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니 샌더스와 벌링턴 워터프런트의 현실 정치
"버니 샌더스"는 미국 정치사에서 가장 성공한 사회주의 정치인으로 꼽힙니다. 그는 일생 동안 월스트리트, 억만장자, 대기업, 군산복합체를 매섭게 비판하며 자신만의 독보적인 정치적 브랜드를 구축했습니다. 그의 언어는 언제나 선명하고 단순했습니다. 한쪽에는 늘 억압받는 평범한 시민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탐욕스러운 부유층과 초국적 기업 권력이 도사리고 있다는 구도였습니다.
이러한 대립 구도는 선거 선전전에서 대단히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복잡한 현실의 이해관계를 선악이 뚜렷한 도덕극으로 단순화하기 때문입니다. 시민은 무고한 피해자가 되고 부자는 악독한 가해자가 되며, 정치가 자신은 그 틈에서 정의를 실현하는 구원자로 격상됩니다.
그러나 진짜 시험대는 선거에서 승리해 권력을 잡은 직후부터 시작됩니다. 야당 시절이나 선거운동 기간에는 부유층을 얼마든지 악마화할 수 있고, 개발업자를 탐욕의 화신으로 묘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행정 책임자인 시장이 되고 나면 도시의 열악한 재정, 세수 확보, 일자리 창출, 지역 개발, 그리고 경제 활성화라는 무거운 실무 과제를 결코 외면할 수 없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버니 샌더스의 벌링턴 시장 시절 행적은 현실 정치의 실상을 파헤치는 아주 훌륭한 연구 사례가 됩니다.
"벌링턴은 판매용이 아니다"라는 구호
샌더스는 1981년 버몬트주 벌링턴 시장 선거에 무소속 사회주의자로 출마했습니다. 당시 그는 벌링턴의 전통적인 부유한 개발업자 가문인 포멀로(Pomerleau) 가문을 정조준하여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포멀로 측이 추진하던 벌링턴 워터프런트(Waterfront) 개발 계획이 오직 자산가들만을 위한 호화 콘도와 상업 지구로 채워질 것이라며 맹공을 퍼부었습니다. 당시 그의 핵심 슬로건은 "벌링턴은 판매용이 아니다(Burlington is not for sale)"였습니다.
이 직관적인 구호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위협을 느끼던 벌링턴 유권자들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저소득층 주민들은 자신들이 도심 외곽으로 밀려나고, 그 자리에 고가의 콘도미니엄과 대기업 사무실,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높은 임대료가 들어서는 것에 공포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샌더스는 이 대중적 분노와 불안을 영리하게 수렴하여 부동산 개발 세력에 맞서는 고독한 시민의 투사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권력의 자리에 오른 후 샌더스 시장의 행보는 선거용 구호와 사뭇 달랐습니다. 그는 개발 자체를 원천 봉쇄하는 환경 근본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개발 프로세스를 시 행정부의 강력한 통제하에 두고자 했습니다. 이는 대단히 중요한 차이입니다. 선거 중에는 개발업자들을 악마화했으나, 집권 후에는 개발 자체를 중단시키는 대신 시 정부가 주도하고 관리하는 형태의 개발로 노선을 전환한 것입니다.
샌더스는 집권 직후 시장 직속으로 '커뮤니티·경제 개발 사무소(CEDO)'를 신설했습니다. 이 기구는 벌링턴 내에서 진행되는 모든 개발 사업 중 어떤 프로젝트에 인허가와 시 재정을 지원하고 어떤 사업을 철저히 배제할지 결정하는 무소속 시장의 강력한 권력 기관으로 기능했습니다. 사회주의 시장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도시 안에서 자본의 승자와 패자를 선택할 수 있는 배타적 권한을 행정 관료 체제 내부로 귀속시킨 것입니다.
이것이 날것 그대로의 현실 정치입니다. 반자본주의를 표방하는 정치가라 할지라도 자본 자체를 소멸시키지는 못합니다. 도시 운영에 자본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때는 손을 잡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그 자본의 통제권이 선거로 선출된 자신과 행정 기구 밑에 철저히 종속되기를 원할 뿐입니다.
단어를 세탁하는 정치가의 언어학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다름 아닌 포멀로 가문과의 관계 변화였습니다. 샌더스는 선거 기간 내내 포멀로 가문을 부패한 토착 자본의 상징으로 두들겨 팼습니다. 하지만 당선 이후 그는 포멀로 가문과 비밀리에, 때로는 공개적으로 협상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실증 기록들에 따르면 이들의 관계는 일시적인 정략적 타협을 넘어, 시의 대형 프로젝트들을 함께 굴리는 수십 년짜리 실리적 파트너십에 가까웠습니다.
더욱 기만적인 부분은 이 과정에서 나타난 '언어의 세탁'이었습니다. 샌더스 행정부가 궁극적으로 지지하고 추진했던 신규 워터프런트 개발 계획은, 정작 그가 선거 때 그토록 비난해 마지않았던 기존의 민간 개발 계획 구조와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대기업 호텔이 들어서고 대형 상업 시설이 입점하는 구조는 동일했습니다.
그러나 샌더스는 이 프로젝트를 대중에게 관철시키기 위해 단어들을 교묘하게 교체하기 시작했습니다. 부유층을 위한 콘도미니엄은 대중에게 친숙한 “이웃 주택(Neighborhood Housing)”이라는 완곡어법으로 불렸고, 대기업 프랜차이즈 호텔은 정겨운 “호숫가 여관(Lakeside Inn)”이라는 단어로 세탁되었습니다.
정치는 종종 사물의 본질을 놔둔 채 이름표를 바꾸는 기술로 전락하곤 합니다. 똑같은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라도 적대 진영이 추진하면 '자본의 탐욕이 빚어낸 젠트리피케이션의 주범'이 되고, 자신이 추진하면 '공동체 재생을 위한 친환경 주거 단지'로 포장됩니다. 적들이 유치하는 호텔은 '상업주의의 침탈'이지만, 진보 진영 시장이 결재한 호텔은 '시민을 위한 쉼터'가 되는 식입니다.
사회주의 정치의 해묵은 역설
샌더스가 시장으로서 도시를 개발했다는 사실 자체가 도덕적 흠결은 아닙니다. 도시는 당연히 성장해야 하고, 방치된 낙후 지역은 정비되어야 하며,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세수 확보와 청년 일자리는 필수적입니다. 진짜 비판받아야 할 지점은 선거 과정에서는 개발 행위 자체를 도덕적 악으로 단정 짓다가, 집권 후에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개발을 단지 자신들이 주도한다는 이유로 온갖 형용사를 동원해 미화했다는 이중성에 있습니다.
이것은 한 정치가의 위선적 성정을 넘어 이념 정치가 마주하는 보편적 한계입니다. 이념은 권력을 잡기 전 야생의 상태에 있을 때 가장 순수하고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행정 권력을 넘겨받는 순간, 정치가가 다루어야 하는 대상은 추상적인 정의가 아니라 구체적인 예산 편성과 토지 수용, 법인세율, 그리고 일자리를 쥔 민간 기업들입니다. 그 엄혹한 현실 앞에서 순수했던 슬로건은 필연적으로 시장과의 사적인 거래로 타협하게 됩니다.
여기서 사회주의 정치의 구조적 한계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사회주의자들은 시장의 자율적 조율 능력을 깊이 불신합니다. 하지만 시장을 억누르면 그 자리는 공백으로 남지 않고, 비대해진 관료 권력이 대신 들어차게 됩니다. 자본가들이 시장 경쟁을 통해 결정하던 자원 배분을 이제는 소수의 행정 관료와 정치 패거리들이 밀실에서 결정하게 됩니다. 결국 탐욕의 주체만 시장에서 국가로 이동했을 뿐, 권력의 부패와 비효율이라는 본질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자리만 바꿀 뿐입니다.
샌더스의 벌링턴 사례는 이념 정치가 권력을 잡았을 때 노출하는 위선을 보여주는 교과서적 사례입니다. 선거 때는 부자를 악마로 규정해 대중을 선동하고, 집권 후에는 밀실에서 그 악마와 계약서를 씁니다. 선거 때는 개발을 자본의 횡포로 공격하고, 집권 후에는 행정 명령을 동원해 친정부 개발업자들에게 특혜를 줍니다. 선거 때는 평범한 시민의 직접 참여를 소리 높여 외치지만, 집권 후에는 관료 조직을 장악해 통제력을 극대화합니다.
결론: 자본을 통제하려 한 자의 모순
이를 단순히 샌더스의 변절로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가 비현실적인 구호에서 탈피해 실제 도시 행정가로 성장하는 법을 배웠다고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개발업자와 단 한마디도 섞지 않으려는 순근본주의자 시장은 단 한 주의 임기도 채우지 못하고 도시를 파산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유권자들에게 처음부터 솔직했어야 합니다. 개발 자체를 악으로 규정할 것이 아니라, 도시 개발에서 발생하는 초과 이익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분배할 것인지, 도시가 민간 자본과 어떻게 건강한 긴장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지 차분히 설득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대중 정치의 세계에서 그런 건조하고 복잡한 설명은 인기가 없습니다. 대중에게는 구체적인 정책 분석보다, 손쉽게 증오하고 공격할 수 있는 뚜렷한 가상의 적이 훨씬 더 잘 팔리기 때문입니다.
샌더스의 정치는 평생 동안 자신이 정밀하게 타격할 적들을 찾아 헤맸습니다. 억만장자, 제약회사, 군산복합체는 그의 영원한 땔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시장으로서 지배했던 벌링턴의 현실에서, 그 적들은 물리쳐야 할 괴물이 아니라 함께 세수를 고민해야 할 협상 파트너이자 동맹이었습니다. 단지 그 동맹 관계를 숨기기 위해 언어의 마술이 필요했을 뿐입니다.
진보 진영이 흔히 빠지는 도덕적 우월감의 함정은 바로 이 지점에 있습니다. 자신들이 행하는 타협은 '어쩔 수 없는 현실적 양보이자 공동체 재생'이며, 라이벌이 행하는 타협은 '기득권과의 더러운 야합이자 밀실 야합'이라고 주장하는 이중잣대입니다. 샌더스의 벌링턴 워터프런트 개발사는 정치가 어떻게 단어를 세탁해 현실의 모순을 덮는지 폭로하는 생생한 기록입니다.
정치란 세상을 개혁하는 숭고한 도구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감추고 싶은 현실의 치부에 새로운 이름을 입혀 대중의 눈을 가리는 정교한 분장술이기도 합니다.
참고 자료
- The Nation, “How Bernie Sanders Saved Burlington’s Waterfront,” 2015.
- Seven Days, “Burlington’s Waterfront: How Bernie Sanders’ Legacy Shaped the Queen City,” 2015.
- VTDigger, “The Pomerleau Connection: Bernie Sanders and Burlington’s Republican Mogul,” 2016.
- City of Burlington, “Community and Economic Development Office (CEDO) History,”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