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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킬레우스와 오디세우스: 리버럴과 보수주의자가 계승한 두 영웅의 심리


《일리아스》의 아킬레우스와 《오디세이아》의 오디세우스를 통해 진정성과 자존감을 중시하는 리버럴적 심리, 절제와 귀환, 책임을 중시하는 보수주의적 심리의 고대 원형을 고찰합니다.

아킬레우스와 오디세우스: 리버럴과 보수주의자가 계승한 두 영웅의 심리

정치사상은 어느 날 철학자의 책 속에서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자유주의와 보수주의라는 이름이 생기기 훨씬 전부터 인간은 서로 다른 성격의 영웅을 이야기해 왔습니다.

고대 그리스에는 그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두 영웅이 있습니다. 《일리아스》의 아킬레우스와 《오디세이아》의 오디세우스입니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감정과 존엄을 배반하지 않는 영웅입니다. 오디세우스는 자신이 책임져야 할 세계를 지키기 위해 감정과 욕망을 통제하는 영웅입니다.

후대의 리버럴은 아킬레우스의 덕목을 계승했고, 보수주의자는 오디세우스의 덕목을 계승했습니다.

물론 아킬레우스가 현대 자유주의자였고 오디세우스가 보수주의자였다는 뜻은 아닙니다. 두 사람은 정치이론을 제시한 철학자가 아니라, 서로 다른 정치심리의 오래된 원형입니다.

아킬레우스는 왜 싸우지 않았는가

아킬레우스는 그리스군에서 가장 강한 전사입니다. 그러나 아가멤논이 자신의 전리품이었던 브리세이스를 빼앗자 그는 전투를 거부합니다.

그리스군 전체가 위험해진다는 사실도 그의 결정을 바꾸지 못합니다. 아킬레우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공동체의 승리보다 자신의 존엄입니다.

그는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 부당함이 바로잡히기 전까지 공동체에 협력하지 않습니다.

아킬레우스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정당하게 대우받았는가?

그에게 감정은 단순한 충동이 아닙니다. 분노는 자신의 존엄이 침해되었다는 증거이며, 그 감정을 억누르는 것은 자신을 배반하는 일입니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분노로 인해 동료들이 죽고 전쟁이 불리해지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돌아오지 않습니다.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해서 개인에게 부당함을 참으라고 요구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심리는 오늘날 리버럴의 중요한 덕목과 연결됩니다.

개인의 존엄, 자기표현, 진정성, 인정받을 권리, 부당한 권위에 대한 저항입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사회의 관습이나 질서와 충돌하는 것도 감수합니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을 보존하기 위해 세계와 타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을 배반하지 않기 위해 세계와 싸우는 사람입니다.

오디세우스는 왜 참았는가

오디세우스도 강한 전사입니다. 그러나 그의 가장 중요한 능력은 전투력이 아닙니다.

그는 기다릴 줄 알고, 자신을 숨길 줄 알며, 상대의 약점을 관찰할 줄 압니다.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행동을 분리할 수 있습니다.

이타카에 돌아온 오디세우스는 당장 자신이 왕이라고 선언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집에서 구혼자들이 재산을 탕진하고 아내를 압박하는 모습을 보고도 곧바로 칼을 뽑지 않습니다.

그는 거지로 변장합니다. 누가 자신에게 충성했는지, 누가 배신했는지, 누구를 믿을 수 있는지를 먼저 확인합니다.

아킬레우스였다면 모욕을 참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디세우스에게 중요한 것은 감정의 즉각적인 해소가 아닙니다.

그의 질문은 다릅니다.

지금 이 행동은 결국 무엇을 남길 것인가?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분노가 정당하더라도, 정당한 분노가 언제나 좋은 결과를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압니다.

그는 모욕을 견딥니다. 정체를 감춥니다. 때로는 거짓말을 하고 우회합니다. 정면으로 싸울 수 없을 때는 기다리고, 상대가 방심했을 때 행동합니다.

이것은 비겁함이 아닙니다. 결과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의 판단입니다.

오디세우스의 특별한 능력은 감정을 느끼지 않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는 구혼자들을 보며 분노하고, 자기 집에서 모욕당하며 수치심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 감정을 곧바로 행동의 명령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는 자극과 반응 사이에 시간을 만들고, 그 시간 안에서 상대의 숫자와 힘, 가족과 하인들의 충성심을 확인합니다.

아킬레우스의 심리가 “나는 이렇게 느끼므로 행동한다”라면, 오디세우스의 심리는 “나는 이렇게 느끼지만, 결과를 위해 다르게 행동할 수 있다”에 가깝습니다. 이것은 감정을 부정하는 태도가 아니라, 감정의 정당성과 행동의 타당성을 구분하는 능력입니다.

오디세우스에게 전쟁은 목적이 아니었다

오디세우스는 전쟁이 끝난 뒤 갑자기 현실적인 사람이 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전쟁 중에도 처음부터 무리하지 않는 지휘관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아킬레우스에게 전쟁은 명예를 증명하는 장소입니다. 알렉산더에게 전쟁은 자신의 존재를 확장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디세우스에게 전쟁은 끝내야 할 과업이었습니다.

그는 더 많은 병사를 희생시키면서 트로이 성벽을 반복해서 공격하기보다, 트로이 목마라는 계략을 사용해 전쟁을 끝냅니다.

트로이 목마는 단순한 속임수가 아닙니다. 오디세우스의 전쟁관을 보여줍니다.

전쟁에서 중요한 것은 영웅적인 돌격이 아니라 목적의 달성입니다. 승리한 뒤에는 더 많은 전쟁을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니라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알렉산더는 승리할 때마다 다음 정복지를 찾았습니다. 승리는 새로운 전쟁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오디세우스는 승리하면 전쟁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알렉산더에게 전쟁은 삶의 방향이었지만, 오디세우스에게 전쟁은 끝내야 할 의무였습니다.

이 차이는 매우 중요합니다.

오디세우스는 싸울 능력이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싸울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싸우지 않는 사람입니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해서 자신의 책임 범위를 무한히 확대하지 않습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새로운 제국이 아닙니다. 이타카로 돌아가 아내와 아들을 만나고, 자신의 집과 왕국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정복자가 아니라 귀환자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는 확장의 이야기가 아니라 귀환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려 하지 않습니다. 이미 자신에게 주어진 세계로 돌아가려 합니다.

그 세계는 거대하지 않습니다.

아내 페넬로페, 아들 텔레마코스, 이타카의 작은 왕국, 자신의 집과 재산, 신하들과 이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실제로 책임져야 하는 세계입니다.

알렉산더에게 세계는 확장해야 할 대상입니다. 오디세우스에게 세계는 책임질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지켜야 할 장소입니다.

알렉산더는 경계를 만나면 넘어가려고 합니다. 오디세우스는 무너진 경계를 다시 세우려고 합니다.

이것은 내 집입니다.
이 사람은 내 아내입니다.
이 아이는 내 아들입니다.
이 섬은 내가 책임질 공동체입니다.
손님에게도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있습니다.

오디세우스가 구혼자들을 처단한 것은 단순히 질투 때문이 아닙니다. 구혼자들은 그의 집을 점거하고, 재산을 소비하며, 아들을 위협하고, 손님과 주인 사이의 규범을 파괴했습니다.

오디세우스의 폭력은 새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한 혁명적 폭력이 아니라, 무너진 질서를 복구하기 위한 폭력입니다.

그는 정복자가 아니라 귀환자이며, 창조자가 아니라 복원자입니다.

인간은 완전하지 않다

오디세우스에게도 약점은 있습니다.

그는 거짓말을 잘하고, 약탈에 참여하며, 때로는 허영심 때문에 실수합니다. 키클롭스에게 굳이 자신의 이름을 밝힌 것은 명백한 자만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그 정도 약점은 있습니다.

인간을 평가할 때 중요한 것은 결함이 전혀 없는가가 아닙니다. 자신의 결함을 알게 되는가, 실패에서 배우는가, 욕망을 통제할 수 있는가입니다.

키클롭스에게 자신의 이름을 밝힌 순간, 오디세우스는 승리의 흥분과 허영을 통제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단순히 미성숙한 영웅의 실수라고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그 실패의 대가를 치르고 배웠다는 점입니다.

오디세우스는 감정을 완전히 정복한 인간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분노와 자만이 언제든 자신을 망칠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배운 인간입니다. 그래서 그의 절제는 타고난 냉정함이 아니라, 실패를 기억하는 사람의 자기제한에 가깝습니다.

키클롭스에게 이름을 외쳤던 오디세우스는 이타카에 돌아온 뒤에는 자신의 이름과 감정을 철저히 숨깁니다.

젊은 오디세우스가 자랑하고 싶어 했다면, 귀환한 오디세우스는 기다릴 줄 압니다.

그는 완벽해서 보수주의적인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보수주의적입니다.

보수주의는 인간에게 완전성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인간에게는 허영심과 욕망, 두려움과 질투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좋은 사회는 완벽한 인간을 전제로 설계되어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이 공동체 전체를 파괴하지 않도록 통제하는 것입니다.

아킬레우스의 진정성과 오디세우스의 절제

아킬레우스와 오디세우스는 선한 영웅과 악한 영웅의 차이가 아닙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덕목을 구현합니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에게 진실합니다. 오디세우스는 자신이 책임질 사람들에게 충실합니다.

아킬레우스는 모욕을 참지 않습니다. 오디세우스는 목적을 위해 모욕을 견딥니다.

아킬레우스는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오디세우스는 우회하고 기다립니다.

아킬레우스는 영광스러운 죽음을 받아들입니다. 오디세우스는 불완전하더라도 살아서 돌아가기를 원합니다.

아킬레우스는 자기 존엄을 위해 공동체와 충돌합니다. 오디세우스는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자기 감정을 억제합니다.

아킬레우스에게 타협은 자기배신일 수 있습니다. 오디세우스에게 타협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일 수 있습니다.

이 차이는 오늘날의 정치심리에도 남아 있습니다.

리버럴은 개인의 진정성과 인정, 해방과 자기표현을 중시합니다. 감정을 억압하는 질서와 관습을 의심하고, 부당하다고 느끼는 권위에 저항합니다.

보수주의자는 감정과 욕망을 부정하지 않지만, 그것을 정치적 정당성의 최종 기준으로 삼지 않습니다. 개인의 진정성보다 행동의 결과와 책임, 공동체의 지속성을 먼저 봅니다.

아킬레우스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입니다.

내 감정이 진실하기 때문에 나는 행동한다.

오디세우스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입니다.

내 감정이 진실하더라도 그대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

후대 보수주의자가 계승한 덕목

오디세우스는 보수주의라는 말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보여준 덕목은 훗날 보수주의자들이 반복해서 강조하게 됩니다.

감정보다 자기통제, 명예의 확대보다 책임의 완수, 무한한 정복보다 귀환과 복구, 추상적 이상보다 구체적인 공동체, 정면충돌보다 신중한 판단, 인간의 완전성보다 인간의 한계에 대한 이해입니다.

후대의 보수주의자들이 전통과 관습, 경험과 점진적 변화를 중시한 것도 같은 인간관에서 나옵니다.

인간은 세상을 처음부터 다시 설계할 만큼 현명하지 않습니다. 사회는 한 사람의 이론으로 모두 파악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합니다. 그러므로 이미 존재하는 질서를 함부로 파괴해서는 안 되며, 바꿀 때도 실제 결과를 살피면서 조금씩 고쳐야 합니다.

오디세우스는 세계를 하나의 원리로 재편하지 않습니다. 그는 매번 상황을 관찰하고, 가능한 선택을 비교하며,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행동합니다.

그의 지혜는 세상을 완전히 이해했다는 확신이 아니라, 세상이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복잡할 수 있다는 인식에서 나옵니다.

두 영웅은 지금도 살아 있다

정치사상은 인간심리에서 출발합니다.

자신의 감정과 존엄을 지키려는 욕망도 인간에게 필요합니다. 부당한 권위에 저항하고, 억압된 사람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게 만든 것은 아킬레우스적인 심리였습니다.

그러나 감정이 정당하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행동이 정당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공동체를 유지하려면 기다리고, 타협하고, 우회하고, 자신의 욕망을 제한할 줄 아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그것이 오디세우스적인 심리입니다.

아킬레우스가 없다면 사회는 부당한 질서를 참기만 할 것입니다. 오디세우스가 없다면 사회는 모든 모욕과 분노를 전쟁으로 바꿀 것입니다.

그러나 두 영웅 가운데 누가 보수주의의 인간형에 더 가까운지는 분명합니다.

오디세우스는 세상을 정복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책임져야 할 곳으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그는 감정을 정복한 사람이 아니라, 감정이 언제든 자신을 망칠 수 있음을 알고 그 명령을 곧바로 따르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싸울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싸울 필요가 있을 때만 싸우는 사람이었습니다. 새로운 세계를 약속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자신에게 맡겨진 세계를 지키려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디세우스는 최초의 보수주의자는 아닙니다.

그러나 후대 보수주의자들이 계승한 절제, 책임, 신중함, 현실주의, 귀환과 복구의 덕목을 가장 오래전에 구현한 영웅입니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을 배반하지 않기 위해 세계와 싸웠습니다.

오디세우스는 자신이 책임져야 할 세계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절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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