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물권 운동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PETA입니다. 그리고 PETA의 상징은 잉그리드 뉴커크입니다. 그는 동물을 인간의 소유물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고, 동물실험, 모피, 육식, 서커스, 동물원, 심지어 반려동물 문화까지 근본적으로 의심했습니다. 인간은 동물을 너무 쉽게 이용하고, 너무 쉽게 지배하고, 너무 쉽게 죽인다는 것이 그의 문제의식이었습니다.
그러나 동물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인간에 대한 분노일까요, 아니면 살아갈 집일까요. 이 질문을 던지면 전혀 다른 인물이 등장합니다. 바로 마이크 암스입니다. 그는 시골에서 올라와 단지 ASPCA라는 이름이 멋있어 입사했다가, 안락사 업무를 맡고 못버티고, 나와서 뉴욕의 North Shore Aninal League에서 활동하면 유명한 동물복지 활동가입니다. 그는 오랫동안 그곳에서 일하다가, Helen Woodward Animal Center로 이직한 후 더욱 더 동물복지 운동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 둘의 차이는 단순히 단체의 차이가 아닙니다. 이것은 세계를 보는 방식의 차이입니다. 뉴커크는 급진주의자의 방식으로 동물을 보았습니다. 암스는 보수주의자의 방식으로 동물을 보았습니다. 전자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 자체를 의심했고, 후자는 그 관계를 더 책임 있게 만들어 생명을 살리려 했습니다.
PETA의 출발
PETA는 1980년 잉그리드 뉴커크와 알렉스 파체코가 함께 만든 단체입니다. 뉴커크는 당시 워싱턴 D.C. 지역의 동물보호 현장에서 일하고 있었고, 파체코는 그에게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을 소개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두 사람은 작은 조직에서 출발했지만, 곧 미국 동물권 운동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PETA가 전국적 주목을 받은 계기는 1981년 실버 스프링 원숭이 사건이었습니다. 파체코는 메릴랜드 실버 스프링의 한 연구소에 들어가 원숭이 실험 현장을 촬영했고, 이 사건은 동물실험 논쟁을 전국적 이슈로 만들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PETA는 급진적 동물권 운동의 대표 단체가 되었습니다. 파체코는 현장 잠입과 폭로의 인물이었고, 뉴커크는 그것을 조직과 메시지로 바꾼 인물이었습니다.
PETA의 방식은 강했습니다. 모피를 입은 사람을 공격하고, 육식을 학살에 비유하고, 동물실험을 고문으로 묘사했습니다. 이 방식은 언론을 끌어당겼고, 대중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급진주의는 자주 현실의 세부 문제를 놓칩니다.
보호소에 들어온 개와 고양이를 어떻게 입양시킬 것인가. 입양률을 높이려면 보호소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가.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가. 아이가 있는 가정, 노인이 있는 가정, 초보 보호자에게 어떤 동물을 연결해야 하는가. 이런 문제는 구호보다 어렵고, 분노보다 지루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동물을 살리는 일은 바로 이런 지루한 문제에서 결정됩니다.
PETA의 높은 안락사율
PETA를 비판할 때 가장 자주 거론되는 문제는 보호소 안락사율입니다. PETA는 버지니아주 노퍽에서 동물보호소를 운영하며, 버지니아주 동물보호소들은 매년 동물 수용과 처리 결과를 주 정부에 보고합니다.
PETA는 자신들이 마지막 수단의 보호소라고 설명합니다. 다른 곳에서 받아주지 않는 늙고 아프고 공격적이고 죽음에 가까운 동물을 맡기 때문에 안락사율이 높다는 주장입니다. 모든 안락사를 단순한 악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회복 불가능한 고통 속에 있는 동물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은 때로 필요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비율입니다. PETA의 보호소는 오랫동안 높은 안락사율로 비판을 받아 왔습니다. 최근 자료에서도 PETA가 수용한 개와 고양이의 상당수를 안락사시켰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이것은 동물권 단체로서는 매우 불편한 숫자입니다.
여기에 PETA의 역설이 있습니다. PETA는 인간이 동물을 먹고, 입고, 실험하고, 소유하는 것을 강하게 비판합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들이 운영하는 보호소에서는 입양보다 안락사의 비율이 높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위선의 문제가 아닙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급진적 동물권이 실제 보호소 운영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얼마나 무력할 수 있는가입니다.
동물을 인간의 지배로부터 해방해야 한다는 말은 도덕적으로 강해 보입니다. 그러나 보호소의 개와 고양이에게 필요한 것은 추상적 해방이 아닙니다. 먹이, 치료, 사회화, 홍보, 입양 상담, 가정 연결, 사후 관리입니다. 동물은 인간에게서 완전히 해방되어 사는 것이 아니라, 책임 있는 인간과 연결될 때 살아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ASPCA에서 출발한 마이크 암스
마이크 암스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이유는 그가 처음부터 입양운동의 영웅으로 출발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그는 ASPCA 출신입니다.
ASPCA는 미국 동물보호운동의 상징적 기관이지만, 그 초기 역사는 지금의 동물보호 이미지와 다릅니다. 19세기 말 ASPCA가 뉴욕시 동물관리 업무를 맡았을 때, 보호소는 동물을 살리는 기관이라기보다 거리의 동물을 수거해 비교적 인도적으로 죽이는 도시관리 기관에 가까웠습니다. 당시의 핵심 문제는 동물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덜 잔인하게 죽일 것인가에 가까웠습니다.
마이크 암스는 바로 그 세계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는 ASPCA에서 안락사와 동물관리의 현실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그에게 중요한 경험이었습니다. 동물보호의 이름으로 동물을 죽이는 현장을 안 사람만이, 안락사를 줄이는 일이 단순한 선언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후 그는 North Shore Animal League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완전히 다른 모델을 배웠습니다. North Shore는 동물을 더 잘 죽이는 기관이 아니라, 더 잘 입양시키는 기관이 되려 했습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알렉스 르윗과 바베트 르윗 부부가 있었습니다.
진공청소기 발명가에게서 배운 입양의 기술
알렉스 르윗은 Lewyt 진공청소기로 부를 이룬 발명가였습니다. 그는 수많은 특허를 가진 인물이었고, 부인 바베트 르윗과 함께 North Shore Animal League를 변화시킨 핵심 인물이었습니다. 바베트 르윗은 낡고 무너져가던 North Shore를 보고 그것을 바꾸기로 했고, 알렉스 르윗은 자신의 사업 감각과 자산을 동물 입양 시스템에 투입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르윗 부부가 동물을 상품처럼 취급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행동을 이해했습니다. 좋은 뜻만으로 사람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사람은 보고, 느끼고, 선택하고, 확신할 때 움직입니다. 입양도 마찬가지입니다. 보호소 안에 동물이 있다고 해서 입양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보호소에 오게 해야 하고, 동물을 만나게 해야 하고, 입양을 기쁜 경험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마이크 암스는 이 세계에서 배웠습니다. 그는 동물복지는 감정이 아니라 시스템이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홍보, 광고, 상담, 네트워크, 이동, 행사, 지역 단체와의 협력, 입양 후 관리가 모두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보수주의자의 접근 방식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을 한 번에 뒤집으려 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본성과 제도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작동하는 구조를 만듭니다.
죽이는 기술에서 살리는 시스템으로
마이크 암스는 North Shore에서 약 20년을 일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입양 실적을 크게 끌어올렸고, 이후 Helen Woodward Animal Center로 옮겨 더 큰 캠페인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다른 보호소들과 함께하는 대규모 입양 캠페인을 도입했고, Helen Woodward로 옮긴 뒤에는 Home 4 the Holidays를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마이크 암스의 위대함입니다. 그는 동물권의 언어를 더 세게 만든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입양의 구조를 만든 사람입니다. 그는 동물보호를 도덕적 비난에서 실제 연결로 바꾸었습니다. 버려진 동물과 입양할 수 있는 가정 사이에 길을 만든 것입니다.
그가 만든 캠페인은 세계 여러 나라의 보호소와 구조단체를 연결했습니다. 한때 1,000만 마리 이상으로 소개되던 입양 실적은 계속 누적되어, 현재는 2,000만 마리 이상으로 언급됩니다. 숫자의 정확한 갱신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입니다. PETA가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의심하는 동안, 마이크 암스는 더 많은 책임 있는 관계를 만들었습니다.
알렉스 파체코의 후일담
PETA의 공동창립자 알렉스 파체코의 후일담도 흥미롭습니다. 그는 실버 스프링 원숭이 사건을 통해 미국 동물권 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되었고, 이후 600 Million Stray Dogs Need You라는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이 단체는 개와 고양이를 수술 없이 불임화할 수 있는 이른바 불임 쿠키를 개발한다고 주장하며 후원금을 모았습니다.
다만 파체코가 법원에서 사기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단체는 후원금 사용과 과학적 주장에 대해 심각한 의혹과 비판을 받았습니다. 동물 불임화 기술을 다루는 전문 단체들은 이 단체의 주장에 대해 회의적 입장을 밝혔고, 투명성, 데이터, 결과가 부족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단회 경구 불임화 제품에 대한 안전성, 효과, 승인 가능성에 관한 설명이 과학적으로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는다고 비판했습니다.
이 대목은 역사와 철학에서 말하는 '경건한 사기(pious fraud)'의 전형적인 단면을 보여줍니다. 종교적이거나 도덕적으로 숭고한 대의를 위해서라면 다소의 거짓이나 과장, 심지어 검증되지 않은 수단조차 정당화될 수 있다고 믿는 태도입니다.
공교롭게도 '동물의 수호성인'으로 추앙받는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St. Francis of Assisi) 역시 역사학계에서 이 '경건한 사기' 논쟁의 단골 인물입니다. 그가 보여주었다는 동물과의 교감이나 기적, 그리고 몸에 나타났다는 예수의 다섯 상처(Stigmata) 등은, 훗날 수도회가 대중의 경건함과 도덕적 열망을 이끌어내기 위해 기획하고 미화한 종교적 연출이 아니냐는 비판을 오래전부터 받아왔습니다.
현대 동물권의 수호성인을 자처한 파체코의 행보 역시 이와 닮아 있습니다. 그가 이끈 급진적 동물운동은 "동물을 구한다"는 도덕적 명분 위에 서 있었지만, 그들의 언어와 캠페인은 과학적 검증이나 실제 동물을 살리는 투명한 시스템보다 대중의 이목을 끄는 연출과 그로 인한 후원금 모금에 최적화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모든 급진주의자가 처음부터 부정한 의도를 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대의의 크기가 모든 수단의 정당성을 보증한다고 믿는 순간, 대의는 검증과 책임의 영역 밖으로 도망쳐 버립니다. 성인(聖人)의 후광 앞에서 기적의 진위를 묻는 것이 불경한 일이 되듯, “동물을 위해서”라는 거대한 선언 앞에서 정작 그들이 모은 막대한 후원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제시된 대안이 과학적 사실에 부합하는지와 같은 구체적인 질문들은 사소한 의심으로 취급되어 묻혀버리는 것입니다.
보수주의자의 동물복지
마이크 암스의 접근은 보수주의적입니다. 여기서 보수주의란 냉정하거나 무정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보수주의자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악으로 단정하지 않습니다. 가족, 습관, 책임, 지역사회, 기관, 시장, 홍보, 신뢰 같은 현실의 구조를 봅니다. 그리고 그 구조를 고쳐서 더 나은 결과를 만들려고 합니다.
PETA식 급진주의는 인간의 동물 소유를 의심합니다. 그러나 마이크 암스식 보수주의는 묻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보호소에 있는 이 개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PETA식 동물권은 동물을 인간의 지배로부터 해방하자고 말합니다. 마이크 암스식 동물복지는 동물이 좋은 인간을 만나야 산다고 말합니다.
이 차이는 매우 중요합니다. 동물은 추상적 권리의 언어 속에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동물은 집, 밥, 산책, 치료, 애착, 예측 가능한 일상 속에서 삽니다. 동물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 없는 세계가 아니라, 책임 있는 인간이 있는 세계입니다.
동물을 살리는 것은 이념이 아니라 구조입니다
뉴커크는 동물권의 상징입니다. 그는 인간이 동물을 함부로 이용하는 현실을 공격했고, 그 문제제기는 분명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PETA의 높은 안락사율은 급진적 동물권이 실제 동물복지로 곧장 이어지지 않는다는 불편한 사실을 보여줍니다.
파체코는 PETA의 초기 폭로형 운동을 만든 인물이었지만, 훗날 그의 단체는 과학적 근거와 후원금 사용을 둘러싼 심각한 의혹을 받았습니다. 이것 역시 급진적 대의가 검증과 책임을 잃을 때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반면 마이크 암스는 다른 길을 갔습니다. 그는 ASPCA의 안락사 중심 보호소 현실을 알았고, North Shore에서 입양 중심 모델을 배웠으며, Helen Woodward에서 세계적 입양 캠페인으로 확장했습니다. 그는 동물을 해방한다는 거대한 말을 앞세우지 않았습니다. 대신 동물이 살 집을 찾게 했습니다.
이것이 보수주의자의 접근입니다. 세상을 한 번에 정화하려 하지 않고, 작동하는 제도를 만듭니다. 인간을 악으로 단정하지 않고, 인간의 책임을 강화합니다.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끊으려 하지 않고, 그 관계를 더 좋게 만듭니다.
동물을 사랑한다는 말은 인간을 미워하는 것으로 증명되지 않습니다. 동물을 살리는 구조를 만드는 것으로 증명됩니다. PETA의 뉴커크와 마이크 암스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한쪽은 동물권의 순수성을 말했고, 다른 한쪽은 수천만 마리의 입양을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