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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앨린스키는 누구인가: 힐러리와 오바마의 우상이 된, 진보 정치의 조직 기술과 전략적 상대주의


솔 앨린스키의 커뮤니티 조직 기술, Rules for Radicals의 핵심 전술, 그리고 진보 정치의 전략적 상대주의와 윤리적 긴장에 대해 분석합니다.

솔 앨린스키는 누구인가: 진보 정치의 조직 기술과 전략적 상대주의

정치에서 거짓말은 항상 나쁜 것인가. 보수와 진보의 윤리관을 비교할 때 이 질문은 매우 중요합니다. 보수주의는 일반적으로 정직, 약속, 규범, 법, 전통적 도덕을 강조합니다. 반면 1960년대 이후 미국의 급진적 진보 운동 일부는 정치적 실천에서 다른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추상적 진리나 고정된 윤리 원칙이 아니라, 억압받는 집단이 실제로 권력을 얻을 수 있는가였습니다.

이 흐름을 대표하는 인물이 솔 데이비드 앨린스키입니다. 앨린스키는 1909년 시카고에서 태어나 1972년에 사망한 미국의 커뮤니티 조직가입니다. 그는 대학 강단의 이론가라기보다 현장에서 사람을 조직하는 실천가였습니다. 시카고 대학에서 사회학과 범죄학을 공부했고, 초기에는 청소년 범죄와 도시 빈민 문제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후 그는 도시 빈민, 노동자, 이민자, 흑인 공동체, 가톨릭 교구 등을 조직해 기존 권력과 협상할 수 있는 집단적 힘을 만드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앨린스키가 유명해진 것은 1930년대 시카고의 Back of the Yards 지역 조직화 때문입니다. 이 지역은 도축장과 육가공 공장이 몰려 있던 노동자 거주지였습니다. 이민자, 노동자, 빈민이 섞여 있었고, 생활환경은 열악했습니다. 앨린스키는 이곳에서 주민, 노조, 성직자, 지역 단체를 묶어 Back of the Yards Neighborhood Council을 조직했습니다. 그의 방식은 단순한 복지나 자선이 아니었습니다. 주민 스스로가 조직되어 기업과 지방정부를 압박하고, 지역 개선을 요구하게 만드는 방식이었습니다. 이 사례는 이후 미국 커뮤니티 조직화의 대표 모델이 되었습니다.

1940년에는 Industrial Areas Foundation, 즉 "IAF"를 세웠습니다. "IAF"는 앨린스키식 조직화 방법을 교육하고 확산시키는 기관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그의 방식은 시카고를 넘어 여러 도시와 지역운동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앨린스키의 목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권력을 갖도록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권력 없는 선의”를 별로 믿지 않았습니다. 선의만으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으며, 조직된 힘이 있어야 협상도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앨린스키를 이해하려면 그의 출발점이 “정의”가 아니라 “권력”이라는 점을 보아야 합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이 착하거나 억울하다는 사실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권력자는 권력을 가진 사람의 말만 듣습니다. 따라서 약자가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려면 먼저 조직되어야 합니다.

그에게 정치는 도덕적 설교가 아니라 힘의 관계였습니다. 권력이 없는 사람에게 “옳은 말”은 거의 아무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조직된 주민, 조직된 노동자, 조직된 유권자는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앨린스키가 말한 커뮤니티 조직화란 바로 이 힘을 만드는 기술이었습니다.

이 점에서 앨린스키는 고전적 자유주의자나 도덕철학자와 다릅니다. 그는 정치가 합리적 토론으로만 움직인다고 보지 않았습니다. 정치는 이해관계, 압박, 협상, 공개적 망신 주기, 상징 조작, 여론 동원으로 움직인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정치론은 매우 현실주의적입니다. 좋게 말하면 약자를 위한 조직 기술이고, 나쁘게 말하면 권력투쟁의 매뉴얼입니다.

앨린스키의 전술 중 가장 치명적인 것은 이른바 "상대의 규칙을 무기화"하는 방식입니다. 보수가 도덕과 관용을 말하면 그 잣대로 공격하고, 자유주의자가 절차와 표현의 자유를 말하면 바로 그 절차에 묶어두는 식입니다. 보수적 교회에는 기독교적 사랑을 요구하고, 자유주의 대학에는 표현의 자유와 포용성을 요구하며, 정부기관에는 법과 절차를 요구하는 방식입니다. 그는 이런 정치의 기술을 《Rules for Radicals》에 정리했습니다.

《Rules for Radicals》와 급진주의자를 위한 실전 교본

앨린스키의 이름을 가장 널리 알린 책은 1971년에 나온 《Rules for Radicals》입니다. 이 책은 추상적 혁명 이론서가 아닙니다. 어떻게 사람들을 모으고, 어떻게 적을 정하고, 어떻게 압박을 유지하고, 어떻게 상대를 흔들고, 어떻게 협상력을 만드는가를 설명하는 실전 지침서입니다.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한 원칙 중 하나는 “권력은 당신이 실제로 가진 것뿐 아니라, 상대가 당신이 가졌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앨린스키 정치론의 핵심입니다. 정치에서는 실제 힘만큼이나 힘의 인상이 중요합니다. 작고 약한 조직도 상대가 크게 느끼게 만들 수 있다면 협상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가장 논쟁적인 원칙은 “목표를 고르고, 고정하고, 개인화하고, 양극화하라”는 것입니다. 복잡한 제도 전체를 공격하면 대중은 반응하지 않습니다. 대신 특정 인물, 특정 기관, 특정 상징을 표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래야 분노가 모이고, 이야기가 단순해지고, 운동이 지속됩니다. 이것은 오늘날 정치 캠페인, 시민운동, 온라인 여론전에서도 자주 보이는 방식입니다.

앨린스키는 흔히 좌파 또는 급진주의자로 불리지만, 정통 마르크스주의자와는 달랐습니다. 그는 노동계급의 역사적 필연성이나 혁명 이론보다, 구체적 지역에서 실제 권력을 만드는 일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는 국가 전체를 한 번에 뒤집는 혁명보다, 지역사회가 스스로 조직되어 실제 이익을 얻는 방식을 선호했습니다.

그는 이념적 순수성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지나치게 교조적인 좌파도 비판했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올바른 이론”보다 “작동하는 조직”이었습니다. 그래서 앨린스키는 사회주의 이론가라기보다 미국식 실용주의 전통에 가까운 급진 조직가로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체제를 전복하겠다는 말보다, 체제 안팎에서 압박을 만들어 권력 균형을 바꾸려 했습니다.

앨린스키와 종교 조직

앨린스키의 조직화에서 흥미로운 점은 교회와 성직자의 역할입니다. 그는 무신론적 급진주의자의 이미지로만 알려져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가톨릭 교구와 성직자들을 자주 활용했습니다. 지역 교회는 이미 주민을 모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었고, 도덕적 권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Back of the Yards 조직화에서도 가톨릭 성직자와 지역 교회의 역할이 중요했습니다. 앨린스키는 종교를 교리적 신앙으로 보기보다, 조직 가능한 사회적 자원으로 보았습니다. 이 점 역시 그의 현실주의를 보여줍니다. 그는 사람들이 실제로 모이는 곳, 실제로 신뢰하는 사람, 실제로 움직이는 감정과 제도를 이용했습니다.

나중에 IAF 계열 조직들이 미국 여러 도시에서 종교 기반 커뮤니티 조직화로 발전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앨린스키식 조직화는 단순한 좌파 학생운동이 아니라, 교회·노조·지역단체·시민조직이 결합하는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고정된 진리보다 정치적 효과

그는 정치 현장을 투쟁의 장으로 보았습니다. 권력자는 이미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약자는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약자에게 고상한 윤리만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 기존 권력의 편을 드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앨린스키의 윤리는 절대 윤리가 아니라 전투 윤리였습니다. 그는 “어떤 수단이 윤리적인가”를 묻기보다 “이 수단이 현실에서 작동하는가”를 물었습니다. 목적과 수단의 문제도 추상적으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그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가”라는 질문은 너무 막연하며, 실제 질문은 “이 특정한 목적이 이 특정한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라고 보았습니다.

앨린스키는 윤리 기준이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고 주장했습니다. 전쟁, 혁명, 점령, 저항 같은 극단적 상황에서는 평상시의 윤리 기준이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미국 독립선언문도 하나의 정치적 문서로 해석했습니다. 영국의 잘못은 극대화했고, 영국이 식민지에 제공한 이점은 생략했다는 것입니다. 한쪽에서 보면 이것은 독립을 위한 정당한 선전이고, 다른 쪽에서 보면 의도적 기만입니다.

이 관점은 매우 위험하면서도 정치적으로 강력합니다. 위험한 이유는 명백합니다. 모든 것을 상황과 목적에 따라 판단하면, 정직과 거짓의 경계가 흐려집니다. 어떤 거짓말도 “더 큰 정의”를 위해 필요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정치적으로 강력한 이유도 분명합니다. 사람들을 움직이려면 복잡한 균형보다 선명한 적과 선명한 명분이 더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앨린스키는 이 점을 잘 알았습니다. 정치 운동은 회색지대를 견디기 어렵습니다. 대중을 움직이려면 상대는 부당한 권력이어야 하고, 우리는 정의의 편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정치투쟁에서는 상대의 일부 장점을 인정하는 균형 잡힌 설명보다, 상대의 부당함을 극대화하는 단순한 이야기가 더 잘 작동합니다.

이것이 바로 앨린스키식 정치의 핵심입니다. 진실 전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움직이는 데 필요한 진실을 선택하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권력의 기술은 1960년대 급진주의를 꿈꾸던 학생들 사이에서 이론이 아닌 실전 매뉴얼로 퍼져나갔고, 훗날 미국 민주당의 중심부에 서게 될 두 인물에게도 결정적인 흔적을 남겼습니다.

힐러리 클린턴과 앨린스키

힐러리 클린턴은 웰즐리 대학 시절 앨린스키의 정치 모델을 주제로 졸업논문을 썼습니다. 논문 제목은 《“There Is Only the Fight…”: An Analysis of the Alinsky Model》이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당시 미국의 지적 분위기에서 앨린스키는 급진적 사회변화를 꿈꾸던 학생들에게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클린턴은 나중에 자서전에서 자신이 앨린스키의 몇몇 생각에 동의했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사람들이 스스로를 돕도록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공감했습니다. 다만 그녀는 앨린스키와 한 가지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앨린스키은 체제를 외부에서만 바꿀 수 있다고 믿었지만, 클린턴은 체제 내부에서도 바꿀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 차이는 중요합니다. 클린턴은 앨린스키의 급진적 문제의식은 받아들였지만, 방법에서는 제도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앨린스키가 외부 압박의 정치라면, 클린턴은 내부 장악의 정치에 가까웠습니다. 거리의 운동가가 아니라 법률가, 정책가, 정당 정치인이 된 것입니다.

이 점에서 클린턴은 1960년대 급진주의가 제도권 민주당 정치로 흡수된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혁명적 언어는 약해졌지만, 권력을 통해 사회를 바꾸려는 의지는 남았습니다.

오바마와 커뮤니티 조직화

버락 오바마도 앨린스키의 영향권 안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바마는 1980년대 시카고 남부에서 커뮤니티 조직가로 일했습니다. 당시 시카고의 커뮤니티 조직화 전통은 앨린스키의 방식과 깊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오바마가 직접 앨린스키의 제자였다는 식으로 단순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배운 조직화의 언어와 방법은 앨린스키식 전통과 상당히 가까웠습니다. 지역 주민을 조직하고, 불만을 정치적 요구로 바꾸고, 권력자와 협상할 수 있는 집단적 힘을 만드는 방식입니다.

오바마의 정치는 클린턴보다 더 세련된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는 분노보다 희망을 말했고, 투쟁보다 통합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초기 정치 훈련에는 분명히 커뮤니티 조직화의 현실주의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추상적 이상만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자기 이해관계가 걸려 있어야 움직입니다. 조직가는 그 이해관계를 발견하고, 그것을 정치적 힘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이 점에서 오바마의 정치도 순수한 이상주의라기보다, 이상주의와 조직화 현실주의가 결합된 형태였습니다.

보수주의가 문제 삼는 지점

보수주의자가 앨린스키식 정치에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보수주의는 정치 이전에 규범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거짓말은 정치적으로 유용해도 거짓말입니다. 부당한 수단은 좋은 목적을 말해도 부당합니다. 법과 절차, 정직과 신뢰가 무너지면 결국 사회 전체가 무너진다고 봅니다.

반면 앨린스키식 급진주의는 권력 없는 사람들에게 절차적 순결만 요구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봅니다. 이미 권력자는 언론, 법, 돈, 제도, 명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약자가 그들과 싸우려면 기존 질서가 허용하는 방식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보았습니다.

이 차이는 보수와 진보의 깊은 윤리적 차이를 보여줍니다.

보수는 수단의 윤리를 중시합니다. 진보 급진주의는 목적의 윤리를 중시합니다.

보수는 사회를 유지하는 신뢰와 규칙을 걱정합니다. 진보 급진주의는 기존 규칙이 이미 불평등한 권력을 보호한다고 봅니다.

보수는 거짓말이 공동체의 기초를 무너뜨린다고 봅니다. 진보 급진주의는 권력자가 만든 언어와 도덕이 이미 기만적이라고 봅니다.

전략적 상대주의의 위험

앨린스키의 정치론은 약자에게 힘을 주는 기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분명한 위험이 있습니다. 모든 진리를 상대화하고, 모든 윤리를 상황화하면, 결국 정치적 승리만 남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진보가 비판하던 권력의 논리를 스스로 반복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약자를 위한 전략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 전략은 누구에게나 사용될 수 있습니다. 상대를 악마화하고, 자신의 행동은 더 큰 정의로 포장하고, 불리한 사실은 생략하고, 유리한 사실만 강조하는 정치가 됩니다. 그렇게 되면 진보의 도덕적 언어는 점점 권력 기술로 변합니다.

이것이 보수주의가 오래전부터 경고해 온 지점입니다. 진리와 절차를 우습게 보는 정치는 결국 누구에게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오늘은 약자를 위해 거짓말을 정당화하지만, 내일은 권력자가 같은 방식으로 거짓말을 정당화할 수 있습니다.

앨린스키가 지금까지도 논쟁적인 이유는 그의 사상이 단순히 좌파적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더 중요한 이유는 그가 정치의 어두운 기술을 공개적으로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정치가 도덕적 대화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압박, 조롱, 망신, 위협, 상징 조작, 적 만들기, 양극화가 실제 정치에서 작동한다고 보았습니다.

보수주의자들은 바로 이 점을 문제 삼습니다. 앨린스키식 전략은 사회적 신뢰를 파괴할 수 있습니다. 상대를 악마화하고, 복잡한 문제를 단순한 적대 구도로 만들며, 도덕적 언어를 권력 획득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앨린스키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기존 권력은 이미 돈, 언론, 법, 제도, 명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약자가 예의 바르게 호소만 해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따라서 앨린스키의 전술은 권력 없는 사람들이 들리기 위해 사용하는 현실적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이 논쟁은 결국 정치윤리의 핵심 문제로 이어집니다. 약자는 어디까지 거칠게 싸울 수 있는가. 정의로운 목적은 어느 정도의 조작과 압박을 허용하는가. 절차와 진실을 지키다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는 것이 더 나쁜가, 아니면 정의를 위해 절차와 진실을 유연하게 다루는 것이 더 나쁜가.

결론: 진보 정치의 힘과 약점

정치는 현실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을 바꾼다는 명분으로 진실을 훼손하면, 바뀐 현실도 오래 버티기 어렵습니다.

앨린스키가 남긴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정의를 위해 싸운다는 사람이 어디까지 진실을 유연하게 다룰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진보 정치는 도덕의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권력의 기술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앨린스키의 이런 실천은 유럽의 거대한 이론가 안토니오 그람시를 떠올리게 합니다. 물론 두 사람이 직접적인 사제 관계에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구 사회에서 권력이 단순히 국가기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와 일상 조직 속에 흩어져 있다고 보았다는 점에서 닮아 있습니다.

그람시가 학교, 언론, 종교, 문화 속에서 헤게모니를 만드는 장기전을 말했다면, 앨린스키는 교회, 노조, 주민단체, 지역 불만을 조직해 실제 권력자를 압박하는 현장형 장기전을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앨린스키는 그람시의 이론적 후계자라기보다, 미국식 실용주의 속에서 비슷한 문제의식을 실천으로 구현한 조직가에 가깝습니다.

한 마디로, 그람시는 이론가입니다. 그는 왜 서구에서 혁명이 쉽게 일어나지 않는지, 시민사회가 어떻게 지배질서를 유지하는지, 그리고 대항 헤게모니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를 설명했습니다. 반면 앨린스키는 실천가입니다. 그는 문화 헤게모니 이론을 정교하게 전개하지 않았고, 마르크스주의적 역사철학에도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대신 “권력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조직되어 실제 협상력을 얻을 수 있는가”에 집중했습니다.

참고 자료

Saul D. Alinsky, Reveille for Radicals,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46.

Saul D. Alinsky, Rules for Radicals: A Pragmatic Primer for Realistic Radicals, Random House,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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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llary D. Rodham, “There Is Only the Fight…”: An Analysis of the Alinsky Model, Wellesley College Senior Thesis, 1969.

Michael Kruse, “The First Time Hillary Clinton Was President,” Politico Magazine, August 26, 2016.

Ryan Lizza, “The Agitator,” The New Republic, March 18, 2007.

Ryan Lizza, “Making It,” The New Yorker, July 21, 2008.

Antonio Gramsci, Selections from the Prison Notebooks, edited and translated by Quintin Hoare and Geoffrey Nowell Smith, International Publishers,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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