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이트는 개인의 꿈과 신경증 뒤에서 억압된 성욕을 찾았습니다.
빌헬름 라이히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그는 개인의 불안과 강박만이 아니라 권위주의와 민족주의, 나아가 파시즘의 발생까지 성적 억압으로 설명하려 했습니다.
그가 던진 질문은 중요했습니다.
경제위기와 계급갈등이 깊어졌는데도 대중은 왜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라 파시즘에 이끌렸는가?
당시 마르크스주의의 단순한 기대와 달리 계급은 정치적 선택을 자동으로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전통적 노동운동에 결속된 노동자들은 상대적으로 저항했지만, 나치는 노동계급 일부를 포함한 광범위한 유권자를 동원했습니다.
라이히는 경제적 이해관계만으로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찾아낸 답은 가족과 성욕이었습니다.
권위적인 아버지 아래에서 자란 아이는 자신의 욕망을 억압하는 법을 배웁니다. 성에 대한 죄책감과 두려움은 복종하는 성격을 만들고, 가정에서 형성된 복종은 국가와 지도자에 대한 복종으로 이어집니다.
가족은 작은 권위주의 국가이며 성적 억압은 순종적인 대중을 생산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왜 파시즘을 설명하는데 갑자기 성욕이 등장했을까요.
두 사람이 성을 지나치게 넓은 원리로 사용한 탓도 있지만, 그들이 살던 시대에 성과 가족의 질서가 실제로 변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 변화를 이해하는 열쇠가 인구전환입니다.
인구전환은 성을 어떻게 바꾸었는가
전근대 사회에서도 성욕은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성관계는 결혼과 출산, 양육과 상속이라는 가족제도에 강하게 묶여 있었습니다.
피임수단이 제한되고 영아 사망률이 높았던 사회에서 여러 아이를 낳는 것은 가족과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현실적인 선택이었습니다. 혼외관계와 여성의 성행동을 통제한 규범도 불공정했지만, 친자관계와 장기적인 양육책임을 분명히 하는 기능을 함께 수행했습니다.
성은 단순히 억압됐다기보다 생식과 가족질서 안에 흡수돼 있었습니다.
19세기 이후 유럽은 높은 출생률과 사망률의 사회에서 낮은 출생률과 사망률의 사회로 이동했습니다. 아이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커지고 교육과 부양 기간이 길어지면서, 가족은 많은 아이를 낳는 체제에서 적은 아이에게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는 체제로 바뀌었습니다.
피임을 통한 출산 조절도 확산됐습니다. 성과 출산의 현실적 연결은 느슨해졌지만 성욕과 피임을 공개적으로 말하는 일은 여전히 금기였습니다. 생활은 달라지고 있었지만 도덕규범은 여전히 성과 출산을 하나로 묶으려 했습니다.
프로이트와 라이히는 이 틈에서 등장했습니다.
다만 인구전환이 곧 성혁명을 일으켰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결혼과 성, 출산이 본격적으로 분리된 ‘제2차 인구전환’은 주로 20세기 후반의 변화입니다.
인구전환은 프로이트와 라이히의 이론을 입증하지 않습니다. 왜 그 시대에 성이 생식에서 분리된 독립적인 심리 문제로 떠올랐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배경일 뿐입니다.
프로이트는 성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확대했다
프로이트는 성을 성교와 생식에만 한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리비도를 쾌락과 애착, 욕망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심리적 에너지로 보았습니다. 사랑은 성욕의 발전된 형태가 되고, 금욕은 억압된 성욕이 되며, 예술과 종교는 승화된 성욕으로 설명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로 연결하기 때문에 강력해 보이지만, 바로 그 때문에 성이 아닌 원인을 구분하기 어려워집니다.
성적 동기가 인간에게 중요하다는 사실과 인간의 거의 모든 행동이 성적 에너지의 변형이라는 주장은 다릅니다.
프로이트는 가족과 성의 질서가 변하는 시대에 성의 중요성을 포착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인간 정신 전체를 여는 만능열쇠로 만들었습니다.
라이히는 성을 정치로 확대했다
라이히는 프로이트의 성 이론과 마르크스주의를 결합했습니다. 경제적 위기가 깊어져도 대중은 반드시 혁명적 계급의식을 갖지 않으며, 때로 자신에게 불리해 보이는 권위주의 운동에 열광합니다.
라이히는 그 간격을 성격구조로 설명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권위주의 가족은 국가의 축소판입니다. 아버지는 명령하고 아내와 자녀는 복종합니다. 아이의 성적 호기심과 욕망은 부모와 종교에 의해 억압됩니다. 아이는 자신의 욕망을 위험하고 부끄러운 것으로 여기며 권위에 순종해야 안전하다는 것을 배웁니다.
성적 억압은 성생활만 제한하지 않습니다.
라이히는 그것이 반항심과 비판적 사고를 약화하고 지도자와 국가에 복종하는 성격을 만든다고 주장했습니다. 가족은 권위주의적 사회질서를 다음 세대에 재생산하는 핵심기관이 됩니다.
그의 논리에서 자신의 욕망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권위에도 맹목적으로 복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성적 해방은 파시즘을 막는 정치적 조건이 됩니다.
논리적으로는 매끄럽습니다.
문제는 실제 역사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라이히의 이론이 옳다면 무엇이 보여야 하는가
권위적인 가정환경이 정치적 태도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있습니다. 부모와 학교, 종교가 아이에게 권위를 대하는 습관을 가르친다는 주장도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파시즘이 성적 억압 때문에 발생했다는 결론으로 넘어가면 큰 비약이 생깁니다.
라이히의 주장이 역사적 설명이라면 비교 가능한 예측을 내놓아야 합니다. 성적 억압과 권위주의 가족이 비슷한 사회에서는 비슷한 정도의 파시즘이 나타나야 하고, 같은 사회에서도 성적으로 더 억압받은 집단이 파시즘을 더 강하게 지지해야 합니다.
그러나 보수적인 성규범과 가부장적 가족은 당시 유럽에 널리 퍼져 있었고 파시즘의 성공은 국가마다 달랐습니다. 독일 안에서도 나치 지지율은 지역과 종교, 계급과 기존 정치조직의 강도에 따라 차이가 났습니다. 전통적 노동운동이나 가톨릭 정치조직에 결속된 집단은 같은 시대와 가족질서 안에서도 나치에 상대적으로 덜 투표했습니다.
나치의 부상에는 전쟁 패배와 베르사유 체제, 초인플레이션과 대공황, 공산주의 혁명에 대한 공포, 민족주의와 반유대주의가 함께 작용했습니다. 정당정치의 붕괴와 보수 엘리트의 오판, 나치의 조직과 선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라이히도 이런 조건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경제위기가 파시즘에 대한 대중의 욕망으로 번역되는 핵심 매개장치를 성적 억압이 만든 성격구조에서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 매개장치를 독립적으로 측정하고 비교하지 못했습니다. 파시즘이 성공한 뒤 그 배후에 억압된 성격을 배치했을 뿐, 어떤 결과가 나오면 자신의 설명이 틀렸다고 인정할지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경제결정론의 실패를 비판했지만 그 빈자리를 검증되지 않은 성결정론으로 채운 셈입니다.
정치적 반대자는 자신의 이유를 모른다
라이히의 이론에는 정신분석의 고질적인 문제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프로이트의 환자가 분석가의 해석을 부정하면 그것은 저항과 억압의 증거가 될 수 있었습니다. 라이히는 이 구조를 정치적 대중에게 적용했습니다. 나치 지지자가 경제와 안보를 이유로 들어도 그것은 표면의 합리화이고, 진짜 원인은 당사자도 모르는 성적 억압과 권위주의적 성격이 됩니다.
이 순간 정치적 상대의 말을 들을 필요가 사라집니다.
상대의 주장을 논박하는 대신 그 배후의 병든 욕망을 진단하고, 부정하면 자신의 병리를 모르는 증거라고 하면 됩니다.
정치는 논쟁이 아니라 진단이 됩니다. 오늘날에도 반대자의 주장을 상대하지 않고 억압된 욕망이나 열등감의 결과로 치부하는 유혹은 반복됩니다.
가족은 억압기관이면서 생존기관이었다
가족이 성 역할과 권위, 복종의 규범을 다음 세대에 전달한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가족을 억압기관으로만 이해해서도 안 됩니다.
전근대와 근대 초기의 가족은 출산과 양육, 질병과 노년, 노동과 재산을 책임지는 생존의 기본단위였습니다. 성규범도 불공정했지만 친자관계와 장기적인 양육책임을 분명히 하는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라이히는 가족질서가 여성과 아이의 욕망을 억압하는 모습을 보았지만, 학교와 병원과 복지국가가 충분하지 않았던 시대에 가족이 담당한 생식과 돌봄의 기능은 충분히 보지 못했습니다.
어떤 제도가 억압적으로 작용했다는 것과 아무 기능도 수행하지 않았다는 것은 다릅니다.
성적 억압은 현실이었지만 만능원인은 아니었다
라이히의 출발점이 허구였던 것은 아닙니다. 피임정보는 제한됐고 여성의 성적 자율성은 부정됐으며 동성애와 혼외출산은 강한 처벌과 낙인의 대상이 됐습니다.
그러나 성적 억압이 존재했다는 사실과 모든 정신적·정치적 문제가 성적 억압에서 나왔다는 주장은 다릅니다.
신경증과 종교, 권위주의와 파시즘이 모두 성적 억압으로 설명된다면, 성은 경험적으로 확인할 원인이 아니라 어떤 현상에도 적용할 수 있는 만능 해석어가 됩니다.
성의 발견은 필요했지만 성의 전능화는 잘못이었습니다.
성적 에너지는 우주의 에너지가 되었다
라이히의 이론은 《파시즘의 대중심리》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후 성적 에너지를 생명과 우주에 실제로 존재한다는 ‘오르곤 에너지’로 확대했습니다. 그러나 오르곤은 독립적인 실험을 통해 물리학이나 의학이 인정한 에너지로 확립되지 않았습니다.
후기의 오르곤 이론이 실패했다는 사실만으로 초기의 파시즘 이론이 반박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하나의 개념을 개인의 심리에서 정치와 역사, 생명과 우주로 계속 확장하면서도 각 단계에서 독립적인 검증을 요구하지 않았던 사고방식은 일관되게 드러납니다.
모든 것을 설명하는 개념은 오히려 아무것도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무엇을 위해 읽어야 하는가
《파시즘의 대중심리》는 파시즘을 히틀러 개인의 광기나 정치선전만으로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대중도 감정과 습관, 가족 경험을 가진 인간이며 언제나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는 질문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그러나 라이히는 마르크스주의가 설명하지 못한 부분을 정신분석으로 채웠습니다. 노동자가 혁명하지 않고 지도자에게 복종한 이유를 권위적인 가족과 성적 억압에서 찾았습니다.
이 설명은 모든 것을 하나로 연결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역사의 복잡성을 잃어버립니다.
인구전환 과정에서 성과 출산, 결혼과 양육의 오래된 결합은 느슨해졌습니다.
프로이트는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 성을 인간 정신의 중심에 놓았고, 라이히는 그것을 정치와 역사로 확대했습니다.
그들이 옳았던 것은 성과 가족이 개인의 심리와 정치에 무관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들이 틀린 것은 정치와 역사가 결국 억압된 성으로 환원될 수 있다고 믿었다는 점입니다.
《파시즘의 대중심리》는 파시즘을 설명한 과학적 고전이라기보다 인구전환과 가족질서의 변화 속에서 새롭게 발견된 성을 정치의 만능원인으로 확대했던 시대의 기록에 가깝습니다.
파시즘은 침실에서만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전쟁과 경제위기, 이념과 제도, 공포와 정치적 선택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성은 그 역사에 영향을 미친 하나의 요소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숨은 주인은 아니었습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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