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전우용이 말하는 파시즘은 그의 머릿속에만 존재합니다


역사학자 전우용의 파시즘 진단을 경험주의와 규범주의의 관점에서 비판하며, 한국 보수주의가 반공주의를 형성하게 된 실제 역사적 경험(한국전쟁과 남로당 체제 전복)의 맥락을 규명합니다.

전우용이 말하는 파시즘은 그의 머릿속에만 존재합니다

역사학자 전우용 교수는 「불과 얼마 전까지 한국은 파시즘 국가였다」라는 영상에서 한국의 보수 세력과 군사독재, 지도자 숭배, 왕조적 권위의식, 그리고 계엄 옹호 성향 등을 파시즘이라는 단 하나의 거대한 꼬리표로 묶어 설명합니다. 그러나 역사학자로서 그가 개진하는 주장의 면면을 찬찬히 뜯어보면 논리적이고 학술적인 정밀함 대신 기묘한 개념적 도약이 발견됩니다. 그는 무솔리니의 이탈리아 파시즘이나 히틀러의 독일 국가사회주의 등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파시즘 운동의 명확한 구성요건과 공통분모를 먼저 짚어내고 이를 한국의 특수한 상황에 꼼꼼히 대조하는 귀납적 방식을 취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가 선택한 방식은 지극히 주관적인 현상들의 수집입니다. 자신이 도덕적으로 혐오하거나 비판하고자 하는 군사독재, 반공주의, 친일 잔재, 계엄 찬성, 특정 종교적 극단주의 등의 이질적인 현상들을 한데 긁어모은 뒤, 이를 사후적으로 파시즘이라 명명하는 것입니다. 즉, 현실에 존재하는 구체적인 대상을 관찰하여 귀납적으로 개념을 도출한 것이 아니라, 본인의 머릿속에 '악의 형상'을 먼저 주형해 두고 현실의 파편들을 그 틀에 억지로 끼워 맞춘 규범적 투사에 불과합니다.

경험적 개념과 도덕적 심판의 괴리

기본적으로 "경험주의"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분류하는 데서 출발하여 개념을 만듭니다. 예컨대 역사적 파시즘을 올바르게 규명하려면 극단적 민족주의, 폭력적 대중 동원, 의회주의와 자유주의에 대한 철저한 부정, 그리고 국가의 영광스러운 재탄생이라는 신화적 요소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또한 이를 권위주의, 군사독재, 전체주의, 단순 포퓰리즘 등 유사한 다른 정치 체제와 정밀하게 구분해야만 개념으로서의 학술적 효용성을 갖게 됩니다. 모든 독재나 강력한 국가 통제주의가 곧바로 파시즘이 되는 것은 아니며, 지도자에 대한 열광적 지지 현상 하나만으로 파시즘이라 단정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우용 교수의 설명 방식은 이러한 현실적 범주 구분을 완전히 무력화하며, 단지 자신이 동의할 수 없는 다양한 우파적·권위주의적 행태들을 파시즘이라는 하나의 거대하고 자극적인 명사로 통합해 버립니다. 이는 학술적 분류라기보다는 단지 정치적 반대파에 가하는 도덕적 심판이자 낙인찍기에 가깝습니다.

'진정한 보수'라는 언어적 수사학

전우용 교수는 “진정한 보수는 파시즘이 될 수 없다”고 공언하며 겉으로는 보수주의와 파시즘을 신중하게 구분하는 듯한 외양을 취합니다. 하지만 이 주장의 이면에 깔린 논리적 뼈대를 살펴보면 매우 기만적인 말장난이 숨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규정한 이상적인 보수의 상, 즉 전통을 존중하고 법질서와 헌법 수호에 헌신하며 도덕적으로 숭고해야 한다는 당위를 먼저 상정해 둡니다. 그리고 현실에 존재하는 보수 세력이 이 도덕적 가이드라인에 부합하지 않을 때, "그들은 보수가 아니라 파시스트에 불과하다"며 보수라는 이름 자체를 임의로 박탈해 버립니다. 자신이 허용할 수 있는 고결한 보수주의만 진짜 보수로 승인하고, 현실에서 작동하는 대중적 보수 세력은 파시즘이라는 쓰레기통으로 밀어 던져버리는 자의적인 논리 배치입니다. 결국 그의 말장난을 통과하고 남는 메시지는 단 하나뿐입니다. 즉 진정한 보수는 이론적으로 숭고할지 모르나, 현실의 한국 보수는 가짜이며 따라서 본질적으로 파시즘의 토양이라는 억지 연결입니다.

남로당의 기억과 생존의 역사적 학습

더욱이 전 교수는 한국 보수세력의 권위주의와 강고한 반공주의의 뿌리를 수천 년 동안 이어진 신민의식과 왕조적 지배 유전자에서 찾아내려 합니다. 한국인들이 왕의 통치에 익숙하기 때문에 대통령을 임금처럼 우러러보고, 정적을 역적으로 몰아세우며, 권력에 맹목적으로 복종한다는 다분히 비하적인 심리 진단입니다. 그러나 현대 한국 보수주의의 실체적 골격을 이해하려면 조선 시대의 왕정 역사보다 해방 공간과 한국전쟁이라는 참혹한 실존적 경험을 가장 먼저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해방 직후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좌익 세력이나 남로당원들을 외부의 침략자가 아닌 같은 마을에서 살아가는 동포이자 정치적 경쟁자로 순진하게 인식했습니다. 이들이 주장하는 토지개혁이나 평등의 가치는 대중에게 상당한 설득력이 있었고, 설마 이웃 주민들이 북한의 폭력적 적화 노선과 직접 결합하여 국가 체제를 뿌리째 뽑아내리라고는 충분히 상상하지도, 경계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1950년에 터진 한국전쟁은 이러한 순진한 신뢰를 피로 물들이며 무참히 분쇄해 버렸습니다. 남로당과 내부 동조자들은 단순한 사상적 야당이 아니라, 북한의 무력 점령군과 적극 협력하여 같은 마을에 살던 동료 시민들을 반동분자로 지목하고 학살하는 전위부대로 돌변했습니다. 전쟁의 참화를 통과하며 한국인들은 "같은 민족이고 내 이웃이라 할지라도 내 생존을 파괴하는 적이 될 수 있다"는 지극히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생존 규칙을 몸으로 학습했습니다. 이 뼈아픈 트라우마와 역사적 학습이야말로 한국 보수주의를 지탱하는 강한 반공주의와 안보의식의 진짜 기원입니다. 물론 이후 군사정권이 이러한 공포와 반공주의를 독점하고 민주적 반대파를 용공으로 몰아 탄압한 권력 남용의 역사는 명백히 비판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반공주의가 정치적으로 남용되었다는 사실과, 반공주의의 뿌리가 되는 남로당의 실체적 위협 자체가 역사적 사실이었다는 점은 둘 다 인정받아야 하는 경험적 진실입니다. 전 교수는 후자의 위협과 대중적 학습 과정을 생략함으로써, 한국 보수의 정당한 경계심을 단지 왕에게 복종하던 신민의 열등한 노예 습성으로 축소해 버립니다.

사후 확증 서사로서의 '왕조 DNA론'

전우용 교수가 즐겨 사용하는 '왕조 DNA' 혹은 민족적 심리 습성이라는 설명 방식은 얼핏 듣기에는 매우 흥미롭고 직관적이지만, 과학적인 반증 가능성이 결여된 이야기 만들기 영역에 불과합니다. 이는 마치 남성과 여성의 쇼핑 행동 방식 차이를 원시 시대의 사냥꾼과 채집꾼 프레임으로 억지 설명하는 대중 과학의 논리 오류와 동일합니다. 어떤 결과가 도출되더라도 사후에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덧붙여 정당화할 수 있는 주장은 학술적인 설명이 아니라 서사적 신화에 불과합니다. 한국인들이 지도자를 강력히 옹호할 때는 왕조적 신민주의 때문이라 설명하고, 반대로 촛불을 들고 권력자를 탄핵해 끌어내릴 때는 민초들의 역성혁명 유전자 덕분이라 둘러대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정치적 행위를 조상들의 유산이라는 단 하나의 만능 열쇠로 설명하는 태도는 현실의 다원적인 변수들을 완전히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무엇보다 중국이나 일본, 유럽과 중동의 수많은 문명국가들 역시 긴 왕정의 세월을 거쳤음에도 저마다 판이한 정치 지형을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은 왕조의 경험만으로 현대 정치문화를 일률적으로 진단할 수 없음을 증명합니다.

생존의 트라우마를 심리적 결함으로 왜곡하는 법

전우용 교수의 이른바 "규범주의"가 지닌 가장 심각한 해악은 상대방이 왜 그런 구체적인 생각과 태도를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역사적 맥락과 합리성을 탐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한국 보수주의자들의 안보적 강박의 배후에는 국가가 소멸할 뻔했던 실제 전쟁의 트라우마, 그리고 평화를 외치던 세력이 실질적으로 일당독재나 공산화를 꾀할 수 있다는 엄연한 역사적 경계심이 존재합니다. 비록 이 안보 의식이 과잉 작동하여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부정적 결과를 낳았을지언정, 그 경계심의 뿌리가 된 역사적 사건들마저 전근대적 결함으로 폄하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전 교수는 이러한 실증적 역사 경험을 논의에서 깨끗이 도려낸 뒤, 그 빈자리를 신민의식이나 권위주의 DNA 같은 정신병리적 결함으로 채워 넣습니다. 그 결과 보수주의자들은 합리적 역사적 경험에서 학습을 이끌어낸 주체가 아니라, 현대 민주주의 시스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정신적 전근대인으로 오독됩니다.

토론을 무력화하는 절대적 도덕 낙인

정치 지형 속에서 상대를 향해 던지는 단어의 선택은 그 자체로 고도의 권력 작용입니다. 상대방을 권위주의자나 군사정권 옹호자로 규정하는 것은 그의 구체적인 정책과 권력관을 둘러싸고 토론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둡니다. 그러나 상대를 '파시스트'라 낙인찍는 순간, 그는 더 이상 대화와 협상의 파트너가 아니라 민주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 사회적으로 영구히 격리하고 처단해야 할 적대적 괴물이 됩니다. 이 명칭은 상대의 세부 주장을 반박할 필요를 원천 차단해 버리는 편리한 낙인입니다. 그가 왜 계엄이나 특정 안보 정책을 옹호하는지, 어떤 사태관을 바탕으로 야당을 위험하게 인지하는지 분석하고 소통할 기회를 박멸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전우용 교수는 과거 왕조 시대가 충신과 역적이라는 극단적 이분법으로 세상을 조각내어 통치했다고 비판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자신 역시 세상을 민주주의자와 파시스트, 진짜 시민과 미개한 신민이라는 새로운 이분법으로 가르며 자신이 비판하던 절대주의적 도덕 심판관의 역할을 충실히 반복하고 있습니다.

머릿속 가상 모델과 투사의 종말

대한민국 현대사 속에 권위주의적 폐단과 군사독재의 폭정, 국가 폭력의 비극이 존재했음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하지만 과거에 권위주의가 실존했다는 사실과, 한국이라는 국가가 파시즘 체제였다는 주장은 엄연히 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주장입니다. 후자를 논증하려면 한국의 개발독재나 보수 세력의 작동 방식이 역사적 파시즘의 핵심 메커니즘과 어떻게 구조적으로 일치하는지를 정합적으로 증명해 보여야 합니다. 그러나 전우용 교수는 논리적 인과관계를 채우는 대신, 자신이 혐오하는 우파적 행태들을 끌어모아 '파시즘'이라는 가장 자극적인 언어의 낙인을 씌우는 쉬운 길을 택했습니다. 결국 그가 소리 높여 고발하는 한국의 파시즘은 역사적 대지 위에서 발견된 구체적 실체가 아니라, 우파 보수 세력을 민주주의의 적으로 격하시켜 영구 추방하려는 그의 주관적 가치판단이 만들어낸 머릿속의 허상에 불과합니다. 경험주의자는 내 모형이 현실과 충돌할 때 이론을 유연하게 수정하지만, 규범주의자는 현실이 내 신념과 다를 때 현실의 이름을 억지로 뜯어고칩니다. 전 교수가 만들어낸 파시즘 론은 보수를 향한 탐구가 아니라, 자신의 도덕적 혐오를 역사학의 권위를 빌려 현실에 강제 투사한 지적 폭력의 산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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