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이 자기가축화의 과정 속에 있다는 가설이 있습니다. 인간을 누군가가 사육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충동적으로 공격하는 개체보다 감정을 조절하고, 다른 사람과 협력하며, 더 큰 집단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개체가 유리해졌다는 가설입니다.
이 가설은 아직 확증된 이론은 아닙니다. 그러나 상당히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공합니다. 현생인류에게서 반응적 공격성이 감소하고, 얼굴과 골격이 섬세해지며, 사회적 관용과 협력 능력이 증가했다는 여러 특징을 하나의 흐름으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자기가축화를 설명할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동물은 보노보와 침팬지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늑대와 개의 이야기로 시작해보겠습니다.
개는 인간이 가축화한 동물 가운데 매우 이른 시기에 인간 사회로 들어왔으며, 무엇보다 늑대라는 사회적 포식동물에서 출발했습니다. 인간이 길들인 동물 가운데 대표적인 포식동물이라는 점에서도 특별합니다.
늑대와 개의 차이는 단순히 사나운 동물과 온순한 동물의 차이가 아닙니다. 그것은 위험을 판단하는 방식, 다른 개체를 바라보는 방식, 충동을 행동으로 옮기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동물은 어떻게 판단하는가
동물은 인간처럼 언어로 사고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것도 아닙니다.
동물에게도 기억과 학습, 예측과 문제 해결 능력이 있습니다. 늑대는 사냥감의 움직임을 살피고 다른 늑대와 협력합니다. 개는 사람의 표정과 시선, 손짓과 목소리를 구분합니다. 경험을 기억하고 새로운 상황에 적용하기도 합니다.
다만 동물의 판단에서는 감정이 매우 큰 역할을 합니다.
두려움은 위험에서 멀어지게 하고, 분노는 경쟁자를 몰아내게 하거나 위험한 상황에서 탈출하도록 하며, 애착은 새끼와 동료 곁에 머물게 합니다. 호기심은 먹이를 찾을 수 있게 하거나, 새로운 대상을 조사하게 하고, 혐오는 해로운 물질을 피하게 합니다. 그리고 슬픔은 무리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합니다.
감정은 이성과 반대되는 비합리적인 잡음이 아닙니다. 감정은 수많은 정보를 빠르게 압축하여 행동의 방향을 정하는 오래된 판단 장치입니다. 여러가지 감각에서 오는 신호를 감정과 연결시켜서 생존해왔습니다.
숲에서 낯선 소리가 들렸을 때 동물은 그것이 무엇인지 오랫동안 분석하지 않습니다. 먼저 멈추거나, 몸을 낮추거나, 도망갈 준비를 합니다. 정확한 판단보다 빠른 판단이 생존에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동물들이 이러한 감정 중심의 판단만으로도 충분히 살아간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동물은 고등한 이성의 도움 없이도 먹이를 찾고, 위험을 피하고, 짝을 만나고, 새끼를 기릅니다.
인간 역시 이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인간은 이성을 발달시켰지만 모든 판단을 처음부터 논리적으로 계산하지 않습니다. 먼저 감정이 관심의 방향을 정하고, 그 다음 이성이 판단을 설명하거나 수정합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사실은 이성이 중심이 아닌 감정을 기반으로 생존해왔고 마이클 룬드브라드는 이러한 삶의 양식을 묘사하면서 animality라고 불렀습니다. 우리 인간이 얼마나 동물성을 유지하고 있는가는 쉽게 역사 속에서 증명됩니다.
따라서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의 차이를 이해할 때도 이성의 차이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어느 한쪽이 더 이성적이고 다른 쪽이 비이성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들에게 수학과 같이 감정이 개입되지 않는 학문을 가르치면 보수나 진보 모두 문제를 잘 풀어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수와 진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그들의 감정이 어떤 감각과 연결되고 어떤 상황과 연결되어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오리는 부모의 얼굴을 DNA에 새길 수가 없기 때문에 태어나서 처음보는 동물에게 강한 애착을 가지게 하는 각인 현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뜻 보면 엉뚱하지만 그들이 자연계에서 생존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성에 앞서 무엇을 위험으로 느끼는지, 무엇을 새로운 가능성으로 느끼는지, 어느 행동에 더 높은 문턱을 두는지가 다를 수 있습니다.
정치적 차이는 논리의 차이기 전에 세계를 감지하는 방식의 차일 수 있습니다.
늑대의 세계는 경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늑대는 매우 사회적인 동물입니다. 흔히 늑대 무리를 힘센 우두머리가 지배하는 계급사회로 생각하지만, 야생의 늑대 무리는 대체로 번식하는 부모와 그 자손으로 이루어진 가족집단입니다.
무리 내부에서는 협력하지만, 다른 무리와의 관계에서는 분명한 경계가 존재합니다. 늑대에게 영역은 단순한 땅이 아닙니다. 먹이와 번식, 새끼의 생존을 보장하는 생활 기반입니다.
다른 무리가 영역에 들어오면 자원을 빼앗길 수 있고 새끼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늑대는 냄새 표지와 울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다른 무리의 접근을 경계합니다.
늑대끼리 가능한 한 직접적인 싸움을 피하지만, 경계가 무너지면 치명적인 충돌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한쪽이 물러나지 않으면 싸움은 죽음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늑대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행동은 비합리적이지 않습니다. 침입을 반복해서 허용한 무리는 먹이를 잃고 번식에 실패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늑대에게 경계에 대한 민감성은 편견이 아니라 생존 전략입니다.
낯선 무리가 다가왔을 때 늑대의 뇌가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은 단순합니다.
- 저들은 우리 무리인가, 다른 무리인가.
- 저들의 접근은 안전한가, 위험한가.
- 지금 물러나면 다음에는 어디까지 빼앗기는가.
이것은 매우 오래된 정치의 원형이기도 합니다.
늑대가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이유
늑대는 대체로 안정적인 번식 쌍을 형성하고 공동으로 새끼를 기릅니다. 이를 인간의 낭만적인 일부일처제와 같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늑대의 번식 체계는 새끼를 기르는 데 많은 자원과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형성된 사회적 구조입니다.
레이먼드 코핑거는 늑대의 일부일처제를 복잡한 도덕적 감정이 아니라 비교적 단순한 행동 규칙으로 설명했습니다. 기존 번식 암컷은 새로 접근하는 암컷을 경계하고, 번식 수컷은 다른 수컷의 접근을 막습니다.
암컷은 암컷을 경쟁자로 보고, 수컷은 수컷을 경쟁자로 보는 행동이 반복되면 안정된 번식 쌍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늑대가 결혼의 가치를 이해해서 일부일처제를 지키는 것은 아닙니다. 경쟁자를 받아들이지 않는 행동과 새끼를 함께 길러야 하는 생태적 조건이 결과적으로 안정된 가족구조를 만듭니다.
인간의 규범도 이와 완전히 무관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도덕적 이유를 말하지만, 많은 규범의 밑바닥에는 갈등을 줄이고 양육과 자원분배를 안정시키려는 오래된 필요가 있습니다.
문명은 본능을 제거한 것이 아니라 본능이 끊임없이 충돌하지 않도록 규칙을 만든 체계입니다.
개가 되면서 무엇이 달라졌는가
늑대에서 개로 이어지는 가축화의 핵심은 단순히 몸집이 작아지거나 귀가 늘어진 데 있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인간에게 접근할 수 있을 만큼 두려움과 공격성이 조절되었다는 점입니다.
초기의 늑대 가운데 인간의 거주지 가까이에서 버려진 먹이를 먹을 수 있었던 개체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인간을 보자마자 도망치거나 공격한 늑대는 인간 주변에서 살아가기 어려웠습니다.
반대로 인간을 경계하면서도 일정한 거리에서 관찰하고, 조금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던 늑대는 새로운 먹이 자원을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도주거리가 짧아졌습니다. 이것은 더욱 친절한 혹은 순한 동물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두려움이 사라졌다기보다는 친밀성이 강화된 것일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공격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가축화는 어떤 자극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고, 다른 자극에 대한 민감성을 높이는 과정이었습니다. 인간 자체를 위험한 포식자로 보는 반응은 약해져야 했지만, 인간의 표정과 목소리, 손짓과 지시에는 더욱 민감해져야 했습니다.
개는 감정을 잃은 동물이 아닙니다. 감정의 대상과 강도가 재조직된 동물입니다.
영역에 대한 집착이 줄어들다
늑대 무리에서 낯선 성체 늑대의 접근은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반면 인간 사회에서 살아가는 개는 훨씬 높은 개체 밀도를 견뎌야 합니다. 한 마을 안에서 여러 개가 함께 살아가고, 낯선 사람과 개를 반복해서 마주칩니다.
모든 만남을 영역 침입으로 받아들여 공격한다면 인간 곁에서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개가 되기 위해서는 낯선 존재를 만났을 때 즉각 공격하는 반응의 문턱이 덜 일어나야 합니다. 늑대는 자기 가족만을 믿었지만, 개들은 주변의 개들이 자신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들과 친하게 지내는 방법을 배워 갑니다.
바로 달려들기보다 냄새를 맡고, 관찰하고, 상대의 신호를 확인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온순함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충돌이 줄어들면 더 많은 개체가 좁은 공간에서 함께 살 수 있습니다. 무리의 규모가 커지고 낯선 존재와의 교류도 가능해집니다.
문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모르는 수많은 인간이 도시에서 함께 살기 위해서는 사소한 침입과 불쾌감을 곧바로 폭력으로 갚지 않아야 합니다.
자기가축화의 중요한 결과는 착한 인간의 탄생이 아니라, 낯선 사람을 즉시 공격하지 않는 인간의 탄생이었을 것입니다.
인류 역사 중 가장 오래된 전설 중의 하나인 길가메시 서사시에도 길가메시와 엔키두의 싸움은 바로 이러한 장면을 잘 드러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도시인인 길가메시와 숲속의 엔키두의 싸움에서 결국은 엔키두가 길가메시를 따르게 됩니다.
질투와 경쟁의 강도가 낮아지다
늑대의 삶에서 짝과 먹이, 영역을 둘러싼 경쟁은 생존과 직접 연결됩니다. 경쟁자를 용인하는 데에는 큰 비용이 따릅니다.
개는 인간에게 먹이와 번식 기회를 의존하게 되면서 경쟁의 구조가 달라졌습니다.
물론 개에게도 질투와 자원 방어, 개체 간 경쟁은 남아 있습니다. 가축화되었다고 해서 그러한 감정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인간 사회에 적응한 개에게는 모든 경쟁자를 제거하는 것보다 인간의 규칙 안에서 다른 개체와 공존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상대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공격하지 않는 능력, 불쾌하더라도 기다리는 능력, 당장 차지하고 싶더라도 포기하는 능력에서 시작됩니다.
이것이 사회적 관용의 생물학적 바탕입니다.
인간 자기가축화 가설에서도 중요한 것은 인간이 공격성을 완전히 잃었다는 주장이 아닙니다.
인간은 계획적이고 집단적인 공격에서는 오히려 매우 위험한 동물입니다. 다만 사소한 자극에 즉각 폭발하는 반응적 공격성은 감소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인간은 순간적으로 싸우기보다 규칙을 만들고, 동맹을 구성하고, 처벌을 제도화했습니다.
가축화는 폭력을 없애지 않았습니다. 폭력을 충동에서 억제로 옮겼습니다.
사냥 행동은 하나의 본능이 아닙니다
개가 늑대에서 갈라졌다고 해서 사냥 본능이 단순히 약해진 것은 아닙니다.
개의 사냥 행동은 여러 단계로 나누어집니다. 이것을 행동패턴이라고 부릅니다.
먹이를 탐색하고, 발견하면 응시하고, 몸을 낮추어 접근하고, 추격하고, 붙잡고, 물어 죽이고, 해체하여 먹습니다.
인간은 개를 품종별로 선택하면서 이 행동 연쇄의 특정 부분을 강화하고 다른 부분을 억제했습니다.
보더콜리는 양을 발견하면 강하게 응시하고 낮은 자세로 접근하며 움직이는 양을 추격합니다.
그러나 목양견으로 기능하려면 마지막 단계인 붙잡기와 죽이기로 쉽게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양을 몰아야지 양을 사냥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사냥개 가운데에는 추적과 추격이 강화된 품종이 있고, 물어서 붙잡는 행동이 강화된 품종도 있습니다. 리트리버는 사냥감을 입에 물고 운반하지만 심하게 손상시키지 않는 행동이 선택되었습니다.
이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중요합니다.
행동은 하나의 덩어리가 아닙니다. 진화와 선택은 행동 연쇄 전체를 없애지 않고 중간 단계의 연결을 끊거나 강화할 수 있습니다.
보더콜리는 양을 보고 아무런 충동을 느끼지 않는 개가 아닙니다. 오히려 양의 움직임에 대단히 민감합니다.
다만 그 충동이 살해 행동까지 이어지지 않도록 선택된 개입니다.
그런데 개들의 어떤 변화가 이러한 것을 가능하게 했을까요? 템플 그랜딘은 이것을 두려움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두려움이라는 단어를 다른 용어로 대체할 수도 있기도 하지만, 그녀는 다음 동작이 동물의 가장 기본적인 감정인 두려움에 연결되면서 그 다음 동작이 연결되지 않았다고 해석합니다.
문명화된 인간도 이와 비슷합니다.
분노와 경쟁심, 질투와 영역의식이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감정이 곧바로 폭력과 파괴로 이어지지 않도록 행동의 연결고리가 조절된 것입니다. 자제는 두려움입니다. 물론 두려움은 겁이 아닙니다. 뭔가 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막연한 감정을 의미합니다.
두려움은 행동을 멈추게 합니다
두려움은 흔히 나약함으로 해석됩니다. 그러나 진화적으로 두려움은 생존에 필수적인 감정입니다.
두려움이 강한 동물은 새로운 자극을 만났을 때 먼저 멈춥니다. 접근하기 전에 냄새를 맡고, 움직이기 전에 주변을 살핍니다.
이러한 행동은 기회를 놓치게 할 수 있지만 위험한 실수를 줄여줍니다.
두려움이 전혀 없다면 용감하기 보다는 오히려 겁이 없어 오래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가축화 과정에서도 두려움은 단순히 감소하지 않았습니다.
보더콜리가 양을 향해 달려가면서도 마지막 순간에 멈출 수 있는 것은 무능력이 아닙니다. 사냥 행동의 일부를 억제할 수 있기 때문에 목양이 가능합니다.
문명 역시 하고 싶은 행동을 모두 하는 능력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능력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침팬지와 보노보는 무엇이 다른가
이제 약간 방향을 바꿔서 침팬지와 보노보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경쟁의 강도가 낮아졌을 때 사회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는 침팬지와 보노보의 차이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침팬지와 보노보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친척이며 서로도 매우 가까운 종입니다. 외형도 비슷하고 여러 행동을 공유합니다.
그러나 집단 내 권력과 성적 경쟁이 조직되는 방식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침팬지 사회에서는 성체 수컷들이 강한 서열을 형성합니다. 수컷들은 번식 기회와 지위를 놓고 경쟁하며, 동맹을 만들어 다른 수컷을 제압합니다.
암컷의 번식 가능성이 높아지는 시기에는 수컷들의 경쟁도 강해질 수 있습니다. 집단 사이의 관계에서도 순찰과 침입, 치명적인 공격이 관찰됩니다.
따라서 침팬지 사회에서는 성적 경쟁과 권력 경쟁이 쉽게 결합합니다.
높은 지위를 얻은 수컷은 더 많은 번식 기회를 확보할 수 있고, 번식 경쟁은 수컷이 지위와 동맹에 집착하게 만드는 중요한 동력이 됩니다.
보노보에게도 서열과 경쟁, 공격 행동은 존재합니다. 보노보를 폭력이 없는 평화로운 동물로 묘사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보노보의 사회는 침팬지와 다른 방식으로 조직됩니다.
보노보 암컷들은 강한 연합을 형성하며, 이러한 연합은 수컷의 일방적인 지배를 제한합니다. 개별 암컷은 수컷보다 약할 수 있지만 암컷들이 협력하면 공격적인 수컷을 제압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수컷의 강압적인 번식 전략이 침팬지 사회에서만큼 유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보노보의 성적 행동도 단순히 번식을 위한 행위에 머물지 않습니다.
암컷과 암컷, 수컷과 수컷 사이에서도 다양한 사회성적 접촉이 나타납니다. 먹이를 앞두고 긴장이 높아질 때, 갈등이 발생한 뒤 관계를 회복할 때, 새로운 개체와 친화관계를 만들 때에도 성적 행동이 이용됩니다.
따라서 보노보는 성적 긴장이 없는 동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적 행동이 번식 경쟁에만 묶이지 않고, 긴장을 완화하고 관계를 연결하는 더 넓은 사회적 기능을 갖게 된 동물에 가깝습니다.
침팬지와 보노보의 차이는 성적 행동의 존재 여부가 아닙니다. 성적 행동이 사회관계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는가의 차이입니다.
침팬지 사회에서는 성적 경쟁이 지위와 권력에 강하게 연결됩니다.
보노보 사회에서는 성적 행동이 독점과 경쟁뿐 아니라 긴장 완화와 친화관계 형성에도 이용됩니다. 언뜻 우리가 보면 엄청나게 문란하게까지 보이는 이 행동은 오히려 보노보 사회의 강한 접착력이 되기도 합니다.
짝을 독점하려는 경쟁이 강하면 수컷들은 서로를 끊임없이 감시해야 합니다. 지위가 번식 기회와 직결된다면 서열의 작은 변화도 중대한 위협이 됩니다.
새로운 수컷은 동료이기 전에 경쟁자이며, 암컷의 이동은 개인적 관계가 아니라 권력과 번식의 문제로 받아들여집니다.
이러한 조건에서는 사회의 많은 에너지가 경쟁자를 억압하고, 동맹을 유지하고,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는 데 사용됩니다.
반대로 짝에 대한 독점 가능성이 낮아지고, 암컷들이 연합하여 수컷의 강압을 억제하며, 성적 접촉이 긴장 완화와 친화관계 형성에도 이용되면 모든 만남이 번식 경쟁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다른 개체는 반드시 제거해야 할 경쟁자가 아니라 교류할 수 있는 상대가 됩니다.
성적 긴장이 줄어든다는 것은 성욕이 사라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적 욕망이 곧바로 질투와 독점, 지배와 폭력으로 이어지는 연결이 약해진다는 뜻입니다.
그때 사회적 시야도 넓어질 수 있습니다.
본능에서 조금 벗어나자 더 넓은 세계가 보였습니다
가축화가 개에게 가져다준 가장 중요한 변화는 온순함만이 아니었을 수 있습니다.
개는 늑대의 본능을 잃은 것이 아닙니다. 사냥하고, 경계하고, 경쟁하고, 자신의 자원을 지키려는 감정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다만 그러한 감정이 모든 상황에서 행동을 완전히 장악하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늑대가 낯선 존재를 만났을 때 가장 먼저 작동하는 것은 경계입니다. 상대가 먹잇감인지, 경쟁자인지, 침입자인지를 빠르게 구분해야 합니다.
야생에서는 이러한 판단이 대체로 유리합니다. 오래 관찰하다가는 먹이를 놓치거나 먼저 공격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능이 너무 강하면 세계는 몇 가지 범주로만 보이게 됩니다.
잡을 것인가, 피할 것인가.
우리 편인가, 적인가.
지킬 것인가, 빼앗길 것인가.
강한 감정은 행동을 빠르게 만들지만 동시에 세계를 단순하게 만듭니다. 눈앞의 대상이 자신의 욕구와 위험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만 보이게 하기 때문입니다.
개는 인간 곁으로 들어오면서 즉각적인 반응을 조금 미룰 수 있어야 했습니다.
낯선 인간을 보았다고 곧바로 도망치거나 공격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인간이 손을 뻗을 때 잡으려는 것인지, 먹이를 주려는 것인지, 방향을 가리키는 것인지 구별해야 했습니다.
인간의 얼굴과 시선, 목소리와 몸짓을 읽어야 했습니다.
그 순간 개에게는 늑대에게 중요하지 않았던 새로운 정보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손가락은 단순히 움직이는 신체 일부가 아니라 멀리 있는 대상을 가리키는 신호가 되었습니다. 사람의 시선은 공격의 전조만이 아니라 관심이 향하는 방향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목소리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허용과 금지, 칭찬과 경고를 구분하는 정보가 되었습니다.
개는 본능을 잃었기 때문에 인간을 이해한 것이 아닙니다. 본능이 즉시 행동을 결정하는 힘이 약해졌기 때문에, 그 사이에 다른 정보를 받아들일 여유가 생긴 것입니다.
이것은 개가 늑대보다 모든 문제를 더 잘 해결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늑대는 독립적인 문제 해결과 자연환경 적응에서 매우 뛰어납니다. 개의 특별함은 일반적인 지능의 상승이라기보다 인간이 보내는 신호에 주의를 기울이고, 인간과 협력하도록 인지의 방향이 재조직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변화가 개의 세계를 확대했습니다.
늑대에게 인간은 피하거나 경계해야 할 거대한 포식자였습니다. 개에게 인간은 먹이를 주는 존재이며, 함께 사냥하는 동료이고, 이동할 방향을 알려주는 안내자이며, 때로는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본능의 지배가 약해지자 개는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관계를 발견했습니다.
인간과 협력하여 사냥하고, 가축을 몰고, 집을 지키고, 썰매를 끌며, 사람의 냄새를 추적하는 역할이 생겼습니다.
늑대의 세계가 자신의 무리와 영역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면, 개의 세계는 인간이 이동하는 만큼 함께 확대되었습니다.
늑대는 자신이 태어난 생태계에서 뛰어난 동물이었습니다. 개는 다른 종이 만든 세계의 규칙을 읽고 그 안으로 들어간 동물이 되었습니다
이제 개는 인간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전 세계 늑대는 수십만 마리에 불과하지만 개는 현재 10억 마리에 이를 것으로 추산합니다. 일반인들이 생각하기에, 사람이 개를 키우는 것만 생각하지만 전 세계 개의 상당수는 주인이 없는 개입니다. 그리고 그 개의 서식처는 사람의 주거지입니다. 즉 개는 우리의 생각과 달리 동물로서 완성된 형태이고 가장 성공한 동물 중 하나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자기가축화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인간도 분노하거나 두려울 때에는 눈앞의 세계를 좁게 봅니다. 상대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가 일어날지, 다른 해결책이 있는지를 생각하기보다 즉시 싸우거나 도망치려 합니다.
강한 감정은 복잡한 현실을 적과 동지, 승리와 패배, 지배와 복종으로 단순화합니다.
반대로 감정과 행동 사이에 작은 틈이 생겼을 때 인간은 눈앞의 자극을 넘어 관계와 원인, 규칙과 결과를 볼 수 있게 됩니다.
상대를 죽이지 않고 관찰할 수 있어야 상대의 습관을 배울 수 있습니다.
낯선 사람을 즉시 쫓아내지 않아야 거래할 수 있습니다.
분노를 잠시 억제해야 말로 협상할 수 있습니다.
욕망을 연기할 수 있어야 미래를 계획할 수 있습니다.
이성은 감정이 사라진 자리에서 탄생한 것이 아닙니다. 감정이 행동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게 된 작은 틈에서 자라났을 가능성이 큽니다.
개가 인간의 손가락 끝을 따라 먼 곳을 바라보게 되었듯이, 인간도 자신의 충동에서 잠시 눈을 떼었을 때 눈앞에 없는 세계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축화는 단순히 행동을 억제한 과정이 아니었습니다. 행동을 억제함으로써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된 과정이었습니다.
보수주의자의 탄생
가축화의 경향을 보면, 보수주의자는 상당히 늦게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부는 늑대의 태도가 보수주의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반대입니다. 오히려 보더콜리에 가깝습니다. 보수주의자들은 진보주의자들에 비해서 영역에 대한 욕심이 크지 않습니다. 진보주의자들은 세상을 장악하고 구조를 통째로 뜯어고치려는 '늑대의 영역 본능'과 '사회공학적 충동'이 더 강하게 나타납니다. 기존에 형성된 생태계(제도와 관습)를 통째로 옮겨 심으려는 대규모 시도들은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들은 그것이 더 나은 질서를 만들 것이라 믿지만, 결과적으로는 사회에 막대한 비효율과 갈등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수주의가 문명 안에서 기능하려면 오히려 개에게서 나타난 자기억제와 공존 능력이 필요합니다.
국경이 있다고 해서 모든 외국인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가족제도를 중시한다고 해서 경쟁자를 물리적으로 제거하지 않습니다. 질서를 지키기 위해 법과 절차를 따르고, 불쾌한 상대와도 같은 공간에서 살아갑니다.
따라서 보수주의는 늑대의 경계의식과 개의 억제력이 결합된 성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변화하는 사람과 멈추게 하는 사람
사회에는 변화를 시도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지역으로 이동하고, 낯선 사람과 거래하고, 오래된 관습을 의심하며, 실패할 가능성이 있어도 새로운 제도를 시험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멈추게 하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그 제도가 실패하면 누가 비용을 부담하는가.
기존 제도는 왜 만들어졌는가.
없애기는 쉽지만 다시 만들 수 있는가.
선한 의도가 예상하지 못한 악한 결과를 낳지 않는가.
이 질문을 반복하는 사람이 보수주의자입니다.
진보주의자는 보수주의자의 정지 신호를 비겁함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보수주의자는 진보주의자의 접근 행동을 무모함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 성향은 모두 집단의 생존에 필요합니다.
문제는 어느 한쪽이 존재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한쪽이 다른 쪽의 기능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모두가 두려움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집단은 빠르게 기회를 잡을 수 있지만,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무너질 수 있습니다.
모두가 위험만 생각하는 집단은 안전할 수 있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합니다.
진보가 가속장치라면 보수는 제동장치입니다.
자동차는 가속장치만으로 움직일 수 없으며, 제동장치만으로도 목적지에 도착할 수 없습니다.
본능에서 해방되자 세계가 넓어졌습니다
늑대에서 개로의 변화와 침팬지에서 보노보로 이어지는 차이는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본능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본능이 행동을 독점하는 힘이 약해졌습니다.
공격성은 즉각적인 공격에서 경계와 규칙으로 옮겨갔습니다.
성적 경쟁은 독점과 지배만이 아니라 애착과 관계 형성으로도 이어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작은 해방이 인지의 세계를 넓혔습니다.
눈앞의 경쟁자만 보던 동물은 상대의 신호를 읽기 시작했고, 당장의 욕망만 따르던 동물은 더 긴 관계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개는 인간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먼 곳을 바라보았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본능이 명령하는 바로 그 순간을 넘어 미래의 결과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보수주의의 심리적 기원도 이 지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보수주의는 본능에 충실한 야생성의 잔재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충동을 억제하고, 욕망의 결과를 생각하며, 지금 존재하는 관계와 질서를 함부로 깨뜨리지 않으려는 자기가축화의 산물일 수 있습니다.
보수주의자는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행동할 수 있음에도 그 행동이 가져올 다음 장면을 먼저 보는 사람입니다.
두려움은 문명의 적이 아닙니다
늑대에서 개로 이어진 긴 여정은 두려움이 사라진 역사가 아닙니다.
두려움과 공격성, 사냥 충동과 성적 경쟁이 더 정교하게 조절된 역사입니다.
개는 충동이 없어서 인간과 함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충동을 즉시 행동으로 옮기지 않기 때문에 인간과 함께 살 수 있습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문명은 인간이 선해져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분노해도 죽이지 않고, 욕망해도 빼앗지 않으며, 두려워도 먼저 공격하지 않도록 수많은 제도와 규범을 만든 결과입니다.
그 가운데 보수주의는 오래된 제약을 기억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무엇이 위험한지, 어떤 경계가 무너졌을 때 갈등이 시작되는지, 인간의 충동을 억제하기 위해 왜 규범이 필요한지를 끊임없이 상기시킵니다.
보수주의자의 두려움은 때로 지나칩니다.
필요 없는 장벽을 세우고 새로운 가능성을 차단하며, 이미 사라진 위험을 계속 경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두려움이 언제나 잘못인 것은 아닙니다.
두려움은 인간이 행동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든 감정입니다.
문명의 시작은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간 순간만이 아니라, 할 수 있는 행동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순간에도 있었습니다.
늑대에서 개로 이어진 머나먼 여정은 사나운 동물이 순한 동물이 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충동이 억제로 바뀌고, 공격이 경계로 바뀌며, 경계가 규칙으로 바뀐 이야기입니다.
본능의 지배에서 조금 벗어나자 다른 존재의 신호가 보였고, 눈앞의 욕망에서 조금 멀어지자 세상의 이치와 미래의 결과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긴 과정의 어느 지점에서, 세상을 바꾸려는 인간과 함께 세상이 너무 빨리 바뀌지 않도록 멈춰 세우는 인간도 태어났습니다.
그가 바로 보수주의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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