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실패한 우파가 어떻게 승자가 되었나》 비평


토머스 프랭크가 설명한 티파티의 부상과 2008년 금융위기를 검토하고, 공화당에 대한 도덕적 적대감이 그의 분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봅니다.

《실패한 우파가 어떻게 승자가 되었나》 비평

실패한 우파는 어떻게 다시 승자가 되었나

토머스 프랭크의 《실패한 우파가 어떻게 승자가 되었나》는 흥미로운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2008년 미국 금융시스템은 붕괴했습니다. 금융위기는 조지 W. 부시 행정부 말기에 폭발했고, 공화당은 대통령 선거와 의회 선거에서 크게 패배했습니다. 자유시장과 규제 완화를 주장해온 보수주의도 오랫동안 신뢰를 회복하기 어려울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였습니다. 미국 우파는 반성하거나 중도로 이동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작은 정부, 더 낮은 세금, 더 강한 자유시장을 주장하며 티파티 운동으로 부활했고, 2010년 중간선거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프랭크는 이 역설을 설명하려 합니다. 그의 답은 분명합니다.

경제위기를 만든 우파가 자신을 위기의 가해자가 아니라 정부와 엘리트에게 억압받는 피해자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미국 우파가 패배를 저항운동으로 전환한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그러나 동시에 공화당과 보수주의에 대한 저자의 강한 도덕적 적대감 때문에, 금융위기의 복합적인 원인과 보수 유권자의 실제 불만을 충분히 살피지 못합니다.

우파는 어떻게 기득권에서 저항세력이 되었나

프랭크가 가장 잘 포착한 것은 우파의 서사 전환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 미국 정부는 파산 직전의 은행과 금융기관을 구제했습니다. 그러나 평범한 시민들은 일자리와 집, 퇴직자산을 잃었습니다. 우파는 이 불만을 자유시장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정부에 대한 분노로 바꾸었습니다.

우파의 설명은 단순했습니다.

정부와 월가는 결탁했습니다.
그들의 실패를 성실한 납세자의 돈으로 메우고 있습니다.
지금 벌어지는 일은 자본가와 노동자의 싸움이 아니라, 엘리트와 평범한 시민의 싸움입니다.

이 서사는 정치적으로 강력했습니다. 오랜 기간 권력을 행사했던 공화당은 자신을 다시 반체제 세력으로 만들었습니다. 금융기관 구제에 반대하고, 세금과 재정적자를 비판하며, 자신들이야말로 권력에 저항하는 시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프랭크는 이 과정에 보수 싱크탱크, 로비단체, 억만장자의 자금, 폭스뉴스와 같은 매체가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여러 보수단체가 티파티의 조직과 확산에 관여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 부분은 이 책의 가장 중요한 통찰입니다. 정치에서는 누가 실제로 위기를 만들었는지만큼, "누가 위기의 의미를 먼저 규정하는가"가 중요합니다.

민주당은 왜 분노를 우파에게 빼앗겼나

프랭크는 민주당도 강하게 비판합니다.

오바마는 금융위기를 일으킨 대통령이 아니라 위기를 물려받은 대통령입니다. 그러나 그의 행정부는 금융시스템을 안정시키는 데 집중한 반면, 주택을 잃은 시민과 실업자의 분노를 충분히 해소하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오바마 정부는 월가와 클린턴 행정부 출신 인사들에게 계속 의존했습니다. 2010년 선거 패배 이후에도 전직 투자은행가를 요직에 기용했고, 공화당과의 타협을 위해 사회보장제도 축소까지 검토했습니다. 프랭크는 이를 민주당이 노동계급의 정당에서 전문직과 금융 엘리트의 정당으로 변해버린 증거로 봅니다.

이 비판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민주당은 금융위기를 우파의 실패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월가와 자신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금융기관은 구제했지만 책임자를 처벌하거나 시민이 체감할 만한 구조개혁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반체제의 언어를 사용할 자격을 우파에게 넘겨주었습니다.

티파티의 등장은 단순히 우파 선전의 결과만은 아니었습니다. 민주당이 실제 불만을 흡수하지 못한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프랭크 자신도 건강보험 개혁에 반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전부 조직적인 공작의 산물이라고 볼 수 없다고 인정합니다.

2008년 금융위기는 정말 보수주의의 실패였나

이 책의 가장 큰 문제는 금융위기의 원인을 너무 빨리 확정한다는 점입니다.

프랭크에게 2008년 금융위기는 자유시장주의와 규제 완화가 파산한 사건입니다. 따라서 금융위기 이후에도 자유시장을 주장하는 사람은 현실을 거부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는 자유시장 이론이 스스로 “파멸과 엉터리 철학”임을 입증했다고 단정합니다.

그러나 실제 금융위기의 원인은 훨씬 복합적입니다.

위기의 출발에는 더 많은 미국인이 집을 소유해야 한다는 정치적 목표가 있었습니다. 저소득층과 소수인종의 주택 보유율을 높이고, 차별적인 대출 관행을 개선하며, 계약금과 신용기준의 장벽을 낮추려는 정책이 오랫동안 추진되었습니다.

이 목표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과거 금융기관의 인종차별과 지역 차별은 실제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차별을 없애는 것과 상환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까지 대출을 확대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주택 보유율 자체가 정책 성과가 되면서 대출기준 완화에 정치적 명분이 생겼습니다. 금융업계는 이 대출을 모아 증권으로 만들고, 위험을 등급별로 나누어 판매했습니다. 위험이 수치화되고 분산되었다고 믿었기 때문에 대출기관은 차입자의 장기 상환능력을 엄격하게 확인할 유인을 잃었습니다.

문제는 위험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잘못 계산된 상태로 금융시스템 전체에 퍼졌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금융위기는 다음 요소가 결합한 결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주택 소유 확대라는 사회정책이 대출기준 완화에 명분을 제공했습니다.
금융업계는 이를 증권화와 레버리지로 대량 확대했습니다.
신용평가사와 금융모델은 위험을 과소평가했습니다.
정부와 감독기관은 거품이 커지는 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순수한 자유시장만의 실패도 아니고, 정부정책만의 실패도 아닙니다. 사회정책과 금융공학, 정치적 성과주의와 민간의 수익추구가 서로를 강화한 혼합체제의 실패입니다.

공화당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부시 행정부도 주택 소유 확대를 지지했습니다. 집을 소유한 시민이 더 독립적이고 책임 있게 행동한다는 ‘소유권 사회’의 논리는 보수주의와 잘 맞았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공화당이 위기의 구조를 처음 만들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부시 행정부는 이미 구축되어 있던 주택 소유 확대 정책과 금융시스템을 계승했습니다. 공화당이 독자적으로 저신용 대출을 고안했거나, 위기를 일으킨 새로운 정책을 처음 시작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공화당의 책임은 주로 감독 실패에 있습니다.

시장가격과 신용평가가 위험을 정확히 반영할 것이라고 믿었고, 증권화가 위험을 분산한다고 낙관했으며, 높은 레버리지와 복잡한 파생상품의 위험을 충분히 통제하지 못했습니다. 위험이 커지는 동안 이를 막지 못한 책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금융위기를 처음 기획한 책임과는 다릅니다.

프랭크는 이러한 차이를 충분히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는 공화당의 2차적 책임인 시장 낙관론과 감독 실패를, 금융위기의 전체 원인처럼 확대합니다. 반면 주택 소유 확대를 정치적 목표로 만들고 대출기준 완화를 정당화한 앞선 정책은 거의 다루지 않습니다.

그 결과 책의 논리는 지나치게 단순해집니다.

우파의 규제 완화가 금융위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피해자들이 다시 우파를 지지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보수주의의 선동에 속았습니다.

그러나 유권자들이 분노한 대상은 자유시장 자체가 아니었을 수 있습니다. 금융회사의 위험은 정부가 떠안으면서 시민의 집과 일자리는 보호하지 못한 "정부와 월가의 결탁"에 분노했을 가능성도 큽니다.

공화당에 대한 비판인가, 혐오인가

이 책을 읽다 보면 공화당과 보수주의에 대한 저자의 강한 반감이 쉽게 눈에 들어옵니다.

보수단체의 조직 활동을 설명할 때는 기회주의와 조작을 강조하고, 티파티 참가자들을 묘사할 때는 “형편없는 플래카드”, “우스꽝스러운 옷”,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들”과 같은 조롱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문제는 단순히 문체가 거칠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감정적 적대감이 원인의 선택과 책임의 배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입니다.

공화당의 실패는 탐욕, 위선, 기회주의와 같은 도덕적 결함으로 설명됩니다. 반면 민주당의 실패는 무능, 소극성, 전략 부족으로 설명됩니다.

즉 다음과 같은 비대칭이 만들어집니다.

공화당이 실패하면 악의와 탐욕의 결과입니다.
민주당이 실패하면 좋은 목적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공화당은 대중을 속이는 세력이고, 민주당은 대중을 설득하지 못한 세력입니다. 공화당의 잘못은 본성의 문제이지만, 민주당의 잘못은 능력의 문제입니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민주당도 잘못된 정책 목표를 세웠거나, 금융위기의 조건을 만드는 데 참여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검토되지 않습니다.

유권자를 존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프랭크는 티파티 참가자들의 말을 직접 듣고, 이 운동이 단순한 인종주의나 문화전쟁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티파티가 작은 정부, 재정책임, 자유시장 같은 경제적 의제를 중심에 놓았다는 사실도 기록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판단 자체를 정당한 정치적 판단으로 인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결국 억만장자와 보수단체에 이용당하거나, 자신의 경제적 이익과 반대되는 선택을 한 사람들로 묘사됩니다. 프랭크는 그들이 민주당 정책보다 공화당 정책을 더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엘리트주의적인 전제가 숨어 있습니다.

올바른 경제적 선택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노동자와 서민은 민주당을 지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선택은 오해나 조작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소득과 계급만으로 투표하지 않습니다. 정부의 권한, 세금, 국가부채, 종교, 공동체, 치안, 자립, 장기적인 경제질서도 고려합니다. 유권자가 민주당의 정책이 자신에게 장기적으로 유리하지 않다고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그 판단이 틀릴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틀렸음을 입증해야지, 처음부터 허위의식으로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이 책의 진짜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그렇다고 이 책의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프랭크는 우파가 패배를 어떻게 저항의 서사로 바꾸는지, 기득권 정당이 어떻게 자신을 풀뿌리 반체제 운동으로 재구성하는지를 매우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또한 민주당이 월가와 관계를 끊지 못한 채 노동계급의 분노를 상실한 과정도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이 책은 미국 우파의 정치적 조직력과 메시지 전략을 이해하는 자료로는 유용합니다.

다만 미국 금융위기의 원인이나 보수주의자의 판단을 균형 있게 설명하는 책으로 읽기에는 한계가 큽니다. 저자는 공화당을 이해해야 할 정치적 경쟁자라기보다, 대중을 속이는 탐욕스러운 세력으로 바라봅니다.

그래서 책의 질문도 미묘하게 달라집니다.

공화당의 주장이 왜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있었는가?

라는 질문이 아니라,

명백히 잘못된 공화당의 주장이 어떻게 사람들을 속이는 데 성공했는가?

라는 질문이 됩니다.

전자는 경험주의적인 질문입니다. 상대의 판단이 형성된 원인부터 살펴봅니다. 후자는 자신의 결론을 먼저 정하고, 상대가 왜 그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는지를 설명합니다.

결론

《실패한 우파가 어떻게 승자가 되었나》는 미국 우파의 정치적 부활을 다룬 흥미로운 책입니다. 특히 우파가 금융위기 이후에도 자신을 기득권이 아니라 저항세력으로 재구성한 과정과, 민주당이 대중의 분노를 흡수하지 못한 과정을 잘 보여줍니다.

그러나 금융위기를 자유시장주의의 실패로 단정하고, 공화당의 책임을 지나치게 확대합니다. 주택 소유 확대라는 정치적 목표, 초당적인 정책 형성, 금융공학의 오판, 정부와 금융업계의 결합은 충분히 다루지 않습니다.

더 큰 문제는 공화당에 대한 도덕적 적대감입니다. 공화당의 잘못은 악의와 탐욕으로 설명하면서 민주당의 잘못은 무능과 소극성으로 설명합니다. 이 비대칭 때문에 책은 분석서라기보다, 이미 유죄라고 판단한 피고인에 대한 논고문에 가까워집니다.

따라서 이 책은 다음과 같이 평가할 수 있습니다.

우파가 어떻게 패배를 승리의 서사로 바꾸었는지는 잘 설명합니다.
그러나 우파가 왜 그런 주장을 했고 유권자들이 왜 그것을 받아들였는지는 공정하게 설명하지 못합니다.

정치비평은 상대의 위선만 폭로한다고 완성되지 않습니다. 자신이 지지하는 진영에도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비평은 사실을 설명하는 작업이 아니라, 정치적 혐오를 정당화하는 또 하나의 서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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