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JTBC의 몰락: 리버럴 미디어의 두려움 없는 서사와 도박
삼성과 중앙일보는 원래 남남이 아니었습니다
중앙일보와 삼성의 관계는 단순한 광고주와 언론사의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중앙일보는 1965년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창간한 신문이었고, 삼성은 한때 신문과 방송을 함께 가진 미디어 자본이었습니다. 이후 삼성가와 홍씨 일가는 혼인으로도 연결되었습니다. 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라희 여사는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의 딸이고,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의 누나입니다. 따라서 이재용 회장에게 홍석현 회장은 외삼촌입니다.
이 관계를 모르고 중앙일보·JTBC 사태를 보면, 단순히 한 언론사의 경영 실패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관계를 알고 보면 이야기는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중앙일보는 삼성이라는 거대한 자본과 관계망 속에서 성장한 언론사였고, 삼성 역시 중앙일보를 통해 여론과 미디어 권력의 일부를 가졌습니다. 원문도 이 관계를 “돈의 힘과 여론이 결혼이라는 끈으로 묶여 있었다”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중앙일보는 1999년 삼성그룹에서 계열분리되었습니다. 당시 중앙일보는 “삼성그룹으로부터 분리되어 독립 언론의 길을 가겠다”고 밝혔고, 이건희 회장과 삼성 계열사가 갖고 있던 중앙일보 지분도 정리되었습니다. 그러나 법적 계열분리와 역사적 관계의 단절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당시에도 이건희 회장은 중앙일보 지분 20.3%를 갖고 있었고, 삼성물산·제일모직·삼성전기 등도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즉 중앙일보는 법적으로는 독립했지만, 역사적으로는 삼성이라는 거대한 후견 자본의 기억을 가진 언론사였습니다.
JTBC는 잃어버린 방송국의 부활이었습니다
중앙그룹의 방송 진출도 단순한 신규 사업이 아니었습니다. 삼성은 과거 동양방송, 즉 TBC를 운영했습니다. 그러나 1980년 언론통폐합으로 TBC는 KBS에 흡수되었습니다. 이후 2011년 중앙그룹이 종합편성채널 JTBC를 출범시켰을 때, 그 이름 안에는 사라진 TBC를 되살린다는 상징성이 들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JTBC는 단순한 방송국이 아니었습니다. 중앙그룹 입장에서는 빼앗겼던 방송 권력의 복원이고, 삼성-중앙일보 역사 속에서는 오래된 미디어 권력의 부활이었습니다. 이 점은 중요합니다. JTBC는 처음부터 작은 방송사가 아니라, 과거의 체급과 상징을 되찾으려는 프로젝트였습니다.
그런데 이 방송국은 시간이 지나며 이상한 방향으로 성장했습니다. 중앙일보는 보수 신문으로 출발했지만, JTBC는 손석희 체제 이후 진보·리버럴 미디어의 상징처럼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 정점이 박근혜 탄핵 국면이었습니다.
리버럴 미디어의 첫 번째 문제: 사실을 서사로 바꾸는 확신
JTBC의 탄핵 보도는 한국 정치사에서 엄청난 영향을 미쳤습니다. 태블릿PC 보도는 박근혜 탄핵 여론의 결정적 도화선이 되었고, JTBC는 그 사건을 통해 “정권을 무너뜨린 언론”이라는 상징적 지위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시작됩니다. 리버럴 미디어는 종종 사실을 있는 그대로 다루기보다, 그것을 도덕적 서사로 재구성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복잡한 사실관계는 단순한 선악 구도로 바뀝니다. 태블릿PC의 실사용자, 입수 경위, 파일 유입 경로, 포렌식 해석 같은 복잡한 쟁점은 “최순실 태블릿”이라는 하나의 상징으로 압축되었습니다. 삼성과 이재용 문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기업의 스포츠 지원, 권력의 압박, 경영권 승계 논란, 정치적 분위기가 뒤섞인 사건은 “삼성 승계 범죄”라는 거대한 프레임으로 정리되었습니다.
물론 언론은 권력을 감시해야 합니다. 삼성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감시가 아니라 확신입니다. 리버럴 미디어는 자신이 정의의 편에 서 있다고 믿을 때 사실의 불확실성을 두려워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이 복잡해도, 자신들이 옳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고 믿으면 그 복잡성을 생략합니다.
그 결과, 사실은 검증의 대상이 아니라 정치적 효과의 재료가 됩니다.
이재용 프레임은 결국 무죄로 끝났습니다
이 점에서 이재용 회장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회계부정 사건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사건은 오랫동안 “삼성 승계 범죄”의 핵심처럼 다뤄졌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2025년 7월 17일 이재용 회장의 자본시장법 위반,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습니다. 2020년 9월 기소 이후 4년 10개월 만이었고, 함께 기소된 삼성 전직 임원들도 모두 무죄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사법 절차의 종료가 아닙니다. 탄핵 국면 이후 리버럴 진영과 상당수 언론이 밀어붙였던 “불법 승계” 프레임의 핵심이 법정에서 입증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물론 이재용 회장이 국정농단 사건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은 별개의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유죄도 명시적 청탁보다는 “묵시적 청탁”이라는 넓은 법리에 의존했습니다. 대기업에는 언제나 정부 관련 현안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기업 총수를 만나고, 기업이 정부 주변의 요청에 응하면, 나중에 얼마든지 “묵시적 청탁”이라는 이름으로 엮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점이 위험합니다.
리버럴 미디어는 이런 위험을 충분히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법리의 엄격함보다 “재벌 권력 응징”이라는 도덕적 서사였기 때문입니다.
삼성과 중앙일보의 결별은 단순한 감정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JTBC가 삼성과 이재용을 공격한 것은 언론 독립의 관점에서는 정당화될 수 있습니다. 친족 관계가 있다고 해서 삼성 문제를 덮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더 큰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중앙일보와 삼성은 오랫동안 자본, 광고, 혈연, 신용으로 얽혀 있었습니다. 삼성은 단순한 광고주가 아니었습니다. 중앙그룹이 어려울 때 시장이 바라보는 보이지 않는 안전판이었습니다. 금융시장은 숫자만 보지 않습니다. 뒤에 누가 있는지, 어떤 관계망이 있는지, 위기 때 누가 버텨줄 수 있는지를 봅니다.
JTBC의 탄핵 보도와 이재용 프레임은 중앙그룹이 삼성과 정치적·정서적으로 결별하는 상징적 장면이었습니다. 중앙그룹은 그 과정에서 리버럴 미디어의 정치적 영향력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삼성이라는 오래된 자금줄과 신용의 완충장치를 잃었습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중앙그룹은 삼성과 결별하면서 독립 언론의 명분을 얻었지만, 삼성이라는 자본의 후광도 함께 잃었습니다.
리버럴 미디어의 두 번째 문제: 관계자본을 우습게 보는 도덕주의
리버럴은 종종 관계자본을 부정적으로 봅니다. 혈연, 기업 네트워크, 장기 거래관계, 신용, 후견 구조를 낡은 질서로 봅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더 투명하고 독립적인 질서를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기업은 도덕적 선언만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언론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광고주, 금융기관, 투자자, 유통망, 관계자본이 모두 필요합니다. 특히 방송사는 광고가 생명선입니다. 콘텐츠를 무료 또는 저가로 제공하고 광고로 수익을 얻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중앙그룹은 삼성과의 관계가 약해진 상태에서 독립 미디어의 길을 걸었습니다. 여기까지는 하나의 선택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삼성이라는 안전판을 잃었다면 그에 맞게 위험을 줄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중앙그룹은 반대로 더 큰 위험을 떠안았습니다.
그것이 올림픽·월드컵 중계권 베팅입니다.
7000억 원 중계권 도박
중앙그룹은 20262032년 동·하계올림픽과 20252030년 월드컵 중계권을 확보했습니다. 중계권료는 대외비였지만, 지상파 3사는 중앙그룹이 올림픽에 약 2억3000만 달러, 월드컵에 약 2억7000만 달러, 합계 약 5억 달러를 지불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한화로 약 7000억 원 규모입니다.
이 전략의 구조는 분명했습니다. JTBC가 중계권을 먼저 확보하고, 지상파 3사와 플랫폼에 재판매해 투자금을 회수한다는 계산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위험한 전략입니다. 올림픽과 월드컵은 국민적 관심을 끄는 콘텐츠이지만, 너무 비싸게 사면 흥행해도 손해가 날 수 있습니다. 특히 방송 광고시장이 줄고, 시청자가 유튜브·OTT·모바일로 분산된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한겨레는 JTBC의 중계권 독점을 “승자의 저주”라고 표현했습니다. JTBC는 206억 원 규모의 채무를 이행하지 못했고, 이 위기는 중앙그룹 전체의 회생절차 문제로 번졌습니다.
이것이 리버럴적 사고방식의 세 번째 문제입니다. 자신들이 기존 질서를 깨고 새 시장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JTBC는 지상파 뉴스 질서에 도전했고, 보수 신문 계열의 진보 방송이라는 모순적 브랜드로 성공했습니다. 그 성공 경험은 “우리는 기존 질서를 흔들 수 있다”는 확신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확신은 스포츠 중계권 시장에서도 반복되었습니다.
하지만 뉴스의 정치적 영향력과 스포츠 중계권의 현금흐름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정치적 영향력은 여론을 만들 수 있지만, 7000억 원의 중계권료를 갚아주지는 않습니다.
중앙그룹은 삼성의 체급을 잃고도 삼성처럼 베팅했습니다
중앙그룹의 실패는 여기서 명확해집니다. 삼성이라는 후견 자본이 있을 때는 큰 베팅도 버틸 수 있습니다. 실패해도 그룹 전체의 현금흐름이 충격을 흡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앙그룹은 더 이상 삼성 계열사가 아니었습니다. 삼성의 광고와 관계자본도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중앙그룹은 삼성 계열 미디어였던 시절의 체급 감각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리버럴 엘리트에게서 자주 보이는 착각입니다. 자신이 과거 질서의 보호를 받으며 성장했다는 사실을 잊고, 그 질서를 공격하면서도 그 질서가 제공하던 안정성은 계속 남아 있을 것이라고 믿는 착각입니다.
중앙그룹은 삼성이라는 구질서의 자본 위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JTBC는 리버럴 미디어의 이름으로 그 구질서를 공격했습니다. 그 공격이 정치적으로는 성공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뒤에 남은 것은 독립된 수익모델이 아니라 약해진 광고 기반, 줄어든 신용, 커진 차입, 그리고 7000억 원짜리 중계권 부담이었습니다.
리버럴의 두려움 없음은 미덕이 아니라 위험일 수 있습니다
리버럴은 자신을 용감하다고 생각합니다. 권위에 도전하고, 기존 질서를 깨고, 금기를 무너뜨리고, 더 정의로운 세계를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 자체가 늘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두려움이 너무 없을 때입니다.
사실을 다룰 때 두려움이 없으면, 검증보다 서사가 앞섭니다. 관계를 다룰 때 두려움이 없으면, 오래된 신용과 후견 구조를 너무 쉽게 버립니다. 경영을 다룰 때 두려움이 없으면, 감당할 수 없는 판돈을 겁 없이 겁니다.
중앙일보·JTBC 사태는 바로 이 세 가지가 결합한 사건입니다.
탄핵 국면에서 JTBC는 사실을 정치적 서사로 재구성하는 데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삼성과 이재용을 공격하면서 오래된 관계자본을 잃는 데도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삼성이라는 완충장치가 약해진 뒤에도 올림픽·월드컵 중계권 7000억 원이라는 거대한 도박을 하는 데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그 결과가 부도와 회생절차였습니다.
정치적 성공은 사업모델이 아닙니다
JTBC는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정치적 영향력의 정점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정치적 영향력은 사업모델이 아닙니다. 특정 정치 국면에서 언론이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힘은 반복 가능한 현금흐름이 아닙니다.
JTBC는 탄핵 국면에서 얻은 영향력을 영구적 체급으로 착각했습니다. 그래서 지상파 뉴스 질서에 도전했고, 콘텐츠 산업에 큰돈을 걸었고, 마침내 올림픽·월드컵 중계권까지 선점했습니다. 그러나 시장은 정치적 자신감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시장은 현금흐름으로 움직입니다. 금융시장은 정의감이 아니라 상환능력을 봅니다.
이것이 중앙그룹이 놓친 지점입니다.
결론: 중앙그룹의 부도는 리버럴적 성격의 귀결입니다
중앙일보·JTBC의 위기는 단순히 광고시장이 나빠져서 생긴 일이 아닙니다. 단순히 스포츠 중계권을 비싸게 사서 생긴 일도 아닙니다. 더 깊은 곳에는 리버럴 미디어 특유의 사고방식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복잡한 사실을 단순한 도덕 서사로 바꾸는 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래된 관계자본을 낡은 유산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삼성이라는 후견 네트워크와 결별하는 위험을 충분히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기존 시장질서를 자신들이 재편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7000억 원 규모의 올림픽·월드컵 중계권이라는 도박을 감행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서사보다 오래갑니다. 관계자본은 도덕적 선언보다 질깁니다. 현금흐름은 정치적 영향력보다 냉정합니다.
중앙그룹은 리버럴 미디어의 성공을 영구적 자산으로 착각했습니다. 삼성의 체급을 잃은 뒤에도 삼성처럼 베팅했습니다. 이재용을 겨냥한 핵심 승계범죄 프레임은 무죄로 끝났고, 삼성이라는 오래된 안전판은 사라졌으며, 스포츠 중계권 도박은 현금흐름을 압박했습니다.
결국 중앙일보·JTBC의 부도는 우연이 아닙니다. 그것은 두려움 없이 사실을 서사로 만들고, 두려움 없이 관계를 끊고, 두려움 없이 돈을 건 리버럴 미디어의 자기파괴적 결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