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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은 왜 문명을 다시 영토전쟁으로 돌리는가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노동자의 삶과 문명화된 신뢰를 어떻게 다시 진영 간의 영토 분쟁으로 되돌리는지 브라이언 헤어의 진화인류학 관점과 함께 비판적으로 분석합니다.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은 왜 문명을 다시 영토전쟁으로 돌리는가
문화적 헤게모니와 제도적 신뢰, 그리고 영토전쟁으로의 회귀에 대한 비판적 통찰

안토니오 그람시는 서구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려 했다.

마르크스주의의 예상대로라면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노동자는 더 가난해지고, 계급 갈등은 격화되며, 산업이 가장 발달한 국가에서 먼저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야 했다. 그러나 실제 역사는 반대로 흘렀다. 공산주의 혁명은 산업화가 앞선 영국이나 미국이 아니라 러시아와 중국처럼 상대적으로 가난하고 정치제도가 취약한 국가에서 성공했다.

선진국의 노동자들은 혁명에 나서지 않았다. 이들은 임금 인상과 노동권, 복지 확대를 요구했지만 자본주의 체제 전체를 파괴하려 하지는 않았다.

그람시는 이를 마르크스주의의 실패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자본주의가 단순히 군대와 경찰의 강제력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학교, 언론, 종교, 문학, 가족과 일상적 상식을 통해 노동자의 동의를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것이 그람시의 유명한 ‘헤게모니’ 개념이다.

그람시에게 현대국가는 정부와 강제기관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국가는 시민사회 속에서 이루어지는 지적·도덕적 지도까지 포함하는 것이었다. 한 계급은 물리적 힘만으로 지배하지 않고, 자신의 세계관을 사회 전체의 상식으로 만들어 지배한다.

이 통찰에는 분명 의미가 있다. 어떤 사회도 경찰력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법과 제도가 어느 정도 정당하다고 믿어야 협력한다. 교육과 문화도 인간의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준다.

그러나 그람시가 여기서 내린 결론은 자유로운 다원주의가 아니었다. 문화권력을 여러 집단 사이에 분산시키자는 것도 아니었다. 기존의 부르주아 헤게모니를 노동계급과 공산주의 지식인이 주도하는 새로운 헤게모니로 교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람시는 헤게모니를 없애려 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세력이 헤게모니를 차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동자는 정말 속아서 혁명하지 않았을까

그람시 이론의 가장 큰 문제는 노동자가 혁명하지 않은 이유를 노동자의 실제 경험에서 찾지 않았다는 데 있다.

선진국 노동자는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절대적 빈곤으로부터 점차 벗어났다. 노동시간은 줄어들고 임금은 상승했으며, 주거·보건·교육·사회보장이 개선되었다. 선거권과 노동조합, 사회보험도 확대되었다.

부자와 노동자의 상대적 격차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상대적 격차와 절대적 결핍은 같은 문제가 아니다.

노동자는 자본가보다 훨씬 적은 재산을 가졌더라도 다음과 같은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굶주리지 않고, 자녀를 학교에 보내며, 질병과 실업에 대해 어느 정도 보호받고, 작은 재산이나 연금을 축적하고, 다음 세대가 자신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단계에서 노동자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쇠사슬밖에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잃을 것이 생긴 사람이었다.

집과 직장, 가족, 저축, 연금, 교육 기회, 소비생활, 지역공동체가 생겼다. 혁명은 모든 것을 얻는 길이 아니라 이미 확보한 것을 한꺼번에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선택이 되었다.

그람시는 이러한 변화를 자본주의 사회의 실제 성취로 인정하지 않았다. 노동자가 기존 질서를 지지하면 그것을 합리적 판단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부르주아 헤게모니에 포획된 결과로 해석했다.

노동자가 공산주의를 지지하면 계급의식이 생긴 것이다. 노동자가 공산주의를 거부하면 허위의식에 빠진 것이다.

이런 이론은 현실에 의해 반증될 수 없다. 대중이 이론을 받아들이면 이론이 옳은 것이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대중이 잘못된 것이다.

그람시는 노동자의 판단을 존중한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노동자가 그람시의 이론에 동의할 때만 올바른 노동자로 인정했다.


헤게모니는 문화적 영토의 개념이다

그람시의 사고를 더 근본적으로 살펴보면, 사회를 여러 집단이 차지해야 할 영토로 보는 관점이 드러난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기관이기 전에 어느 계급의 가치관을 전달하는가가 중요하다. 언론은 사실을 보도하는 기관이기 전에 어느 집단의 세계관을 정상으로 만드는지가 중요하다. 문학과 예술도 인간 경험을 표현하는 활동이기 전에 어느 계급의 헤게모니에 기여하는가가 중요해진다.

이 관점에서 사회기관은 공동의 기능을 수행하는 장소가 아니라 누군가가 차지하고 통제해야 할 문화적 영토가 된다.

질문도 달라진다.

학교가 제대로 가르치는가가 아니라 누가 학교를 지배하는가를 묻는다.

언론이 사실을 정확히 전달하는가가 아니라 어느 진영의 서사를 확대하는가를 묻는다.

법원이 일관된 절차에 따라 판결하는가가 아니라 어느 계급의 질서를 보호하는가를 묻는다.

제도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동하는가보다 그 제도의 주인이 누구인가가 중요해진다.

그람시가 기존의 헤게모니를 비판하면서 새로운 헤게모니를 요구한 것은 영토지배의 원리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단지 지배자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브라이언 헤어와 ‘가장 친화적인 자의 생존’

진화인류학자 브라이언 헤어는 인간의 성공을 힘이나 공격성만으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헤어의 자기 길들이기 가설에 따르면 현생인류의 진화에서는 반응적 공격성이 상대적으로 억제되고, 타인과 협력하며 의사소통하는 능력이 선택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인간은 낯선 사람과도 공동의 목표를 만들고, 지식을 공유하며, 대규모 협력망을 구축함으로써 다른 인류 집단보다 유리해졌다는 것이다.

헤어가 개 연구에서 주목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개는 늑대보다 모든 종류의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난 동물이 아니다. 그러나 인간의 손짓과 시선, 의도를 읽고 인간과 협력하는 능력에서는 특별한 강점을 보인다. 개의 지능은 독립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만이 아니라 다른 종과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능력으로 발전했다.

이것을 인간 사회에 그대로 옮겨 말할 수는 없다. 인간은 개가 아니고, 정치사상을 동물행동 하나로 환원해서도 안 된다. 인간 자기 길들이기 가설 역시 확정된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 진화과정에 대한 하나의 유력한 가설이다.

그럼에도 이 관점은 그람시를 비평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문명의 발전은 모든 사람이 자기 집단의 영토를 직접 차지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직접 통제하지 않는 거대한 제도 속에서도 낯선 사람을 신뢰하고 협력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현대인은 자신이 은행을 소유하지 않아도 돈을 맡긴다. 병원을 지배하지 않아도 의사에게 치료를 맡긴다. 모든 법관과 정치인이 자기편이 아니어도 법적 절차가 유지되기를 기대한다. 시장에서 만나는 사람의 종교와 정치성향을 몰라도 거래한다.

현대문명은 사회 전체가 자기 무리의 영역이 아니더라도 살아갈 수 있는 능력 위에 세워졌다.


늑대의 영토와 개의 신뢰

‘늑대와 개’라는 비유에서 중요한 것은 늑대가 악하고 개가 선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실제 늑대도 무리 내부에서는 매우 협력적이며 복잡한 사회관계를 형성한다. 개 역시 공격성이나 자원 독점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차이는 사회성을 확장하는 방식에 있다.

늑대형 사회성은 강한 내부 결속을 바탕으로 한다. 누가 우리 편인지, 어디까지가 우리의 영역인지, 외부 집단이 어떤 위협인지가 중요하다. 내부 협력은 강하지만, 그 협력은 뚜렷한 집단 경계와 결합될 수 있다.

개형 사회성은 다른 종인 인간이 만든 더 큰 질서에 편입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개는 모든 자원을 직접 통제하지 않아도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안정성을 얻는다. 인간의 신호를 읽고 갈등을 줄이며, 자신보다 훨씬 복잡한 사회적 체계에 적응한다.

선진국 노동자가 혁명을 거부한 것도 비슷하게 해석할 수 있다.

노동자는 공장과 국가, 언론과 학교를 자기 계급이 직접 장악해야만 안전하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제도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기능하고 자신에게 권리와 생활수단을 제공한다면, 그 제도에 참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노동자가 자본가와 같은 재산을 가지지 못해도 굶주림에서 벗어나고, 법적 권리와 교육, 의료와 노후를 확보하면 혁명을 통해 전체 사회를 장악해야 할 이유는 줄어든다.

그람시는 이를 부르주아 문화에 길들여진 결과로 보았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것이야말로 문명화의 결과일 수 있다.

사람들이 모두 사회의 주인이 되려는 욕망을 내려놓고, 자신이 직접 소유하거나 통제하지 않는 제도 안에서도 협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람시주의는 늑대로의 회귀다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은 문명이 어렵게 만들어낸 이러한 신뢰를 다시 영토투쟁으로 되돌린다.

학교는 공동의 교육기관이 아니라 어느 진영이 차지해야 할 고지가 된다. 언론은 사실 전달의 장이 아니라 서사의 지배권을 둘러싼 전선이 된다. 법원과 행정부, 문학과 예술도 공통의 기능보다 정치적 소유 관계로 해석된다.

일단 이런 사고가 확산되면 상대편이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위협으로 느껴진다. 제도가 공정하게 작동하는가보다 우리 편이 장악했는가가 중요해진다.

상대가 임명한 법관은 믿을 수 없고, 상대 진영의 학자는 지식인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대리인이다. 언론의 보도도 사실 여부보다 어느 집단의 헤게모니를 돕는가로 평가된다.

이것은 제도에 대한 기능적 신뢰를 파괴한다.

그람시는 강제보다 동의를 강조했지만, 그가 추구한 동의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계속 다르게 살아가는 다원적 합의가 아니었다. 공산주의적 세계관이 새로운 상식이 되고, 사회의 지적·도덕적 방향을 지도하는 상태였다.

그의 목표는 경쟁하는 세계관들이 절차 속에서 공존하는 것이 아니라, 한 세계관이 사회 전체의 상식으로 자리 잡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람시주의는 평화로운 문명론이 아니다. 물리적 내전을 문화적 내전으로 바꾼 이론에 가깝다.

무장한 군대 대신 지식인과 교육기관이 전면에 나서고, 영토 대신 언어와 규범, 역사 해석과 문화적 권위를 차지하려 한다. 전쟁의 대상이 달라졌을 뿐, 사회를 아군과 적군의 영역으로 나누는 기본 감정은 그대로 남는다.


친화성은 항상 평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브라이언 헤어의 이론에는 중요한 경고도 포함되어 있다.

인간의 친화성은 반드시 모든 인간에게 똑같이 적용되지 않는다. 헤어의 연구가 말하는 친사회성은 특히 집단 내부의 협력과 관련된다. 인간은 자기편과 매우 잘 협력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외부 집단을 더 강하게 배제하고 비인간화할 수도 있다.

따라서 ‘개의 친화성’만으로 자유사회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친화성은 좁은 집단 안에서는 전체주의와도 결합할 수 있다. 혁명가는 동료에게 헌신적일 수 있고, 당원끼리는 강한 연대와 희생정신을 보일 수 있다. 문제는 그 친화성의 범위 밖에 있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이다.

그람시주의도 내부적으로는 친화적인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 노동계급, 지식인, 혁명운동이 하나의 역사적 블록을 형성해 강하게 결속한다. 그러나 그 결속이 부르주아, 반동, 허위의식에 빠진 대중이라는 외부 집단을 만들어낸다면 친화성은 쉽게 배타적 권력으로 변한다.

그러므로 문명을 가능하게 한 것은 단순한 친화성이 아니라 친화성의 범위를 넓히는 제도였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도 시민으로 인정하는 법, 상대가 선거에서 이겨도 국가를 공유하게 하는 헌법, 개인의 양심과 재산을 다수의 정치적 목적에서 보호하는 권리, 권력이 한 세력에 영구히 집중되지 않도록 하는 견제와 절차가 필요하다.

자유사회는 모두가 서로 좋아하기 때문에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도 같은 제도 안에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유지된다.


그람시가 놓친 것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문명이었다

그람시는 서구 노동자가 혁명하지 않는 이유를 부르주아 헤게모니에서 찾았다. 그러나 더 설득력 있는 설명은 노동자가 문명의 실제 수혜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상대적 부의 차이는 남아 있었지만 절대적 빈곤은 줄었다. 노동자는 생산수단을 직접 소유하지 않았지만 생활의 안정성과 법적 권리를 얻었다. 사회 전체를 지배하지 않아도 가족을 이루고 미래를 계획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속아서 혁명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혁명보다 개선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불완전하지만 고칠 수 있는 사회를 무너뜨리고, 결과를 알 수 없는 새로운 체제를 세우는 것보다 현재의 제도 안에서 임금과 복지,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편이 현실적이었다.

이러한 판단을 허위의식이라고 부르는 순간, 그람시주의는 노동자를 존중하는 사상이 아니라 노동자의 판단을 무시하는 엘리트주의가 된다.

지식인은 노동자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노동자보다 더 잘 안다고 주장한다. 노동자의 선택이 이론에 맞으면 계급의식이고, 맞지 않으면 헤게모니의 결과가 된다.

이는 경험적 이론이 아니다. 현실의 반박을 차단하는 사상이다.


헤게모니보다 중요한 것은 제도의 기능이다

사회에 문화적 영향력과 권력관계가 존재한다는 그람시의 관찰은 틀리지 않았다. 학교와 언론, 종교와 예술이 인간의 가치관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기관을 헤게모니의 도구로만 보면 더 중요한 질문을 잃게 된다.

학교는 어느 진영이 장악했는가보다 제대로 가르치는가가 중요하다.

언론은 어느 계급의 목소리를 반영하는가보다 사실을 정확히 전달하는가가 중요하다.

법원은 어느 정치세력의 가치관을 대표하는가보다 동일한 법을 일관되게 적용하는가가 중요하다.

기업은 누가 소유하는가만이 아니라 필요한 재화와 일자리를 효율적으로 만들어내는가가 중요하다.

사회가 안정적이고 효과적으로 작동한다면 모든 제도를 자기 집단이 직접 차지할 필요가 없다. 반대로 제도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면 전통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보존할 필요도 없다.

이것이 헤게모니의 관점과 경험주의적 관점의 차이다.

헤게모니의 관점은 누가 지배하는지를 먼저 묻는다. 경험주의적 관점은 무엇이 실제로 작동하는지를 먼저 묻는다.


결론: 문명은 영역을 넓힌 것이 아니라 영역을 내려놓은 과정이다

그람시는 문화적 지배의 존재를 발견했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방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는 헤게모니를 분산시키거나 제도의 중립성을 강화하려 하지 않았다. 기존 헤게모니를 새로운 헤게모니로 교체하려 했다.

그 결과 사회는 다시 문화적 영토를 둘러싼 집단투쟁으로 해석되었다.

그러나 브라이언 헤어의 관점에서 인간의 성공은 모든 영역을 직접 지배하는 능력보다, 공격성을 억제하고 협력의 범위를 넓히며 다른 사람의 의도를 이해하는 능력과 관련된다. 인간은 더 강한 포식자가 되어서만 성공한 것이 아니라, 더 많은 타자와 협력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성공했다.

선진사회 노동자들이 혁명하지 않은 것도 같은 방향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자본주의에 세뇌되어 자신의 이익을 잊은 것이 아니다.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나고, 제도 안에서 권리와 안정성을 얻으면서, 사회 전체를 자기 계급의 영토로 만들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문명은 모두가 지배자가 되는 과정이 아니다. 자신이 지배하지 않는 사회에서도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과정이다.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은 이 변화를 해방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것을 의식의 패배로 보았다. 그리고 사람들이 내려놓기 시작한 영토적 지배욕을 다시 정치적 의무로 되살렸다.

그람시의 오류는 문화가 권력과 관계있다고 본 데 있지 않다.

그의 근본적 오류는 인간 사회의 모든 공간을 누군가가 장악해야 할 영토로 보았다는 데 있다. 그리고 그 영토를 자기편이 차지할 때만 그것을 해방이라고 불렀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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