독일은 경제적으로 강했지만 군사적으로는 매우 취약했습니다. 독일은 유럽 최대 경제국이었지만, NATO의 핵심 군사국가로서 충분한 책임을 다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국방비 지출은 오랫동안 낮았고, 독일 연방군은 장비 부족과 준비태세 부족 문제를 겪었습니다. 보수주의자는 국가가 평화로울 때일수록 위기를 대비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메르켈 시대 독일은 경제적 번영을 누리면서도 안보 부담은 미국과 NATO 체제에 크게 의존했습니다. 이것은 보수주의적 신중함이라기보다 유럽식 평화주의와 복지국가적 안일함에 가까웠습니다.
정말 보수주의자라면 국방을 그렇게 무책임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보수주의자는 인간과 국가를 선의만으로 보지 않습니다. 평화는 선의의 결과가 아니라 억지력과 대비의 결과라고 봅니다. 그런데 메르켈 시대 독일은 경제적 풍요를 누리면서도 군사적 책임을 충분히 지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보수주의의 모범이라기보다, 전후 유럽의 평화 질서에 안주한 중도 리버럴 정치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유럽의 정치 지형을 고려하면 이 점은 더 분명해집니다. 유럽은 전체적으로 복지국가, 기후정책, 다자주의, 인권 담론, 사회적 시장경제가 정치의 기본값으로 자리 잡은 곳입니다. 그런 정치 지형 안에서 중도우파라고 불리는 사람도 미국이나 한국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리버럴한 경우가 많습니다. 메르켈도 그렇습니다. 그는 좌파 정치인은 아니었지만, 보수주의자라기보다는 우파에 가까운 리버럴, 혹은 유럽식 중도우파 실용주의자였습니다.
따라서 최강욱이 메르켈을 보수주의의 모범으로 제시하는 것은 개념적으로 부정확합니다. 그는 보수주의자를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리버럴이 받아들일 수 있는 우파 정치인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최강욱이 말하는 “이로운 보수”는 보수주의의 독자적 가치가 실현된 정치가 아니라, 리버럴 질서 안에 들어온 순한 우파"에 가깝습니다.
보수주의의 핵심은 온건함이 아니라 공동체의 지속성이다
"최강욱의 글에서 보수주의는 지나치게 성격 좋은 정치 태도로 축소됩니다. 그는 경청, 타협, 합의, 포용, 겸손, 절제 같은 덕목을 강조"합니다. 물론 이것들은 좋은 정치인의 중요한 덕목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보수주의의 본질은 아닙니다. 좋은 진보 정치인도 경청하고 타협할 수 있습니다. 좋은 자유주의자도 절제와 품격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덕목만으로 어떤 정치인을 보수주의의 모범이라고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보수주의의 본질은 단순한 온건함이 아닙니다. 보수주의는 인간과 사회의 취약성을 인정하고, 제도의 연속성과 공동체의 안정성을 중시합니다. 전통을 가볍게 파괴하지 않고, 급격한 변화의 부작용을 경계하며, 국방과 치안과 에너지 같은 기본 안전망을 중시합니다. 보수주의자는 좋은 의도만으로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제도가 한 번 무너지면 회복하기 어렵고, 공동체의 신뢰가 무너지면 돈으로도 쉽게 복구할 수 없다는 점을 중요하게 봅니다.
이 기준으로 보면 "메르켈은 보수주의의 핵심 영역에서 약점을 보였습니다." 난민 정책에서는 공동체의 수용 능력보다 인도주의적 결단을 앞세웠고, 에너지 정책에서는 탈원전을 추진하면서 러시아 가스 의존을 키웠으며, 국방에서는 독일의 군사적 준비 태세를 장기간 방치했습니다. 이것은 보수주의적 신중함이라기보다 유럽식 리버럴 실용주의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메르켈은 훌륭한 정치인이었을 수는 있지만, 보수주의의 원형을 보여준 정치인은 아니었습니다.
난민 정책은 도덕적 결단이었지만 보수주의적 결단은 아니었다
최강욱이 가장 크게 칭찬하는 대목 가운데 하나가 메르켈의 난민 수용입니다. 2015년 시리아 난민 사태 때 메르켈은 “우리는 할 수 있다”는 구호 아래 대규모 난민 수용을 결정했습니다. 이것은 인도주의적으로는 높이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전쟁과 혼란 속에서 도망쳐 나온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도덕적 용기를 보여준 결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결정을 보수주의의 모범으로 보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보수주의는 선의만으로 공동체를 운영할 수 없다고 봅니다. 국경, 사회 통합, 문화적 수용 능력, 치안, 복지 부담, 기존 시민들의 불안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난민 수용은 도덕적 결단이었을 수 있지만, 동시에 독일 내부의 정치적 균열과 AfD의 성장을 자극한 결정이기도 했습니다. 보수주의자는 바로 이런 후폭풍을 신중하게 계산해야 합니다.
보수주의자는 어려운 사람을 돕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수주의자는 도움에도 질서와 한계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공동체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와 규모를 넘어서면, 선의의 정책도 사회적 반발과 정치적 극단화를 낳을 수 있습니다. 메르켈의 난민 정책은 바로 그런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것을 “이로운 보수”라고 부르기보다는, 리버럴 인도주의가 보수정당 안에서 관철된 사례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라면 난민을 무조건 외면하는 대신, 독일 사회가 흡수할 수 있는 속도와 규모, 엄격한 심사 규정, 통합 가능한 질서를 먼저 세웠을 것입니다. 보수주의의 기준은 냉혹함이 아니라 선의가 공동체를 파괴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현실적 책임입니다.
탈원전과 러시아 에너지 의존은 전형적인 진보주의자들의 정책
에너지 정책도 마찬가지입니다. 메르켈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탈원전을 결정했습니다. 최강욱은 이것을 진보 의제까지 수용하는 유연하고 합리적인 보수의 모습으로 평가합니다. 그러나 보수주의 관점에서는 전혀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원전은 단순한 발전 방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에너지 안보, 산업 경쟁력, 탄소 감축, 전략적 자립과 연결된 국가 기반 시설입니다.
원전을 급격히 줄이면서 러시아 가스 의존을 키운 것은 국가의 장기적 안정성을 약화시키는 결정이었습니다. 러시아가 언제나 합리적 경제 파트너로 남을 것이라는 기대는 보수주의적 현실주의와 거리가 멉니다. 보수주의자는 국제정치를 선의와 상호의존만으로 보지 않습니다. 특히 러시아처럼 역사적으로 팽창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국가에 대해서는 더 신중해야 합니다.
"메르켈은 푸틴과 대화할 수 있는 서방 지도자로 평가받았지만, 동시에 독일과 유럽이 러시아 에너지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조를 방치"했습니다. 이것은 냉정한 현실주의가 아니라 잘못된 현실 인식일 수 있습니다. 경제적 교류가 권위주의 국가를 온건하게 만들 것이라는 믿음은 보수주의적 현실주의가 아니라 리버럴 국제주의의 낙관에 가깝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독일이 러시아 에너지 의존에서 벗어나기 위해 큰 고통을 겪은 것은, 메르켈 시대의 판단이 얼마나 위험했는지를 보여줍니다. 보수주의자라면 국가의 생존 기반인 에너지와 안보를 그렇게 취약한 구조에 맡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점에서 메르켈은 보수주의의 모범이 아니라, 보수주의적 경계심을 잃은 중도 실용주의자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라면 기후 목표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에너지 안보와 산업 기반을 위해 원전의 비중을 당분간 유지하는 현실적 타협을 택했을 것입니다. 보수주의는 환경을 무시하는 태도가 아니라, 선한 목표를 추진할 때도 국가의 생존 기반을 먼저 계산하는 태도입니다.
독일 경제의 성공은 메르켈 개인의 업적만이 아니다
최강욱은 메르켈이 유럽의 병자였던 독일을 되살리고, 독일을 다시 유럽의 성장 엔진으로 만들었다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독일의 경제적 성공을 메르켈 개인의 리더십으로 설명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입니다. 독일은 원래 유럽에서 제조업과 기술력, 직업교육, 미텔슈탄트, 기계·자동차·화학 산업에서 매우 강한 나라였습니다. 메르켈이 독일의 기술 기반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이미 강한 산업 구조를 가진 나라를 관리한 정치인이었습니다.
독일 경제의 회복에는 메르켈 이전의 노동시장 개혁, 독일 제조업의 축적된 기술력, 직업교육 체계, 수출 중심 산업구조, 유럽 단일시장, 유로화 체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이것을 모두 메르켈 개인의 업적으로 돌리는 것은 역사적 인과관계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입니다. 메르켈은 독일의 강점을 잘 관리한 정치인일 수는 있지만, 독일의 경제적 기반을 혼자 만든 인물은 아닙니다.
특히 유로화 체제는 독일에 매우 유리하게 작동했습니다. 강한 제조업 경쟁력을 가진 독일은 유로화와 EU 단일시장을 통해 거대한 판로와 안정적인 수출 조건을 누렸습니다. 반면 그리스와 남유럽 국가들은 독일과 같은 통화권에 묶이면서 위기 때 자국 통화를 평가절하해 경쟁력을 회복하는 조정 수단을 잃었습니다. 독일은 유로존 위기의 부담을 떠안은 나라처럼 보였지만, 동시에 유로존 구조의 가장 큰 수혜자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메르켈의 그리스 위기 대응을 단순히 “유럽을 구한 원칙 있는 결단”으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독일 입장에서는 합리적이었을 수 있지만, 그것은 독일 중심의 유럽 질서를 유지하는 정책이기도 했습니다. 독일 경제의 성공과 유로존 안정화를 모두 메르켈 개인의 업적으로 돌리는 것은 인과관계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입니다.
중국 의존과 기술 이전 문제도 메르켈의 그림자다
중국 문제도 메르켈 평가에서 빠질 수 없습니다. 메르켈 시대 독일은 중국시장에 깊이 들어갔습니다. 자동차, 기계, 화학, 산업 장비 분야에서 독일 기업들은 중국 시장의 성장으로 큰 이익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기술 이전과 중국 의존이라는 문제가 커졌습니다. 독일 기업들은 단기적으로는 중국 시장에서 막대한 이익을 얻었지만, 장기적으로는 중국 제조업의 기술 경쟁력을 키워주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사실 트럼프가 중국을 제재하지 않았다면 지금 독일은 오히려 중국에게 경제적으로 식민지 상태에 가까운 예속을 당할 뻔 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날 중국 전기차, 배터리, 기계, 산업 장비의 부상은 유럽 제조업에 큰 압박이 되고 있습니다. 독일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서 얻은 이익은 분명했지만, 그 과정에서 중국의 산업 고도화를 도운 측면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이것은 기업에는 단기적 이익이었지만, 국가와 유럽 산업 전체에는 장기적 위험이 될 수 있었습니다.
보수주의자는 단기적 경제 이익보다 장기적 전략 위험을 더 중시해야 합니다. 중국에 대한 과도한 경제 의존과 기술 이전은 결국 독일과 유럽의 산업 주권을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메르켈의 실용주의 외교는 이 문제를 충분히 경계하지 못했습니다. 미국, 중국, 러시아와 모두 관계를 유지하며 독일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려 했지만, 그 결과 러시아 의존과 중국 의존이라는 전략적 약점을 남겼습니다. 이것 역시 보수주의적 현실주의라기보다 유럽식 리버럴 경제주의에 가까웠습니다.
독일식 타협 정치는 메르켈 혼자 만든 것이 아니다
최강욱은 메르켈의 경청과 타협, 합의의 정치를 높이 평가합니다. 그러나 메르켈식 타협 정치가 가능했던 것은 메르켈 개인이 특별히 훌륭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독일의 좌파와 우파가 제도정치 안에서 대화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통 기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독일 정치에는 연정 문화가 있고, 정당 간 협상 관행이 있으며, 상대를 완전히 제거해야 할 적으로만 보지 않는 제도적 훈련이 있습니다.
독일의 주류 좌파는 한국의 일부 운동권 정치처럼 상대 진영을 타도해야 할 적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정책적으로 강하게 대립하더라도, 의회와 정당정치의 틀 안에서 협상하고 연정을 구성하고 합의를 만들어내는 훈련이 되어 있습니다. 사민당, 녹색당, 자유민주당, 기민당이 서로 연정을 구성하고 정책을 조정할 수 있는 것은, 주류 좌우가 최소한의 제도적 합리성을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독일에서 메르켈이 사민당의 의제를 일부 받아들이고, 녹색당의 문제의식을 수용하고, 연정을 통해 국정을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은 독일 좌파가 합리적 협상 상대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만약 상대가 대화보다 투쟁을 앞세우고, 제도보다 거리의 압박을 중시하며, 상대 진영을 역사적으로 청산해야 할 대상으로만 본다면 메르켈식 타협 정치는 작동하기 어렵습니다.
이 점을 빼고 메르켈만 한국 보수 앞에 세우는 것은 비교의 절반만 보는 것입니다. 메르켈의 합리성은 독일 정치문화라는 토양 위에서 가능했습니다. 독일 정치는 메르켈 혼자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패전 이후의 반성, 강한 의회주의, 연정 문화, 정당 간 협상 관행, 그리고 주류 좌우 모두가 일정한 합리성을 공유해온 정치문화의 산물입니다.
독일 좌파와 한국 좌파는 정치문화가 다르다
메르켈을 한국 보수의 모델로 삼으려면, 동시에 독일 좌파와 한국 좌파의 차이도 보아야 합니다. 독일의 좌파는 물론 강한 이념적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류 좌파는 제도정치 안에서 협상하고, 연정하고, 책임을 나누는 정치에 익숙합니다. 상대를 악마화하는 방식만으로 정치를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파 정치인인 메르켈도 좌파 정당들과 협상하고, 일부 의제를 수용하고, 국가 운영의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한국의 좌파 정치문화는 훨씬 더 운동권적이고 대결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거리의 투쟁, 도덕적 우월감, 상대 진영에 대한 청산 의식, 제도보다 압박을 중시하는 방식이 강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물론 한국 좌파 전체를 그렇게만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 정치에서 진보 진영의 일부는 합리적 협상 상대라기보다, 상대를 역사적으로 부정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태도를 보여왔습니다. 이런 조건에서는 메르켈식 타협 정치가 쉽게 작동하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의 핵심 신뢰 기반이어야 할 선거 제도나 국가 사법 및 행정 시스템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과 검증 요구가 제기될 때도, 주류 진보 진영은 이를 투명한 검증의 장으로 이끌기보다 정쟁과 음모론으로 치부하며 억압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의구심이 드는 정황에 대해 열린 토론과 확인 과정을 거쳐 신뢰를 다지기보다는, 질문하는 행위 자체를 도그마로 봉쇄하는 방식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이 강조한 열린 이성과 오류 가능성의 존중과는 거리가 먼 매우 독단적이고 억압적인 정치 형태입니다.
이 지점이 메르켈 모방론의 핵심 약점입니다. 메르켈식 타협이 가능했던 이유는 메르켈이 특별히 성격 좋은 정치인이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독일 좌파가 제도정치 안에서 대화 가능한 상대였기 때문입니다. 반면 한국 정치에서 진보의 도그마에 의심을 여는 것 자체가 억압된다면, 한국 보수에게 메르켈처럼 행동하라는 요구는 타협을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 무장해제를 요구하는 것에 가까워집니다.
정치는 한 사람의 품격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상대도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한쪽이 타협을 말해도, 다른 쪽이 그것을 약점으로 보고 더 강한 압박을 가한다면 타협 정치는 유지될 수 없습니다. 이 조건을 빼고 한국 보수에게만 “왜 메르켈처럼 하지 못하느냐”고 묻는 것은 공정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최강욱의 비교는 중요한 전제를 빠뜨립니다. 독일 보수와 한국 보수를 비교하려면, 독일 좌파와 한국 좌파도 함께 비교해야 합니다. 독일 정치의 합리성은 좌우 모두의 제도적 성숙에서 나온 것이지, 메르켈 개인의 인격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한국 보수의 문제를 말하려면 한국 좌파의 정치문화도 함께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메르켈은 한국 보수를 비난하기 위한 장식물로만 사용됩니다.
한국 보수와 독일 보수의 역사적 조건은 다르다
한국 보수와 독일 보수를 단순 비교하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독일 보수는 전후 유럽 통합, 나치 과거 청산, 사회적 시장경제, 연정 문화의 맥락에서 형성되었습니다. 반면 한국 보수는 분단, 6·25 전쟁, 북한 핵위협, 압축 산업화, 권위주의 산업화, 민주화 이후의 이념 갈등 속에서 형성되었습니다. 두 나라의 역사적 조건은 전혀 다릅니다.
한국 보수가 반공에 과도하게 의존한 것은 비판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분단국가에서 안보와 반공은 단순히 유치한 구호만은 아니었습니다. 북한이라는 실제 군사적 위협이 존재했고, 한국 사회는 전쟁과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겪었습니다. 독일과 달리 한국은 아직 통일되지 않았고, 휴전선 너머에는 핵무기를 가진 적대적 정권이 존재합니다. 이런 조건에서 안보와 반공이 정치적 언어로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은 단순히 후진성만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물론 한국 보수는 이제 더 세련된 언어를 가져야 합니다. 단순한 반공이나 진영 논리만으로는 현대 보수주의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법치, 책임, 가족, 공동체, 국가 역량, 시장 질서, 안보, 기술 경쟁력, 교육, 시민의 자립 같은 더 풍부한 언어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한국 보수가 독일 보수처럼 행동하지 못했다고 해서 곧바로 열등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두 나라는 전혀 다른 역사적 조건에서 보수주의를 형성해왔기 때문입니다.
최강욱의 ‘이로운 보수’는 리버럴이 좋아하는 보수다
최강욱 글의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로운 보수”라는 개념 자체입니다. 그는 메르켈을 통해 좋은 보수의 모습을 보여주려 하지만, 실제로 그가 칭찬하는 요소들은 보수주의의 독자적 덕목이라기보다 리버럴이 좋아할 만한 요소들입니다. 난민 수용, 탈원전, 다자주의, 동성혼 절차 존중, 반극우, 포용, 타협, 겸손, 검소함, 사회적 시장경제가 그렇습니다. 물론 이 중에는 좋은 정치의 덕목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곧 보수주의의 핵심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최강욱이 말하는 좋은 보수는 리버럴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보수입니다. 난민을 받아들이고, 탈원전을 수용하고, 다자주의를 말하고, 좌파 의제를 일부 받아들이고, 극우와 선을 긋고, 부드럽고 겸손하게 말하는 보수입니다. 이것은 유럽식 중도우파로서는 충분히 훌륭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보수주의의 본질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보수주의는 리버럴의 승인을 받는 온건함이 아니라, 공동체의 지속성과 국가의 안전을 지키는 현실주의입니다.
메르켈은 훌륭한 정치인이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훌륭한 정치인이라고 해서 반드시 훌륭한 보수주의자인 것은 아닙니다. 그는 안정적 관리자였고, 위기 대응 능력이 뛰어난 실용주의자였으며, 독일 국민에게 신뢰를 준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보수주의의 기준에서 보면 국방, 에너지 안보, 국경, 공동체의 수용 능력,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전략적 경계에서 큰 약점을 남겼습니다. 이런 약점을 보지 않고 그를 “이로운 보수”의 모범으로 제시하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결론: 메르켈은 보수의 모범이 아니라 유럽식 중도 리버럴의 성공 사례다
메르켈을 평가할 때 그의 장점을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는 침착했고, 검소했고, 권위주의적이지 않았으며, 위기 속에서 국민에게 안정감을 주었습니다. 듣고 조정하고 타협하는 능력도 뛰어났습니다. 한국 정치가 이런 태도에서 배울 점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한국 보수 역시 더 품격 있고 더 책임 있는 언어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메르켈을 “보수주의의 모범”으로 세우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그는 독일 기독민주당의 중도우파 정치인이었지만, 보수주의의 핵심인 국방, 에너지 안보, 국경, 공동체의 지속성, 전략적 자립에서 충분히 보수적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유럽식 리버럴 질서 안에서 독일의 이익을 안정적으로 관리한 중도우파 실용주의자에 가까웠습니다.
또한 독일의 성공은 메르켈 개인의 덕성만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독일은 기술력과 제조업 기반에서 유럽의 압도적 강자였고, 유로화와 EU 체제의 과실을 크게 누렸습니다. 그리스와 남유럽은 같은 통화권 안에서 조정 수단을 잃었고, 독일은 강한 산업 경쟁력으로 수출의 이익을 얻었습니다.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독일은 단기적 이익을 얻었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술 이전과 중국 의존이라는 문제를 남겼습니다.
최강욱의 메르켈론은 결국 보수주의에 대한 공정한 평가라기보다, 리버럴이 좋아할 만한 우파 정치인을 “이로운 보수”로 포장한 글에 가깝습니다. 더구나 그는 독일의 가장 세련된 중도우파 정치인을 한국 보수의 가장 조악한 모습과 비교합니다. 이것은 허수아비 논증입니다. 정말 공정하게 비교하려면 독일 보수와 한국 보수만 비교할 것이 아니라, 독일 좌파와 한국 좌파의 정치문화 차이도 함께 보아야 합니다.
메르켈식 타협 정치는 메르켈 혼자 만든 것이 아닙니다. 독일의 좌파와 우파가 모두 제도정치 안에서 대화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한국 정치에서 그런 타협이 어렵다면, 그 책임은 보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화 가능한 좌파, 제도정치를 존중하는 진보, 상대를 청산 대상이 아니라 경쟁 상대로 보는 정치문화도 함께 필요합니다.
따라서 최강욱의 주장은 이렇게 비판할 수 있습니다. 그는 메르켈을 통해 좋은 보수를 말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리버럴이 좋아하는 우파를 보수의 모범으로 제시합니다. 그러나 보수주의의 본질은 리버럴이 좋아하는 온건함이 아닙니다. 보수주의의 본질은 공동체의 지속성, 국가의 안전, 제도의 안정, 역사적 경험에 대한 존중, 급격한 변화에 대한 신중함입니다. 이 기준으로 보면 메르켈은 보수주의의 모범이라기보다, 보수의 이름을 단 유럽식 중도 리버럴에 가까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