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탄핵은 법적 절차입니다. 그러나 탄핵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법률 조항만이 아닙니다. 국회가 움직여야 하고, 여론이 형성되어야 하며, 언론 프레임이 만들어져야 하고, 정당 내부가 갈라져야 합니다. 그래서 "탄핵"은 법적 사건이면서 동시에 정치적 사건입니다.
박근혜 탄핵은 이 점을 잘 보여줍니다. 법적으로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정리된 사건입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보면 훨씬 복잡합니다. 대중에게는 “국정농단”, “최순실의 나라”, “태블릿PC”라는 짧은 기억으로 남았지만, 실제 법적 구조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박근혜가 직접 돈을 받은 사건처럼 기억되지만, 핵심 쟁점은 더 복잡했습니다. 박근혜 개인 계좌로 돈이 들어갔느냐가 아니라, 최순실과 재단 등 제3자에게 간 이익을 대통령의 직무권한 행사와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가 중요했습니다. 즉 제3자뇌물, 직권남용, 강요, 공무상비밀누설 같은 법리가 얽힌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치적 기억"은 복잡한 법리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대중정치는 긴 설명보다 짧은 상징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사건은 “대통령이 최순실에게 나라를 맡겼다”는 식으로 기억되었습니다. 법적 쟁점은 복잡했지만, 정치적 기억은 단순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단순함이 사람들을 움직였습니다.
"태블릿PC"는 이 과정에서 결정적 상징이 되었습니다. 태블릿PC 안에 문서가 있었다는 것과, 그 태블릿PC로 최순실이 문서를 수정했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문서를 열람할 수 있었다는 것과, 국정을 조종했다는 것도 같은 말이 아닙니다. 개통 명의, 실제 사용자, 소유 관계, 입수 경위, 문서 생성과 수정 가능성은 모두 따로 검토해야 할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정치적 여론 속에서 이 구분은 사라졌습니다. 태블릿PC는 곧바로 “최순실의 태블릿”이 되었고, “최순실이 대통령 연설문을 고쳤다”는 이미지가 만들어졌습니다. 법적으로 확인해야 할 여러 단계가 하나의 도덕적 구호로 압축된 것입니다.
이것이 기계정치가 기억을 만드는 방식입니다. 복잡한 사실관계는 대중을 움직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의 상징은 대중을 빠르게 움직입니다. 태블릿PC는 그런 상징이었습니다. 그것이 실제로 무엇을 입증했는가보다, 대중에게 무엇을 기억하게 만들었는가가 더 중요해졌습니다.
탄핵의 원인은 바로 이 지점에서 생깁니다. 법적 사유가 있어야 탄핵 절차가 진행됩니다. 그러나 법적 사유만으로 탄핵이 현실화되지는 않습니다. 탄핵이 현실이 되려면 대중이 그것을 하나의 도덕적 기억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대통령은 더 이상 통치할 자격이 없다”는 감각이 사회적으로 형성되어야 합니다.
박근혜 탄핵에서 그 감각은 “국정농단”이라는 말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말은 강력했습니다. 법률 용어가 아니었지만, 법률 용어보다 더 강한 정치적 힘을 가졌습니다. “국정농단”이라는 말 속에는 부패, 배신, 무능, 사적 권력, 민주주의 파괴라는 이미지가 모두 들어갔습니다. 사람들은 복잡한 법리를 따진 것이 아니라, 그 단어가 만든 도덕적 세계를 받아들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실"과 "기억"의 차이입니다. 사실은 복잡합니다. 기억은 단순합니다. 사실은 여러 층위를 갖습니다. 기억은 하나의 장면으로 남습니다. 박근혜 탄핵에서 그 장면은 태블릿PC였습니다. 사람들은 법률 문장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하나의 물건, 하나의 단어, 하나의 이미지를 기억합니다.
기계정치는 바로 이 차이를 이용합니다. 법리는 전문가의 언어입니다. 그러나 "기억"은 대중의 언어입니다. 법리는 판단을 요구하지만, 기억은 반응을 요구합니다. 법리는 “무엇이 입증되었는가”를 묻지만, 정치적 기억은 “우리는 무엇을 당했는가”를 묻습니다.
그래서 탄핵은 한 번 정치적 기억이 되면 쉽게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시간이 지나 법적 쟁점을 다시 검토해도 이미 만들어진 기억은 잘 바뀌지 않습니다. 태블릿PC의 소유 관계가 무엇이었는지, 문서 수정이 가능했는지, 최순실이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논쟁은 뒤늦게 제기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중 기억 속에서는 이미 결론이 내려져 있습니다.
이것이 정치적 기억의 무서운 점입니다. 기억은 사실보다 늦게 수정됩니다. 때로는 사실이 수정되어도 기억은 그대로 남습니다. 한 번 “부패한 대통령”, “꼭두각시 대통령”, “국정을 사유화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지면, 이후의 정보는 그 이미지에 맞춰 해석됩니다.
윤석열 탄핵도 같은 구조로 볼 수 있습니다. 사건의 법적 쟁점은 다릅니다. 박근혜 탄핵이 최순실, 재단, 태블릿PC, 제3자 이익 구조와 연결되었다면, 윤석열 탄핵은 비상계엄, 국회 기능 침해, 대통령 권한 남용 문제와 연결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비슷한 과정이 나타났습니다. 복잡한 법적 쟁점이 하나의 상징과 기억으로 압축되었습니다.
윤석열은 강한 지역 기반이나 오래된 정당 기계를 가진 대통령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검찰 권력, 법치 이미지, 반문재인 정서, 정권교체 요구가 결합해 등장한 인물에 가까웠습니다. 대통령 권력은 가졌지만, 정치기계는 충분히 갖지 못했습니다. 한국 정치에서 대통령 권력만으로는 오래 버티기 어렵습니다. 국회, 정당, 지역조직, 공천 구조가 함께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은 국민 전체를 대표하는 권력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 정치는 국회와 정당, 지역구와 언론, 여론과 거리 동원이 함께 움직입니다. 대통령이 이 구조와 충돌하면, 대통령 권력은 생각보다 취약해집니다. 박근혜도 그랬고 윤석열도 그랬습니다. 두 사건의 법적 사유는 다르지만, 대통령 권력이 정치기계와 여론 기억 앞에서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은 닮아 있습니다.
이 말은 대통령에게 책임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탄핵은 가벼운 사건이 아닙니다. 대통령의 권한 행사가 헌법 질서와 충돌했는지, 국가 운영을 심각하게 훼손했는지는 당연히 따져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보아야 할 것은, 어떤 사건이 어떻게 탄핵 가능한 기억으로 변하는가입니다.
모든 위법이 탄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실정이 파면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탄핵은 법적 요건과 정치적 동원이 결합할 때 현실이 됩니다. 국회가 움직이고, 언론이 상징을 만들고, 대중이 도덕적 분노를 공유하고, 정당 내부가 균열될 때 탄핵은 가능해집니다.
이 과정에서 기계정치는 자신을 정의의 편에 놓습니다. “우리는 헌정을 지킨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회복한다”, “우리는 부패를 심판한다”고 말합니다. 물론 그 말이 전부 거짓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 말이 사건의 복잡성을 지우고, 하나의 도덕적 기억만 남길 때입니다.
박근혜 탄핵의 기억은 “국정농단”이었습니다. 윤석열 탄핵의 기억은 “계엄”이었습니다. 이 단어들은 매우 강력합니다. 그 안에는 법리보다 먼저 작동하는 "감정"이 있습니다. 배신감, 공포, 분노, 모욕감이 들어 있습니다. 이런 감정은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한 번 정치적 기억이 되면, 다음 세대의 정치 언어가 됩니다.
그래서 탄핵은 끝나도 탄핵의 기억은 끝나지 않습니다. 박근혜 탄핵은 보수정치 전체에 오래 남는 상처가 되었습니다. 윤석열 탄핵도 한국 정치에 또 다른 기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 기억이 제도 개선으로 이어질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혐오와 동원의 연료가 될 것인가입니다.
성숙한 정치는 탄핵 이후에 질문을 남깁니다. 무엇이 제도적으로 잘못되었는가. 대통령 권한은 어디까지인가. 국회 권력은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 언론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충분히 설득력 있었는가. 정치적 동원은 어디까지 정당한가.
그러나 기계정치는 질문을 남기지 않습니다. 기억만 남깁니다. “우리가 이겼다.” “저들은 부패했다.” “저들은 위험하다.” “다시는 돌아오게 해서는 안 된다.” 이런 기억은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제도를 고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탄핵은 민주주의의 비상장치입니다. 그러나 비상장치가 반복적으로 정치적 무기가 되면 민주주의는 안정되지 않습니다. 대통령은 임기마다 불안정해지고, 국회와 정당 기계는 더 강해집니다. 국민은 대통령을 뽑지만, 대통령을 흔드는 것은 국회와 정치기계입니다. 결국 선거로 만들어진 권력이 선거 밖의 동원과 정당 계산 속에서 무너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탄핵 정치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탄핵은 법의 이름으로 진행되지만, "기억"의 힘으로 완성됩니다. 그리고 기억은 언제나 법보다 단순합니다. 법은 증거를 따지고, 절차를 따지고, 책임의 범위를 따집니다. 그러나 기억은 하나의 문장으로 말합니다.
“그는 나라를 망쳤다.”
이 문장이 만들어지는 순간, 탄핵은 법정 밖에서 이미 시작됩니다. 그리고 기계정치는 그 문장을 반복합니다. 반복된 문장은 분노가 되고, 분노는 기억이 되고, 기억은 신념이 됩니다.
탄핵은 대통령을 파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탄핵의 기억은 사회를 오래 지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탄핵을 이해하려면 판결문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어떤 단어가 만들어졌는지, 어떤 상징이 반복되었는지, 어떤 기억이 유권자의 머릿속에 남았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정치는 결국 기억의 싸움입니다. 탄핵은 그 기억이 가장 격렬하게 만들어지는 순간입니다.
JTBC에 대한 반감
그러나 정치적 기억은 영원히 한 방향으로만 작동하지 않습니다. 박근혜 탄핵 당시 태블릿PC 보도는 탄핵 여론을 형성한 핵심 상징이었습니다. JTBC는 그 상징을 가장 먼저 대중 앞에 제시했고, 태블릿PC는 곧바로 “국정농단의 스모킹건”처럼 기억되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다른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태블릿PC는 실제로 무엇을 입증했는가. 그것으로 문서를 수정할 수 있었는가. 개통 명의와 실제 사용자는 누구였는가. 왜 복잡한 사실관계가 “최순실의 태블릿”이라는 한 문장으로 압축되었는가.
이 질문들이 커졌을 때, JTBC는 더 이상 과거의 상징만으로 신뢰를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중앙일보와 JTBC가 경영 위기에 놓였을 때, 국민은 그들을 구하기 위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언론사의 경영 실패만이 아닙니다. 한때 정치적 기억을 만든 언론이, 그 기억의 후폭풍 속에서 대중의 신뢰를 잃은 장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
기계정치는 상징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상징이 지나치게 단순화된 것이었다고 사람들이 깨닫는 순간, 상징을 만든 자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태블릿PC는 박근혜 탄핵의 기억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그 기억은 다시 JTBC를 향한 불신의 기억으로 돌아왔습니다.
현재 우리는 그 결과를 보고 있습니다.
질문이 멈추면 민주주의도 끝난다.
정치는 기억을 만듭니다. 그러나 기억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질문하기 시작합니다. 그 기억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우리는 왜 그렇게 쉽게 믿었는가. 누가 그 기억을 만들었는가.
박근혜 탄핵 당시 태블릿PC는 하나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상징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검증의 대상이 됩니다.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았던 문제들이 뒤늦게 다시 논의되기 시작했습니다. 태블릿PC의 입수 경위, 사용 관계, 법적 의미를 둘러싼 논쟁도 그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논쟁의 결론이 같아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사회가 다시 질문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기계정치는 질문이 사라질 때 가장 강해집니다. 반대로 시민이 다시 질문하기 시작하면 기계정치는 약해집니다.
그래서 기억을 만든 사람도 결국 기억의 심판을 받습니다. 한때 여론을 움직였던 언론도, 한때 절대적인 신뢰를 받았던 매체도 예외가 아닙니다. 언론이 신뢰를 잃는다면 그것은 단순한 경영 실패가 아니라, 자신이 만든 기억이 다시 검증받는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기억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질문으로 유지됩니다. 기억은 과거를 보존하지만, 질문은 권력을 견제합니다. 어느 정당도, 어느 대통령도, 어느 언론도 질문에서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질문이 멈추는 순간, 민주주의는 끝나고 기계정치가 시작됩니다.
참고문헌
- 헌법재판소, 2016헌나1 대통령(박근혜) 탄핵 결정, 2017년 3월 10일.
- 국가법령정보센터, 대통령(박근혜) 탄핵 결정 전문, 2017.
- 헌법재판소, 2024헌나8 대통령(윤석열) 탄핵 결정, 2025년 4월 4일.
- Jill A. Edy, “Journalistic Uses of Collective Memory”, Journal of Communication 49(2), 1999.
- Jeffrey K. Olick, The Politics of Regret: On Collective Memory and Historical Responsibility, Routledge, 2007.
- Francis L. F. Lee·Michael Chan·Louis Leung, “When a Historical Analogy Fails: Current Political Events and Collective Memory Contestation in the News”, Memory Studies 12(5), 2019.
- 연합뉴스, “검찰, ‘JTBC 보도 태블릿PC’ 최서원 측에 반환”, 2024년 1월 18일.
헌법재판소 결정문은 각 탄핵의 법적 판단을 확인하기 위한 1차 자료입니다. 태블릿PC의 보도 효과, 언론 신뢰, ‘기계정치’에 관한 평가는 결정문 자체의 결론이 아니라 집단기억 연구를 적용한 필자의 정치적 해석이며, 소유권 반환 판결만으로 보도 내용 전체의 진위가 뒤집혔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