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물 ②] 마르크스주의는 어떻게 적을 만들었는가](/_next/image?url=%2Fimages%2Fhow-marxism-created-the-enemy.png&w=3840&q=75)
1. 늑대에게 필요한 것은 먹잇감이다
앞의 글에서 보수주의자는 리트리버와 비슷하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안전하고 주변의 질서가 안정되어 있다면, 다른 사람의 생각과 생활방식까지 지배하려 하지 않습니다. 상대가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제거해야 할 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늑대적 정치운동은 다릅니다. 늑대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경쟁자가 아니라 잡아먹어도 되는 명확한 대상입니다. 인간의 정치에서는 그 대상을 공격할 수 있는 도덕적 명분까지 함께 필요합니다.
마르크스주의가 제공한 가장 강력한 명분은 계급이었습니다. 마르크스주의 이전에도 부자와 가난한 사람은 있었고, 지배자와 피지배자, 지주와 소작인의 갈등은 늘 존재했습니다. 그것은 불공정이나 탐욕의 문제로 논의되기도 했고, 불운이나 개인적 능력 차이로 설명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는 이 오래된 차이를 새로운 문법으로 재구성했습니다. 그것은 개인의 탐욕이나 운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착취의 결과이며, 역사 발전 단계에서 필연적으로 해체되어야 할 대립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관계는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의 대립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부르주아는 단순히 부유한 이웃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노동자의 피를 빠는 구조적 지배자로 해석되었습니다. 적이 탄생한 순간이었습니다.
2. 계급이라는 도덕적 판정 장치
마르크스주의의 강력함은 경제학적 분석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명확한 도덕적 지도를 제공했습니다. 어느 계급에 속하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역사적 위치와 도덕적 정당성이 미리 결정되었습니다. 부르주아는 개별적으로 아무리 선량하고 자선사업을 하더라도 구조적 착취자였습니다. 그의 선행은 가식이거나 자본주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소모품으로 해석되었습니다.
반면 노동자는 개별적으로 실수를 하거나 도덕적으로 불완전하더라도 역사의 해방자이자 피해계급이었습니다. 그들의 투쟁은 개별적 불만의 표현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해방하는 역사적 과업으로 정당화되었습니다. 이 구도는 인간의 행동을 판단하는 기준을 크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무엇을 했는가보다 어느 위치에 있는가가 중요해졌습니다. 한 사람이 어떤 의도로 행동했는가보다 그 행동이 어느 계급의 이해관계에 봉사하는가가 먼저 평가되었습니다. 이제 정적을 비판할 때 그 사람의 주장이나 인품을 검증할 필요가 줄어들었습니다. 그가 속한 계급적 위치나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옹호한다는 사실만 밝히면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계급은 정적의 도덕적 정당성을 일거에 무력화하는 가장 편리한 판정 장치였습니다.
3. 타협이 불가능한 구조
마르크스주의가 세상을 바라본 방식의 핵심은 모순이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은 약간의 제도 개혁이나 임금 인상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이해관계는 근본적으로 립될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자본가의 이윤은 노동자의 무급 노동에서 나오므로, 한쪽이 얻으면 다른 쪽은 잃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제로섬 게임이었습니다.
이러한 전제 위에서는 타협과 협상이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임금을 올려주고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은 노동자의 생활을 잠시 개선할 뿐, 착취 구조 자체를 없애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약간의 개선은 노동자의 혁명 의식을 약화시키는 미봉책으로 의심받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목표는 조화로운 공존이 아니라 한쪽이 다른 쪽을 넘어서는 혁명이었습니다. 부르주아 계급의 소유권을 해체하고 생산수단을 사회화하는 것만이 유일한 완성으로 제시되었습니다. 이 구도 안에서는 타협을 주장하는 사람마저 지배질서를 돕는 타락한 존재나 반동으로 해석되었습니다. 공존을 원하는 리트리버의 태도는 혁명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치부되었습니다.
4. 언어의 장악과 적의 배제
마르크스주의는 새로운 정치적 언어를 만들어 냈습니다. 착취, 소외, 계급의식,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반동, 혁명적 과업과 같은 개념들은 세상을 설명하는 강력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일단 이 언어를 받아들이면 세상의 모든 현상이 계급투쟁의 결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법, 종교, 국가, 가족, 예술까지도 기존 지배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상부구조로 해석되었습니다.
법은 보편적 정의의 장치가 아니라 부르주아지의 의지를 법률로 정해 놓은 것으로 규정되었습니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며, 국가는 지배계급의 공동 사무를 처리하는 위원회에 불과했습니다. 이처럼 기존 사회의 모든 제도가 지배 장치로 재해석되자, 그 제도를 지키려는 노력은 모두 지배계급의 특권을 수호하려는 시도로 몰렸습니다.
이 언어적 승리는 실로 엄청난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비판자는 자신이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세뇌되지 않았음을 먼저 입증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주장은 검증할 가치도 없는 부르주아 사상으로 분류되었습니다. 늑대는 자신을 공격자로 규정하지 않고, 역사의 필연을 실현하는 해방자로 규정하면서 적을 배제할 완전한 도덕적 승인을 얻어냈습니다.
5. 리트리버의 무력함
보수주의자들은 이러한 늑대적 언어 앞에서 무력해지곤 했습니다. 보수주의자는 기본적으로 사회의 전통적 제도들이 오랜 경험을 통해 형성된 지혜의 산물이라고 믿습니다. 가족, 종교, 지역공동체, 법치주의는 인간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울타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의 공격 앞에서 이 모든 울타리는 단숨에 '지배의 도구'로 재규정되었습니다. 보수주의자가 전통과 질서의 중요성을 말할 때, 마르크스주의자는 그것이 자본가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핑계라고 치부했습니다. 보수주의자가 개별적 노력과 책임을 말할 때, 그것은 구조적 불평등을 가리기 위한 허위의식으로 단죄되었습니다.
리트리버는 상대와 대화하려 했지만, 상대는 대화의 언어 자체를 권력투쟁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리트리버가 안정된 질서와 예측 가능한 규칙을 말할 때, 늑대는 그것을 자신들을 억누르기 위해 세운 기득권의 울타리라고 공격했습니다. 이 언어적 대결에서 보수주의가 수세에 몰린 것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6. 결론: 계급에서 문화로
그러나 서유럽에서 마르크스가 예상했던 노동자 대혁명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노동자들은 점차 선거권을 얻었고 노동조합을 제도 안으로 편입시켰으며, 임금과 생활수준도 장기적으로 개선되었습니다. 많은 노동자들은 자본주의를 완전히 전복하기보다 그 안에서 더 나은 조건과 삶을 얻기를 원했습니다.
산업사회의 노동자가 반드시 혁명세력이 되지는 않는다는 현실은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커다란 지적 위기였습니다. 그러나 늑대의 운동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공장에서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노동자들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기존의 상식과 문화를 먼저 바꿔야 한다는 새로운 사상이 등장했습니다.
그람시와 신좌파 사상가들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들었습니다. 그들은 기존 사회의 지배가 공장과 경찰력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학교, 언론, 교회, 가족이라는 문화적 제도를 통한 '동의' 위에서 유지되고 있음을 파악했습니다. 계급투쟁은 이제 문화투쟁과 상식의 전쟁으로 이동했습니다. 늑대는 공장 문 앞을 떠나 학교와 언론, 예술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마르크스주의가 적의 계급을 만들어냈다면, 그람시는 적의 상식을 발견하고 그것을 부수는 새로운 길을 열었습니다.
📚 [시리즈] 보수주의는 산처럼 남고, 진보주의는 물처럼 흐른다
- [1편] 보수주의자는 왜 헤게모니를 원하지 않는가
- [2편] 마르크스주의는 어떻게 적을 만들었는가 (현재 글)
- [3편] 사람이 넘쳐나던 시대의 사상
- [4편] 그람시는 왜 공장보다 학교를 보았는가
- [5편] 페미니즘은 어떻게 사생활을 정치화했는가
- [6편] 포스트모더니즘은 어떻게 새로운 적을 만들었는가
- [7편] 리트리버는 늑대와 함께 살 수 있는가
참고문헌
- Karl Marx·Friedrich Engels, The Communist Manifesto, Progress Publishers, 1848.
- Karl Marx, Capital: A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Vol. 1), Penguin Books, 1976.
- Carl Schmitt, The Concept of the Political,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6.
- Leszek Kołakowski, Main Currents of Marxism: Its Rise, Growth, and Dissolution, Oxford University Press, 19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