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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인가 국가인가: 진보는 왜 국가를 선한 심판으로 상상하는가


《이로운 보수 의로운 진보》에 나타난 시장과 국가에 대한 대립을 짚으며, 시장의 실패와 국가의 실패를 동시에 바라보는 현실적 균형감각의 필요성을 분석합니다.

시장인가 국가인가: 진보는 왜 국가를 선한 심판으로 상상하는가

최강욱·최강혁의 《이로운 보수 의로운 진보》에서 봉수 씨와 진봉 씨는 시장과 국가를 두고 대화를 나눕니다. 봉수 씨는 시장을 믿습니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제공하는 식당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가게는 사라지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봅니다. 진봉 씨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코로나 시기에 소상공인 지원 정책이 없었다면 많은 가게가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며, 시장에만 맡기면 대기업 프랜차이즈만 살아남고 약자는 짓밟힐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 대화는 보수와 진보의 차이를 설명하는 데 유용한 출발점입니다. 실제로 보수는 대체로 시장, 경쟁, 개인의 선택, 사유재산권, 작은 정부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대로 진보는 국가의 조정, 사회 안전망, 불평등 완화, 공공서비스, 약자 보호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대목 역시 단순한 설명을 넘어, 진보주의자가 보수를 어떻게 상상하고 자신을 어떻게 정당화하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에 가깝습니다.

진보의 시선이 규정하는 시장과 국가

책에서 봉수 씨는 시장을 거의 자연질서처럼 말합니다. 경쟁력 없는 가게는 망해야 하고, 구멍가게 대신 편의점에 가는 것은 소비자의 선택이며, 국가는 최소한의 역할만 하면 된다고 말합니다. 시장은 기회의 장이고, 국가는 관중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보수주의자는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에게 냉정하고, 약자의 고통보다 효율을 우선하며, 자본주의의 보이지 않는 손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사람으로 그려집니다.

반대로 진봉 씨는 시장의 불공정성을 강조합니다. 소비자의 선택도 자본의 힘으로 만들어지고, 자유로운 경쟁은 약자를 짓밟으며, 국가는 심판처럼 개입해 경기를 공정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교육, 의료, 주거 같은 기본 서비스는 국가가 책임져야 하고, 노인, 장애인, 저소득층을 보호하기 위해 사회 안전망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진보주의자는 시장의 잔인함을 통제하고, 약자를 보호하며, 모두에게 기본적인 삶의 조건을 제공하려는 사람으로 그려집니다.

이 구도는 진보주의자에게 도덕적으로 매우 유리합니다. "보수"는 시장의 냉혹함을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진보"는 시장이 만든 상처를 치료하려는 사람입니다. "보수"는 경쟁과 탈락을 말하고, "진보"는 보호와 공정을 말합니다. "보수"는 사유재산과 효율을 말하고, "진보"는 기본권과 안전망을 말합니다. 이렇게 배치되면 시장을 옹호하는 입장은 쉽게 차갑고 비인간적으로 보이고, 국가의 개입을 주장하는 입장은 따뜻하고 책임 있는 태도로 보입니다.

보이지 않는 또 다른 그림자: 국가의 실패

그러나 이 구도는 중요한 절반을 빠뜨립니다. "시장의 실패"가 발생할 수 있다는 말은 맞습니다. 그러나 "국가의 실패"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시장에는 탐욕, 독과점, 정보 비대칭, 외부효과, 불평등이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에는 관료주의, 정치적 유인, 비효율, 포획, 부패, 무책임, 도덕적 해이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진보주의자는 시장의 실패를 잘 보지만, 국가의 실패를 상대적으로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보수주의자가 경계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시장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장의 중요한 장점은 실패가 비교적 분산된다는 데 있습니다. 어떤 식당이 실패하면 그 식당은 문을 닫습니다. 어떤 기업이 잘못된 판단을 하면 그 기업은 손실을 입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노동자와 지역사회가 피해를 볼 수 있으므로 안전망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시장의 실패는 여러 주체에게 분산되어 나타납니다. 반대로 국가의 실패는 훨씬 더 넓은 범위에 한꺼번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잘못된 부동산 정책, 잘못된 에너지 정책, 잘못된 교육 정책, 잘못된 산업 정책은 한 개인이나 기업의 실패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실패가 됩니다.

그래서 보수주의자는 국가가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 개입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정책은 선의로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의가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노동자의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의도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가 고용 감소, 자영업자의 비용 증가, 비숙련 노동자의 진입 장벽으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임대료"를 규제하면 세입자를 보호할 수 있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공급이 줄고, 주거의 질이 떨어지고, 새로운 세입자가 더 큰 피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복지를 확대하면 약자를 도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설계가 잘못되면 근로 의욕을 약화시키고, 재정 부담을 키우고, 정치적 의존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런 부작용이 모든 정책에서 반드시 발생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국가 개입도 비용을 가진다는 사실입니다. 진보주의자는 흔히 시장의 잔인함을 말하지만, 국가의 개입이 만들어 내는 보이지 않는 비용은 덜 말합니다. 규제는 누군가를 보호하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진입을 막습니다. 보조금은 누군가를 돕지만 동시에 다른 누군가의 세금으로 지불됩니다. 공공부문 확대는 안정성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비효율과 책임 회피를 만들 수 있습니다. 국가는 공정한 심판일 수 있지만, 때로는 특정 집단에게 유리한 규칙을 만드는 정치적 행위자이기도 합니다.

중립적 심판이라는 환상

책에서 진봉 씨는 “어떤 경기든 심판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맞습니다. 시장에도 법과 규칙이 필요합니다. 사기, 담합, 독과점, 환경오염, 노동 착취, 정보 조작을 방치하면 시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국가가 언제나 공정한 심판이냐는 것입니다. 현실의 국가는 경기장 밖의 중립적 심판이 아닙니다. 국가는 예산과 권한을 가진 거대한 행위자입니다. 국가는 표를 의식하고, 이익집단의 압력을 받고, 관료조직의 자기 보존 논리에 따라 움직입니다. 심판이 필요하다는 말은 맞지만, 그 심판이 부패하거나 무능하거나 특정 팀과 결탁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함께 봐야 합니다.

이것이 보수주의자의 시장 옹호가 단순한 시장만능주의와 다른 지점입니다. 보수주의자는 시장이 완전하다고 믿어서 시장을 옹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는 더 위험하게 실패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시장을 상대적으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시장은 사람들의 분산된 지식과 선택을 통해 움직입니다. 국가는 중앙의 판단과 계획을 통해 움직입니다. 그런데 인간 사회와 경제는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소수의 정책 결정자가 전체 시장의 정보를 완벽히 알 수 없습니다. 가격, 수요, 공급, 선호, 기술, 위험, 지역 사정은 끊임없이 변합니다. 시장은 이 복잡한 정보를 가격과 경쟁을 통해 처리하지만, 국가는 자주 늦고, 거칠고, 정치적으로 처리합니다.

국가의 참된 역할과 복지의 지향점

그렇다고 국가가 불필요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보수주의자가 진지하려면 국가의 역할을 인정해야 합니다. 법질서, 재산권 보호, 계약 집행, 치안, 국방, 기본 인프라, 공중보건, 기초교육, 독과점 규제, 환경오염 통제, 최저한의 사회 안전망은 시장만으로 충분히 해결되기 어렵습니다. 특히 코로나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국가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감염병은 개인의 선택만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방역, 의료체계, 정보 공개, 취약계층 지원, 일시적 소득 보전 같은 문제에는 공적 조정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국가의 역할을 인정하는 것과 국가를 선한 해결사로 보는 것은 다릅니다. 진보주의자는 종종 이 둘을 혼동합니다. 시장의 실패를 발견하면 곧바로 국가의 개입을 해답으로 제시합니다. 그러나 올바른 질문은 “시장에 맡길 것인가, 국가가 할 것인가”가 아닐 수 있습니다. 더 정확한 질문은 “이 문제에서 시장의 실패와 국가의 실패 중 어느 쪽 비용이 더 큰가”입니다. 어떤 문제는 시장에 맡기면 더 나쁘고, 어떤 문제는 국가가 개입하면 더 나쁩니다. 어떤 문제는 국가가 규칙만 만들고 민간이 실행하는 것이 낫고, 어떤 문제는 국가가 직접 제공해야 하며, 어떤 문제는 지역 공동체나 가족이나 민간단체가 더 잘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의료와 교육은 단순한 상품으로만 보기 어렵습니다. 의료는 생명과 직접 연결되고, 교육은 미래의 기회와 연결됩니다. 그래서 국가의 책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국가가 모든 의료와 교육을 직접 통제해야 한다는 결론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국가가 비용을 지원하고 최소 기준을 정할 수는 있지만, 경쟁과 선택, 기관의 자율성, 민간의 혁신을 완전히 없애면 서비스의 질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공공성"이 필요하지만, "공공성"이 곧 국가독점이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거 안정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국가가 가격을 억지로 통제하거나 공급을 충분히 늘리지 않은 채 규제만 강화하면, 결과적으로 더 심각한 주거난이 생길 수 있습니다. 임차인을 보호하려는 정책이 신규 임차인의 진입을 어렵게 만들고, 부동산 투기를 막겠다는 정책이 오히려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가격을 자극할 수 있습니다. 선한 의도와 좋은 결과 사이에는 언제나 복잡한 경로가 있습니다.

소상공인 지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코로나 시기에는 일시적 지원이 필요했습니다. 정부가 방역을 이유로 영업을 제한했다면, 그 손실을 사회가 어느 정도 보전하는 것은 정당합니다. 그러나 모든 경쟁력 없는 사업을 계속 살리는 방식이 장기화되면, 자원의 재배분이 막히고, 새로운 사업의 진입이 어려워지고, 경제 전체의 생산성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지원은 필요하지만, 지원이 구조조정을 영원히 막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보수주의자는 “망해야 할 것은 망해야 한다”고 차갑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한 자원이 새로운 곳으로 이동할 수 있어야 경제가 산다고 보는 것입니다.

진보주의자는 이 말을 비인간적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장에서의 실패는 인간의 실패와 같지 않습니다. 한 가게가 문을 닫는다고 해서 그 사람의 삶이 끝나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실패한 사업을 영원히 보존하는 정책이 아니라, 실패한 사람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안전망입니다. 보수적 복지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어야 합니다. 시장의 선택과 퇴출 기능은 살리되, 개인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재교육, 전직 지원, 기초생활 보장, 의료 접근성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기업과 업종을 살리는 것보다 사람을 살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조화로운 파트너십을 향하여

이 점에서 시장과 국가는 적이 아닙니다. 좋은 사회는 시장의 활력과 국가의 안전망을 함께 필요로 합니다. 시장은 혁신과 효율을 만들고, 국가는 규칙과 최소한의 보호를 제공합니다. 시장은 기회를 만들고, 국가는 실패했을 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바닥을 제공합니다. 시장이 없으면 국가는 나눌 부를 만들기 어렵고, 국가가 없으면 시장은 신뢰와 규칙과 사회적 안정성을 잃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대화는 보수를 시장만능주의자로, 진보를 책임 있는 국가주의자로 그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봉수 씨는 “보이지 않는 손이 모든 걸 잘 조절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실제 보수주의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표현입니다. 진지한 보수주의자는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국가가 모든 것을 더 잘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에 회의적일 뿐입니다. 보수주의자는 시장의 불완전성을 인정하되, 국가의 불완전성도 같이 봅니다. 반대로 진보주의자는 시장의 불완전성은 크게 보지만, 국가의 불완전성은 선의와 제도 설계로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기서 핵심 차이는 인간관과도 연결됩니다. 보수주의자는 정치인과 관료도 이기적이고 불완전한 인간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국가 권력이 커질수록 그 권력은 남용될 수 있다고 경계합니다. 반대로 진보주의자는 국가를 공공선의 도구로 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물론 진보주의자도 부패한 권력을 비판합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정당하다고 여기는 목적, 예를 들어 평등, 복지, 차별 철폐, 공공성 확대를 위해서는 국가 권력을 비교적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보수주의자는 바로 이 지점을 위험하게 봅니다. 선한 목적을 가진 권력도 권력입니다.

시장도 탐욕스럽지만, 국가는 강제력을 가집니다. 시장에서 기업은 소비자의 선택을 얻어야 하지만, 국가는 세금과 규제와 처벌을 통해 국민에게 직접 명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국가의 권한 확대는 항상 신중해야 합니다. 복지를 늘리는 것도 세금을 통해 누군가의 재산을 가져오는 일이고, 규제를 만드는 것도 누군가의 행동 자유를 제한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정당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정당하려면 효과와 비용과 권한의 한계를 엄격히 따져야 합니다.

결국 “시장인가 국가인가”라는 질문은 너무 단순합니다. 시장은 자유와 효율과 혁신을 제공하지만, 불평등과 독과점과 외부효과를 만들 수 있습니다. 국가는 규칙과 안전망과 공공서비스를 제공하지만, 비효율과 부패/권력 남용을 만들 수 있습니다. 보수는 국가의 실패를 먼저 보고, 진보는 시장의 실패를 먼저 봅니다. 보수는 자유로운 선택이 만들어 내는 질서를 신뢰하고, 진보는 그 질서 속에서 배제되는 사람을 먼저 봅니다. 이 차이를 이해해야 합니다.

따라서 더 좋은 질문은 이것입니다. 어디까지 시장에 맡길 것인가. 어디부터 국가가 개입해야 하는가. 국가가 개입한다면 직접 운영할 것인가, 규칙만 만들 것인가, 보조금을 줄 것인가, 최소 기준만 정할 것인가. 그리고 그 개입이 실패했을 때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이 질문 없이 시장만 말하면 약자의 고통을 외면하기 쉽고, 국가만 말하면 권력의 실패를 보지 못하기 쉽습니다.

최강욱·최강혁의 이 대목은 진보주의자의 자기 이미지를 잘 보여줍니다. 진보는 시장의 잔인함을 통제하고 약자를 보호하는 사람으로 자신을 그립니다. 반대로 보수는 시장의 승자에게 유리한 질서를 옹호하고, 탈락한 사람에게 냉정한 사람으로 그려집니다. 그러나 현실은 더 복잡합니다. 시장을 옹호하는 것이 약자를 버리자는 뜻은 아닙니다. 국가를 옹호하는 것이 반드시 약자를 구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때로 시장은 가난한 사람에게 기회를 주고, 국가는 기득권을 보호합니다. 때로 국가는 약자를 돕고, 시장은 약자를 밀어냅니다. 어느 한쪽만 선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정치적 지혜는 시장과 국가 중 하나를 신앙처럼 선택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시장의 실패를 볼 때 국가의 실패도 함께 보아야 하고, 국가의 필요를 말할 때 국가 권력의 위험도 함께 보아야 합니다. 시장은 방치되어서는 안 되지만, 국가는 숭배되어서도 안 됩니다. 좋은 사회는 시장의 활력을 살리면서, 실패한 사람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제도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국가는 심판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자신이 선수까지 되려 해서는 안 됩니다.

결국 보수주의자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국가가 개입하면 정말 더 나아지는가. 그 권한은 누가 통제하는가. 그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가. 그 정책이 실패하면 누가 책임지는가. 진보주의자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시장에 맡겨 두면 누가 배제되는가. 경쟁의 출발선은 공정한가. 실패한 사람은 다시 일어설 수 있는가. 이 두 질문은 모두 필요합니다. 하나만 남으면 사회는 한쪽으로 기웁니다.

시장과 국가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절대적 대립이 아닙니다. 시장은 부를 만들고, 국가는 규칙을 세우며, 공동체는 신뢰를 만들고, 가족은 책임을 가르칩니다. 어느 하나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차이는 무엇을 더 신뢰하고 무엇을 더 두려워하느냐에 있습니다. 보수는 국가 권력의 오만을 두려워하고, 진보는 시장 권력의 냉혹함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시장도 실패하고 국가도 실패합니다. 그러므로 정말 필요한 것은 시장을 믿는 순진함도 아니고, 국가를 믿는 순진함도 아닙니다. 필요한 것은 양쪽의 실패 가능성을 동시에 보는 현실감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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