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데이비드 흄의 「기적에 관하여」


데이비드 흄의 에세이 「기적에 관하여」를 통해 자연법칙의 위반으로서의 기적의 정의와, 경험의 일관성에 기반한 회의주의적 증거 평가 방식을 살핍니다.

데이비드 흄의 「기적에 관하여」

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1776)은 영국 경험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입니다. 그는 존 로크와 조지 버클리 이후 경험주의 철학을 가장 치밀하게 밀어붙인 인물로 평가됩니다. 어린 나이에 에든버러 대학교에 들어갔을 만큼 학문적으로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이후 철학, 역사, 정치, 종교 비판에 걸쳐 폭넓은 저술을 남겼습니다.

흄이 일반 독자에게도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기적에 관하여」라는 글 때문입니다. 이 글은 『인간 오성에 관한 탐구』에 포함된 한 장으로, 회의주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텍스트 가운데 하나로 평가됩니다. 흄은 여기서 기적을 단순히 조롱하거나 감정적으로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오히려 매우 차분하게 묻습니다. 어떤 증언이 자연의 일관된 경험보다 더 강한 증거가 될 수 있는가.

흄의 주장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기적은 일상의 예외가 아니라 일상 전체에 대한 도전이라는 것입니다. 기적이란 자연의 일상적 질서 안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 경험은 한 가지 사건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수많은 관찰과 반복된 경험, 서로 맞물린 자연 현상들이 하나의 안정된 세계상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기적을 사실로 받아들이려면, 단지 이상한 일이 하나 있었다고 말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기적과 충돌하는 방대한 경험 전체보다 더 강한 증거가 필요합니다.

흄은 이렇게 말합니다.

기적은 자연법칙의 위반이다. 자연의 일상적인 과정에 따라 일어난 것이라면 어떤 것도 기적일 수 없다. 건강하던 사람이 갑자기 죽었다면 그것은 기적이 아니다. 그런 죽음도 가끔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면 그것은 기적이다. 그런 일은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도 관찰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기적적 사건에는 그것과 상반되는 한결같은 경험이 존재하며, 그 한결같은 경험이야말로 기적에 반대하는 직접적이고 강력한 증거이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흄이 “이상한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는 이상한 이야기와 기적을 구분했습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사건이 있다고 해서 곧바로 그것을 기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설명되지 않은 사건은 설명되지 않은 사건일 뿐입니다. 그것을 초자연적 사건으로 해석하려면, 그 해석을 뒷받침할 만큼 강력한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사실 기적이라고 불렸던 많은 현상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적 설명을 얻었습니다. 질병의 원인, 천문 현상, 감염병, 정신질환, 착시와 환각, 집단 심리 같은 것들이 모두 그 예입니다. 과거에는 초자연적 현상처럼 보였던 일들이 과학의 발전과 함께 자연 현상으로 설명되었습니다. 경험이 축적될수록 기적의 영역은 넓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좁아졌습니다. 더구나 현대 인지심리학은 인간이 얼마나 쉽게 착각하고, 잘못 기억하고, 기대에 따라 사실을 왜곡하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나는 기적을 보았다”고 말할 때, 우리는 먼저 그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지, 착각한 것은 아닌지, 상황을 잘못 이해한 것은 아닌지, 기억을 재구성한 것은 아닌지를 검토해야 합니다.

이 점에서 흄의 태도는 오컴의 면도날과도 연결됩니다. 어떤 현상을 설명할 때 불필요하게 복잡한 가정을 덧붙이지 말라는 원칙입니다. 설명 가능한 착각, 오류, 과장, 오해, 심리적 욕망이 있는데도 곧바로 초자연적 설명을 끌어들이는 것은 신중한 태도가 아닙니다. 최근에는 기적라는 단어 대신 미스터리, 초능력, 외계인, UFO 같은 표현이 자주 사용됩니다. 그러나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외계의 뛰어난 지적 존재가 지구까지 날아왔다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그들이 하는 일은 공개적이고 검증 가능한 접촉이 아니라 아무도 확인할 수 없는 비밀 비행, 은밀한 착륙, 개인적 납치 경험뿐이라는 이야기는 매우 이상합니다. 그런 주장을 받아들이기 전에, 인간의 착각, 기억 왜곡, 음모론적 상상, 믿고 싶은 욕망을 먼저 검토하는 편이 훨씬 합리적입니다.

흄의 논지는 현대 회의주의 운동의 유명한 원칙으로 이어집니다. “믿기 어려운 주장을 하려면 그만큼 뛰어난 증거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이 표현은 흔히 칼 세이건의 말로 알려져 있지만, 원래는 현대 회의주의 운동의 중요한 인물인 마르첼로 투르지가 “An extraordinary claim requires extraordinary proof”라는 형태로 사용한 표현입니다. 이후 칼 세이건이 proof 대신 evidence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표현은 조금 다르지만 핵심은 같습니다. 평범한 주장에는 평범한 증거로 충분할 수 있지만, 세계에 대한 우리의 축적된 경험을 뒤집는 주장에는 그만큼 강한 증거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태도가 바로 경험주의의 핵심입니다. 경험주의자는 세상을 머릿속 원리만으로 재단하지 않습니다. 먼저 관찰하고, 비교하고, 검토합니다. 자신이 믿고 싶은 결론보다 실제 경험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인간은 종종 연역적이고 합리주의적인 설명을 더 좋아합니다. 몇 개의 원리로 세계 전체를 설명하는 체계는 매력적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인간의 삶을 바꾼 발견들은 대부분 경험을 중시하는 과학에서 나왔습니다. 의학, 물리학, 생물학, 공학, 통계학은 모두 관찰과 검증을 통해 발전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경험주의는 단순한 철학 이론이 아니라, 현대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사고 태도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경험주의자들도 실수를 합니다. 경험을 중시한다고 해서 항상 옳은 것은 아닙니다. 아이작 뉴턴은 근대 과학의 상징이지만, 동시에 연금술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는 자연을 관찰하고 수학적으로 설명한 위대한 과학자였지만, 오늘날의 기준에서 보면 잘못된 탐구에도 많은 시간을 쏟았습니다. 이것은 경험주의의 약점이라기보다 인간 지성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경험을 중시하는 사람도 시대의 한계, 개인의 욕망, 아직 충분히 정리되지 않은 지식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경험주의는 더 중요합니다. 경험주의는 인간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합니다. 어떤 이론이 아무리 아름답고, 어떤 믿음이 아무리 오래되었고, 어떤 증언이 아무리 인상적이라도, 그것이 실제 경험과 충돌한다면 다시 검토되어야 합니다. 흄의 「기적에 관하여」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기적을 부정한 사람이기 전에, 인간이 믿고 싶은 것과 실제로 믿을 만한 것을 구분하려 한 사람이었습니다. 회의주의란 아무것도 믿지 않는 태도가 아닙니다. 믿음의 무게에 맞는 증거를 요구하는 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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