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출은 원래 관계였습니다
대출은 원래 단순한 관계였습니다. 돈을 빌려주는 사람과 돈을 빌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은행은 대출자의 소득, 직업, 신용, 담보를 살펴보고 돈을 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출은 은행의 장부에 남았습니다. 대출자가 돈을 갚지 못하면 은행이 손실을 보았습니다.
이 구조에서는 은행이 신중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대출을 잘못하면 은행 자신이 손실을 떠안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대출자의 상환 능력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평가하거나, 담보 가치를 부풀려 보거나, 위험한 조건으로 대출을 실행하면 그 결과는 결국 은행으로 돌아왔습니다.
물론 과거의 은행이 언제나 도덕적이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금융기관은 늘 이익을 추구했습니다. 때로는 차별도 있었고, 불공정한 대출 관행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대출을 만든 사람이 그 대출의 위험을 오래 보유하는 구조에서는 일정한 책임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기지 시장이 바뀌면서 이 관계가 무너졌습니다. 은행은 더 이상 대출을 끝까지 보유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대출은 만들어진 뒤 다른 곳으로 팔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출들은 모여서 증권이 되었습니다. 주택담보대출은 더 이상 은행과 차입자 사이의 장기 계약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월스트리트가 사고파는 금융상품이 되었습니다.
이 변화는 처음에는 혁신처럼 보였습니다. 위험을 여러 투자자에게 나누어 팔 수 있다면 금융 시스템은 더 안전해질 것처럼 보였습니다. 은행은 더 많은 대출을 공급할 수 있고, 투자자는 새로운 수익 기회를 얻고, 주택 구매자는 더 쉽게 돈을 빌릴 수 있었습니다. 모두에게 좋은 일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위험을 나누는 것과 책임을 흩뜨리는 것은 다릅니다. 위험이 증권화되면서 실제로는 누가 그 위험을 제대로 이해하고 책임지는지 점점 불분명해졌습니다.
모기지는 금융상품이 되었습니다
주택담보대출은 원래 집을 사기 위한 대출입니다. 그러나 증권화 과정에서는 이 대출이 금융상품의 원재료가 됩니다. 수많은 모기지를 한데 모으고, 그것을 다시 여러 등급의 채권으로 나누고, 투자자들에게 판매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상품은 겉으로 보기에는 안정적인 수익을 제공하는 채권처럼 보였습니다.
이 구조는 매력적이었습니다. 대출기관은 대출을 실행한 뒤 그것을 팔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대출기관은 돈을 회수하고 다시 새로운 대출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월스트리트는 대출을 묶고 가공해 증권으로 판매하면서 수수료를 벌었습니다. 신용평가사는 이 상품에 등급을 붙였습니다. 투자자는 높은 등급과 비교적 높은 수익률을 보고 상품을 샀습니다.
각자는 자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대출기관은 대출을 만들었습니다. 투자은행은 상품을 구조화했습니다. 신용평가사는 위험을 평가했습니다. 투자자는 수익을 추구했습니다. 정책 당국은 주택 금융이 확대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주택 구매자는 집을 샀습니다.
그러나 전체 시스템을 놓고 보면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대출을 만든 사람은 장기 위험을 오래 보유하지 않았습니다. 상품을 만든 사람은 그 상품이 나중에 어떻게 될지 끝까지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등급을 붙인 사람은 평가가 틀려도 직접 손실을 보지 않았습니다. 투자자는 상품의 내부 구조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등급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대출자는 자신이 서명한 계약의 장기 위험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것은 책임의 분업이 아니라 책임의 증발이었습니다.
모기지가 금융상품이 된 순간, 대출은 더 이상 한 가계의 상환 능력에 대한 판단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금융 시스템 전체가 수수료와 수익을 얻기 위해 계속 생산해야 하는 원재료가 되었습니다. 좋은 대출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팔 수 있는 대출이 중요해졌습니다.
위험을 나눈 것이 아니라 책임을 흩뜨렸습니다
증권화의 옹호자들은 위험이 분산되기 때문에 시스템이 더 안전해진다고 말했습니다. 한 은행이 모든 위험을 안고 있는 것보다, 여러 투자자가 위험을 나누어 갖는 것이 낫다는 논리였습니다. 이론적으로는 그럴듯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위험이 분산된 것이 아니라, 위험의 위치가 불투명해졌습니다. 누가 어떤 위험을 얼마나 들고 있는지 알기 어려워졌습니다. 복잡한 금융상품은 여러 단계로 재포장되었고, 그 안에 들어 있는 실제 대출의 질은 점점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책임의 유인이 약해졌다는 점입니다. 대출을 만든 사람이 그 대출을 곧바로 팔 수 있다면, 그는 장기 상환 가능성보다 대출 실행량에 더 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투자은행이 상품을 만들어 수수료를 받는 구조라면, 상품의 장기 안전성보다 판매 가능성에 더 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신용평가사가 상품을 평가하면서도 그 평가 대상 회사들로부터 수수료를 받는다면, 엄격한 평가보다 고객 유지에 더 끌릴 수 있습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모든 참여자가 조금씩 책임을 피할 수 있습니다. 대출기관은 “우리는 시장의 수요에 맞춰 대출을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투자은행은 “우리는 위험을 분산시켰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신용평가사는 “당시 정보에 근거해 평가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투자자는 “우리는 등급을 믿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책 당국은 “주택 소유 확대는 좋은 목표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압류 통지서를 받은 사람에게 이런 설명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금융위기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세금으로 구제금융을 부담하게 된 시민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위험은 사라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복잡한 구조 속으로 숨어들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책임은 사라진 것이 아니어야 했지만, 실제로는 누구에게도 온전히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수수료는 즉시 벌고 손실은 나중에 나타났습니다
금융 시스템에서 가장 위험한 구조 중 하나는 수익과 손실의 시간이 어긋나는 구조입니다. 수수료는 지금 벌고, 손실은 나중에 나타나는 구조입니다.
모기지 증권화는 바로 그런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대출 중개인은 대출이 실행될 때 돈을 벌었습니다. 대출기관은 대출을 팔면서 돈을 벌었습니다. 투자은행은 증권을 만들고 판매하면서 수수료를 벌었습니다. 신용평가사는 등급을 매기면서 수수료를 받았습니다. 모든 과정에서 단기 수익이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그 대출이 3년 뒤, 5년 뒤, 10년 뒤에 제대로 상환될지는 별개의 문제였습니다. 장기 손실은 나중에 나타났습니다. 문제는 그때가 되면 이미 많은 참여자들이 수익을 챙긴 뒤라는 점입니다.
이 구조에서는 금융 시스템 전체가 대출의 질보다 대출의 양에 끌릴 수 있습니다. 더 많은 대출이 필요합니다. 더 많은 모기지가 있어야 더 많은 증권을 만들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증권이 있어야 더 많은 수수료가 발생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대출 기준을 낮추려는 압력이 생깁니다.
처음에는 우량 대출이 많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좋은 대출자는 이미 시장에 들어왔습니다. 더 많은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점점 더 위험한 대출자에게도 대출을 해야 합니다. 이때 금융기관은 위험을 제대로 반영해야 합니다. 그러나 상품이 계속 팔리고, 등급이 붙고, 집값이 계속 오르는 동안에는 위험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집값 상승은 모든 문제를 가려줍니다. 대출자가 상환에 어려움을 겪어도 집값이 오르면 재융자하거나 집을 팔 수 있습니다. 투자자는 손실을 보지 않습니다. 금융기관은 더 많은 상품을 만듭니다. 정책 당국은 주택 시장의 활황을 성과로 봅니다. 그러나 이 구조는 집값이 계속 오를 때만 작동합니다.
집값이 멈추는 순간, 숨겨진 위험이 드러납니다. 집값이 떨어지는 순간, 책임 없는 금융의 비용이 현실이 됩니다.
신용평가라는 권위의 문제
모기지 증권화에서 신용평가사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복잡한 금융상품을 투자자가 일일이 분석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투자자들은 신용등급을 참고합니다. 높은 등급이 붙으면 안전한 상품처럼 보입니다. 특히 AAA 같은 등급은 매우 강한 신뢰의 표시로 작동합니다.
문제는 복잡한 상품에 높은 등급이 붙는 순간, 위험이 도덕적 권위를 얻게 된다는 점입니다. 위험한 대출이 섞여 있어도, 그것이 정교한 구조화 과정을 거치고 높은 등급을 받으면 안전한 투자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숫자와 모델, 등급과 보고서가 위험을 가려줍니다.
신용평가는 금융시장에서 일종의 번역 역할을 합니다. 복잡한 위험을 간단한 기호로 바꾸어줍니다. 그러나 이 번역이 틀리면 투자자들은 위험을 과소평가합니다. 더구나 평가기관이 평가 대상 상품을 만든 금융기관과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면, 그 평가는 완전히 중립적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여기서도 같은 문제가 반복됩니다. 누가 책임지는가. 등급이 틀렸을 때 누가 손실을 보는가. 투자자는 등급을 믿었다고 말합니다. 평가사는 당시 모델과 자료에 근거했다고 말합니다. 금융기관은 평가기관이 등급을 부여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잘못된 신뢰가 시스템 전체에 퍼진 것입니다.
위험한 상품은 단순히 위험하다고 팔리지 않습니다. 위험한 상품은 안전해 보일 때 가장 많이 팔립니다. 신용평가는 그 안전해 보이는 외관을 제공했습니다. 이것이 금융위기에서 권위의 문제입니다. 권위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 권위는 안전장치가 아니라 위험 증폭 장치가 됩니다.
월스트리트의 수수료와 시민의 손실
모기지 증권화의 가장 큰 문제는 수익을 얻는 사람과 손실을 떠안는 사람이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월스트리트는 상품을 만들고 판매하면서 막대한 수수료를 벌었습니다. 금융기관의 경영진과 트레이더들은 호황기에 보너스를 받았습니다. 주택 시장이 오르는 동안 모두가 이 시스템을 성공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거품이 꺼지자 손실은 금융기관 내부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압류는 지역 공동체를 무너뜨렸습니다. 빈집은 늘어났고, 집값은 더 떨어졌고, 지방정부의 세수도 줄었습니다. 금융기관의 손실은 신용 경색으로 이어졌고, 기업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고, 실업이 늘어났습니다. 결국 위기는 평범한 시민의 삶으로 번졌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국가가 등장했습니다. 금융 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해 구제금융이 필요하다는 논리가 제기되었습니다. 이때 다시 익숙한 구조가 반복되었습니다. 이익은 민간이 가져갔고, 손실은 국가가 떠안았습니다. 시장이 잘될 때는 자유시장이라고 말했습니다. 시장이 무너질 때는 시스템 리스크라고 말했습니다.
이 구조가 특권 자본주의입니다. 자유시장에서는 이익과 손실이 함께 갑니다. 그러나 특권 자본주의에서는 이익과 손실이 분리됩니다. 이익은 금융 엘리트에게 집중되고, 손실은 납세자와 일반 시민에게 넓게 퍼집니다.
이것은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닙니다. 정치적 문제이고 도덕적 문제입니다. 시장경제의 정당성은 책임에서 나옵니다. 책임이 사라지면 시장은 신뢰를 잃습니다. 사람들이 자본주의를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실패한 사람이 실패의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권력과 가까운 사람이 실패해도 보호받는 구조를 보기 때문입니다.
구제금융은 마지막 장면이 아니라 첫 장면의 결과였습니다
금융위기에서 구제금융은 대개 마지막 장면처럼 보입니다. 위기가 터지고, 시장이 얼어붙고, 정부가 개입합니다. 그러나 구제금융은 갑자기 등장한 예외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 이전에 형성된 유인 구조의 결과입니다.
대형 금융기관이 자신들이 충분히 크고, 충분히 복잡하고, 충분히 연결되어 있다면 결국 정부가 개입할 것이라고 믿게 되면, 그 믿음은 행동을 바꿉니다. 위험을 더 많이 감수해도 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손실이 너무 커지면 그것은 자신들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가 된다고 믿게 됩니다.
이런 믿음은 금융기관 내부의 의사결정을 바꿉니다. 위험 관리 부서는 약해지고, 수익 부서는 강해집니다. 장기 안정성보다 단기 수익이 우선됩니다. 복잡한 상품을 만드는 능력이 신중한 대출 심사보다 더 높게 평가됩니다. 시장의 경고는 무시되고, 모델의 자신감은 커집니다.
구제금융이 반복되면 시장은 잘못된 신호를 받습니다. “위험을 조심하라”는 신호가 아니라 “충분히 크면 구제받을 수 있다”는 신호를 받습니다. 그러면 금융 시스템은 더 안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위험해집니다.
따라서 구제금융을 비판할 때는 단순히 위기 순간의 정부 개입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개입이 사전에 어떤 기대를 만들었는가입니다. 시장 참여자들이 손실을 두려워하지 않게 만드는 구제금융은 다음 위기의 씨앗이 됩니다.
복잡성은 책임 회피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현대 금융은 매우 복잡합니다. 복잡성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복잡한 금융상품도 제대로 설계되고, 제대로 이해되고, 제대로 책임진다면 유용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복잡성이 책임을 흐리는 데 사용될 때입니다.
복잡한 상품은 일반 투자자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정책 당국도 전체 위험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심지어 금융기관 내부에서도 일부 전문가만 구조를 이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위험은 통제되는 것이 아니라 은폐될 수 있습니다.
복잡성은 권위를 만듭니다. 일반인은 이해하지 못하니 전문가를 믿어야 합니다. 정치인은 시장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금융 엘리트의 설명을 받아들입니다. 신용평가사의 등급, 투자은행의 모델, 중앙은행의 발언, 재무부 관료의 경고가 결합하면, 복잡한 시스템은 비판하기 어려운 권위를 갖게 됩니다.
그러나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 안전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해하기 어려운 구조일수록 더 엄격한 책임이 필요합니다. 위험을 만든 사람이 그 위험을 설명해야 합니다. 상품을 판 사람이 그 위험을 일부 보유해야 합니다. 등급을 매긴 사람이 평가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정책 당국은 단기 성과보다 장기 위험을 보아야 합니다.
복잡성은 면책 사유가 될 수 없습니다. “너무 복잡해서 몰랐다”는 말은 금융 엘리트에게 허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복잡한 상품으로 돈을 벌었다면, 그 복잡성이 낳은 위험에 대해서도 책임져야 합니다.
위험은 아래로 흘러갑니다
금융위기의 구조를 보면 위험은 대개 위에서 만들어지고 아래로 흘러갑니다. 정책 당국은 목표를 세웁니다. 금융기관은 상품을 만듭니다. 월스트리트는 수익 구조를 설계합니다. 신용평가사는 권위를 부여합니다. 투자자는 수익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문제가 터졌을 때 가장 먼저 무너지는 사람은 대개 가장 취약한 사람들입니다.
집을 잃는 사람, 일자리를 잃는 사람, 신용이 무너지는 사람, 지역 공동체가 붕괴되는 것을 보는 사람들은 금융상품을 설계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복잡한 파생상품을 만든 것도 아니고, 위험 모델을 승인한 것도 아니며, 수수료 구조를 설계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위기의 비용은 그들에게 도달합니다.
이것이 선의의 정책과 금융공학이 결합할 때 생기는 가장 위험한 결과입니다. 명분은 약자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시스템은 약자를 위험의 최전선에 세웠습니다. 주택 소유 확대라는 선한 목표, 금융 포용이라는 도덕적 언어, 증권화라는 금융혁신, 구제금융이라는 시스템 보호 논리가 결합하면서 책임은 점점 위로 사라지고 위험은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정책의 선의가 약자를 보호하지 못했습니다. 금융의 혁신이 위험을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구제금융의 안전망이 시장을 건강하게 만들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각 요소가 서로 결합하면서 위험한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책임 없는 금융은 시장이 아닙니다
자유시장은 책임을 전제로 합니다. 투자자는 투자 판단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은행은 대출 판단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신용평가사는 평가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금융기관 경영진은 위험 관리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정책 당국은 자신들이 만든 유인 구조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책임이 사라진 금융은 시장이 아닙니다. 그것은 수익 추구와 국가 보증이 결합한 특권 구조입니다. 평상시에는 시장이라고 말하지만, 위기 때는 국가를 부릅니다. 수익이 날 때는 혁신이라고 말하지만, 손실이 날 때는 시스템 리스크라고 말합니다. 이 구조가 반복되면 시장경제의 도덕적 기반은 무너집니다.
위험은 증권화될 수 있습니다. 상품은 쪼개지고, 재포장되고, 전 세계에 팔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책임까지 증권화할 수는 없습니다. 책임은 누군가에게 남아 있어야 합니다. 대출을 만든 사람, 상품을 설계한 사람, 등급을 부여한 사람, 정책을 만든 사람, 위험을 승인한 사람에게 책임이 남아 있어야 합니다.
그 책임이 사라질 때, 금융은 경제를 돕는 도구가 아니라 사회 전체를 위험하게 만드는 장치가 됩니다.
2008년 금융위기의 교훈은 단순히 탐욕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탐욕은 언제나 있었습니다. 더 중요한 교훈은 책임 없는 탐욕이 제도화될 때 얼마나 위험해지는가입니다. 대출은 증권화되었고, 위험은 포장되었고, 등급은 권위를 부여했으며, 수수료는 먼저 지급되었습니다. 그러나 책임은 점점 희미해졌습니다.
그 결과는 분명했습니다. 위험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단지 보이지 않게 되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던 위험이 현실로 돌아왔을 때, 그 비용은 금융 시스템 바깥의 사람들에게까지 퍼졌습니다.
위험은 증권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책임은 사라졌습니다. 이것이 위기의 핵심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