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리아 스타이넘을 단순히 미국의 유명한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그는 1970년대 이후 여성운동을 미국 주류사회에 연결한 핵심 인물 가운데 한 명이었고, 복잡한 페미니즘의 주장을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옮기는 데 뛰어났다. 《Ms.》를 공동 창간했으며, 여성의 정치 참여와 낙태권, 직업, 결혼, 성 역할을 둘러싼 미국 사회의 논쟁에 오랫동안 영향을 미쳤다. 2013년에는 대통령 자유훈장을 받았다. 스타이넘은 2026년 9월 2일, 92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동물권 활동은 여성운동 경력만큼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스타이넘은 동물실험과 동물 이용에 관해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냈고, PETA와 함께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지원한 동물실험을 비판했다. 2010년 NIH 여성건강연구국에 보낸 편지에서 그는 여성 건강 연구라는 명분 아래 이뤄지는 일부 동물실험의 과학적 유효성과 재정 우선순위를 문제 삼았다. 동물의 고통뿐 아니라, 효과가 불확실한 실험에 예산이 쓰이는 동안 여성에게 직접 필요한 의료 프로그램이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스타이넘의 동물권을 이해하는 열쇠는 권리의 체계적 이론보다 공감에 있다. 그는 인간에 대한 폭력과 동물에 대한 폭력을 완전히 별개의 문제로 보지 않았고, 동물의 고통을 무시하는 태도가 더 넓은 폭력과 지배의 감각을 무디게 할 수 있다고 보았다. 사람들을 위아래로 배열하는 사회적 위계에 문제를 제기해 온 그의 페미니즘은, 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하다는 이유만으로 동물의 고통을 고려 밖으로 밀어낼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공감은 보이지 않던 비용을 드러낸다
공장식 축산을 생각해 보면 스타이넘 같은 운동가가 던지는 질문의 의미를 이해하기 쉽다. 마트에 진열된 고기를 볼 때 소비자는 가격, 맛, 영양성분을 먼저 생각한다. 그 식품이 어떤 동물에게서 왔고, 그 동물이 어떤 환경에서 살았는지는 식품 시스템 안에서 쉽게 보이지 않는다. 이는 개인이 특별히 잔인해서라기보다 생산 과정과 소비 과정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동물실험도 비슷하다. 과학 연구라는 이름이 붙으면 사람들은 그 실험이 필요한지, 같은 결과를 얻을 대체수단은 없는지, 동물이 겪는 고통에 비해 얻는 지식의 가치가 충분한지를 묻지 않기 쉽다. 스타이넘의 활동은 바로 이 지점에서 멈춰 있던 질문을 다시 꺼낸다. 왜 그 고통은 계산하지 않는가. 어떤 고통이 사회의 계산에서 빠져 있다면, 비용과 편익을 아무리 정교하게 비교해도 판단의 출발점부터 왜곡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공감은 도덕적 판단의 중요한 출발점이다. 공감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보지 않던 피해와 비용을 시야에 넣는다. 여성의 불평등을 보라고 요구했던 사람이 동물이 겪는 고통도 보라고 요구한 것은, 관심의 대상이 달라졌을 뿐 같은 역할의 연장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고통을 본 뒤에는 판단이 시작된다
문제는 고통을 발견한 다음이다. 사람을 심하게 공격한 개가 있다면, 그 개에게 공격성이 생긴 원인은 유전적 성향이나 부적절한 사육환경, 인간의 관리 실패일 수 있다. 그 설명은 개에게 가해질 처분을 검토할 때 중요하다. 그러나 같은 설명이 다시 사람을 공격할 위험을 지워 주지는 않는다. 정신질환과 형사책임을 다룬 글에서 살핀 것처럼, 책임의 문제와 위험의 문제는 구분해야 한다.
길고양이와 야생조류의 관계도 공감이 충돌하는 사례다. 고양이는 먹이를 주고 보호하고 싶은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야생조류와 작은 포유류를 포식할 수도 있다. 외래종 관리 역시 한 동물에게 가해질 처분과 그 지역 생태계를 지켜야 하는 필요가 맞부딪히는 문제다. 동물에게 느끼는 연민만으로는 어느 피해를 어떻게 줄일지 결정하기 어렵다.
동물실험은 더 복잡하다. 불필요하거나 반복적인 실험을 줄이고, 가능한 경우 세포·오가노이드·컴퓨터 모델 같은 대체시험법을 찾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아직 대체할 방법이 없고, 실험을 하지 않을 때 사람에게 심각한 위해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면 판단은 달라진다. 이때는 동물의 고통, 인간에게 발생할 위험, 연구가 가져올 편익, 대체수단의 존재와 한계를 함께 비교해야 한다.
공감은 모든 존재의 고통을 똑같이 보라고 요구하지만, 실제 정책은 충돌하는 고통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눈앞의 한 마리 고양이는 구체적인 얼굴을 갖지만, 그 고양이가 죽이는 야생동물은 보이지 않는다. 위험한 개는 이름과 사진을 갖지만, 미래에 공격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직 추상적인 확률로 남는다. 실험동물은 눈앞에 있지만, 연구가 실패했을 때 치료 기회를 잃을 환자는 모습을 드러내기 어렵다. 공감은 이런 비대칭 속에서 한쪽에 기울기 쉽다.
운동가의 역할과 한계
스타이넘은 피터 싱어처럼 고통과 편익을 비교하는 결과주의 이론을 정교하게 구축한 철학자는 아니었고, 톰 리건처럼 동물이 왜 권리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지를 체계적으로 논증한 철학자도 아니었다. 그의 역할은 이론을 완성하는 사람보다는, 사회가 외면해 온 문제를 공적 논쟁의 대상으로 만드는 운동가에 가까웠다.
운동가의 역할은 중요하다. 사회가 여성의 불평등, 인종과 소수자의 차별, 동물의 고통을 당연한 배경처럼 취급할 때 운동가는 그것을 보라고 요구한다. 다만 모든 고통을 보기 시작한다고 해서 갈등이 자동으로 사라지지는 않는다. 고양이와 새, 위험한 개와 잠재적 피해자, 실험동물과 치료를 기다리는 환자의 이해관계는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공감은 도덕적 판단의 출발점이 될 수 있지만, 도덕적 판단을 완성하는 방법은 될 수 없다. 그 다음에는 누구의 피해를 얼마나 줄일 것인지, 비용은 누가 부담할 것인지, 대체수단은 있는지, 아무 조치도 하지 않았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물어야 한다.
질문을 남긴 사람
스타이넘의 동물권 활동은 해답보다 질문의 힘을 보여준다. 그는 동물을 향한 공감의 범위를 넓히며, 인간의 편익만을 기준으로 짜인 계산에서 누락된 존재들을 드러냈다. 그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동물을 식품, 연구 재료, 관리 대상이라는 기능으로만 볼 때, 그 동물이 겪는 고통을 얼마나 쉽게 지워 버리는가.
그러나 그 질문에 답하려면 공감만으로는 부족하다. 동물의 고통을 보되 인간의 안전과 생태계의 피해, 환자의 치료 기회도 함께 봐야 한다. 공감이 보이지 않던 현실을 발견하게 한다면, 판단은 서로 충돌하는 현실을 함께 다루게 한다. 스타이넘은 모든 문제의 해답을 제시한 인물이라기보다, 사회가 너무 익숙해져 보지 않던 고통을 향해 다시 질문하게 만든 인물로 기억할 수 있다.
참고문헌
- Associated Press. “Gloria Steinem, Defining Symbol of Women’s Movement and Eloquent Advocate for Equality, Dies at 92.” 2026년 9월 3일.
- PETA. “Gloria Steinem Demands End to Experiments on Animals.” 2010년 6월 25일.
- PETA. “Gloria Steinem’s Legacy Is More Relevant Than Ever.” 2026년 9월 4일.
- Singer, Peter. Animal Liberation. HarperCollins, 2009.
- Regan, Tom. The Case for Animal Rights.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