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일파 논란과 베이시안 접근법
백선엽과 김일성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한국의 친일파 논쟁에는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나라를 빼앗긴 뒤 일본 체제 안에서 살아간 사람의 책임은 끝없이 묻습니다. 그런데 정작 더 중요한 질문은 상대적으로 약합니다. 왜 나라를 빼앗겼는가. 그리고 해방 이후 대한민국이 다시 세워진 다음에는 누가 대한민국을 지켰고, 누가 대한민국을 공격했는가. 이 질문 역시 친일 문제만큼 강하게 다뤄지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역사적 평가가 때때로 뒤집힙니다. 일제강점기 일본 측 군 경력이 있었던 백선엽은 오늘날까지 ‘친일파’라는 이름으로 평가받습니다. 반면 항일무장투쟁 경력이 있는 김일성은 ‘독립운동가’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에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백선엽은 대한민국 국군의 지휘관으로 북한군과 싸웠습니다. 김일성은 북한 정권의 지도자로 대한민국에 대한 무력공격을 추진했습니다. 그렇다면 역사적 평가를 어디에서 멈춰야 할까요. 1945년입니까. 아니면 그 사람의 생애 전체를 봐야 할까요. 저는 이 문제에 베이시안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친일파라는 한 단어로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가
한국에서 친일파를 판정할 때 자주 등장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높은 관직에 있었다거나 일본군이나 만주국군에서 복무했다는 점, 황민화 운동에 참여하거나 전쟁동원을 선전했다는 사실 등입니다. 이런 사실들은 중요하며 당연히 역사적 평가의 자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반드시 구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증거와 결론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일제강점기에 높은 자리에 있었다면 친일협력 가능성을 높이는 증거가 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 사람의 생애 전체가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가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 세밀하게 봐야 합니다. 독립운동가를 탄압했는가, 일본의 침략전쟁을 적극적으로 선전했는가, 자신의 출세를 위해 다른 조선인보다 더 적극적으로 일본에 협력했는가, 그리고 그 행동으로 실제 식민통치에 얼마나 기여했는가 등을 따져야 합니다. 반대로 직무상 불가피하게 행동한 부분은 없었는가 하는 증거들을 하나씩 추가해야 합니다. 이것이 베이시안적 판단입니다. 직책은 증거이지 판결문이 아닙니다.
나라를 빼앗긴 사람에게 어느 정도까지 책임을 물을 것인가
친일파 논쟁에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조건은 식민지라는 현실입니다. 1910년 이후 조선인은 자신의 국가를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학교도, 행정도, 경찰도, 군대도, 경제도 모두 일본 식민통치의 체제 안에 있었습니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서 모든 조선인에게 독립운동가가 되라고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공무원에게 사직하라고 할 수도 없고, 모든 교사에게 학교를 그만두라고 할 수도 없으며, 모든 젊은이에게 만주로 가서 무장투쟁을 하라고 강제할 수도 없습니다.
누군가 그렇게 독립투쟁에 나섰다면 대단히 존경할 일입니다. 그러나 영웅적인 행동을 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나머지 삶을 살아간 평범한 사람들을 모두 도덕적으로 유죄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친일 문제에서는 반드시 물어야 합니다. 그 사람에게 실제로 다른 선택이 얼마나 가능했는가. 이 질문이 빠지면 역사적 평가는 지나치게 도식화되고 쉬워집니다.
황민화 운동을 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한가
황민화 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 황민화 운동에 참여했다고 하면 대단히 부정적인 인상을 줍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성급하게 판단을 끝내서는 안 됩니다. 그 사람이 황민화 정책을 직접 설계하고 주도한 사람인지, 아니면 이미 결정된 정책을 단순히 하달받아 전달한 사람인지 봐야 합니다. 또한 자발적으로 앞장섰는지, 직무상 어쩔 수 없이 참여했는지, 그 활동이 실제 조선 사회에 얼마나 큰 해악을 끼쳤는지, 그 대가로 개인적인 권력이나 재산을 축적했는지를 구체적으로 검증해야 합니다.
특히 영향력이라는 요소는 중요합니다. 일본제국이 경찰, 학교, 언론, 행정조직을 총동원해 대대적인 황민화 정책을 시행하는 거대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조선인 개인 한 사람이 선전활동에 동원되어 참여했다고 해서 일제의 식민통치가 오롯이 그 사람 때문에 유지되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독립운동가를 밀고하거나 직접 탄압하고, 적극적으로 침략전쟁에 자진 협력했다면 그 책임은 당연히 훨씬 커집니다. ‘황민화 운동 참여’라는 단어 하나로 이 모든 엄밀한 결의 차이를 지워버려서는 안 됩니다.
친일파 논쟁에서 더 먼저 물어야 할 질문
사실 일제강점기의 가장 큰 비극은 친일파가 존재했다는 지엽적인 사실보다 나라 자체를 빼앗겼다는 거시적인 실패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더욱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왜 조선은 스스로를 지키지 못했는가, 왜 군사력을 현대화하고 유지하지 못했는가, 왜 근대적인 행정과 재정체제를 충분히 개혁하지 못했는가, 왜 당시의 지도층은 급변하는 국제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했는가, 그리고 왜 국민을 외세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강력한 근대 국가를 만드는 데 실패했는가 하는 점들입니다. 나라가 사라지고 난 뒤 그 체제 안에서 어쩔 수 없이 살아간 개인들을 사후에 비난하는 것도 필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라를 잃게 만든 구조적이고 국가적인 실패를 철저히 분석하는 일이 훨씬 근본적입니다. 친일파 비판에만 집중하면 정작 이 핵심적인 질문이 뒤로 밀려나게 됩니다.
그리고 역사는 1945년에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친일파 논쟁의 더 큰 맹점이 드러납니다. 한국의 수많은 역사적 평가는 이상하게도 1945년 해방 시점에서 멈추어 버립니다. 일제강점기에 무엇을 했는지는 끝까지 추적하는 반면, 그 사람이 해방 이후에 무엇을 했는지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하지만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고, 곧이어 1950년 한국전쟁이라는 대참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결정적인 순간부터 역사적 질문의 성격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식민지 백성으로서 어떻게 순응하며 살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새로운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지킬 것인가 아니면 무력으로 파괴하고 공격할 것인가의 중차대한 생존 문제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시기부터는 축적된 새로운 행동 증거들을 바탕으로 역사를 다시 평가해야 합니다.
백선엽은 친일파인가
백선엽은 일제강점기 만주국군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한 경력이 있습니다. 이 경력은 명백히 지울 수 없는 역사적 평가의 대상입니다. 그 사실을 덮어두거나 정당화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백선엽의 생애는 1945년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해방 후 그는 대한민국 국군 창설에 참여했으며, 한국전쟁 당시 국군 제1사단장으로서 북한군의 기습 남침에 온몸으로 맞서 싸웠습니다. 특히 다부동 전투를 포함한 낙동강 방어선에서 대한민국의 존망이 걸린 절체절명의 전투들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따라서 백선엽에 대해서는 두 가지 역사적 사실을 모두 객관적으로 서술해야 합니다. 일제강점기에는 만주국군에서 복무했다는 점, 그리고 한국전쟁에서는 대한민국 국군 지휘관으로서 공산 세력의 침공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냈다는 점입니다. 첫 번째 오점 때문에 두 번째 위대한 구국의 공적이 사라지지 않으며, 두 번째 공적 때문에 첫 번째 오점이 소멸되는 것도 아닙니다. 둘 다 있는 그대로의 역사입니다.
김일성은 독립운동가인가
김일성에게도 완전히 동일한 일관된 기준을 적용해야 합니다. 김일성이 만주 지역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경력이 있다는 사실은 객관적으로 인정할 수 있습니다. 일제에 맞서 싸운 독립운동가로서의 행동은 그것 자체로 사실대로 평가하면 됩니다. 그러나 김일성의 생애 역시 1945년에 종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해방 이후 북한에 진주한 소련 군정을 업고 독재 정권의 최고지도자가 되었으며, 한반도를 적화통일하기 위해 치밀하게 기획된 기습 남침을 감행했습니다. 그 비극적인 결과가 바로 1950년 한국전쟁입니다.
그러므로 김일성에 대해서도 두 가지 역사적 사실을 함께 진술해야 합니다. 일제강점기에는 항일무장활동을 했다는 점, 그러나 해방 이후에는 대한민국을 침공하여 수백만 명의 희생자를 내고 국토를 초토화시킨 전쟁의 원흉이자 독재자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과거의 일부 항일 경력이 이후에 저지른 반인륜적 범죄 및 침략의 책임을 덮어주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백선엽은 친일파이고 김일성은 애국자인가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 현대사의 친일파 논쟁이 가진 모순이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백선엽을 평가할 때는 일제강점기의 어두운 경력이 평생의 꼬리표가 되어 대한민국을 수호한 위대한 공적이 있더라도 오직 ‘친일파’라는 도덕적 낙인으로만 규정하려 듭니다. 반면 김일성에 대해서는 해방 전의 항일 경력만을 극대화하여 그를 민족주의적 정통성을 가진 독립투사로 포장하기도 합니다.
그 결과는 참으로 이상합니다. 대한민국의 기틀을 지켜내고 국민의 생명을 구한 영웅은 영원한 친일파로 격하되고, 대한민국을 말살하려 침략을 감행하고 수많은 동포를 죽인 독재자는 민족적 애국자로 대접받는 어처구니없는 형국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역사를 평가하는 도덕적 잣대가 전혀 일관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백선엽에게 1945년 이전의 잣대를 엄격히 들이댄다면, 김일에게도 1950년 이후의 참혹한 행위를 동일하게 들이대야 공평합니다.
베이시안 접근법으로 보면 문제는 간단합니다
확률적 사고를 기반으로 하는 베이시안 접근법(Bayesian Approach)에 따르면, 새로운 정보와 증거가 입력될 때마다 기존의 신념과 판단(사전확률)은 계속해서 갱신(업데이트)되어 사후확률로 변화합니다. 백선엽에게 간도특설대 복무 경력이 있다는 초기 정보가 들어왔을 때는 그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인 방향으로 형성됩니다. 하지만 해방 이후 대한민국 국군에 헌신하고 한국전쟁에서 파죽지세의 북한군을 막아내 국가의 소멸을 저지했다는 중대한 새로운 정보들이 추가되면, 그에 대한 종합적 평가는 베이시안 법칙에 따라 완전히 갱신되어야 합니다.
김일성의 경우도 똑같습니다. 항일 투쟁을 벌였다는 초기 정보는 긍정적인 요인이지만, 이후 소련의 꼭두각시로서 한반도에 전쟁의 참화를 불러오고 독재 체제를 구축했다는 거대한 해악의 정보들이 끊임없이 업데이트된다면, 최종적인 평가는 그에 맞추어 처참하게 갱신될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적 인간을 평가할 때 1945년이라는 특정 시점에서 정보의 갱신을 인위적으로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독립운동가는 영구적인 도덕적 지위가 아닙니다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은 분명 위대하고 칭송받아야 할 공적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개인에게 평생 동안 무엇을 하든 허용되는 면책특권이나 영구적인 도덕적 면죄부를 제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독립운동가라 할지라도 해방 이후의 혼란 속에서 독재자로 타락할 수 있고, 전체주의 체제를 지지하며 자국민을 학살할 수 있으며, 이웃 국가를 무력으로 침략할 수 있습니다. 그 경우 과거의 독립운동 공적과 이후의 국가 파괴 행위는 각각의 증거에 따라 객관적으로 나누어 평가해야 마땅합니다.
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 하의 불가피했던 경력이나 어두운 과오가 한 사람에게 지울 수 없는 원죄가 되어, 이후 일생 동안 국가와 국민을 위해 바친 위대한 구국의 헌신마저 완전히 묵살하는 명찰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정직하게 평가하는 당연한 원칙이 유독 친일파 논쟁 속에서는 정치적 진영 논리에 밀려 무력하게 허물어지곤 합니다.
친일파 비판과 친중·친소 문제
여기에는 훨씬 민감하고 본질적인 정치적 역학이 숨어 있습니다. 한국 정치 지형에서 ‘친일’이라는 프레임은 상대 진영의 도덕적 정통성을 한 번에 마비시킬 수 있는 가장 손쉽고 강력한 무기입니다. 그런데 과거 일본제국과의 일제강점기 관계에 대해서는 돋보기를 들이대며 현미경 같은 잣대를 요구하면서, 정작 해방 이후 한반도를 분단시키고 6·25 전쟁을 지원하며 개입했던 소련이나 중국, 혹은 북한 정권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하고 침묵하는 이중잣대를 보인다면 이는 심각한 자기모순입니다.
실제로 6·25 침공의 기획과 참전을 주도한 것은 공산권 세력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 현대사를 균형 있게 바라보기 위해서는 친일 문제뿐만 아니라 국가의 주권과 안보를 직접적으로 위협했던 친소·친중 문제 역시 동일한 무게의 역사적 검증대로 올려놓아야 합니다. 식민지 시절의 협력에는 '민족 반역'이라는 가혹한 굴레를 씌우면서, 해방 공간과 전쟁기 동안 대한민국을 직접 무너뜨리려 했던 공산 세력의 행위에는 관대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도저히 합리화될 수 없습니다.
친일 비판이 정치적 자기방어가 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친일 프레임이 가지는 고도의 정치적 자기방어 기능에 주목해야 합니다. 만약 특정 정치 세력의 뿌리나 역사적 궤적 속에 친소·친중적 성향이 있거나 북한 정권의 침략 및 독재 책임에 대해 옹호적인 문제를 품고 있다면, 이를 회피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전술은 상대 진영의 과거 친일 경력을 끊임없이 소환하여 공격하는 것입니다. 상대를 친일파라는 사슬에 묶어 계속 해명하게 만드는 동안, 정작 자신들이 짊어져야 할 역사적 책임과 현대적 안보의 과오들은 은밀하게 시야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한국전쟁은 실제로 누가 일으켰는가", "소련과 중국은 대한민국을 어떻게 유린했는가", "항일운동의 경력이 해방 후 자행된 국가 파괴적 전쟁 행위를 면제해 줄 수 있는가"와 같은 본질적인 질문들이 친일 프레임이라는 거대한 장막 뒤로 숨어버리는 것입니다. 물론 순수한 민족주의적 정의감에서 비롯된 친일 비판도 많겠지만, 친일 프레임이 본질적인 안보 과실과 다른 역사적 책임을 덮기 위한 전략적 방패로 오용될 수 있다는 점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일본에만 엄격한 민족주의는 일관된 민족주의가 아닙니다
민족주의의 참된 가치가 대한민국의 자주적 주권과 독립을 수호하는 데 있다면, 그 기준은 역사 속의 모든 외세에 대해 일관되게 공평해야 합니다. 오직 일본만을 영원히 절대적인 악으로 규정하고, 중국이나 러시아의 위협과 패권적 개입에는 굴종하거나 관대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일관성 없는 기만적 민족주의에 불과합니다. 일본의 군사적 영향력 확대를 경계하듯 중국의 팽창주의와 패권 정책에도 동일한 수준으로 단호히 대응해야 하며, 일본에 대한 저자세 외교를 비판하듯 중국에 대한 과도한 저자세 굴종 외교 또한 매섭게 비판해야 일관성이 생깁니다.
물론 이웃 국가들과 외교를 맺고 경제적 협력을 도모하는 것은 당연한 국익 추구 행위이며, 그것 자체가 친일이나 친중이 될 수는 없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실제 행위입니다. 국가의 본질적인 이익을 적국이나 타국에 구걸하듯 양보했는지, 외풍에 밀려 국가의 자율적인 정책 결정권을 포기했는지, 혹은 자국의 안보보다 타국의 입장을 우선시했는지의 객관적 증거를 보고 베이시안적으로 평가해야 합니다. 낙인찍기용 꼬리표가 아닌 실질적 행보가 판단의 기준이어야 합니다.
친일파 논쟁의 가장 큰 오류는 사람을 한 시점에 고정하는 것입니다
백선엽이라는 인물의 일생에는 청년기의 간도특설대 복무 경력도 엄연히 존재하고,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한 다부동 전투의 역사적 위업도 엄연히 존재합니다. 김일성이라는 인물의 역사 속에는 항일 투쟁의 행적도 존재하지만, 수백만의 동포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전범이자 잔혹한 독재자로서의 책임도 동시에 존재합니다. 우리는 이 극적인 생애의 양면을 모두 정직하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일제강점기라는 젊은 날의 과오 혹은 한 시점의 경력만으로 인간의 평생 전체를 영원히 동결시켜 규정하는 것은 역사와 인간에 대한 태만입니다. 또한 과거의 부분적 공로가 미래에 저지를 잔악한 해악의 면죄부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역사적 개인은 죽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선택하고 실천하는 동적이고 입체적인 존재이기에,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 또한 새로운 사실과 전 생애의 증거들을 반영하여 부단히 갱신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일제강점기에서 정말 배워야 할 것
우리가 식민지의 비극에서 얻어야 할 진정한 역사적 교훈이 과연 수십 년 전의 친일 세력을 사후적으로 감별해 내고 단죄하는 일에 머물러야 할까요. 그보다 훨씬 아프고 근본적인 성찰은 **“우리는 대체 왜 나라를 잃었는가”**라는 국가적 원인 규명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는 외세에 나라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철저히 대비해야 하는가”**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이 올바른 배움입니다.
강력한 자주국방과 효율적인 국가 제도가 왜 생존에 필수적인지, 국제 정세의 냉혹함을 읽지 못하는 지도자의 판단 실수가 어떤 참혹한 대가로 돌아오는지, 그리고 국가 권력이 증발했을 때 평범한 백성들의 삶과 선택권이 어떻게 짓밟히는지를 뼈저리게 분석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라를 잃었던 어두운 시기를 지난 해방 공간에 이르러서는, 더욱 엄중한 질문을 마주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기적 같은 새로운 독립 국가가 수립된 뒤, 과연 누가 그 나라를 수호하기 위해 싸웠고 누가 그 나라를 무너뜨리기 위해 총칼을 겨누었는가라는 실존적 생존의 질문 말입니다.
결론 ― 역사는 1945년에 멈추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의 역사적 평가를 덮거나 왜곡하자는 주장이 결코 아닙니다. 일제 식민통치에 자발적으로 앞장서고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하며 독립투사를 탄압한 자들은 그 구체적 증거와 행위에 따라 단호하게 기록되고 평가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친일파'라는 한 단어의 도덕적 프레임이 한 사람의 전 생애와 구국의 공적마저 영구히 지워버리는 무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백선엽의 청년기 만주국군 복무 경력은 역사에 고스란히 정직하게 기록되어야 합니다. 동시에 한국전쟁에서 공산군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내 수많은 국민의 생명을 구한 다부동의 승리 역시 위대한 구국 역사로 동등하게 기록되어야 합니다. 김일성의 젊은 시절 항일무장투쟁 역시 역사의 일부로 기술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6·25 남침 전쟁을 일으키고 전체주의 독재 정권을 구축해 한반도에 영원히 씻을 수 없는 피의 비극을 초래한 침략의 전범으로서의 과오 역시 한 치의 가림 없이 동등하게 기록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역사를 입체적이고 정직하게 직시하는 방법이며, 동시에 새로운 증거가 유입될 때마다 판단을 부단히 갱신하는 과학적인 베이시안 접근법입니다. '친일파' 혹은 '독립운동가'라는 과거 한때의 명찰에 사로잡혀 이후의 거대한 해악이나 거대한 공적을 덮어버리지 않는 것, 그것이 역사를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선입니다. 한국 현대사를 냉철히 직시하는 궁극적인 질문은 결국 이것입니다. 나라를 빼앗겼던 시절 누가 완벽하게 살았는가라는 비현실적 무결성이 아니라, 기적적으로 나라를 다시 세운 뒤 과연 누가 그 나라를 수호했고 누가 그 나라를 공격했는가. 역사는 1945년 해방의 아침에 영구히 멈춰 서 있는 박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