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미시시피주와 루이지애나주를 동시에 강타했습니다. 두 지역 모두 큰 피해를 입었지만 이후의 대응과 복구 과정은 상당히 달랐습니다.
미시시피의 헤일리 바버 주지사는 재난 대응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고 재선에도 성공했습니다. 반면 루이지애나의 캐슬린 블랑코 주지사는 대응 실패에 대한 비판을 받은 뒤 재선 출마를 포기했습니다.
물론 두 지역의 피해 조건은 같지 않았습니다. 미시시피에서는 해안지역이 심하게 파괴되었지만 주정부의 핵심 조직은 유지되었습니다. 반면 뉴올리언스에서는 제방이 무너지면서 도시 대부분이 침수되었고, 경찰·병원·통신망과 시정부 자체가 동시에 마비되었습니다.
그러나 피해 조건의 차이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두 지역에는 분명한 리더십의 차이도 있었습니다.
주지사는 직접 구조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주지사가 직접 배를 타고 사람을 구조하거나 잔해를 치우는 것은 아닙니다. 대형 재난에서 지도자의 역할은 서로 다른 조직을 하나의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재난이 발생하면 시정부, 주정부, 주방위군, FEMA, 국토안보부, 연방군, 해안경비대와 민간단체가 동시에 움직여야 합니다. 그러나 이 기관들은 서로 다른 지휘체계와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민을 버스로 대피시키는 일만 해도 버스와 운전자, 통행 가능한 도로, 치안 병력, 대피 장소가 모두 필요합니다. 어느 기관 하나라도 움직이지 않으면 전체 과정이 멈춥니다.
미시시피의 바버는 지방정부의 요구를 주정부로 모으고, 자신의 워싱턴 인맥을 이용해 연방정부의 자금과 물자를 끌어왔습니다. 그는 정치적 네트워크를 실제 행정 동원력으로 바꾸었습니다.
반면 루이지애나에서는 블랑코 주지사, 레이 네이긴 뉴올리언스 시장, FEMA와 연방정부가 서로 다른 지휘체계로 움직였습니다. 현장의 경찰과 주방위군, 해안경비대는 많은 주민을 구조했지만 이들의 활동을 하나의 전략으로 통합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일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열심히 일했지만, 전체를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것이 카트리나 실패의 핵심입니다.
기계정치는 사람을 동원하지만 조직을 움직이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 사례는 기계정치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기계정치는 정치조직이 주민의 표와 충성을 확보하고, 그 대가로 일자리와 공공사업, 민원 해결과 같은 혜택을 제공하는 정치방식입니다.
이러한 정치는 사람을 모으고 선거에서 승리하는 데 강할 수 있습니다. 지역 정치인은 주민의 요구를 파악하고, 지지자를 결집하며, 각 집단에 자원을 배분하는 데 익숙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반드시 재난관리나 산업정책과 같은 복잡한 행정능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뉴올리언스에는 후견주의와 지역별 파벌정치의 전통이 남아 있었습니다. 시장, 시의회, 주정부, 주변 지방정부와 각종 공공기관은 각각 별도의 권한과 정치적 기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평상시에는 각 정치인이 자기 지역의 민원을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도시 전체를 대피시키고 군·경찰·병원·교통기관을 동시에 움직이는 일은 완전히 다른 능력이었습니다.
카트리나 당시 뉴올리언스의 문제는 강력한 정치기계가 도시를 지배했다는 것이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치적 관계는 여러 곳에 남아 있었지만, 그것을 하나의 행정체계로 묶을 중심은 없었습니다.
즉, 정치적 네트워크는 있었지만 국가의 실행능력은 약했습니다.
미시시피에도 관계정치는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미시시피가 관계정치와 무관했던 것은 아닙니다.
헤일리 바버는 공화당 지도부와 기업, 로비업계에 넓은 인맥을 가진 대표적인 관계정치형 인물이었습니다.
차이는 인맥이 있었느냐가 아닙니다. 그 인맥을 어떻게 사용했느냐입니다.
바버는 자신의 인맥을 이용해 연방정부의 지원을 확보하고, 지방정부와 기업, 주정부 조직을 하나의 복구계획에 연결했습니다.
루이지애나에서는 정치적 권한이 여러 기관에 나뉘어 있었고, 각 기관은 자신의 권한과 책임을 지키는 데 더 익숙했습니다.
따라서 두 지역의 차이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미시시피에서는 정치적 네트워크가 행정 동원력으로 바뀌었고, 루이지애나에서는 정치적 권한이 분산된 채 서로 충돌했습니다.
정치의 능력은 선거가 아니라 위기에서 드러납니다
정치인은 평소에는 연설하고, 지지자를 모으고,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러나 재난이 발생하면 전혀 다른 능력이 필요합니다.
무엇을 먼저 할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서로 움직이지 않는 기관을 연결해야 합니다.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누군가는 결정을 내리고 결과를 감수해야 합니다.
카트리나 이후 바버는 재선에 성공했고 전국적인 정치인으로 성장했습니다. 블랑코는 재선 출마를 포기했습니다. 이것이 두 사람의 모든 책임을 정확하게 반영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루이지애나의 실패에는 뉴올리언스시와 FEMA, 국토안보부와 부시 행정부의 책임도 컸습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정치적 운명이 갈린 이유는 분명합니다.
바버는 정치적 권력을 실제 행정능력으로 전환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블랑코는 여러 조직을 하나로 묶지 못했습니다.
카트리나가 보여준 것은 공화당과 민주당의 단순한 차이가 아닙니다. 기계정치가 무조건 나쁘다는 증거도 아닙니다.
더 중요한 교훈은 이것입니다.
사람을 정치적으로 동원하는 능력과 국가를 실제로 움직이는 능력은 다릅니다.
선거에서는 전자의 능력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재난은 후자의 능력이 있는지를 드러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