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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외면한 역사학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20세기를 대표하는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방대한 역사 서술과 공산주의 신념 사이의 모순을 분석하고, 현실의 인간과 고통을 이념의 수단으로 격하시키는 역사학의 위험성을 다룹니다.

현실을 외면한 역사학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에릭 홉스봄의 역사 서술과 공산주의 신념, 그리고 인본주의 역사학의 문제에 대한 비판적 탐구

에릭 홉스봄과 인본주의의 실패

에릭 홉스봄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역사학자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 《극단의 시대》는 근현대사의 거대한 흐름을 통합적으로 설명한 저작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는 방대한 자료를 알고 있었고,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민족주의와 제국주의, 노동운동과 혁명을 하나의 서사로 묶는 능력이 뛰어났습니다. 문장도 명료했고 시대를 바라보는 시야도 넓었습니다.

그러나 홉스봄을 평가할 때 더 근본적인 질문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현실의 인간과 실제로 일어난 고통을 제대로 묘사하지 않는 역사학은 과연 어떤 가치를 가질 수 있습니까?

역사학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흥미롭게 배열하는 작업이 아닙니다. 인간이 어떤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사실에 따라 기록하고 평가하는 학문입니다.

그런데 역사학자가 자신의 이념에 불리한 현실을 축소하고, 희생자의 고통보다 역사적 목적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면, 그가 쓴 역사는 학문이라기보다 이념을 위한 서사가 될 수 있습니다.


뛰어난 역사학자이면서 평생 공산주의자였던 사람

홉스봄은 젊은 시절 나치즘의 부상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유대인이었던 그는 히틀러의 집권과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이주했습니다.

그에게 공산주의는 단순한 경제이론이 아니었습니다. 파시즘에 맞서는 국제적 운동이었고, 자신이 소속될 수 있는 정치적 공동체였습니다. 당시 상황에서 그가 공산주의에 끌린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있다는 것과 정당화할 수 있다는 것은 다릅니다.

스탈린의 숙청, 강제수용소, 대기근, 동유럽의 강제적 공산화가 알려진 뒤에도 홉스봄은 영국 공산당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1956년 소련이 헝가리 혁명을 무력으로 진압했을 때도 그는 공산주의 운동과 완전히 결별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였던 E. P. 톰슨은 헝가리 침공을 계기로 공산당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홉스봄은 공산당이 사실상 사라질 때까지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문제는 그가 공산주의의 범죄를 몰랐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사실을 자신의 신념을 폐기해야 할 결정적 근거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역사가가 현실보다 이념을 우선할 때

홉스봄은 자본주의의 폭력과 불평등, 제국주의와 민족주의의 위험을 날카롭게 분석했습니다.

그는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한 노동자의 고통을 기록했고, 제국주의가 비서구 사회에 가한 폭력을 비판했습니다. 국가가 만든 전통과 민족적 신화도 해체적으로 분석했습니다.

그러나 공산주의가 저지른 폭력에 대해서는 같은 판단 기준을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자본주의에서 사람이 희생되면 체제의 본질적 문제로 보았습니다. 반면 공산주의에서 사람이 희생되면 혁명의 어려움, 후진국의 조건, 외부의 위협, 지도자의 오류로 설명했습니다.

자본주의의 실패는 자본주의의 죄가 됩니다. 공산주의의 실패는 공산주의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 결과가 됩니다.

이런 방식으로는 어떤 현실도 공산주의를 반증할 수 없습니다.

공산주의 국가가 번영하면 이론이 옳았던 것입니다. 공산주의 국가가 실패하면 이론이 충분히 제대로 적용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반대자가 생기면 그들은 반혁명 세력이거나 허위의식에 빠진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경험적 역사학이 아닙니다. 이념을 보호하기 위한 해석입니다.


사실을 많이 안다는 것이 현실을 본다는 뜻은 아닙니다

홉스봄은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문제는 사실의 부재가 아니라 사실의 배열에 있었습니다.

역사가는 모든 사건을 동일한 비중으로 서술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건을 중심에 놓고 어떤 사건을 주변으로 밀어낼지 선택해야 합니다. 이 선택에서 역사관과 가치판단이 드러납니다.

홉스봄의 역사에서 근대는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그 모순이 확대되는 과정으로 서술됩니다. 산업화는 생산력의 증가인 동시에 착취의 확대이며, 제국주의는 자본의 팽창이고, 민족주의는 계급적 갈등을 가리는 정치적 구성물입니다.

물론 이런 관점은 일정한 사실을 드러냅니다.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에는 실제로 착취와 불평등, 제국주의적 폭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 전체는 아닙니다.

산업혁명은 열악한 공장노동을 낳았지만 장기적으로 생산성과 소득을 높였습니다. 시장경제는 불평등을 만들었지만 절대적 빈곤을 줄였습니다. 국민국가는 전쟁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시민권, 법률, 복지와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정치적 공동체가 되기도 했습니다.

노동자는 단순히 착취당하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임금과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선거권을 얻고, 가족을 부양하며, 자녀에게 더 나은 미래를 제공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홉스봄은 이런 사실을 몰랐던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의 역사 서사에서는 그것들이 자본주의의 본질적 성취라기보다 노동운동이 자본주의로부터 얻어낸 양보처럼 배치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현실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이론에 맞는 현실을 선택한 것입니다.


노동자는 왜 혁명하지 않았습니까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노동계급의 혁명 의식이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선진국 노동자는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키기보다 더 높은 임금, 짧은 노동시간, 안전한 작업환경, 선거권과 복지를 요구했습니다.

노동자들은 공장을 직접 장악하기보다 노동조합을 만들었고, 국가를 무너뜨리기보다 선거에 참여했습니다. 체제 전체를 파괴하기보다 체제 안에서 자신의 삶을 개선하려 했습니다.

마르크스주의자는 이를 노동자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포섭된 결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현실적인 설명이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노동자의 요구에 실제로 반응했기 때문에 혁명의 필요성이 줄어든 것입니다.

노동자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쇠사슬밖에 없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가족과 집, 직장과 저축, 연금과 자녀의 교육을 가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부자와의 상대적 격차가 남아 있더라도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나면 판단은 달라집니다. 혁명으로 얻을 수 있는 불확실한 이익보다 이미 확보한 생활의 안정이 더 중요해집니다.

노동자는 자신의 현실을 잘못 판단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이 얻은 것과 잃을 것을 합리적으로 계산했습니다.

그런데 홉스봄과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은 노동자가 혁명을 거부한 사실을 체제의 개선으로 보기보다 노동자의 의식이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결과로 보았습니다.

이것은 노동자를 존중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노동자가 마르크스주의를 지지할 때는 각성한 주체가 되고, 지지하지 않을 때는 이데올로기에 속은 존재가 됩니다.

결국 노동자의 목소리는 그 이론에 동의할 때만 유효합니다.


홉스봄과 히틀러는 무엇이 다릅니까

홉스봄과 히틀러를 동일한 인물로 취급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히틀러는 국가권력을 장악한 독재자였고, 전쟁과 집단학살을 직접 명령한 책임자였습니다. 홉스봄은 역사학자였으며 국가폭력을 직접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의 권력, 행동, 책임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릅니다.

그러나 인본주의적 관점에서는 두 사람 사이에 공통된 위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현재 살아 있는 인간보다 추상적인 역사적 목적을 더 중요하게 보는 사고방식"입니다.

히틀러는 민족과 국가, 인종적 미래를 위해 개인을 희생시킬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개인의 생명과 자유는 민족공동체의 목적에 종속되었습니다.

공산주의 전체주의도 계급 없는 사회와 인류 해방을 위해 현재의 개인을 희생시킬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혁명과 역사적 진보라는 미래의 목표가 개인의 생명과 자유보다 높은 가치가 되었습니다.

두 이념은 주장하는 목적이 다릅니다.

나치즘은 인종적 우열과 민족적 지배를 추구했습니다. 공산주의는 계급 해방과 평등을 추구했습니다.

그러나 목적이 다르다는 사실만으로 수단의 비인간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이상을 내세웠든, 현실의 인간을 미래사회를 위한 재료로 사용한다면 인본주의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선한 목적은 대량 희생을 정당화할 수 있습니까

홉스봄은 한 인터뷰에서 공산주의 사회가 실제로 실현될 수 있었다면 수백만 명의 희생도 정당화될 수 있었느냐는 취지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는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이 답변은 홉스봄이 직접 학살을 명령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의 도덕관에 무엇이 우선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에게 현실의 희생자는 미래의 이상을 위해 지불할 수도 있는 대가였습니다.

여기에서 인본주의와 사회공학의 차이가 드러납니다.

인본주의는 살아 있는 인간을 목적 그 자체로 봅니다. 개인은 국가나 계급, 민족, 역사적 진보를 위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재료가 아닙니다.

사회공학은 미래에 실현될 더 나은 사회를 먼저 상정합니다. 그리고 그 사회를 위해 현재의 인간에게 희생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미래의 이상은 아직 존재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지금 고통받고 죽는 사람뿐입니다.

완전한 사회가 실현되지 않으면 희생만 남습니다. 설령 권력자가 완전한 사회가 실현되었다고 선언하더라도,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그 사회가 진정으로 완전한지를 판정하는 사람은 대개 희생을 명령한 권력자 자신입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인간의 생명이 이념의 성공 여부에 따라 가치가 달라집니다.

이것이 전체주의의 핵심입니다.


나치즘의 희생과 공산주의의 희생은 다르게 평가할 수 없습니다

나치즘의 학살을 평가할 때 우리는 그들의 목적이 진실했는지를 따지지 않습니다. 히틀러가 정말 독일의 미래를 믿었는지, 민족을 위한 선의를 가졌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사람을 죽이고 자유를 빼앗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공산주의도 같은 기준으로 평가해야 합니다.

공산주의가 평등과 해방을 말했더라도 대량학살, 강제수용소, 숙청, 기근과 정치적 탄압을 만들어냈다면 그 결과를 이념과 분리해서는 안 됩니다.

“목적은 선했지만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말은 충분한 변명이 아닙니다. 현실에서 반복적으로 폭력이 발생했다면 그 폭력을 가능하게 한 사상적 구조를 살펴야 합니다.

공산주의는 개인의 권리보다 계급의 목적을 앞세웠습니다. 반대자를 다른 의견을 가진 시민이 아니라 역사의 진보를 방해하는 계급의 적으로 규정했습니다.

개인을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취급한 것입니다.

이 점에서는 인종을 위해 개인을 희생시킨 나치즘과, 계급과 혁명을 위해 개인을 희생시킨 공산주의 사이에 도덕적 유사성이 있습니다.

목표는 달랐지만 인간을 바라보는 방식은 놀랍게 비슷해질 수 있었습니다.


역사가가 희생자의 편에 서지 않는다면

역사학자의 첫 번째 의무는 승리한 이념의 논리를 정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살았던 인간의 경험을 복원하는 것입니다.

국가의 통계 뒤에 굶어 죽은 사람이 있었고, 혁명의 명분 뒤에 처형당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생산량과 공업화 수치 뒤에는 강제노동과 가족의 해체가 있었습니다.

이 현실을 역사적 진보의 비용으로 처리한다면 역사는 인간의 기록이 아니라 권력의 회계장부가 됩니다.

몇 명을 희생하여 얼마나 큰 사회적 성취를 얻었는지 계산하는 순간, 사람은 숫자로 바뀝니다.

그러나 인본주의적 역사학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한 사람의 죽음도 그 사람에게는 세계 전체의 상실입니다. 그가 어떤 계급에 속했는지, 역사의 어느 편으로 분류되었는지는 그의 생명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홉스봄은 나치즘의 희생자에게는 이런 인간적 감각을 적용했습니다. 그러나 공산주의의 희생자에게는 같은 감각을 끝까지 적용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경험한 파시즘의 폭력은 현실로 보았지만, 자신이 믿은 공산주의의 폭력은 역사적 과정 속에 배치했습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역사학은 인본주의를 잃었습니다.


뛰어난 지식은 도덕적 판단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홉스봄의 사례는 지식이 많다고 해서 현실을 공정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는 수많은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반증하는 사실에는 충분히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지식인은 평범한 사람보다 더 객관적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지식이 많으면 자신의 믿음을 방어하는 논리도 더 정교해질 수 있습니다.

공산주의의 실패는 후진국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외부의 적대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스탈린 개인의 잘못이라고 돌릴 수도 있습니다. 진정한 공산주의가 아니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설명을 계속하면 어떤 실패도 신념을 바꾸지 못합니다.

지식은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 사용되면 지식은 이념의 방어기제가 됩니다.

홉스봄은 뛰어난 역사학자였습니다. 그러나 뛰어난 역사학자라는 사실이 그의 도덕적 판단까지 옳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의 뛰어난 지식과 공산주의에 대한 지속적인 충성 사이의 모순이 더 큰 문제를 보여줍니다.

사람은 사실을 몰라서만 잘못된 믿음을 유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을 충분히 알고도 자신의 정체성과 소속감을 지키기 위해 믿음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현실을 묘사하지 않는 역사학은 무엇을 남깁니까

역사학은 현실을 정확히 묘사해야 합니다.

그 현실에는 체제의 성취만이 아니라 실패도 포함됩니다. 자신의 진영이 만든 희생도 포함됩니다. 이론이 예상하지 못한 인간의 선택도 포함됩니다.

노동자가 혁명하지 않았다면 그들이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를 들어야 합니다. 공산주의 체제에서 수백만 명이 희생되었다면 그 사실을 역사적 목적의 비용으로 축소해서는 안 됩니다.

현실이 이론과 다르면 현실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이론을 수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역사학은 과거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이념에 맞게 다시 구성하는 작업이 됩니다.

홉스봄의 저작은 많은 사실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이 많다고 해서 현실을 충실히 묘사한 것은 아닙니다.

현실을 묘사한다는 것은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에도 같은 무게를 부여하는 일입니다. 자신이 반대한 체제와 자신이 지지한 체제를 동일한 도덕적 기준으로 평가하는 일입니다.

홉스봄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를 해부할 때는 뛰어난 역사학자였습니다. 그러나 공산주의를 바라볼 때는 신념을 지키려는 당사자가 되었습니다.


결론

홉스봄과 히틀러는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한 사람은 독재자이자 학살의 책임자였고, 다른 사람은 역사학자였습니다. 그 책임을 동일하게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인본주의의 기준에서 두 사람에게 전혀 공통점이 없다고도 말하기 어렵습니다.

두 사람 모두 개인보다 더 높은 역사적 목적이 존재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민족이든 계급이든, 미래의 이상을 위해 현재의 인간을 희생할 수 있다는 사고를 받아들였습니다.

히틀러는 그것을 권력으로 실행했습니다. 홉스봄은 그것을 역사적 가능성으로 정당화했습니다.

행동과 책임은 전혀 다르지만, 인간을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보는 도덕적 구조에서는 만나는 지점이 있습니다.

홉스봄의 가장 큰 문제는 공산주의자였다는 데만 있지 않습니다. 역사학자로서 누구보다 현실을 잘 알아야 했음에도, 자신의 이념 앞에서는 현실의 인간을 충분히 보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역사는 미래의 이상을 변호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역사는 실제로 살았고, 고통받았으며, 죽어간 인간을 기억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 사람들의 생명을 역사적 진보를 위한 비용으로 처리하는 순간, 아무리 방대한 지식과 뛰어난 문장을 갖추었더라도 그 역사학은 인본주의에서 벗어납니다.

현실을 묘사하지 않는 역사학은 현실을 이해하는 학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이 믿고 싶은 역사를 쓰는 일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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