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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의 그늘: 언론을 사지 않고 움직이는 미디어 자금


과거의 노골적인 언론사 인수 방식을 넘어 비영리 저널리즘 후원, 뉴스 리터러시 교육, 팩트체크 시스템을 우회적으로 장악해 보이지 않는 의제를 설정하는 현대 억만장자 미디어 자선의 위선과 구조적 통제를 비판합니다.

자선의 그늘: 언론을 사지 않고 움직이는 미디어 자금

과거의 언론 권력은 비교적 알아보기 쉬웠습니다. 신문사를 소유한 사람이 언론 권력을 가졌습니다. 방송국을 가진 사람이 여론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언론 재벌의 이름은 곧 미디어 권력의 이름이었습니다.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는 신문 제국을 통해 여론을 움직였습니다. 테드 터너는 CNN을 통해 24시간 뉴스 시대를 열었습니다. 루퍼트 머독은 폭스 뉴스와 여러 매체를 통해 보수 진영의 거대한 미디어 권력이 되었습니다. 제프 베조스가 워싱턴 포스트를 인수했을 때도 사람들은 누가 그 언론사를 소유하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의 미디어 권력은 더 복잡합니다.

오늘날 억만장자는 언론사를 직접 소유하지 않아도 언론 생태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재단을 통해 언론 프로젝트를 후원할 수 있습니다. 비영리 저널리즘을 지원할 수 있습니다. 뉴스 리터러시 교육을 후원할 수 있습니다. 팩트체크 기관을 지원할 수 있습니다. 지역 뉴스 네트워크에 투자할 수 있습니다. 연구센터와 대학 프로그램을 후원할 수 있습니다. 플랫폼의 콘텐츠 조정 논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 방식은 언론사 소유보다 덜 노골적입니다. 그러나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언론을 사지 않아도 언론을 움직일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언론 소유에서 정보 생태계 후원으로

언론 권력은 과거에도 부유층과 밀접했습니다. 대형 신문과 방송은 막대한 자본이 필요했고, 언론사는 대개 부유한 개인이나 기업이 소유했습니다. 이 사실 자체는 새롭지 않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언론 소유는 비교적 직접적이었습니다. 누가 신문사를 가지고 있는지, 누가 방송국을 운영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소유자가 누구인지 드러났고, 독자는 그 이해관계를 어느 정도 감안할 수 있었습니다.

현대의 방식은 다릅니다. 억만장자는 특정 언론사를 직접 소유하지 않아도 됩니다. 대신 정보 생태계의 주변부를 후원합니다. 비영리 탐사보도 기관, 지역 뉴스 실험, 뉴스 교육 단체, 팩트체크 프로젝트, 언론 혁신 연구소, 저널리즘 펠로십, 대학 센터, 시민교육 프로그램에 돈을 넣습니다.

겉으로는 자선입니다. 민주주의를 위한 후원입니다. 언론을 살리기 위한 공익사업입니다. 허위정보를 막기 위한 교육입니다. 지역 뉴스를 되살리기 위한 혁신입니다.

그러나 그 돈은 방향을 갖습니다. 어떤 언론을 살릴 것인가. 어떤 주제를 탐사할 것인가. 어떤 학생을 훈련할 것인가. 어떤 뉴스가 신뢰할 만하다고 가르칠 것인가. 어떤 정보를 허위정보로 볼 것인가. 어떤 지역 뉴스 모델을 확산시킬 것인가.

이 모든 선택은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뉴스 리터러시라는 이름의 신뢰 배급

허위정보 논쟁이 커지면서 뉴스 리터러시라는 말이 자주 등장했습니다. 시민에게 뉴스를 읽는 법을 가르치고, 가짜뉴스와 음모론을 구별하도록 하며, 신뢰할 수 있는 정보원을 판단하게 하겠다는 취지입니다.

이 목표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필요합니다. 시민은 언론을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출처를 확인하고, 통계를 의심하고, 감정적 제목에 속지 않고, 정치적 선동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뉴스 리터러시가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법”이 아니라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방향으로 가면 문제가 됩니다.

News Literacy Project는 억만장자 재단, 다국적 기업, 세계경제포럼 파트너, Comcast, 워싱턴 포스트, News Corp, Bloomberg News, 뉴욕 타임즈 등 주류 언론 관련 주체들로부터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이 프로젝트는 학생들이 허위정보, 잘못된 정보, 음모론, 온라인 사기를 인식하도록 훈련하는 도구를 만들었고, 2017년에는 News Integrity Initiative를 공동 설립한 바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주류 언론과 억만장자 재단, 플랫폼 권력이 시민에게 “뉴스를 읽는 법”을 가르칠 때, 그것은 과연 비판적 사고 교육일까요. 아니면 신뢰의 배급일까요.

정말 필요한 뉴스 리터러시는 주류 언론도 의심하게 해야 합니다. 정부 발표도 의심하게 해야 합니다. 재단 후원도 의심하게 해야 합니다. 팩트체커도 의심하게 해야 합니다. 전문가도, 플랫폼도, 정보기관 출신 해설자도 모두 권력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나 일부 뉴스 리터러시 운동은 시민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공식 기관을 믿어라. 주류 언론을 믿어라. 팩트체커를 믿어라. 전문가를 믿어라. 플랫폼의 판단을 믿어라.

이것은 리터러시가 아닙니다. 순응 훈련입니다.

로렌 파월 잡스와 에머슨 컬렉티브

이 문제를 보여주는 대표적 인물이 로렌 파월 잡스입니다. 그는 스티브 잡스의 미망인이자, 에머슨 컬렉티브를 통해 교육, 이민, 환경, 미디어, 정치 관련 프로젝트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온 인물입니다.

파월 잡스는 2022년 오바마의 허위정보 관련 운동과도 가까운 위치에 있었습니다. 에머슨 컬렉티브는 비영리와 영리를 혼합한 유연한 투자 실체로 작동하면서 오바마 재단의 주요 파트너 역할을 해왔고, 오바마의 교육 이니셔티브인 My Brother’s Keeper에 5,600만 달러를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 개인에 대한 비난이 아닙니다. 문제는 구조입니다.

에머슨 컬렉티브 같은 조직은 전통적인 재단과 투자회사 사이에 있습니다. 비영리와 영리 투자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고, 언론사 지분이나 미디어 프로젝트에도 관여할 수 있습니다. 이런 구조는 유연합니다. 그러나 그만큼 투명성 논란도 생기기 쉽습니다.

전통적인 언론사 소유는 비교적 단순합니다. 누가 소유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재단, 투자회사, 비영리 프로젝트, 교육 프로그램, 지역 뉴스 네트워크, 정책 캠페인이 뒤섞이면 독자는 무엇이 언론이고, 무엇이 정치 캠페인이고, 무엇이 자선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집니다.

이것이 현대 미디어 권력의 특징입니다.

권력은 더 부드러워졌습니다. 그래서 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애틀랜틱, Axios, ProPublica, Mother Jones

파월 잡스는 애틀랜틱 지분을 인수했고, Axios, Mother Jones, Ozy Media, ProPublica 등을 포함한 여러 미디어 회사에 1억 달러 이상을 투자해 왔습니다.

이런 투자가 곧바로 잘못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언론 산업이 붕괴하는 시대에 돈 많은 후원자가 언론을 살릴 수도 있습니다. 지역 뉴스가 무너지고, 탐사보도가 줄고, 광고 수익이 플랫폼으로 이동하는 상황에서 비영리 저널리즘과 재단 후원은 실제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돈이 어떤 세계관을 가진 사람에게서 나오며, 어떤 방향으로 흐르느냐입니다.

언론을 후원하는 사람은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주제에 돈을 냅니다. 기후, 인종, 이민, 젠더, 민주주의, 허위정보, 형사사법, 선거제도 같은 주제는 모두 정치적입니다. 후원자는 “공익”이라고 말하지만, 공익의 정의는 언제나 정치적입니다.

따라서 억만장자 미디어 자선의 문제는 단순히 “돈을 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 돈이 언론의 생태계를 선별한다는 데 있습니다.

어떤 매체는 살아남고, 어떤 매체는 사라집니다. 어떤 주제는 탐사되고, 어떤 주제는 무시됩니다. 어떤 기자는 지원받고, 어떤 기자는 주변화됩니다. 어떤 관점은 공익 저널리즘이 되고, 어떤 관점은 허위정보가 됩니다.

돈은 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말합니다.

비영리 저널리즘은 중립적인가

비영리 저널리즘은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광고주와 기업의 압박에서 자유롭고, 공익적 탐사보도를 할 수 있으며, 수익보다 진실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 장점은 실제로 있습니다. 광고 기반 언론이 클릭 장사를 하고, 기업 광고주 눈치를 보고, 정파적 트래픽에 의존하는 시대에 비영리 저널리즘은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영리라는 말이 곧 중립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비영리 언론도 돈이 필요합니다. 그 돈은 재단, 기부자, 대형 후원자에게서 옵니다. 후원자는 직접 기사 내용을 지시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후원의 방향은 의제를 만듭니다. 장기 프로젝트, 취재 분야, 채용, 협업 기관, 교육 프로그램, 데이터베이스 구축, 팩트체크 주제는 모두 돈의 흐름에 영향을 받습니다.

광고주가 언론을 압박할 수 있다면, 재단 후원자도 의제의 환경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음모론이 아닙니다. 조직의 기본 작동 방식입니다. 돈은 항상 선택을 만듭니다. 선택은 항상 방향을 만듭니다.

지역 뉴스처럼 보이는 정치 콘텐츠

가장 전형적인 아스트로터핑 사례로 지목받는 것 중 하나는 Courier Newsroom입니다. Courier는 지역 뉴스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진보 성향 정치 메시지를 퍼뜨리는 네트워크에 가깝습니다. 이 네트워크는 ACRONYM, Shadow 앱, Good Information 등 진보계 재단 및 조지 소로스, 리드 호프먼 등 거물 기부자들의 자금 줄과 연결되어 있어 워싱턴 포스트와 폴리티코도 이 네트워크의 윤리성과 투명성에 의문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이 사례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합니다.

사람들은 전국 정치 광고보다 지역 뉴스를 더 신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기 동네 이름이 붙은 매체, 지역 현안을 다루는 기사, 평범한 뉴스 형식을 가진 콘텐츠는 정치 광고보다 덜 의심받습니다. 그런데 그런 형식이 실제로는 특정 정치 메시지를 확산시키기 위한 네트워크라면, 그것은 뉴스와 정치 광고의 경계를 흐립니다.

이것을 아스트로터핑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풀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위에서 설계된 운동입니다. 지역의 자발적 여론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금과 전략이 들어간 정치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이 방식은 매우 효과적입니다. 노골적인 정치 광고보다 방어심을 덜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우리 지역 뉴스”처럼 보이는 콘텐츠가 사실상 특정 정당이나 이념의 메시지를 전달한다면, 독자는 그것을 광고로 읽지 않고 뉴스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언론 윤리의 문제입니다.

정치 광고는 정치 광고라고 표시되어야 합니다. 캠페인 메시지는 캠페인 메시지라고 표시되어야 합니다. 지역 뉴스라면 독립성과 자금 출처를 분명히 밝혀야 합니다.

뉴스의 형식을 빌린 정치 메시지는 민주주의를 돕는 것이 아니라 흐리게 만듭니다.

억만장자 자선의 도덕적 방패

억만장자 미디어 자선의 힘은 돈에만 있지 않습니다. 더 강한 힘은 도덕적 이미지입니다.

그들은 언론을 장악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를 지킨다고 말합니다. 허위정보와 싸운다고 말합니다. 지역 뉴스를 살린다고 말합니다. 시민교육을 한다고 말합니다. 소수자의 목소리를 지원한다고 말합니다. 공익 저널리즘을 후원한다고 말합니다.

이 말들은 모두 선해 보입니다. 실제로 선한 목적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한 목적은 권력의 문제를 지워주지 않습니다.

언론을 후원하는 돈은 여론에 영향을 미칩니다. 뉴스 리터러시를 후원하는 돈은 시민의 신뢰 기준에 영향을 미칩니다. 팩트체크를 후원하는 돈은 어떤 주장이 허위로 분류될지에 영향을 미칩니다. 지역 뉴스 네트워크에 들어간 돈은 지역 여론의 언어를 바꿀 수 있습니다.

이것은 자선이면서 동시에 권력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선한 의도만 볼 것이 아니라, 권력의 구조를 보아야 합니다.

보수 억만장자와 진보 억만장자의 차이는 본질이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이 문제는 진보 억만장자에게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보수 억만장도 같은 방식으로 언론 생태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싱크탱크를 후원하고, 언론사를 인수하고, 유튜브 네트워크를 만들고, 정치 광고를 집행하고, 지역 라디오를 지원하고, 법률단체와 시민단체를 후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핵심은 “우리 편 억만장자는 괜찮고 상대편 억만장자는 위험하다”가 아닙니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초거대 자산가가 정보 생태계의 방향을 정할 수 있는가. 그 돈의 흐름은 투명한가. 언론은 자신이 누구의 돈으로 움직이는지 충분히 공개하는가. 독자는 뉴스와 정치 캠페인을 구분할 수 있는가. 팩트체크와 뉴스 리터러시는 정말 독립적인가. 아니면 새로운 정보 권력의 교육기관인가.

이 질문은 좌우 모두에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원칙이 흔히 편 가르기로 바뀝니다. 보수 억만장자의 언론 영향력은 민주주의의 위협이라고 부르면서, 진보 억만장자의 미디어 자선은 민주주의 보호라고 부릅니다. 반대로 보수 진영도 자기편 자금은 애국적 후원이라고 말하고, 상대편 자금은 선전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원칙이 아닙니다. 부족주의입니다.

언론의 자유는 다양한 권력이 서로 감시할 때 유지된다

언론 자유는 단순히 국가가 언론을 탄압하지 않는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언론 자유는 정보 권력이 분산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국가가 모든 언론을 통제하면 국가 선전이 됩니다. 기업 광고주가 언론을 통제하면 기업 선전이 됩니다. 플랫폼이 노출을 통제하면 알고리즘 선전이 됩니다. 재단과 억만장자가 공익의 이름으로 의제를 통제하면 자선 선전이 됩니다.

따라서 자유로운 언론 환경은 하나의 선한 권력이 관리하는 질서가 아닙니다. 서로 다른 권력들이 서로 감시하고, 다른 정보원이 경쟁하고, 시민이 여러 관점을 비교할 수 있는 환경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보 환경의 혼란은 어느 정도 자유의 비용입니다. 모든 사람이 같은 언론을 믿고, 같은 팩트체커를 따르고, 같은 뉴스 리터러시 교육을 받고, 같은 플랫폼 규칙 안에서 말하는 사회는 질서 있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질서는 자유의 질서가 아니라 관리의 질서일 수 있습니다.

언론의 목표는 시민이 올바른 생각만 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시민이 판단할 수 있도록 자료와 반론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결론: 자선은 언론 권력을 면제하지 않는다

억만장자 미디어 자선은 현대 언론의 중요한 현상입니다. 언론 산업이 흔들리고, 지역 뉴스가 무너지고, 광고 수익이 플랫폼으로 이동한 시대에, 재단과 부유한 후원자의 돈은 언론을 살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돈은 동시에 언론을 바꿀 수 있습니다.

언론사를 직접 사지 않아도 됩니다. 비영리 저널리즘을 후원하면 됩니다. 뉴스 리터러시를 후원하면 됩니다. 팩트체크 생태계를 후원하면 됩니다. 지역 뉴스 네트워크를 만들면 됩니다. 대학과 연구센터를 지원하면 됩니다. 플랫폼의 콘텐츠 조정 논리를 정당화하면 됩니다.

이것은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 권력입니다.

그 권력은 신문사 사주보다 부드럽습니다. 정치 광고보다 세련되어 보입니다. 검열보다 교육처럼 보입니다. 선전보다 공익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합니다.

자선은 권력을 면제하지 않습니다. 비영리라는 이름은 중립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뉴스 리터러시는 순응 훈련이 될 수 있습니다. 지역 뉴스는 정치 캠페인의 옷을 입을 수 있습니다. 팩트체크는 플랫폼 검열의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허위정보만 경계해서는 안 됩니다. 민주주의는 진실을 관리하겠다는 사람들도 경계해야 합니다. 특히 그들이 막대한 돈, 언론 네트워크, 재단, 플랫폼, 교육기관을 통해 시민의 정보 환경을 설계하려 할 때는 더 그렇습니다.

언론을 사지 않고도 언론을 움직일 수 있는 시대입니다.

그렇다면 시민이 물어야 할 질문도 바뀌어야 합니다.

이 기사는 누가 썼는가. 이 매체는 누가 소유하는가. 이 프로젝트는 누가 후원하는가. 이 팩트체크는 어떤 기준으로 이루어지는가. 이 뉴스 리터러시 교육은 누구를 신뢰하라고 가르치는가. 이 지역 뉴스는 정말 지역 뉴스인가, 아니면 정치 메시지인가.

언론 자유는 언론을 믿는 데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언론을 의심할 권리를 지키는 데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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