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dom

테오 판 고흐 살해 사건: 살인은 비난했지만 그 신념은 비난하지 않았다


테오 판 고흐 살해 이후 무슬림 단체들은 범행을 비난했지만, 신성모독·배교 처벌과 종교법 우위의 논리까지 충분히 거부하지는 않았습니다. 표현의 자유와 종교적 관용의 상호성을 묻습니다.

테오 판 고흐 살해 사건과 폭력의 배후에 남은 신념

2004년 11월 2일 아침, 네덜란드 영화감독 테오 판 고흐는 암스테르담 거리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총격을 받았습니다. 범인은 모로코계 네덜란드인 모하메드 부예리였습니다.

부예리는 쓰러진 판 고흐에게 여러 차례 총을 쏜 뒤 칼로 목을 베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칼로 장문의 편지를 시신에 꽂아 놓았습니다. 그 편지는 판 고흐와 함께 단편영화 《복종》을 만든 아얀 히르시 알리를 향한 살해 협박문이었습니다. 네덜란드 정보기관은 이 사건을 급진 이슬람주의 테러로 규정했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니었습니다.

부예리는 판 고흐에게 개인적인 원한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순간적인 분노를 참지 못해 우발적으로 범행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판 고흐가 이슬람을 모욕했고, 무슬림 여성의 억압을 비판했으며, 이슬람을 떠난 히르시 알리와 협력했다는 이유로 그를 처형했습니다.

판 고흐가 만든 《복종》은 여성의 몸 위에 쿠란 구절을 투사하면서 가정폭력과 여성 억압을 비판한 약 10분 분량의 영화였습니다. 표현 방식은 의도적으로 도발적이었지만, 문제의 핵심은 무슬림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종교적 정당화였습니다. 부예리는 그 비판에 말이나 영화로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비판자를 죽였습니다.

대화를 요구한 사람과 처형을 선택한 사람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총상을 입은 판 고흐는 범인에게 살려 달라고 호소하며 “우리 대화로 해결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부예리에게는 대화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이미 진리를 알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자신은 신의 명령에 복종하고 있으며, 상대는 신을 모욕한 불신자라고 판단했습니다.

이것이 신념을 가진 살인자의 위험입니다.

보통의 범죄자는 욕망이나 이익 때문에 법을 어깁니다. 그러나 종교적 확신으로 사람을 죽이는 자는 자신이 법보다 높은 명령을 수행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살인을 범죄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살인을 하지 않는 것이 신앙에 대한 배신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부예리는 재판에서도 자신의 행위를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판 고흐의 어머니에게 연민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고, 석방되면 같은 행동을 다시 할 수 있다는 취지로 진술했습니다. 네덜란드 법정은 결국 그에게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했습니다.

따라서 이 사건을 가난한 이민자 청년의 좌절이나 정신적 불안으로만 설명해서는 안 됩니다. 부예리에게 개인적인 좌절이 있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좌절은 살인의 동기가 아니라, 살인을 정당화할 사상을 받아들이기 쉬운 조건이었을 뿐입니다.

그가 실제로 말한 것은 분명했습니다.

그는 불신자를 죽였으며, 자신의 행동이 종교적으로 정당하다고 믿었습니다.

무슬림 단체들은 살인을 비난했다

사건 직후 네덜란드의 주요 무슬림 단체와 모로코계 단체들은 판 고흐 살해를 공개적으로 비난했습니다.

한 모로코계 단체 관계자는 사람을 발언과 의견 때문에 살해하는 자는 쿠란이나 이슬람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 무슬림 지도자도 이 사건은 이슬람의 가르침에 어긋나며, 한 개인의 범행을 전체 무슬림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비난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부분의 네덜란드 무슬림이 부예리의 살인을 지지한 것은 아닙니다. 사건 이후 일부 모스크와 이슬람 학교가 방화와 폭력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무슬림들이 집단적인 보복을 두려워한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판 고흐 살해 이후 이슬람 시설을 겨냥한 공격과 이에 대한 보복성 공격이 연이어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슬림 단체가 살인을 비난했느냐는 사실만이 아닙니다.

무엇을 근거로 살인을 비난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이것은 진정한 이슬람이 아니다”

당시 무슬림 단체들의 가장 흔한 대응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이것은 이슬람이 아니다.
범인은 쿠란을 잘못 이해했다.
한 극단주의자의 행동으로 전체 무슬림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이 말은 공동체 방어에는 효과적입니다.

범인을 이슬람 밖으로 밀어내면, 무슬림 공동체는 사건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살인은 한 개인의 왜곡이나 무지에서 나온 것이 되고, 이슬람의 교리와 전통은 검토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하지만 부예리는 자신이 이슬람과 무관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독실한 무슬림이자 지하드의 수행자로 인식했습니다. 그가 시신에 남긴 편지에는 배교자, 불신자, 유대인, 신의 적과 같은 종교적·정치적 개념이 반복적으로 등장했습니다. 그는 네덜란드 세속법이 아니라 자신이 해석한 종교적 명령에 복종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이슬람을 잘못 이해했다”는 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잘못 이해했는지 설명해야 합니다.

정작 답하지 않은 질문들

판 고흐 살해 이후 무슬림 지도자들이 분명하게 답했어야 할 질문은 따로 있었습니다.

이슬람을 모욕할 자유도 표현의 자유에 포함되는가?

무슬림은 무함마드와 쿠란을 조롱하거나 비판하는 사람의 생명과 자유를 인정해야 하는가?

이슬람을 떠난 배교자는 아무런 처벌 없이 살아갈 권리가 있는가?

여성은 종교적 가족 규범을 거부하고 개인의 자유를 선택할 수 있는가?

샤리아와 네덜란드 법이 충돌할 경우 어느 법이 우선하는가?

무슬림은 종교적 명령보다 세속국가의 헌법과 법률에 먼저 복종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단순해야 했습니다.

판 고흐의 표현이 모욕적이어도 그는 말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슬람을 비판하거나 떠난 사람도 동등한 시민입니다.
종교법은 네덜란드 법보다 위에 설 수 없습니다.
신성모독과 배교는 범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당시 주류 무슬림 단체의 대응은 대체로 그 단계까지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살인이 잘못이라고 말했지만, 신성모독과 배교를 처벌해야 한다는 전통적 관념까지 명시적으로 폐기하지는 않았습니다. 판 고흐가 모욕적인 사람이었다는 점과 무슬림 공동체가 받은 상처를 함께 강조하면서, 살인을 낳은 종교적 논리보다 이슬람 혐오와 집단적 비난을 막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공동체의 안전을 걱정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공동체에 대한 보복을 비판하는 것과, 공동체 내부의 폭력적 사상을 비판하는 것은 동시에 할 수 있습니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살인을 비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람을 거리에서 총으로 쏘고 목을 벤 행위를 비난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 정도의 비난은 네덜란드 사회에서 추방되거나 집단 전체가 위험한 세력으로 취급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필요합니다. 살인을 공개적으로 옹호한다면 무슬림 단체들은 국가와 시민사회의 협력 대상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진짜 어려운 일은 그다음입니다.

부예리가 살인을 정당화할 때 사용했던 종교적 개념을 이슬람 내부에서 부정하는 일입니다.

신성모독죄를 부정하고, 배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이슬람에 대한 조롱도 표현의 자유로 보호해야 한다고 선언하는 일입니다. 종교공동체보다 개인의 권리가 우선하며, 샤리아보다 세속법이 우선한다고 말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범죄 비난이 아니라 종교적 권위의 일부를 포기하는 선언입니다.

네덜란드의 무슬림 지도자들은 외부 사회에는 평화적 시민이라는 사실을 보여줘야 했습니다. 동시에 내부의 보수적인 신자들에게는 전통적인 배교관, 신성모독관, 종교법의 권위를 정면으로 부정하기 어려웠습니다.

결국 그들의 대응은 절충적이었습니다.

살인자는 공동체 밖으로 밀어냈지만, 살인자가 사용한 논리까지 공동체 밖으로 밀어내지는 못했습니다.

극단주의자는 정말 이슬람과 무관한가

모든 무슬림이 극단주의자는 아닙니다. 이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모든 무슬림이 극단주의자는 아니다”라는 말과 “이슬람 극단주의는 이슬람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말은 전혀 다릅니다.

부예리가 자신의 사상을 갑자기 무에서 창조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이슬람 역사와 법학, 급진주의 문헌에 존재하는 불신자·배교자·지하드·순교의 개념을 사용했습니다. 네덜란드 정보기관 역시 이 사건을 고립된 개인의 정신이상이 아니라 급진 이슬람주의 네트워크와 관련된 테러로 파악했습니다.

물론 전통적 개념이 존재한다고 해서 모든 무슬림이 폭력을 선택하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경전을 읽고도 평화롭게 사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명확한 구분이 필요합니다.

현대 자유사회에 적응한 무슬림은 단순히 “나는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데서 멈춰서는 안 됩니다. 다른 무슬림이나 비무슬림이 종교를 비판하고, 조롱하고, 떠날 자유까지 인정해야 합니다.

자기가 관용을 받는 것뿐 아니라, 자기가 싫어하는 타인의 자유도 인정해야 합니다.

그것이 종교적 공존의 최소 조건입니다.

관용은 일방적인 의무가 아니다

네덜란드는 오랫동안 관용을 국가적 자부심으로 여겼습니다. 서로 다른 종교와 생활방식이 각자의 공동체를 유지하면서 공존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판 고흐의 죽음은 관용에 전제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관용받는 집단도 다른 사람의 자유를 관용해야 합니다.

무슬림이 모스크를 세우고 쿠란을 읽을 자유가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는 이슬람을 비판하고 무함마드를 풍자하며 이슬람을 떠날 자유가 있어야 합니다.

한쪽은 신앙의 자유를 요구하면서 다른 쪽의 신성모독과 탈교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관용이 아닙니다. 자유사회의 제도를 이용해 자신의 공동체만 보호하려는 비대칭적인 요구입니다.

테오 판 고흐는 세련되거나 온건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종종 지나치게 공격적이었고, 상대방을 의도적으로 모욕했습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는 예의 바른 말만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불쾌해하지 않는 말은 특별히 보호할 필요가 없습니다. 표현의 자유가 진정으로 필요한 순간은 누군가가 신성하다고 믿는 것을 다른 사람이 조롱하고 비판할 때입니다.

부예리는 그 자유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무슬림 공동체의 대응도 그 자유를 조건 없이 인정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비난이 충분하지 않았던 이유

네덜란드 무슬림 단체들이 아무런 비난도 하지 않았다고 말하면 사실이 아닙니다.

그들은 살인을 비난했습니다. 범인이 이슬람을 대표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공동체 전체를 비난하지 말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그 비난은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살인행위는 거부했지만, 살인을 가능하게 한 신념체계를 명확히 거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 말했지만, “이슬람을 모욕할 권리가 있다”고 충분히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범인은 진정한 무슬림이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배교자와 불신자를 처벌한다는 사고 자체가 잘못됐다”고 분명히 선언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무슬림을 집단적으로 비난하지 말라”고 요구했지만, 공동체 내부에서 왜 그런 살인자가 나왔는지를 끝까지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의 대응은 네덜란드 사회에서 추방되지 않을 만큼의 비난에는 성공했지만, 자유사회의 원칙을 이슬람 내부의 원칙으로 받아들이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살인자를 격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자유사회는 부예리 같은 살인자를 체포해 영원히 격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념은 감옥에 가둘 수 없습니다.

한 명의 테러리스트를 종신형에 처하더라도, 그가 사용한 논리가 공동체 안에서 계속 살아 있다면 비슷한 사건은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후 유럽에서는 이슬람을 풍자하거나 비판했다는 이유로 작가, 교사, 만평가, 언론인들이 살해되거나 위협받는 사건이 반복되었습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무슬림에게 매번 테러를 비난하라고 요구하는 일이 아닙니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합니다.

이슬람은 자신의 교리보다 인간의 생명과 자유를 우선할 수 있는가?
무슬림 공동체는 이슬람을 비판하고 떠날 자유를 아무런 조건 없이 인정할 수 있는가?
종교적 신념과 세속법이 충돌할 때 세속법의 우위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명확하게 답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진정한 이슬람이 아니다”라는 선언은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반복되는 방어문구에 불과합니다.

테오 판 고흐를 죽인 것은 단지 모하메드 부예리라는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살인자로 만든 것은 분노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분노를 신성한 의무로 바꾸어 준 신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이슬람 공동체의 가장 큰 실패는 살인자를 충분히 비난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 살인자가 믿었던 신념을 충분히 비난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관련 태그:
← 정원 첫 화면으로 돌아가기