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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 고난은 사상을 증명하는가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20년의 수감 생활에서 가족에게 보낸 편지를 묶은 책입니다. 우리는 이 옥중서간을 인간적 성찰을 넘어 하나의 검증된 사상처럼 읽었습니다. 고난과 인품이 사상에 부여한 권위, 관계론이 개인의 자유를 충분히 설명하는지 살펴봅니다.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한국 사회에서 좀처럼 비판하기 어려운 책입니다.

이 책을 비판하면 먼저 저자의 20년 수감 생활을 떠올리게 됩니다. 권위주의 시대의 감옥에서 청춘을 보낸 사람에게 너무 가혹한 평가가 아니냐는 반문이 뒤따릅니다. 정갈한 문장과 따뜻한 시선, 단정한 서체도 독자의 판단에 영향을 줍니다. 책을 읽고 나면 하나의 주장보다 한 사람의 인품을 만난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신영복은 어느 순간 저자가 아니라 ‘선생’이 되었습니다. 그의 문장은 논쟁의 대상이기보다 삶의 지침으로 인용됐고, 그의 글씨는 책을 넘어 대학과 기업, 시민단체와 정치권의 상징이 됐습니다.

그러나 고난받은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과 그 사람의 사상을 검증하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고난은 증언에 무게를 더할 수 있습니다. 사상의 진실까지 증명하지는 않습니다.

이 책은 철학서가 아니라 옥중서간입니다

신영복은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사형을 선고받았고, 이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약 20년을 복역했습니다. 1988년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한 직후, 가족에게 보낸 편지들을 묶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출간됐습니다.

이 출발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책에 실린 글은 처음부터 대중을 상대로 완성한 철학 논문이 아닙니다. 부모와 형수, 동생과 조카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더구나 교도소의 검열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정치적 견해를 자유롭게 논증하거나 자신의 사건을 상세하게 해명할 수 있는 글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이 책에서 체계적인 정치철학을 찾는 것은 잘못입니다. 반대로 정치 이야기가 적다는 이유로 신영복이 이념을 초월했다고 결론 내리는 것도 잘못입니다. 편지에 무엇이 적혀 있는지를 읽어야 하지만, 적혀 있지 않은 것을 곧바로 사상적 변화의 증거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가장 좋은 부분은 이론이 아니라 관찰입니다. 계절이 바뀌는 감방, 가족에게 미안해하는 마음, 함께 수감된 사람들의 말과 습관, 오랜 단절 속에서 달라지는 시간감각이 짧은 문장에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귀중한 기록입니다. 그러나 귀중한 기록이라는 사실과 그 기록에서 일반적인 사회철학을 도출할 수 있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편지보다 고난을 먼저 읽었습니다

옥중서간은 특별한 도덕적 권위를 얻기 쉽습니다. 자유를 빼앗긴 사람이 쓴 문장은 같은 내용이라도 더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오랜 고통 속에서 증오보다 절제된 언어를 선택했다면 그 인상은 더욱 강해집니다.

신영복의 문장이 존중받은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감옥을 영웅담으로 꾸미지 않았고, 자신을 비극의 주인공으로 내세우지도 않았습니다. 타인을 함부로 심판하지 않는 태도와 가족을 걱정하는 마음은 실제로 아름답습니다.

문제는 독자가 그 아름다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절제된 문장을 인품의 증거로 읽고, 인품을 사상의 증거로 바꾸었습니다. 긴 수감 생활은 그의 말이 옳다는 근거처럼 작동했습니다. 신영복의 주장에 반대하는 일은 어느새 한 인간의 고난을 모욕하는 일처럼 느껴지게 됐습니다.

하지만 훌륭한 태도에서 올바른 이론이 자동으로 나오지는 않습니다.

가난을 겪은 사람이 경제학에서 항상 옳은 것은 아닙니다. 전쟁을 겪은 사람이 국제정치의 원리를 모두 아는 것도 아닙니다. 감옥을 견딘 사람이 인간과 사회의 본질을 최종적으로 발견했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경험은 사유의 재료입니다. 결론을 보증하는 자격증이 아닙니다.

정치적 이력을 지우는 것도, 그것만 남기는 것도 잘못입니다

신영복을 둘러싼 논쟁은 흔히 두 극단으로 갈립니다.

한쪽은 통일혁명당 사건을 권위주의 정권이 만든 조작 사건으로 규정하고 신영복을 오직 피해자로 기억합니다. 다른 쪽은 당시의 판결과 조직 경력을 근거로 그의 모든 글을 북한 추종 사상의 위장으로 해석합니다.

두 독법 모두 한 사람을 읽기보다 판결부터 내립니다.

권위주의 체제의 수사와 군사재판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동시에 국가권력이 부당했다는 사실만으로 그 시대 급진주의자들의 이념과 정치적 선택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조직에 얼마나 관여했는지, 수사와 재판은 적법했는지, 이후 생각은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각각 자료를 통해 판단해야 합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이 질문에 충분히 답하는 책이 아닙니다. 가족에게 보낸 검열 편지에 그런 답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입니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는 책의 침묵을 화해와 초월의 증거로 읽었습니다. 신영복의 정치적 출발점과 훗날의 관계론 사이에 무엇이 이어지고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묻기보다, ‘20년 감옥에서 인간을 배운 사람’이라는 서사로 모든 간격을 메웠습니다.

그 결과 신영복을 비판하는 사람은 그의 과거만 말하고, 존경하는 사람은 그의 과거를 말하지 않는 이상한 분업이 만들어졌습니다.

필요한 것은 유죄와 성인 사이의 선택이 아닙니다. 그의 고난을 인정하면서 그의 사상을 검토하는 일입니다.

감옥은 관계의 따뜻함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신영복의 옥중 글 가운데 널리 알려진 대목은 여름 감옥의 더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겨울에는 옆 사람의 체온이 온기로 느껴지지만, 여름에는 같은 사람이 뜨거운 열덩어리처럼 느껴진다는 관찰입니다.

이 장면은 흔히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운 이야기로 기억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관계의 양면성을 보여줍니다.

타인은 나를 살리는 온기일 수 있습니다. 동시에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부담일 수 있습니다. 관계는 연대이면서 간섭이고, 돌봄이면서 구속이며, 친밀함이면서 탈출할 수 없는 밀착이기도 합니다.

감옥은 관계가 부족한 공간이 아닙니다. 오히려 관계를 선택할 자유가 없는 공간입니다. 누구와 방을 쓸지, 언제 혼자 있을지, 어떤 관계를 끝낼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감옥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인간이 혼자 살 수 없다는 사실만이 아닙니다. 좋은 관계에는 거리와 선택권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포함되어야 합니다.

신영복의 독자들은 전자를 사랑했지만 후자는 충분히 묻지 않았습니다.

옥중의 인간학은 출소 후 관계론이 되었습니다

신영복은 출소 후 동양고전을 강의하며 서구 근대의 구성 원리를 ‘존재론’, 동양의 원리를 ‘관계론’으로 대비했습니다. 존재론은 개별적 존재에 실체성을 부여하고 자신을 강화하게 만들며, 관계론은 인간을 다른 존재들과 맺는 관계의 총체로 파악한다는 설명입니다.

이 대비는 직관적으로 매력적입니다.

경쟁하는 개인, 성장하는 기업, 힘을 키우는 국가가 서로 닮아 보입니다. 반대로 가족과 이웃, 자연과 공동체의 관계를 회복하자는 말은 자본주의의 소외에 대한 따뜻한 대안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이 구도는 너무 많은 것을 두 단어에 넣습니다.

서구의 존재론이 곧 고립된 개인주의나 자본의 자기증식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서구 철학에도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보는 오랜 전통이 있고, 근대의 개인 개념은 경쟁만이 아니라 양심과 인권, 신분질서에서 벗어날 자유의 토대가 됐습니다.

동양의 관계 중심 사회도 언제나 따뜻하지 않았습니다. 가족관계는 돌봄을 제공했지만 가부장의 지배를 정당화했고, 군신관계는 질서를 만들었지만 복종을 요구했습니다. 혈연·지연·학연은 사람을 보호하는 울타리인 동시에 울타리 밖의 사람을 배제하는 장치였습니다.

존재와 관계는 서로 대체할 선택지가 아닙니다. 관계를 맺는 주체가 있으려면 먼저 침해할 수 없는 개인이 있어야 합니다. 반대로 개인의 자유도 다른 사람들과 만든 제도와 규칙 없이는 지킬 수 없습니다.

개인 없는 관계는 복종이 되기 쉽고, 관계 없는 개인은 고립되기 쉽습니다.

신영복의 이분법은 후자를 날카롭게 보았지만 전자를 충분히 보지 못했습니다.

모든 관계가 선한 것은 아닙니다

‘더불어 산다’는 말에 반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문제는 누구와, 어떤 규칙 아래, 떠날 자유를 가진 채 더불어 사느냐입니다.

폭력적인 가족도 관계입니다. 개인의 양심을 조직의 명령에 종속시키는 정당도 관계입니다. 이탈자를 배신자로 취급하는 민족과 계급도 강한 관계로 묶여 있습니다. 전체주의는 사람들을 원자화하기도 하지만, 당과 지도자와 역사적 사명이라는 압도적인 관계 속에 개인을 가두기도 합니다.

따라서 관계의 존재만으로 인간적인 사회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좋은 사회는 관계를 권하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어떤 관계에서도 개인이 말할 수 있고, 거절할 수 있고, 떠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연대할 자유와 함께 연대하지 않을 자유도 보호해야 합니다.

신영복의 글에는 타인에 대한 배려와 낮은 곳을 향한 시선이 풍부합니다. 그러나 그 윤리를 자유사회의 제도로 옮기려면 추가적인 질문이 필요합니다.

소수 의견은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공동체의 목표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권리를 갖는가. 선한 관계를 누가 정의하는가. 관계의 이름으로 개인에게 희생을 요구할 때 어디에서 멈출 것인가.

따뜻함은 중요한 덕목이지만 권력의 한계를 정하는 원리는 아닙니다.

정갈한 서체가 사상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신영복을 향한 존경은 내용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그의 서체는 서로 기대어 선 듯한 획과 소박한 인상을 지녔고, ‘더불어 숲’과 ‘처음처럼’ 같은 짧은 문구는 글씨와 결합해 널리 확산됐습니다. 사상은 논문보다 현판과 표지, 술병과 기관의 로고를 통해 일상에 들어왔습니다.

이것은 신영복의 뛰어난 대중적 능력입니다. 어려운 정치철학을 생활의 언어와 이미지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성공 때문에 비평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짧은 잠언은 전제를 생략합니다. 아름다운 글씨는 문장을 주장이라기보다 인품의 표현으로 보이게 합니다. ‘신영복 선생’이라는 호칭은 독자를 논쟁 상대가 아니라 제자의 자리에 놓습니다.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때 우리는 논리를 반박하기보다 예의를 어기는 듯한 불편함을 먼저 느낍니다.

서체가 틀렸다는 뜻이 아닙니다. 미학이 논증의 자리를 대신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따뜻한 글씨로 쓴 공동체도 개인을 억압할 수 있습니다.

신영복이 남긴 것은 무엇인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버릴 이유는 없습니다.

이 책은 국가가 한 인간의 시간을 얼마나 오래 빼앗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동시에 자유를 빼앗긴 사람이 증오만으로 자신을 채우지 않기 위해 어떤 언어를 선택했는지를 보여줍니다. 평범한 사람의 말에서 배움을 얻고, 가족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 하며, 작은 계절의 변화를 붙잡는 태도는 지금도 감동을 줍니다.

다만 감동이 이론의 검증을 대신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옥중편지의 인간적 품격, 통일혁명당 사건에 대한 역사적 판단, 출소 후 관계론의 철학적 타당성은 서로 다른 문제입니다. 한 영역에서 느낀 존경을 다른 영역의 정답으로 옮겨서는 안 됩니다.

신영복의 가장 큰 공헌은 관계의 중요성을 처음 발견한 데 있지 않습니다. 경쟁과 성장의 언어가 지배하던 사회에서 타인을 수단으로만 보지 않는 문장을 꾸준히 건넨 데 있습니다.

그의 가장 큰 한계는 관계를 개인과 자유를 보완하는 원리로 정교하게 만들기보다, 서구의 존재론과 자본주의에 맞서는 문명적 대안으로 너무 크게 확장했다는 데 있습니다.

관계는 인간을 만듭니다. 그러나 어떤 관계는 인간을 파괴합니다.

그 둘을 구분하는 기준은 다시 개인의 존엄과 자유로 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잘못 읽었는가

우리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너무 낮게 읽은 것이 아닙니다. 너무 높게 읽었습니다.

가족에게 보낸 편지를 완성된 철학으로 읽었고, 고난을 사상의 보증서로 읽었으며, 절제된 인품을 정치적 판단의 정확성으로 읽었습니다. 관계의 소중함에 감동한 나머지 관계에서 벗어날 자유를 묻지 않았습니다.

신영복을 존중하려면 그를 성인의 자리에 두어서는 안 됩니다.

그의 수감 생활이 부당했는지 묻고, 그의 문장이 아름다운지 느끼며, 그의 정치적 선택이 옳았는지 따지고, 그의 관계론이 자유로운 개인을 충분히 보호하는지 검토해야 합니다. 이 질문들은 서로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고난은 사람을 깊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이 언제나 사람을 옳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참고문헌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돌베개, 2018.

신영복, 《강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 돌베개, 2004.

신영복, 《담론: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돌베개, 2015.

신영복 아카이브, 「약력」.

신영복 아카이브, 「나의 동양고전 독법 강의 3: 화두와 ‘오래된 미래’」.

교수신문, 「탈이념 시대의 진보신화―신영복」, 2006.

김언호, 「감옥에서 일군 신영복의 경이로운 사색」, 《경향신문》, 2020.

Norbert Elias, The Society of Individuals, Basil Blackwell, 1991.

Isaiah Berlin, “Two Concepts of Liberty,” 1958.

Amartya Sen, Identity and Violence: The Illusion of Destiny, W. W. Norton,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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